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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터뷰] ‘섹시한 글쟁이’ 허지웅 

“저 ‘라이징 스타’ 아니에요. 올해 안에 질리실 걸요” 

김슬기 월간중앙 기자 rookie@joongang.co.kr
JTBC 〈썰전〉 〈마녀사냥〉으로 방송인 등극… 직설화법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방송계의 ‘핫아이콘’ 부각



목 뒤쪽으로 보이는 검은 두 줄의 문신이 언뜻 보인다. 왜소한 체격에 쫙 달라붙는 찢어진 스키니진 차림이다. 작은 눈의 깡마른 그가 나타나자 젊은 여성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진다. 기자이자 영화평론가, 방송인 허지웅(35). 흡사 인기 연예인의 팬사인회 같은 광경에 허지웅도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다. 3월 13일 서울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 북콘서트에는 1200여 명의 팬이 그를 보려고 몰려왔다.

허지웅은 지난해부터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는 JTBC 〈마녀사냥〉과 〈썰전〉에 출연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날 북콘서트의 관객 대부분이 20~30대 여성이었다. 북콘서트를 앞두고 VIP룸에서 만난 허지웅은 굉장히 정중했고,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가감 없이 풀어내는 언변을 지닌 사람이었다. 〈마녀사냥〉과 〈썰전〉에서 섬세하면서 시원시원한 입담을 자랑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기자·영화·평론가·칼럼니스트 등 허지웅 씨를 부르는 여러 직함이 있는데, 항상 “글 쓰는 허지웅입니다”라고 소개하더군요. 그렇게 말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 직업을 규정하기가 참 애매하죠. ‘저는 평론가이고, 기자고, 칼럼니스트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거추장스러워 보여요. 의사나 변호사처럼 ‘사’자 붙는 직업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는 게 굉장히 싫거든요.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제 직업이 한 줄로 정의되잖아요. 글 쓰는 게 제 일이니까요.”

오마이뉴스 사회부 인턴기자로 기자생활을 시작해 〈필름 2.0〉에서 영화기자가 되셨네요. 본래 영화기자에 대한 꿈이 있었나요?

“글 쓰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죠. 다른 직업은 생각해본 적이 없을 정도예요. 글 쓰는 사람이 되려고 습작을 하거나 훈련을 하는 건 아니지만 글 쓰는 일이 제 생활과 늘 맞물려 있었던 것 같아요. 반드시 글을 쓰겠다거나, 기자가 숭고한 직업이니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생계랑 연관돼 있어서 일찍부터 글을 썼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주변에서 돈을 주면서 ‘글 써달라’고 찾아주니까 자연스럽게 제 밥벌이가 됐어요.”

“글 쓰는 사람, 허지웅입니다”

미국 작가 폴 오스터의 자전적 소설 〈빵 굽는 타자기〉를 떠올리게 하는 답변이었다. 생계를 위해 대본 각색, 비서, 허드렛일 등 무엇이든 써야 했고 일해야 했던 작가와 허지웅은 닮은꼴이다. 그는 군 제대 후에 하루에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학비랑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용산 전자상가에서 박스 나르는 일을 했고, 시민기자에게 원고료를 주는 온라인 매체에 꾸준히 글을 올렸다. 글을 쓸 때마다 나오는 원고료는 그로 하여금 다시 글을 쓰게 만들었다. 대학에서 경영을 전공했으나, 천생 글과 떼려야 뗄 수 없었던 생활을 유지했던 것이다.

사실은 요즘도 글을 쓰느라 바쁘다. 〈한겨레21〉 〈주간경향〉에 고정 칼럼을 쓰고 있으며 〈월간방송작가〉 〈피디저널〉 등 다양한 매체에 원고를 기고한다. 10년 넘게 개인 블로그(ozzyz.egloos.com)도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에는 사적인 이야기에서부터 대중매체와 사회 이슈에 관한 글을 꾸준히 올린다. 트위터(@ozzyzzz) 활동도 적극적이다.


▎JTBC <마녀사냥>에 출연한 허지웅은 일약 ‘대세남’으로 떠올랐다. 4명의 남자 출연진이 연애와 사랑에 대한 진솔한 토크를 펼치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자신의 연애사를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대중이 ‘허지웅’을 기억하자 그를 찾는 방송도 늘어났다. 그는 지난해 케이블방송 tvN 〈SNL 코리아〉에 가수 유희열과 함께 고정 출연했으며 〈현장토크쇼 택시〉에도 게스트로 얼굴을 비쳤다. 그에게 ‘러브콜’이 쏟아지지만, 쉽게 출연에 응하지는 않는다. 고정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JTBC의 〈썰전〉과 〈마녀사냥〉이 전부다.

방송인으로서 지금 같은 인기를 얻을 거라 예상했나요?

