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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분석 - 오바마가 긴자에 가는 까닭은?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일본, 오바마 방일 이후 일왕의 첫 워싱턴 국빈방문 추진…역동성 회복한 아베의 ‘전방위 외교’ 과소평가해서는 안돼

▎아베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든 긴자의 일본인들.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청중이 모였다.



도쿄(東京) 긴자(銀座). 변화하는 일본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긴자 거리에 나서는 순간 일본이 어디쯤 있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은 한순간에 변하는 나라가 아니다. 벽돌을 하나씩 쌓아가는 식으로 연결되는 슬로푸드(Slow Food)형 국가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지만 표면적으로 보면 그렇게 달라진 것도 없다. 따라서 긴자 거리에 간다고 해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변화를 눈치채기 쉽지 않다.

긴자는 일본 천황가족이 거주하는, 이른바 황거(皇居)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황거와 파워와의 함수관계는 일본인 모두가 믿는 일반상식 중 하나다. 간단히 말해, 천황의 집에서 가까울수록 파워의 중심에 서 있다. 황거를 둘러싼 치요다쿠마루노우치(千代田区 丸の内)는 일본 전체의 심장에 해당된다. 파워의 핵(核)이다.

국회·정부청사·언론사·기업체 등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경제·신문·방송의 선두주자들이 숲으로 뒤덮인 낮은 담장 너머의 황거를 에워싸고 있다. 긴자라는 지명은 에도(江戸)시대 때 만들어졌다. 화폐를 만든 곳이 긴자다. 돈을 찍어낸 곳, 다시 말해 경제의 핵이 긴자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본사나 사무실의 주소가 치요다쿠로 돼 있다는 말은 열도를 좌지우지하는 곳이란 의미다.

긴자는 일본 최고의 백화점과 최소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상점으로 가득 차 있다. 새로운 상품, 새로운 생각이 탄생될 경우 가장 먼저 선보이는 곳이 이곳 긴자다. 권력과 돈의 원천이자 정통성의 단초이기도 하다. 요정(料亭)에서 일하는 긴자 마마(ママ)는 처세 심리 상담의 달인(達人)쯤으로 인정된다. 일본 어디를 가도 역 앞 어딘가에는 긴자라는 이름의 거리가 따로 존재한다. 도쿄 긴자의 권위를 빌린 지명이다. 긴자에서 인정받으면 일본 전체에서 통한다. 권력, 돈 나아가 지성 모두가 긴자에서 출발한다.


▎화이트 딸기의 출시를 알리는 선전 포스터.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선보였다.
2014년 봄에 태어난 화이트 딸기

2014년 초봄에 만난 일본의 변화는 작은 과일 하나에서 발견될 수 있다. 밸런타인데이에 앞서 출시된, 전혀 새로운 과일이다. 750엔짜리(한화 약 8천 원) 딸기다. 올해 일본에 선보인 수놓은 ‘신토우죠우(新登場)’ 상품 중 하나다. 2월 중순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긴자는 물론, 전국의 고급 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린 제품이다.

신토우죠우 딸기는 박스 안에 수십 개가 담긴 제품이 아니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단 한 개의 딸기다. 흔히 볼 수 있는 붉은색이 아닌, 표면이 흰색인 화이트 딸기가 주인공이다. 덜 익은 딸기가 아닐까 싶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명’된 딸기다. 당도(糖度), 향이 보통 붉은 딸기의 두 배 정도라고 한다.

긴자 미츠코시(三越) 백화점에서 화이트 딸기를 처음 보았을 때 눈이 번뜩 뜨였다. 일본이 마침내 오랜 동면(冬眠)에서 깨어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상품을 만난 것도 오랜만이지만, 딸기 하나에 750엔이란 점도 특별하다. 거품경제가 꺼진 뒤 찾아볼 수 없었던, 고가(高價)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침내 등장했다. 백화점 점원에게 판매상황을 물어보았더니 젊은 연인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장년들에게도 인기가 있다고 한다.

