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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분석 - 일본의 과거사 왜곡은 ‘ 싸움에 진 개(마케이누·負け犬)’의 심리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A급 전범이 죄인 아니라는 아베의 발언은 집단으로서의 억울함과 반감의 표현…일본의 오랜 문화적 유전자를 제압할 수 있는 압도적인 국력배양 가능한가?

▎지난해 12월 일본의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신사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급 전범은 국내법으로는 죄인 아니다.” 2월 12일, 도쿄 전범재판에 관련된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의 발언이다. 미국 주도하의 법에 의한 단죄일 뿐,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유죄가 아니라는 의미다. “도쿄전범재판의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전제의 발언이지만, 조금 다른 각도로 분석하면 전범자 찬미처럼 들린다. 결과에 승복하긴 하지만, 결과 자체를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아베는 지난해 3월에도 도쿄재판을 “연합국측이 승자의 판단에 따라 단죄한 재판”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침략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베의 발언을 유추해석하면 ‘일본이 주변국을 침략한 것도 아니고, 전범자 처리도 미국이 주도한 법에 의해 처리된 승자의 횡포에 불과하다’라는 식으로 들린다.

일본인이 무슨 생각을 하든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사실상 국가수반인 총리가 한국과 관련된 역사문제를 ‘입 밖으로 공식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안방 이불 속에서 무슨 소리를 하든 안 들리면 그만이다. 일단 밖으로 터져 나온 이상 한국인이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우향우로 치닫는 아베의 역사인식을 증명하는 발언이다. 태평양전쟁을 미화하고, 전범자를 찬미하는 발언이란 식으로 한국의 신문·방송에 보도된다.

사실 비슷한 발언은 아베만이 아니라 일본인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역사관 중 하나다. 총리가 언급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지만, 장관·정치인·관료 심지어 탤런트조차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자주 언급하는 세계관이다. 이들 대부분은 태평양전쟁을 미화하는 직접적인 발언은 삼간다. 다만 “전쟁에 졌으니까 연합국이 만든 법에 의해 단죄됐을 뿐, 만약 이겼다면 일본이 그들을 죄인이라 불렀을 것이다. 이긴 쪽이 만들어낸 일방적인 정의(正義)일 뿐, 전범재판 그 자체가 절대가치인 것은 아니다”라는 인식을 내비친다.

한국인 대부분은 그 같은 발언을 접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이런 질문을 퍼부을 것이다. “그럼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아시아 전체를 피로 물들인 것이 옳았다는 것인가?” 일본인 대부분은 그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피해간다.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쿄재판의 전후 맥락을 보면 전승자의 전리품과 같은 것이란 의미다.” 대화는 그쯤에서 멈추는 것이 좋다. 피해자로서 한국인이 갖는 역사관과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라는 식으로 포장하는 일본인의 세계관은 물과 기름의 관계일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악행보다 타인으로부터 당했던 모욕과 수치만을 기억한다.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도쿄 전범문제와 관련해 일본인 70% 정도가 아베의 생각을 지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드러내놓고 말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한국 신문에 실린 일본인 칼럼의 대부분은 태평양전쟁을 깊이 반성하고, 아베와 같은 우향우 인사를 비난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의 대부분은 반핵·반전·반미를 이데올로기로 살아온 단카이(団塊)세대거나, 그들의 생각에 찬성하는 사람들이다. 전쟁의 참상과 패전의 고통을 경험한 세대들이 주류다. 세월이 흐르면 시대의 상식도 변한다. 단카이가 세상에서 사라지면서 1954년생 아베가 등장하고,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서의 재평가론이 일본의 신문·방송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A급 전범자는 강자들의 전리품?