“저는 지금도 방송이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방송을 하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JTBC를 통해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다른 방송국에서도 ‘같이 프로그램을 하자’는 제의가 오긴 하지만, 제작진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못하겠어요. 저는 지금 일하고 있는 JTBC 제작진이 정말 좋거든요.

〈썰전〉의 김수아 PD, 〈마녀사냥〉의 정효민 PD, 김민지 PD, 김지윤 작가 등 오로지 제작진을 믿고 방송하는 거예요. PD나 작가들이 모두 제 또래거든요. 이 사람들을 알게 된 게 정말 행운이고 같이 일하는 게 즐거워요. 방송계를 보면 만날 똑같은 아이템을 가지고 돌려쓰고, 서로 우라까이(베끼기)하잖아요.

십수 년 전에 스타 PD였던 사람이 지금도 굳건히 스타 PD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특색 없고 비슷비슷한 방송이 재생산되는 이유는 만드는 사람이 안 바뀌어서죠. 후배들에게 자리를 안 내주니까. 하지만 제가 같이 일하는 PD들에게는 그런 베끼기가 없어요. 그동안 자신이 하고 싶었던 방송, 차곡차곡 쌓아놓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쳐놓는 그들과 일하게 돼서 정말 보람이 있죠.”

〈마녀사냥〉과 〈썰전〉 중 어떤 프로그램이 좀 더 본인에게 맞는 옷이라고 보나요?

“둘 다 저한테 ‘잘 맞는’ 프로그램이에요. 두 프로그램 모두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하는거고요. 다른 방송출연 제의도 많이 오지만 반드시 제가 필요하지 않은 곳에 가서 방송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방송 일은 방송인들이 제일 잘하거든요. 새로운 인물이라는 이유만으로 방송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시작한 방송은 재미도 없어요. 제가 연예 소속사에 안 들어가는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글쟁이’ 허지웅은 방송·문학·영화계를 가리지않고 러브콜을 받는다. 2013년 10월 만화가 윤태호를 기념하는 북콘서트에서 윤태호(오른쪽)와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는 허지웅.



“방송이 저를 띄워주는 것뿐이죠”

허지웅은 말이나 글을 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 특유의 직설화법은 사람들에게 “속 시원하다”는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논쟁을 불러온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26년〉을 두고 허지웅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 영화의 제작과정 자체가 이미 결과를 예상케 하는 졸속이었다. 이건 되려 광주를 욕보인 거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한 바 있다.

그의 이런 혹평에 일부 네티즌은 불쾌감을 드러냈고 영화제작자와 일간지 기자까지 나서서 허지웅과 설전을 벌였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비판했을 때는 나꼼수 지지자들로부터 비난과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은 반드시 하고야 만다.

그의 이런 뚜렷한 주관, 직설적인 화법은 대중에게 새로운 매력으로 작용했다. 방송에서도 가감 없는 허지웅식 언변이 이어진다. 〈마녀사냥〉 1회에서 술을 먹고 오랜 친구와 잠자리를 가진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했고, 방송 초반에 ‘싱글’이라고 소개됐던 것을 본인 스스로 이혼 전력이 있는 ‘돌싱’이라고 밝히며 화제를 낳았다.

허지웅 씨의 직설화법과 신랄한 문체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요?

“저는요, 솔직히 제 인기가 조만간 유효기간이 끝날거라고 장담해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직설적으로 말하고, 글 쓰는 사람이 인기를 얻은 일이 별로 없어요. 미디어가 설명을 위한 설명을 하려다 보니, 제 인기 요인을 돌직구나 직설 화법에서 찾는 거죠. ‘허지웅이 대세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늘 ‘라이징 스타’를 원하기 때문이에요.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다 보니 산업이 유지되기 위해 새로운 스타가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저는 스타성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새로운 스타에 목마른 방송계에서 계속 ‘라이징 스타’라고 띄워주는 거예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 라이징 스타 아니에요. 스타될 생각도 없고요. 언론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서로 상부상조하는 시대잖아요. 새로운 스타가 필요했기에 제가 거기에 끼워 맞춰졌을 뿐이라고 봐요. 대중이 저에게 등 돌린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런 당당함은 어디서 나올까 비결이 궁금해요.

“비결이요? 비결은 따로 없어요. 영화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에서나 방송에서나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거든요. 연예인이 아니니까 더 솔직할 수 있는 거겠죠.”

유독 여성팬들이 많은데, 인기를 실감하나요?

“저보고 ‘두뇌가 섹시한 남자’라고들 하는데 저는 솔직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아마 그 수식어를 만든 사람조차도 무슨 뜻인지 모르고 썼을 거예요. 여성팬이 많은 이유는 제가 남자여서겠죠.(웃음)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지자 만화가 강풀 씨가 ‘트위터 고만하라’고 조언한 적이 있어요. 제가 트위터에 남기는 걸러내지 않은 말들이 저를 끌어내리거나 화살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었겠죠. 그런 말을 해주는 게 참 고마웠어요.