너무 잘 팔리기 때문에 매일 반입량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고 한다. 필자 역시 큰 맘 먹고 화이트 딸기를 하나 구입했다. 연인에게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호텔에서 은밀히 시식하기 위한 것이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딸기 박스의 향이 코를 찌른다. 맛은 소프트크림으로 만들어진 딸기 우유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2013년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제125차 총회에서 2020년 제32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일본 도쿄가 선정되자 도쿄 시민들이 크게 기뻐하고 있다.



2012년 한여름의 올림픽 퍼레이드

왜 딸기 하나에 8천 원이나 하는지 의문을 달기에 앞서, 25년 전 일본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났다. 유우바리(夕張) 멜론이다. 1980년대 초 거품경제 때 첫선을 보인 과일이다. 당시 무려 1만 엔의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필자의 당시 월급은 엔화로 7만 엔 정도였다. 까무러칠 정도로 놀란 것은 물론이다. 유우바리 멜론과 보라색 장미는 거품경제를 상징하는 발명품 중 하나다. 유우바리 멜론이 미각에 호소한 데 반해, 한송이에 600엔이나 하던 보라색 장미는 시각적인 면에서 일본인의 허영심을 흔들어놓았다.

유우바리 멜론은 지금도 최고가의 과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계 술집이 많은 도쿄 아카사카(赤坂)의 심야노점상에 가면 지금도 볼 수 있다. 맨 정신으로는 살 수 없는지, 새벽 술집 주변에서 많이 팔린다고 한다. 딱 한 번 먹어봤지만, 입에 넣는 순간 녹아드는 과일이다.

달지 않으면서 감칠 맛을 낸다. 사실, 유우바리 멜론은 맛이 어떤지에 대한 부분보다,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는지에 관한 스토리로 유명하다. 유우바리 멜론은 홋카이도(北海道)의 폐광(廢鑛)에서 탄생됐다. 맛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한 눈물겨운 인간승리가 11만 원짜리 과일의 배경에 드리워져 있다.

화이트 딸기는 좋았던 그 시절의 1만 엔짜리 과일에 비견될 수 있을 듯하다. 화이트 딸기가 거품경제를 상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고가의 과일, 창조적인 상품은 자신감의 또 다른 측면이라 볼 수 있다. 싸구려로 가기보다, 상상을 뛰어넘는 고품질의 최고급 상품으로 승부를 내자는 것은 자신감 없이 불가능하다. 움츠리거나 뒤로 물러나지 말고 앞으로 나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화이트 딸기에 드리워져 있다. 화이트 딸기는 잃어버린 20년의 어두운 그림자를 떨치려는 건강한 신념처럼 느껴진다.

고가의 화이트 딸기의 가치는 맛이나 향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가까이는 3년 전의 3·11 동일본 대참사를 극복해낸 일본인의 인간승리 스토리가 화이트 딸기 어딘가에 배어 있을 것이다. 보통 일본인들은 10엔, 20엔을 아끼려고 뒷골목 상점이나 자동판매기를 찾아 헤맨다.

저녁 7시를 넘기는 순간 편의점 곳곳은 손님들로 붐빈다. 밖에서 기다리다가 남은 물건에 할인표를 붙이는 즉시 안으로 달려든다. 아무리 특이하고 맛있어도 딸기 하나에 750엔은 너무 비싸다. 그러나 새로 발명된 상품에 대해 일본인들은 박수를 보내며 적극 호응한다. 길고 긴 어제의 어둠과 고통을 극복해나가고 있다는 희망과 확신이 750엔짜리 화이트 딸기에 투영돼 있다.