필자는 새삼스럽게 아베의 왜곡된 세계관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단지 주목하는 부분은 도쿄전범재판을 대하는 일본 특유의 세계관 속에 투영된 문화·정신적 배경이다. A급 전범자는 일본군 300만 명을 전쟁터로 몰아넣은, 일본인을 죽음에 몰아넣은 가해자이기도 하다. 최근 NHK에 의해 밝혀졌지만,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는데도 원폭이 아니라, 성능 좋은 폭탄에 불과하다고 강변한 것이 A급 전범자들이다. 일본 역시 원자폭탄 개발에 나섰지만 실패로 끝나자 미국도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8월 9일 나가사키에 제2호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그 순간에도 “원자폭탄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미국이 또다시 그 같은 무기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둘러댔다. 두 발이 일본땅에 떨어진 뒤에도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처구니없게도 히로시마·나가사키는 공습경보도 없이 당한 참사다. B-29가 접근할 당시 공습경보를 발효했더라면 사상자는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 같은 몰살을 방치한 주범이 A급 전범자들이다. 그러나 일본인 70%는 전범자들이 유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의 행적을 몰라서일까? 그렇지 않다.

A급 전범자의 무책임하고 대책 없는 결정과 지시는 전후 일본의 신문·방송을 통해 충분히 전달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급 전범자를 강자의 전리품이라 생각한다. 왜일까? ‘국수주의와 제국주의 나아가 군국주의 사상을 가진 정치가들 때문’이란 식의 답은 외국인이 내리는 표면적 분석에 불과하다. 일본인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와 가치관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왜 새삼스럽게 A급 전범자 문제를 꺼내서 이슈화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표면에 드러나는, 단발성 발언에 주목할 경우 일본인의 행동유형과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 일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알고 싶다면, 일본인 대부분이 공유하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심리적 유전자를 찾아내야만 한다. 예단과 단정이 지배한, 구한말 당시의 일본관은 정답이 될 수 없다. 왜 일본이 저런 어처구니없는 언행을 계속 되풀이하는지, 그 근본을 이해할 때 정확한 대응책도 마련될 수 있다.

일본에서 주기적으로 터져 나오는 과거사 왜곡 발언은 한국인에게 낯선 일본인 특유의 가치관을 배경으로 한다. ‘마케이누’ 세계관이다. 마케이누(負け犬)란 ‘싸움에 진 개’란 의미다. 패자라는 말로, 경주에 이긴 승자를 의미하는 ‘카치우마(勝ち馬)’의 반대개념이다.

개는 무리로 몰려다닌다. 따라서 주종관계, 즉 서열이 분명하다. 강하고 약한 개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강한 개를 보면 앞에서 벌렁 누워 항복의사를 표하거나, 신음소리를 내면서 애교를 부린다. 결코 큰소리로 짖지 않는다. 일본어 관용구로 ‘마케이누 토오보에(負け犬の遠吠え)란 말이 있다, 약한 개는 혼자 있을 때만 먼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짖는다는 뜻이다.

마케이누 세계관을 키워드로 잡은 이유는 일본인이 가진 마케이누에 대한 ‘특별한 관심’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마케이누가 아니라 결승점을 가장 먼저 끊은 카치우마를 통해 발전해왔다. 일본 역시 카치우마를 최고 가치로 두면서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비교해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카치우마 세계관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마케이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나라보다도 깊다. 단순히 잊지 않고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애정 나아가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추신쿠라 스토리를 소재로 한 도시 건물의 미술 장식품. 추신쿠라는 황당하고 비이성적인 실화지만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케이누(負け犬)와 카치우마(勝ち馬)

전적으로 일방적인 판단이지만, 일본 사회를 총괄해볼 때 카치우마에 대한 얘기가 60%, 마케이누가 40% 정도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마케이누에 대한 얘기나 연구·교훈·숭배의 정도가 남다르다. 한국이라면 어떨까? 역시 전적으로 주관적 판단이지만 카치우마가 90%, 마케이누가 10% 정도에 머물지 않을까? 보기에 따라서는 카치우마 99%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삼국통일의 과정을 보자. 백제의 계백장군 얘기가 조금 나오지만, 김유신과 신라의 영웅들에 대한 얘기가 90% 이상이다. 백제·고구려 사람들의 활동 내용이나 세계관, 나아가 나라를 잃은 뒤의 펼쳐진 마케이누로서의 삶에 대한 얘기가 극히 드물다.