그렇지만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알아본다고 해서 말을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셀렙’(유명인사를 가리키는 ‘셀레브리티’의 준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언론에 무차별적으로 뜯기는데도 대응을 안 하는 걸 보면 ‘왜 당하고만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사연을 들어보면 억울한 일도 많거든요. 앞뒤 맥락 다 자르고 특정 발언만 쓰는 ‘가십 기사’ 정말 안 좋아해요.”

〈마녀사냥〉은 20~30대 청년들의 연애 고민을 다루는데, 대중의 관심이 이렇게 뜨거워진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세상이 바뀌어서 사람들의 연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보진 않아요. 시대를 막론하고 연애는 늘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었고, 저도 집중을 해왔던 주제이고요. 다만 사람들이 ‘연애’를 새롭게 접근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봐요. 기존의 연애 콘텐트는 전혀 연애를 잘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나와서 연애 코칭을 한다거나 수박 겉핥기식 조언에 그쳤죠. 그에 반해 〈마녀사냥〉에서는 솔직한 연애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누구나 공감하는 조언들이 많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라고 봐요.”

그는 최근 연애에 대한 담론을 펼친 첫 소설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을 출간했다. ‘개포동’과 ‘김갑수’가 주는 단어의 뉘앙스가 신기하기만 한데 허지웅은 “철저하게 픽션이라는 전제 하에 어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 제가 생각하기에 친숙한 사람 이름과 동네 이름을 썼다”고 말했다.

책 제목 말미에 붙은 ‘사정’이라는 단어도 중의적이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제목에 대해 그는 “김갑수 씨의 사연이라는 뜻과 남성의 성(性) 현상 모두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JTBC 〈마녀사냥〉에서 사랑에 고민하고 아파하는 청춘 남녀들에게 자신의 사연과 솔직한 생각을 전했던 그가 ‘연애 성장론’을 글로서 펼쳐놓은 셈이다.

촌철살인 멘트·신랄한 글이 ‘허지웅 스타일’

에세이가 아닌 소설을 쓴 이유가 있나요?

“평론이나 기사가 아닌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정통소설보다는 우화를 쓰려고 했어요. 저는 제 책이 우화라고 생각하는데, 쉽게 술술 읽히고 자기 상황에 빗대어 사유할 거리가 많아지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의도대로 책이 잘 나온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책을 읽다 보면 허지웅 씨 개인 이야기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맞나요?

“픽션이에요. 소설 작가들이 그렇듯 개인적인 경험이나 지인들의 사연이 녹아들어간 책이에요. 아마 제가 진짜 다큐처럼 썼다면 지금보다 책 분량이 10배로 늘어났겠죠.”(웃음)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 연애로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얼마 전 출연한 방송에서 조용필의 ‘모나리자’를 불렀어요. ‘오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나. 추억만을 간직한 채 떠나기는 너무 아쉬워. 나를 슬프게 하네 모나리자’ 이런 가사예요.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원치 않는 이별을 하고 나서 노래 가사에 상대방을 대입시켜요. 자신을 가사의 아픈 주인공처럼 여기는 거죠. 그런데 저는 세상에 모나리자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야 사랑의 아픔이 아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랑하는 동안에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우리는 천생연분이니까, 우리 인연은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아도 관계가 잘 굴러갈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헤어지고 나서 상대를 신화화시키지도 말아야 하고요. 내가 꿈꾸는 모나리자는 현실에 없어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요.”

소설 말미에 ‘우리는 결국 천국에 가고 싶으니까 연애를 하는 거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혼 후 새로운 사랑에 대한 본인의 기대감을 표현해 놓은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모든 사람이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 똑같이 느끼고 있는 감정에 대해 쓴 걸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소설로서 좋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연애를 하면서 결국에는 뻔한 패턴을 반복하잖아요. 만나서 사랑하고 싸우고 헤어지죠.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연애를 더 이상 하면 안 돼요. 왜냐면 빤하고 바보 같은 짓이니까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속 연애를 해요. 사랑이 끝나면 ‘아 이건 바보 같은 짓이었어. 다시는 안 해야지’ 이러면서 반복해요. 연애란 종교를 믿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천국에 가고 싶으니까 다시 하는, 그 맥락에서 쓴 결론이에요.”

앞으로 어떤 글쟁이로 남고 싶나요?

“‘계속 쓰는’ 글쟁이요. 생각하고 있는 소재가 많거든요. 역사·예술·문화 등 다양한 소재로 글을 쓸 거예요.”

201404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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