긴자는 파워의 원점인 동시에 파워를 창조해내는 동력(動力)이기도 하다. 일본에 주목하는 사람이라면 2012년 8월 20일 긴자에서 이뤄진 런던올림픽 참가자 퍼레이드를 기억할 것이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섭씨 40도 폭염 속에서 이뤄진 퍼레이드다. 행사 직전에 통보됐음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오전에 무려 5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런던올림픽에서 일본은 금메달 7개를 비롯해 전부 38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한국은 금 13개를 비롯해 전부 28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금·은·동 구별 없이 전체 메달 수로 종합전적을 결정한다. 은메달 10개라도 금메달 하나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 한국인데 비해, 금메달 1개에 비해 동메달 2개에 우위를 두는 것이 일본이다. 금메달에 비중을 두는 한국의 기준에 본다면 일본을 눌렀지만 전체 메달 수로 보면 일본이 우위에 있다. 총 메달 38개는 일본이 보여준 최고의 성적에 해당된다. 오랜만에 보여준 좋은 결과로 분위기가 들뜨면서 퍼레이드가 이뤄진 것이다.

필자는 당시 위성TV를 통해 이 퍼레이드 장면을 지켜봤다. 퍼레이드는 긴자 입구에서부터 긴자 8번(八丁目) 직선도로 상에서 이뤄졌다. 1㎞ 남짓한 짧은 거리다. 일요일이기 때문에 보행자 천국이란 이름으로 긴자의 차량운행이 통제됐다. 퍼레이드는 오픈 버스를 통해 이뤄졌다. 붉은색의 버스 7대가 동원됐다. 20∼30명의 선수가 버스 위에서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식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특이한 퍼레이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먼저 환영 분위기를 보자. 빌딩에서 뿌려지는 그 흔한 오색 종이가루도 없고, 연도의 환호성도 크지 않았다. TV 중계에 나선 아나운서도 낮은 목소리로 방송한다. 50만의 일본인은 그냥 묵묵히 일장기를 흔들며 퍼레이드 선수단을 우러러볼 뿐이었다. 신나고 흥분되고 자랑스런 퍼레이드와는 거리가 멀다.

현장의 분위기를 읽은 것은 TV 카메라가 환영객의 모습을 클로즈업할 때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비쳤다. 스쳐 지나가면서 잠시 잡히는 장면이지만, 많은 환영객이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필자는 한여름 대낮의 눈물을 지켜보면서 일본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더불어 앞으로 일본에 뭔가 큰 변화가 있으리란 예감도 지울 수 없었다. 당시 오사카(大阪)에서는 일본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자고 주장하는, 1969년생 정치 풍운아가 있었다. 오사카시장 하시모토 도루(橋下徹)다. 3·11 대참사를 극복하고, 잃어버린 20년을 되찾자는 열풍이 일본 구석구석에 스며들던 시기다.


▎2월 2일 도쿄도지사 보궐선거 자민당 후보 지지 연설에 나선 아베 총리 일행. 유세차량에 올라탄 아베는 신념과 확신에 찬 유세를 펼쳤다.
‘우리나라’란 말이 통용되지 않는 일본

긴자 퍼레이드에 나타난 눈물을 보면서 나약하고 감정적인 일본인이라는 식으로 무시할 수도 있을 듯하다. 잘못 이해하고 있다. 필자가 아는 한, 일본인은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자신의 감정조차 조절하지 못하는, 유치한 행동쯤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아무리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눈물을 흘릴 정도의 극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뭘 했느냐는 차가운 비난만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 TV 드라마에 익숙한 사람은 일본 드라마에 애정을 가질 수가 없다. 눈물도 없고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장면도 극히 드물다. 감정이 아니라,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머리를 통한 스토리가 돋보인다. 일본과 달리 한국에는 추리소설 영역이 극히 제한적이다. 한류(韓流) 붐이 일다가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본인이 처음 한국 드라마를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일본 드라마에 없는 눈물·격정·분노·열정 같은 요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강하다. 그러나 강한 맛에 대한 ‘호기심’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드라마의 스토리 자체도 단순한데다 눈물·분노가 넘치고 넘치는 과정에서 약발(?)을 잃게 된다. 한류 붐이 떨어지고 있다는 건 강한 게 오래갈 수 없다는 이치를 증명해준다.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긴자 퍼레이드는 전후 일본 사회 분위기를 바꾼 기념비적인 사건에 해당된다. 올림픽을 통해 국가로서의 일본에 집중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보통 일본인에게 국가라는 말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져 왔다. 태평양전쟁의 어두운 그림자 때문이다. 국가란 이름으로 단행된 엄청난 범죄와 이후의 고통이 유전자 깊숙이 박혀 있다. 국가의 국민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것이 전후 일본인의 사고방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행한 영어연설 가운데 ‘We(우리)’나 ‘Our(우리의)’란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우리민족 같은 말을 풀이하는 가운데 We와 Our가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我々の国)’라는 말 자체가 통용되지 않는다. 만약 우리나라라는 말을 사용할 경우, 초우익이나 전쟁 당시를 그리워하는 한물간 세대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한국 식의 우리나라 대신, ‘이 나라(この国)’나 ‘일본(日本)’이란 식으로 표현한다.

