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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가 화제 - OB 스타들의 귀환 

“응답하라! 7090” 

김추자·혜은이·계은숙·이선희 조만간 새 앨범 내고 가요계 복귀… 조용필과 ‘세시봉’ 성공에 자극받아 새로운 도전 나선다

▎‘원조 섹시 댄스가수’ 김추자가 새 앨범과 함께 33년 만에 팬들 곁으로 돌아온다. 김추자 이전의 여가수들은 얌전히 노래만 불렀다. ‘춤추는’ 김추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와 조명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로마의 시인 마르쿠스는 말했다.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 번 사는 것과 같다”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호모 메모리쿠스’(추억하는 인간)다. 1970~90년대를 추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최고 스타들이 새 앨범을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리자면 ‘응답하라! 7090’쯤 될까.

요즘 가요계에는 ‘컴백’ 바람이 대세다. 김추자(63)·혜은이(58)·계은숙(52) 등 1970~80년대 브라운관을 점령했던 추억의 가수들이 잇달아 새 앨범을 내고 활동을 재개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의 귀환 소식에 중·장년 팬들의 마음은 벌써부터 설렌다.

이들보다 한 세대 아래 후배들도 복귀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1984년 제5회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이선희(50)를 필두로 ‘영원한 왕자’ 이승환(49),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Voice)를 가진 이소라(45)도 복귀 준비에 여념이 없다. 김추자 등이 7080세대의 ‘연인’이었다면 이선희 등은 8090세대들의 ‘아이콘’이었다.

문화평론가 박성서 씨는 “몇 년 전부터 세시봉과 조용필 열풍, 대학가요제 출신들, 그룹 ‘들국화’ 컴백 등이 중년 문화를 되살리는 데 힘이 됐다. 김추자·혜은이·계은숙 등이 올해 그 바람을 이어갈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단발머리와 환한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였던 혜은이(왼쪽). 계은숙은 한창 잘나갈 때 일본으로 건너가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곳에서 더 큰 성공을 거뒀다.
원조 디바의 귀환

김추자·혜은이·계은숙은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자기만의 색깔이 강한 가수였다. 김추자는 ‘원조 섹시 댄스가수,’ 혜은이는 ‘원조 국민 여동생’, 계은숙은 ‘원조 한류’다. 또 있다. 셋은 각자 스타일은 다르지만 노래를 정말 잘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가요계에서 이들의 복귀를 “원조 디바의 귀환”이라며 반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69년 데뷔한 김추자는 10여 년간 활동하며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커피 한잔’, ‘거짓말이야’ 등을 크게 히트시켰다. 특히 ‘거짓말이야’를 부를 때 손가락으로 객석을 가리키는, 이른바 ‘손가락 찌르기’ 제스처 때문에 “간첩에게 보내는 수신호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김추자는 수려한 외모에 시원한 음성으로 뭇 남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김추자는 5집 앨범을 낸 이듬해인 1981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떠났다. 김추자의 컴백은 무려 33년 만이다.

김추자는 4월 새 음반을 내는 데 이어 5월 16~17일에는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늦기 전에’라는 타이틀로 공연한다. 새 음반에는 송홍섭(베이스)·한상원(기타)·정원영(건반) 등 국내 최고 연주자들이 참여한다. 김추자는 새 음반에 신곡과 함께 과거에 발표했지만 대중의 큰 사랑을 받지 못했던 ‘숨은 진주’들도 수록한다. 신곡 가운데는 김추자를 데뷔시켜 스타덤에 올린 ‘한국 록음악의 대부’ 신중현의 곡들도 포함된다.

1975년 ‘당신은 모르실 거야’로 데뷔한 혜은이는 김추자와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단발머리가 트레이드마크였던 혜은이는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귀여운 외모와 깨끗한 음색이 압권이었다. 지금은 환갑을 바라보는, 살집이 두툼한 ‘동네 아주머니’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혜은이는 ‘원조 국민 여동생’으로 손색이 없었다.

1995년 작고한 고 길옥윤과 주로 파트너를 이뤘던 혜은이는 ‘감수광’, ‘열정’, ‘진짜진짜 좋아해’, ‘뛰뛰빵빵’, ‘제3한강교’, ‘파란 나라’ 등 숱한 히트곡을 남겼다. 혜은이는 영화에도 출연하며 배우로 활약하기도 했다. 혜은이는 4월 29~30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혜은이 리사이틀’이란 제목으로 무대에 선다. ‘리사이틀’은 공연이나 콘서트라는 말이 사용되기 이전인 1970~80년대 많이 쓰인 말이다.

혜은이는 공연에 이어 5월에는 신곡도 발표한다. 저음의 허스키 보이스가 인상적인 계은숙은 1979년 ‘노래하며 춤추며’로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올랐다. 계은숙은 한창 잘나가던 1982년 갑자기 일본으로 건너가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곳에서 한국에서보다 더 큰 성공을 거뒀다.