승자가 일방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정사(正史)로서의 역사다. 반군의 무용담이 사라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일본 역시 정사만을 본다면 마케이누 얘기가 극도로 제한된다. 하지만 비사(秘史)·전설·민화 수준으로 넘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마케이누 스토리가 주류로 자리 잡는다. 일본 역사를 통틀어 양적·질적으로 마케이누 얘기가 넘치고 넘친다.

일본인이 열광하는 마케이누 스토리의 대표주자를 꼽으라면 추신쿠라(忠臣蔵)다. 지난해 <월간중앙> 11월호를 통해 밝혔지만, 외국인이 일본을 연구할 때 읽는 ‘일본학(Japanology)’의 바이블에 해당한다. 이미 300여 년 전에 탄생된 실화로, 소설·영화·가부키(歌舞伎)·음악·미술 등 모든 장르의 테마로 등장한다. 개인·가족이 아닌,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일본인의 세계관과 사생관(死生觀)을 압축한 것이다. 오이시 구라노스케(大石内蔵助)는 추신쿠라에 등장하는 47명 사무라이의 수장에 해당된다.

추신쿠라 스토리는 억울하게 할복한 주군의 원수를 처단한 뒤, 47명 사무라이 전원이 할복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주군이 막부의 의전담당관과 언쟁을 벌이다가 칼을 뽑아 살해하려던 중 미수에 그친다. 막부의 집안에서 칼을 뽑았다는 이유로 할복형에 처해진다. 주군을 따르던 47명의 사무라이는 그 내막을 안 뒤 복수를 다짐한다.

매년 되풀이되지만, 연말의 일본 텔레비전과 영화는 추신쿠라 집단자살 스토리의 각축장이 된다. 주군의 무덤 앞에서 원수 처단 소식을 알린 뒤 할복으로 생을 마치는 ‘장엄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어른만이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과 동화 만화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관점이 조금씩 다르지만, 중심 스토리는 항상 똑같다. 명실상부한 국민스토리다.

소위 일본정신의 원류라 추앙받는 추신쿠라는 카치우마가 아니라, 마케이누에 관한 스토리다. 주군의 원수를 처단하기는 하지만 추신쿠라의 대장인 오이시와 부하는 죽음으로 생을 마친다. 사후(死後)에 부분적으로 명예회복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자신의 성에서 쫓겨나 실업자로 전락한 패배자에 지나지 않았다. 화를 참지 못하고 칼을 뽑은 주군도 어리석다.

카치우마가 아닌 마케이누 스토리인 추신쿠라가 왜 일본인의 가치관 속에 투영돼 있을까? 그 답은 일본인이 흠모, 추앙하는 또 다른 마케이누 실화인 신센구미(新選組)를 통해 알 수 있다. 추신쿠라와 신센구미 스토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마케이누 양대 산맥에 해당된다. 추신쿠라처럼 신센구미 역시 일본학 연구의 기본서다.


1 일본 아이돌 그룹의 대명사 AKB48. 멤버 내 순위 경쟁은 노력하면서 위로 올라가려는 마케이누 세계관을 반영한다. 2 일본 서점의 베스트셀러로 등장한 ‘일본 예찬론’ 서적들. 마케이누 의식의 부활로도 해석된다.
보통의 일본인이라면, 신센구미라는 말은 귀로 접하는 순간 뭔가 성스럽고 가슴 벅찬 기분에 빠진다. 신센구미는 300년 에도(江戸)시대를 연 도쿠가와(徳川) 막부 말기에 활동한 치안유지대다. 막부를 보좌하는 이른바 ‘사바쿠(佐幕)’ 집단이다. 1863년 2월 27일, 천황이 거주하는 교토(京都) 치안확보를 위한 자원봉사대 성격으로 데뷔한다. 초기의 조직명은 ‘로시타이(浪士隊)’. 로시(浪士)란 로닌(浪人) 즉, 직업도 주군도 없는 실업자 사무라이를 의미한다. 한말 황후인 명성왕후를 시해한 사무라이도 바로 로닌이다.