한국 역사를 한국사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이다. 50대에 접어든 필자 세대의 경우 한국사가 아니라, 국사(國史)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역사를 배웠다. 국사라는 말은 원래 일본 제국주의 시대 당시에 통용되던 것이다. 전후 일본은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국사라는 타이틀을 폐지한다. 대신 등장한 것이 일본사(日本史)이다. 올림픽 퍼레이드를 찾은 엄청난 환영인파와 그들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은 시대의 변화를 알리는 증거이다. 국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2014년 초, 필자는 1인 독주 아베가 어느 상태인지 알 수 있는 체험을 했다. 장소는 긴자를 대표하는 미츠코시와 와코우(和光) 백화점 바로 앞 도로다. 2월 9일 이뤄진 도쿄도 도지사 보궐선거를 위한 가두연설이 2월 2일 긴자 한복판에서 이뤄졌다. 아베는 자민당 후보인, 도쿄대 교수 출신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와 함께 나타났다. 청중 수가 엄청났다. 후보 마스조에를 보러 온 게 아니다. 아베의 연설을 듣기 위해 도로 전체가 사람들로 메워졌다.

필자는 정치인 양성소라 불리는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에서 공부를 했다. 정치가로 나선 선후배의 가두연설에 갈 기회가 많았다. 수없이 접한 정치현장이지만, 아베 때보다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본 적이 없다. 일본 가두연설의 분위기는 한국과 크게 다르다. 올림픽 퍼레이드에서처럼 조용히 쳐다보면서 듣는 식이다.

흥분된 목소리로 지지를 외치는 사람도 드물다. 중간중간에 터져나오는 박수소리를 통해 지지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지난 2월 도쿄도 도지사 선거의 최대이슈는 원자력 발전소에 관한 것이다. 전면중단이냐 가동확대인가를 결정하는 이른바 ‘원 이슈(One Issue)’ 선거로 기록된다.


▎붉은 신호등 아래에서 연설하는 고이즈미 전 총리(가운데). 아베의 인기에 밀려 과거 정치인으로 전락했다.



아베와 고이즈미의 긴자 결투

버스 연설대에서 아베는 보통 일본 국민의 눈높이 생각을 토로한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원전이 100%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아예 제로로 갈 경우 일본은 앞으로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어려움이 있고 불가능하게 보이더라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일본의 역사이자 저력입니다. 그런 역사적 과제를 수행해 갈 마스조에 후보를 밀어주십시오.” 아베의 목소리는 힘과 확신, 무엇보다도 설득력이 실려있는 듯 느껴졌다.

아베에 이어 반대 후보인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煕) 전 총리의 가두연설이 이뤄질 것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고이즈미 전 총리와 함께 등장한다고 한다. 한꺼번에 세 명의 전·현직 총리를 긴자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커피숍에서 기다리다가 연설장으로 다시 갔다. 아베가 행하던 가두연설 장소와 똑같은 곳에 유세차량이 들어서 있다. 이미 호소카와의 연설이 시작된 상태다.

아베 때에 비교할 때 청중의 수가 3분 1 정도로 줄어든 것처럼 느껴졌다. 청중 수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열기가 아베 때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호소카와의 연설은 맥 빠진 느낌으로 와닿았다. 일단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호소카와는 1993년 총리로 일한 인물이다. 8개월 간 재임한 뒤 수뢰문제로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다가 1998년 5월 정계 은퇴한다.