1 조용필이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2 이선희는 체구는 작지만 가창력은 폭발적이었다. 바지차림만 고집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3 ‘세시봉 콘서트’에서 열창하는 김세환·조영남·송창식·윤형주(왼쪽부터). 4 올해 50세인 이승환은 천생 동안(童顔)이다. 이승환은 ‘찬찬찬’을 부른 편승엽과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5 허스키한 음색의 이소라는 9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조용필, ‘세시봉’ 그리고 신규 방송사가 촉매

계은숙은 1985년 ‘오사카(大阪)의 모정’으로 일본 가요계에 데뷔한 뒤 1988~94년 NHK ‘홍백가합전’에는 7회 연속 출연했다. 그는 1990년에는 일본 레코드 대상인 ‘앨범 대상’을 받으며 ‘엔카(演歌)의 여왕’으로 칭송받았다. 32년 만에 국내로 돌아온 계은숙은 ‘주문’, ‘꽃이 된 여자’, ‘가지 말아요’ 등 신곡 3곡과 히트곡 3곡 등 총 6곡이 수록된 음반을 3월 말에 발표한다.

지난해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심한 ‘오빠 앓이’를 해야 했다. ‘원조 오빠’, ‘가왕’(歌王) 조용필(64)이 정규 19집 앨범 <헬로>를 들고 나와 단숨에 가요계를 평정했다. 앨범이 발매되던 날 음반판매점 앞에는 ‘오빠의 컴백’에 목말라하던 아줌마팬들이 장사진을 이뤘고, 각종 가요 순위프로그램은 조용필의 신곡들로 도배됐다.

조용필의 성공은 가요계의 변방으로 밀려나 있던 중년·중견가수들에게 큰 힘이 됐다. 지난해 조용필을 시작으로 신승훈·이승철 등 1990년대 가요계를 쥐락펴락했던 가수들이 성공적으로 컴백했다. 조용필의 성공과 함께 2011년 큰 인기를 모았던 방송프로그램 ‘세시봉’도 중년·중견가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세시봉’은 1960~70년대 서울 명동에 있던 음악감상실 이름이다. 방송프로그램 ‘세시봉’에는 음악감상실 ‘세시봉’ 출신으로 한국 대중음악에 한 획을 그은 조영남·송창식·윤형주·김세환이 출연해 올드팬들에게 진한 향수와 감동을 선사했다.

여기에 JTBC를 비롯한 신규 방송사들의 예능·토크쇼 프로그램들도 중년·중견연예인들의 재기와 복귀에 한몫을 거들었다. 요즘 방송사에서는 중·장년층 가수와 배우를 손님으로 많이 초대하고 있는데 출연 연예인들과 비슷한 연배의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출연하는 JTBC의 ‘유자식상팔자’가 대표적이다.

권토중래 ‘3李’

이진영 포츈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지난해 조용필과 이승철의 성공을 확인했듯이 1980~90년대 문화를 소비한 이들이 40~50대가 돼 새로운 문화 소비층으로 떠올랐다”며 “그 시절 가수들은 아날로그 낭만을 갖고 있는 만큼 힐링(Healing)과 진정성을 요구하는 시대 흐름과도 맞아떨어진다”고 분석했다.

김추자 등의 막냇동생 또는 조카뻘인 이선희·이승환·이소라도 복귀를 위해 신발끈을 단단히 죄고 있다. 이른바 ‘3李’의 귀환이다.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리는 ‘3李’는 1980~90년대 가요계 정상에까지 올랐던 자타공인 실력파들이다.

‘영원한 소녀’ 이선희는 3월 25일 30주년 기념 앨범이자 15집인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발표하고 이날 올림픽공원 내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쇼케이스(특별공연)를 개최한다. 이선희는 ‘알고 싶어요’, ‘아, 옛날이여’, ‘나 항상 그대를’, ‘아름다운 강산’(신중현 곡 리메이크), ‘한바탕 웃음으로’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씨는 “여성 뮤지션이 약자일 수밖에 없었던 음악 산업계에서 당당하게 두 발로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만든 인물이 이선희”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1989년 데뷔한 이승환은 3월 26일 11집 <폴 투 플라이(fall to fly)-전(前)>을 발표하고 같은 달 28~29일 올림픽공원 내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이승환 옹(翁) 특별 회고전+11’을 개최한다. 이승환의 4년 만의 정규앨범에는 배우 이보영, 가수 이소은, 네덜란드 출신 재즈 뮤지션 바우터 하멜, 래퍼 MC메타 등이 피처링(다른 가수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거나 노래·연주 등을 도와주는 것)으로 참여했고 도종환 시인(현 민주당 국회의원)이 작사에 이름을 올렸다. 늘 소년 같은 이미지로 ‘어린 왕자’라는 애칭을 얻었던 이승환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천일 동안’, ‘세 가지 소원’,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등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곡으로 여심을 사로잡았다.

1990년대 대표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인 이소라는 6년 만의 정규앨범인 8집 ‘8’을 4월 8일 발표한다. 3년 동안 공을 들인 8집은 이소라가 전곡을 작사했고 정지찬·정순용 등 실력파 뮤지션들이 참여했으며 미국에서 믹싱(Mixing)과 마스터링(Mastering)을 진행해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과 몽환적인 창법을 가진 이소라는 1991년 데뷔 이후 ‘난 행복해’, ‘기억해줘’, ‘처음 느낌 그대로’, ‘믿음’, ‘바람이 분다’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이소라는 어눌한 듯하지만 재치 있는 입담으로 자신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강태규 문화평론가는 “이선희·이승환·이소라가 지난해 조용필처럼 성공하려면 기존 팬뿐 아니라 젊은 세대의 호응이 절실하다”며 “중년가수들이 올해도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아이돌 위주의 가요계가 한층 탄탄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404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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