마케이누 스토리의 전형 ‘추신쿠라’

1863년 8월 13일, 로시타이는 친(親)막부의 선봉에 선 아이즈한(会津藩)을 돕는 외곽부대로 활동한다. 자원봉사단 수준이 아니라 교토를 지키는 공적 조직으로 진화한다. 더불어 로시타이를 폐지하고, 신센구미라는 이름을 얻는다. 막부를 지키던 아이즈한의 최정예 부대 이름이다. 자원봉사나 용병수준이 아니라, 매달 월급을 받으면서 교토의 치안을 책임지는 사바쿠 사무라이다.

당시 교토는 전국에서 몰려온 로닌들로 어수선했다. 페리의 흑선이 1853년 도쿄 앞바다에 나타난 이래 일본은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에 이어 영국·프랑스·러시아가 불평등 통상조약을 체결한다. 천황은 그 같은 막부의 방침에 묵시적으로 반대했다.

교토의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로, 실제 권력은 현재 도쿄인 에도의 막부가 쥐고 있었다. 막부는 자신의 친위세력을 교토로 보내 천황을 감시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로닌은 외국에 굴복한 막부를 국적(國賊)이라 생각했다. 막부 자신들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과 불평등조약을 맺고, 천황의 권위도 땅에 떨어뜨렸다고 판단한다.

로닌들이 에도에 몰려가 개혁을 원하는 상소장을 올리지만, 막부는 꿈쩍하지 않는다. 로닌들은 천황 주변을 가로막고 있는 친막부 세력을 없애는 것만이 국난을 극복할 유일한 해결책이라 믿는다. 천황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지 않으면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라 전망한다. ‘천황을 중심으로 뭉쳐 외국의 적들을 물리친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 세력들이다. 이들은 교토로 몰려가 천황을 감시하던 사바쿠 요인들의 암살과 축출을 주도한다. 교토와 에도가 초긴장상태에 빠졌다.

혼란 속에서 탄생된 신센구미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개혁주의자들을 적으로 한다. 칼로 무장한 초(超)보수 사무라이 집단이다. 신센구미가 막부 말기의 스타로 등장한 계기는 1864년 7월 8일 발생한 이케다야(池田屋)사건을 통해서다. 존왕양이를 주장하던 조슈번(長州藩) 출신 사무라이 20여 명을 참살한 사건이다.

교토 내 친막부 세력을 공격하고자 여관인 아케다야에 몰려 있던 사무라이들을 신센구미 4명이 상대해 승리로 이끈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스토리가 이케다야 사건이다. 2층 좁은 공간에서 이뤄진 진검승부다. 4대 20의. 사무라이 전사(戰史)에 남는 명승부다. 드라마틱한 무용담과 함께 신센구미는 천하 최고의 검사(劍士) 집단으로 추앙된다. 교토 전체의 치안이 200여 명의 신센구미에 맡겨진다.

신센구미의 운명은 탄생 4년 뒤인 1867년 10월 14일을 기점으로 일변(一變)한다. 대의명분을 잃고 정통성도 약화된 막부가 천황에게 권력의 일부를 넘긴다. 새로운 권력구도 논의의 주체로 천황을 끌어들인다. 이른바 ‘대정봉환(大政奉還)’이다. 천황이 전국의 제후(諸侯)를 불러모아 신체제를 논할 때 막부가 친위세력을 통해 전권을 장악한다는 것이 대정봉환의 숨겨진 의도다. 천황을 간판으로 내세워 반대자를 일소하고, 실추된 막부의 권위를 부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막부는 스스로의 꾀에 넘어간다. 천황이 제후들을 모아 회의를 하는 동안, 거꾸로 천황 친위쿠데타가 발생한다. 이들은 천황을 앞세워 제후회의를 연 뒤 곧바로 막부체제를 폐지한다. 천황 중심의 신체제에 막부가 동의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일본 전역을 피로 물들인, 천황파와 막부파 간의 전면전이 시작된다. 1868년 1월부터 1869년 6월까지 계속된, 이른바 ‘보신(戊辰)’전쟁이다. 천황파는 이미 결정된 제후회의의 법을 근거로 스스로를 정부군이라 부른다. 관군(官軍)이던 막부는 졸지에 반군으로 전락한다.