이후 도자기를 만들거나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일본 전통미를 알리는 문화인으로 활동한다. 1938년생이란 점을 감안하면, 76세 나이로 연설대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듯 느껴진다. 당장 원전중단을 주장하지만, 일부 열렬 반핵 반원전 지지자로부터 박수를 얻을 뿐 전체적으로 냉랭하다. 원전제로에 따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청중들의 박수와 함께 고이즈미 전 총리가 등장했다. 양복이 아닌 일본 국민복인 유니클로(ユニクロ) 오리털 파카를 입은 소탈한 모습이다. 그러나 목소리가 이미 전성기와 다르다. 우정성(郵政省) 개혁을 외치던 당시의 카랑카랑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아니다. 세월의 흐름이 목소리에 배어 있다. 사실, 청중 대부분은 호소카와가 아니라 고이즈미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도쿄도 도지사 선거는 후보자 당사자간의 싸움이 아니라 배후에 선 아베와 고이즈미의 대리전에 해당된다. 원전 즉시 중단을 부르짖는 고이즈미의 목소리는 이미 일본인의 마음을 떠난 공허한 외침처럼 와닿았다. 일본 사회의 흐름을 정의하는 ‘공기(空氣)’라는 차원에서 볼 때 호소카와는 말할 것도 없고 고이즈미조차 과거의 인물로 변해버렸다.

두 사람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아베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 2014년 2월 일본의 공기다. 도지사 선거결과, 마스조에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다. 호소카와는 사회당 후보에게도 밀려 3위에 그쳤다. 아베 이전 정치가의 완벽한 몰락과 아베 1인 독주시대의 증거다.

4월에 이뤄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일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이미 결정됐지만, 일본을 들른 뒤 한국에 온다고 한다. 최종 목적지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다. 오바마의 한국방문은 당초 불투명했지만 최종단계에서 결정됐다고 한다. 일본이 추진하던 국빈방문이 무산되면서 한국행이 결정된 것이다. 일본에 대한 한국외교의 승리라는 기사도 볼 수 있다.

한일 방문에 관련된 워싱턴 외교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궁금한 점이 있다. 한국도 동맹국인데 왜 일본은 반드시 방문할 상수로, 한국은 갈지 여부를 망설이는 변수 정도로 취급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한국의 언론들도 인정하지만, 오바마가 서울에 들르는 이유 중 하나로 종군위안부와 같은 과거사 문제가 있다. 오바마가 도쿄만 들를 경우 일본측이 주장하는 과거사 입장을 전면 지지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같은 오해(?)를 막기 위해 서울에 들른다는 것이다.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외국어대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오는 4월 아시아 방문길에 오르는 오바마는 한국, 일본도 방문한다.
오바마 방한은 중국 견제용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 한일 간의 협조를 강조한다는 취지에서 두 나라를 방문하겠지만, 한반도에 밀려드는 중국의 영향권을 차단하자는 게 더 큰 이유로 보인다. 한국이 오바마 방문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를 제기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미국이 과거사 문제를 이유로 서울에 들른다는 것은 한국의 일방적인 판단일 뿐이다. 제3자 간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미국이 적극적으로 끼어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한일 간의 역사문제에 대해 중립적 입장이라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오바마의 4월 아시아 방문은 지난해 실행하지 못한 아세안 방문 약속의 이행에 해당된다. 아시아 방문의 핵심은 사실 필리핀이다. 필리핀의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은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대해 적극 대응하고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중국은 남중국해 어업규제를 공식화한 상태다.

간단히 말해 바다에 임의로 선을 그은 뒤 넘어와서 물고기를 잡을 경우 나포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에서는 해외토픽 수준으로 다루고 있지만, 현재 동남아 전체가 들끓고 있다. 필리핀은 중국의 일방적 결정을 독일 나치의 침략에 견주면서 반중(反中) 최전선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베트남·말레이시아도 중국의 어업규제에 정면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3일 중국이 동중국해 방공식별권(ADIZ)을 설정할 당시 한국은 국제법에 어긋나는 행위라면서 반대했다. 비록 초계기지만 이어도 상공까지를 날아가 주권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그때 이후 한국은 중국의 해양상공 팽창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서는 조그마한 현안에도 일일이 대응하는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물밑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구체적인 대응방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동남아 전체가 반대하는 남중국해 어업규제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은 침묵모드다.

동중국해에서의 방공식별권과 관련해 일본의 기시다(岸田) 외무장관은 2월 9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만나 지난해의 결의를 재차 확인했다. 중국의 방공식별권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충돌이 일 경우 미일동맹이 곧바로 발효된다는 약속을 다시 한번 받아낸 것이다. 중국의 남중국해 어업규제 결정과 관련해서도 일본의 입장은 단호하다. 국제법에 어긋난다면서 동남아시아 제국과 함께 대응하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해둔 상태다.

현재 필리핀과 베트남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적 지원과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의 대응과 구별되는, 적극적인 외교공세가 일본주도 하에 벌어지고 있다. 오바마는 이 같은 상황 하에서 아시아 방문길에 오르는 것이다. 방문 목적이 아세안에 있다고 볼 때, 아세안과 함께 공동운명체로 나가겠다는 일본을 독려 지지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아세안에 무관심하고, 동중국해의 방공식별권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 한국은 처음엔 방문대상에서 제외됐었다. 사실 한미동맹이나 북한에 관한 특별한 이슈도 없는 상황이다.

워싱턴은 1월에 이뤄진 중국의 어업규제를 또 다른 중국식 대외팽창의 서막으로 보고 있다. 곧 목격할지도 모를, 남중국해 방공식별권 선포다. 지난해 말 워싱턴의 아시아 전문가는 중국의 남중국해 방공식별권 선포를 50대 50정도로 전망했다. 그러나 올 들어 가능성은 60대 40으로, 선포 쪽에 무게를 두었다. 오바마의 아세안 방문은 일방적으로 이뤄질지도 모를 남중국해 방공식별권 선포를 막자는 의도이기도 하다.

일본에 들를 경우 남중국해 방공식별권 반대입장을 아베와 함께 선언할 것이 분명하다. 한반도를 대상으로 한 집단적 자위권의 범주를 동남아 전체로 확산하는 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의 구(舊)일본해군의 작전영역을 아베에게 다시 넘겨주는 상황이 오바마 방문을 통해 결정될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 전체를 구도로 하는 반중(反中)전선 구축에 소극적이다. 남중국해 방공식별권에 대한 입장도 침묵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확대를 거듭하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구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다. 아세안 방문 목적이란 차원에서 볼 때 사실 오바마가 서울에 들러 얻어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냉전 때와 달리 휴전선에 들러 사진을 찍는다 해도 미국 국민에게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상수, 한국이 변수로 전락한 이유와 배경이다.


▎2013년 10월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정상회의. 아베는 아세안 국가와의 정치·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나섰다.



오바마 향한 아베의 교묘한 외교 ‘쇼’

통일을 위해, 전체 무역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중국시장에 대한 고려를 위해서라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국에 대한 한국의 배려가 특별해지면서 한국은 상수가 아닌 변수로 변해가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에 밀착되면 될수록 한국은 미국의 변수로 자리하게 된다. 아베는 그 같은 한국의 상황을 십분 활용하면서, 한국 대통령과의 만남에 매달리는 스토커처럼 행세하고 있다. 한일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미국에 보여주기 위한 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박대통령은 오바마 방문의 목적이 과거사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미정상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를 꺼낼지 여부는 박 대통령의 자유다. 그러나 얻을 수 있는 것은 국내에서의 지지율 상승에 국한된다. 중국의 팽창정책에 관한 미국, 일본 그리고 아세안 전체의 우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에 관한 부분이 4월 한미정상 회담의 핵심이다.