막부파가 반군으로 전락하자, 신센구미의 위상도 한순간에 변한다. 사바쿠의 최정예 선두부대로 신센구미가 나선다.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을 양대 산맥으로 한 존왕양이 정부군은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근대식 무기를 투입한다. 천하의 사무라이 집단이라고 하지만, 대포와 총 앞에 무기력하게 쓰러진다. 막부 지지세력과 함께 북쪽으로 쫓겨가면서 싸우지만, 제대로 된 전과(戰果) 하나 없이 홋카이도(北海道)하코다테(箱館)전쟁에서 궤멸한다. 1869년 6월 27일은 300년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인 동시에, 신센구미 최후의 날이다.

신센구미의 배경은 일본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페리상륙에서부터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던 시기까지다. 길게 보면 10년 정도다. 이 시기는 내일을 가늠할 수 없는 암흑의 시대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와 같은 존왕양이 사무라이가 영웅으로 그려지지만, 결과론적으로 시대의 스타가 됐을 뿐이다.

원래 에도시대의 권력의 정통성은 도쿠카와 막부다. 막부를 배신한다는 것은 충과 의를 버리는 역적 행위이다. 그러나 중국을 무너뜨린 외국이 몰려오면서 천황과 막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중간이 없다. 개인만이 아니라, 전국에 흩어진 봉건영주 다이묘(大名) 지배 하의 한(藩)이 천황과 막부 중 하나에 올인해야만 한다.


▎일본인들이 절에서 기원하는 내용은 자신이나 가족의 안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혀 모르지만 고통받는 타인에 대한 배려도 절에서 이뤄지는 기원의 중요한 부분이다.



일본인들이 신센구미에 환호하는 이유

당시 일본 전역은 적과 동지가 하루아침에 변하던 시기다.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환경 속에서 정확한 정세 파악은 불가능했다. 이케다야 사건을 통해 데뷔한 신센구미의 활약상은 막부의 파워와 정통성을 증명하는 잣대 중 하나였다. 일본인들이 신센구미에 환호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나눌수 있다.

첫째 마코토(誠), 즉 절대적인 충성이다. 충성의 상징으로서의 신센구미다. 주목할 부분은 신센구미의 붉은 깃발 한가운데에 들어선, 금색 글씨의 마코토(誠)가 갖는 의미다. 편의적으로 충성(忠誠)이란 말로 풀이되지만, 원래 일본에서 충성이란 단어는 극히 드물게 사용된다. 마코토라는 표현이 일반적이다. 일본의 마코토는 한국식 충성의 개념과 조금 다르다. 통상 한국인이 사용하는 충성은 상부에 대한 부하의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다. 상부의 명령에 무조건 따른다는 의미다. 개인의 생각이 어떤지 관계없이, 국가·사회에 멸사봉공(滅私奉公) 하는 것이 충성의 출발점이라 믿는다.

일본의 마코토의 개념은 어떨까? 마코토의 한자적 의미는 ‘말(言)’과, 된다·지킨다의 의미를 가진 ‘성(成)’을 더한 것이다. 한번 말하면 지킨다는 의미다. 한국의 충성이란 개념에 비교하면, 개개인의 의지나 생각이 강조돼 있다. 내가 생각한 부분을 지킨다는, 나와의 약속이란 측면이 강하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를 말하기 전에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강조하는 것이 마코토다. 일방적으로 하달된 가치관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한 세계관에 기초한 멸사봉공이다. 한국의 충성이 밖에서 만들어져 개개인에게 하달된 데 비해 일본의 마코토는 스스로 결정한 신념이 밖으로 실천되는 식의 개념이다.

일본은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다. 일방적으로 주입된 국가관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이 일본인의 초상화라고 믿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부로 내려가면 그 같은 해석이 옳겠지만, 중간급 정도에 가면 상황은 다르다. 상부의 일방적 지시의 영향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판단해서 그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가미카제(神風) 조종사들이 남긴 편지와 기록물은 현재 일본이 추진하는 세계문화유산 무형문화재 목록 중 하나다. 내용을 보자. 20대 초 전후의 조종사들이 남긴 최후의 편지는 결코 죽고 싶지 않다는, 살아서 부모와 만나고 싶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스스로의 결의와 이유를 편지 어딘가에 남긴다. 헌병의 편지검열 때문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신센구미가 내건 마코토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신센구미는 스스로에 대한 약속과 신념에 바탕해 막부와 일심동체가 된다. 절대적 충성은 막부가 힘을 발휘하거나 정통성을 가지고 있을 때에 국한되지 않는다. 약해지고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해도 끝까지 간다. 신센구미의 3역 중 한 명은 정부군에 밀려 홋카이도까지 쫓겨간 뒤 전사한다. 신센구미의 최고 수장은 체포돼 참수를 당하기 바로 직전까지도 자신의 대의명분과 막부에 대한 충성의 시(詩)를 수없이 남긴다. 막부가 얼마나 위대한 가에 대한 얘기는 논외다. 스스로가 내세운 대의명분과 약속에 주목할 뿐이다. 이기고 지고에 관계없다.

신센구미 스토리가 일본인의 가슴속에 남는 둘째 이유는 요원들이 가진 ‘너무도 평범한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신센구미는 크게 세 명의 인물이 주도한다. 대장격인 곤도 이사미(近藤勇), 부대장 격인 히지가타 도시조우(土方歳三), 야전사령관격인 오키타 소우지(沖田総司)다. 이들은 검술·봉술·유술(柔術:유도의 전신)을 총체적으로 익히는,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라는 검술유파(流派)를 통해 만난 사이다. 현재도 남아있지만 천연이심류는 단순히 검술에 특화하는 것이 아니다. 전방위 체력훈련을 통해 검술을 익히는 식이다.

한순간 피었다 순식간에 지는 벚꽃처럼

신센구미는 정식 사무라이가 아니라, 사무라이가 되고 싶은 무명의 농민들이 만든 조직이다. 대장, 부대장이 전부 농민출신이다. 야전사령관만이 사무라이 출신이다. 이케다야 사건은 농민 출신인 대장과 부대장이 만든 무용담이다. 일본에서 농민은 백성(百姓) 부류에 들어간다. 땅과 하늘에 의존하며 농사로 생을 이어가는 백성은 하층민의 대명사다. 사무라이는 백성을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음을 담보로 한 사무라이가 백성 위에 군림한다. 따라서 막부를 지키는 최정예부대의 배경이 백성이란 것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그 사람들 칼을 제대로 쓸 줄 아는가?”라는 의문이 먼저 떠오를 듯하다. 칼을 잘 다룬다 하더라도 “농민들이 사무라이 정신이 무엇인지 알까?”라는 식의 힐난이 기다리고 있다.

신센구미는 일반인들의 그 같은 인식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실력을 쌓는 데 주력한다. 지금은 역사유물관으로 변했지만, 이들은 교토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거의 매일 검술훈련을 행한다. 필자도 직접 찾아가 봤지만, 교토의 ‘야키테이(八木邸)’는 당시 신센구미의 훈련소에 해당되는 곳이다. 약 40명이 머문 곳으로, 전체 크기는 다다미(畳) 40쪽 정도다. 침식과 검술훈련을 겸한 다용도 공간이다. 현장을 보면서 느낀 것은 신센구미가 남긴 전설과 달리 너무도 작은 공간이란 점이다.