한국에서 오해하는 부분 중 하나는, 아베가 미국에 추파를 던지고 미국은 아베의 교묘한 전략에 넘어가고 있다는 식의 인식이다. 아베가 적극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역시 아베를 필요로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간단히 말해, 아베가 총리로 있는 동안 미일동맹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전부 해결하자는 게 현재의 워싱턴 분위기다. 내각제인 일본은 강력한 리더십 체제를 갖추기가 어렵다. 잃어버린 20년은 잃어버린 리더십의 시간이기도 하다.

필자가 <월간중앙>에서 수차례 강조했지만, 미국은 더 이상 혼자서 세계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세계가 아니라, 미국 자체 내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버겁다. 오바마를 기점으로, 총 쏘기를 두려워하고 손에 피 묻히기를 거부하는 국제보안관으로 전락했다. 일본은 그 같은 한계를 극복해줄 유능하고 발 빠른 파트너다. 한일 갈등, 야스쿠니 참배, 돌고래 포획을 이유로 미국이 일본을 멀리할 여유가 없다.

오바마가 국빈으로 도쿄를 방문하는 건 2016년 임기가 끝나기 전에 이뤄질 필수 행사다. 전후 연임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은 예외 없이 일본을 국빈자격으로 방문했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2016년 퇴임 전까지 한 번은 도쿄에 들를 것이다. 도쿄는 오바마 국빈방문 이후 천황의 워싱턴 국빈방문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공식방문한 적이 없는 천황부부를 카드로 내세운 것이다.

긴자 넘어 워싱턴까지 번지는 일본의 활력

주목할 부분은 오바마가 일본을 국빈방문할 경우의 구체적인 일정이다. 반중 전선 구축이 가장 큰 이슈가 되겠지만, 오바마 스스로가 원하는 세계적 이벤트도 빼놓을 수 없다. 히로시마(広島) 원폭기념관의 헌화다. 리버럴 대통령 오바마는 핵공포로부터 세계를 구하자는 소신을 갖고 있다. 일본의 원폭기념관을 방문하는 것은 역사상 영원히 남을 대통령의 업적 중 하나다.

캐롤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 대사는 도쿄 부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해 12월 10일, 나가사키(長崎) 원폭자료관에 들렀다. 일본을 처음 찾았던 계기도 원폭기념관과 관계가 있다. 대학 재학 당시 작은 아버지인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함께 일본에 들렀다. 케네디 대사의 나가사키 방문은 개인적인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오바마의 원폭기념관 방문을 위한 사전답사라는 분석도 있다.

전체적인 상황으로 볼 때, 오바마의 국빈방문이 이뤄질 경우, 히로시마에 날아가 헌화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듯 하다. 한순간에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핵투하에 대한 유감표명도 이뤄질 것이다. 한국인 입장에서 혼란스럽겠지만, 히로시마 방문은 언젠가 흑인 대통령 ‘오바마 레거시(Legacy)’의 장식물 정도로 자리 잡을 것이다.

도쿄의 심장 긴자에서부터 태평양, 나아가 워싱턴에까지 일본의 활기와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화이트 딸기도 보라색이나 금색으로 진화해갈 듯하다. 한국은 서울에서 보는 일본에 익숙해 있다. 미일동맹에 기초한 일본, 아세안 전체를 범주로 한 일본, 러시아·인도·호주를 시야에 둔 아베의 외교에 대해서는 무심하고 무지하다. 2월 중순, 도쿄에 머무는 동안 재삼 확인했지만 일본은 어제의 일본이 아니다. 필자의 오랜 지인인 한 일본 외교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재 외무성 직원 모두가 신났다. 오랜만에 일다운 일을 한다. 전방위 외교를 통해 일본의 내일을 창조해가고 있다.” 아베는 더 한층 강해질 것이고, 우향우 행보도 더욱 심해질 것이다. 아베 이후 정치가는 아베 이상의 민족주의적 강경노선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반도를 범주로 한 반일(反日) 차원이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 전체를 시야에 넣는 큰 그림 속의 외교정책이 아쉽다.

201403호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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