아직 남아 있지만, 들어가는 입구의 문 위에는 칼에 찍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신센구미를 죽이러 온 사무라이들의 기습공격 당시에 남긴 흔적이다. 이마를 가리는 철판인 하치가네(鉢金)는 사무라이들이 결전에 들어갈 때 사용하는 호신도구다. 신센구미 2인자 히지가타가 남긴 하치가네를 보면 적으로부터 당한 칼자국이 수없이 패여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방침을 규탄하는 한국의 시민단체 회원들.
신센구미를 추앙하는 이유 중 셋째는 가장 젊을 때 기상을 펼쳤고, 자신들의 생각이 좌절되는 순간 죽음으로 생을 마쳤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신센구미는 물론, 일본인이 열광하는 메이지 시대 스토리의 공통점은 젊음, 즉 청춘으로 압축된다. 따뜻한 햇빛에 맞춰 한순간 피었다가, 봄철 차가운 바람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벚꽃(桜)과 같은 운명이 신센구미 전설에 투영돼 있다.

A급 전범 찬양 일본인은 늘어난다

신센구미 얘기를 할 때 빼놓지 않는 부분은 대장, 부대장 등 부원들이 가진 인간적인 측면이다. 애처가로, 때로는 자상한 아버지로, 나아가 고향의 부모와 친척들에 대한 사려 깊은 정리(情理)가 마케이누 신센구미를 추앙하는 넷째 이유다. 신센구미 지도부의 묘소들은 교토와 고향 곳곳에 남아 참배객들을 맞고 있다. 메이지 시대 당시 천하의 역적으로 알려져 언급하는 것조차 불온시됐지만, 그들에 관한 유물과 얘기는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신센구미 지도부 묘소의 대부분이 부인과 함께 들어서 있다는 점이다. 부인들의 대부분은 신센구미에 앞서 천황파에 체포돼 살해되거나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난다. 신센구미가 남긴 편지를 보면 그들의 부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곳곳에 넘친다. 죽은 뒤 반드시 부인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이 편지 어딘가에 새겨져 있다.

신센구미는 2002년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Last Samurai)>의 배경으로도 등장한다. 막부파를 지지하다가 졸지에 반군으로 전락한 사무라이들의 얘기가 주된 스토리다. 프랑스 군사 고문단으로 일본에 건너와 신센구미와 함께 홋카이도 전투에 참가한 쥬르 브르네(Jules Brunet)가 주인공 톰 크루즈의 모델이다. 질 줄 알면서 정부군의 대포와 총 사이로 진격하는 사무라이들의 마지막 진격 모습이 인상에 남는 영화다.

일본인의 마케이누에 대한 관심은 2·3류 인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탄 정도라 볼 수도 있다. 좀 더 깊이 설명하자면 한국인의 한(恨)과도 비슷하게 와닿는다. 억울하게 죽거나, 하소연 한번 하지 못하고 사라진 영혼을 위한, 위안(慰安)이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메이지 유신이란 이름 하에, 한순간 역적으로 사라진 막부파의 하소연이 신센구미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마케이누는 개인적 차원에 그치는 한국적인 한과 다르다. 대의명분을 앞세운 집단으로서의 억울함이 추신쿠라와 신센구미에서 느껴진다.

일본인들은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 믿고 있다. 아베와 보통 일본인의 A급 전범자를 보는 시선은 바로 그 같은 문화적·유전적 배경하에서 탄생된 것이다. 한국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지만, 일본인으로서는 스스로의 유전인자를 제거하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세계관이다. A급 전범자를 추모하지 말라는 수준의 비난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추모할 경우 어떤 불이익이 따를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만이 그 같은 생각을 표출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동인(動因)이 될 것이다. 일본을 능가하는 힘의 배양만이 정답이다. 신센구미를 찬양하듯, A급 전범을 마케이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일본인은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반일·혐일·친일도 아닌, 지일(知日)을 근간으로 한 극일(克日)만이 답이다.

201404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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