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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연구 - 인문학 빙하기에 철학자들이 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팍팍한 삶에 지친 사람들, 철학자의 ‘힐링’ ‘돌직구’에 열광…‘강신주 현상’으로 대변되는 대중철학 강의 열풍은 ‘공주(공부하는 주부)’와 ‘88만원 세대’들이 주도

▎대학의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자 거꾸로 대학 밖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거세졌다. 2012년 6월,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강연에는 1만5천여 명의 청중이 몰렸다.



대학은 몰락했다. 학문 탐구를 이상으로 삼는 대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2006년 여름, 전국 80여 개 인문대학 학장이 인문학의 위기를 알리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사회적인 관심을 환기시켰다. 정부가 나서 ‘공적자금’을 투여하면서 수혈을 해보기도 했지만 이윤 창출의 도구로 전락한 대학에서 인문학의 싹이 다시 돋아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2010년, 서울 시내의 한 대학생은 교내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경쟁에서 우수한 경주마가 되어 트랙을 질주하며 무수한 친구들을 넘어트린 것을 기뻐했지만…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자격증을 따기 위한 경쟁 질주만큼은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며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기보다 “쓸모 있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말 대학가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붙은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대자보에 등장하는 이야기도 대부분이 ‘철학’적 질문들이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았다는 ‘이케아 세대’(78년생, 35세 전후)는 ‘취업-연애-결혼-출산-양육’이라는 정규 코스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윗세대 선배들이 ‘석·박사 백수’ 혹은 ‘대졸 백수’가 되는 것을 목격한 ‘88만원 세대’나 ‘대자보 세대’는 대학 교문을 나서기를 두려워한다. 특히 50대의 부모가 돈(혹은 빚) 이외에는 20대의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을 전혀 갖지 못한 상태에서 ‘부자공멸’의 위기에 빠진 형국이다.

<이케아 세대 그들의 역습이 시작됐다>의 저자 전영수는 “지금 이 순간 잘사는 것”을 선택한 이케아 세대가 기성사회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는 ‘결혼의 포기’라고 말한다. 저출산 고령화의 국가적 난제는 예외로 치더라도 “철저히 자신들의 상황과 눈높이에 맞춘 생존법”으로 살아가는 이들 세대는 ‘담대한 희망’은 포기한 채, ‘작은 사치’에 만족하면서 ‘사소한 일상’을 즐기고 있다.

한 세대 전인 1980년대만 해도 청년들이 읽는 철학서의 대부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주종이었다. 1983년에 출간된 최초의 철학 밀리언셀러인 <철학에세이>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세상부터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철학적으로 규명한 책이었다.


▎스타강사로 떠오른 강신주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철학자다. 그는 거침없는 발언으로 ‘돌직구 철학자’로 불린다.



자기계발만 있고 자기성찰 없다

그 뒤로 대중은 철학서보다 자기계발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심리학 서적에 심취했으며, 역사서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답하는 책이 주로 읽혔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 현실유지 지향성을 지닌 자아심리학으로 변형되는 마당에, 대학생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데칸쇼(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마저 큰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는 하늘과 나 사이에 믿을 것은 오로지 자신밖에 없으니 자신부터 바꾸라는 것이다. 2007년과 2008년을 강타한 <시크릿>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 “수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계발은 부와 성공을 위한 지식을 갈구한다. 모든 문제의 원인과 해법이 자신 안에 있다는 긍정 신학마저 자기계발 이데올로기와 결합할 정도로 자기계발 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자기계발 이데올로기에서 대중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심리적 위안’이라는 항우울제가 유일했다.

사회적인 양극화로 소수가 부(富)를 독식하는 세상에서는 자기계발을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져 ‘시달리는 자아’만 남을 뿐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그림자가 일렁거리던 2008년 무렵부터 대중은 자기계발을 통한 ‘성공’보다는 자신이 접근 가능한 범위의 ‘행복’을 추구하는 현명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의 출판시장에서는 멘토가 전하는 한 줄 어록에 공감과 위로를 받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바통을 이어가며 한국 출판시장을 석권하는 시기에는 ‘셀프 힐링’의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다른 조짐이 없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에 이어 카드대란,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큰 위기를 5년 주기로 맞다 보니 현실에 대해 천착하려는 움직임도 생겨났다. 한국사회에서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서가 불과 11개월 만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은 읽은 사람 중에는 특히 미래에 대한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한 20대와 불황에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여성이 많았다는 점에서 미래가 불안한 젊은 세대와 여성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철학’을 찾고 있다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철학이 자기계발과 결합하는 징후는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성공에서도 읽힌다. 인문서적으로서 단숨에 10만부를 넘긴 이 책의 표지에는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아파도 당당하게, 두려움 없이” “‘나는 왜 이러고 살지?’의 주인공을 위한 인문 공감 에세이” 등의 카피가 들어 있다. 독자들이 심리학 서적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문구다.

솔직함과 정직함이 인문정신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강신주는 “자기 위로와 자기 최면이 아닌, 아파도 당당하게 상처를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나와 너의 사이’, ‘나, 너, 우리를 위한 철학’의 3부로 구성돼 있다. 먼저 나를 이해하고, 나와 너(타자)의 차이를 찾아내 이해하면서 우리라는 공동체의 비전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다.


▎<언니의 독설>이라는 책으로 다시 인기를 끄는 전문강사 김미경은 방송을 통해 꾸준히 인지도를 높여왔다. 심리학자 황상민,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등도 비슷한 루트를 걸어왔다.
‘정답’ 제시하는 대중 철학자

강신주가 대중에게 각광받기 이전에도 대학 밖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철학자들이 없지는 않다. 대표적인 철학교양서 저자로 운동권 출신의 황광우가 꼽힌다. 1958년생인 그는 고교시절 반독재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 제적된 그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해서는 틈틈이 고전을 읽었다. 그가 대학 시절 ‘정인’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뗏목을 이고 가는 사람들> 등은 사회 현실에 갓 눈을 뜬 대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의 필독서로 떠올랐다.

그런 황광우가 2006년에 펴낸 <철학콘서트>는 플라톤과 마르크스 등의 서양 사상가들과 예수, 부처 같은 종교인, 노자와 공자, 퇴계 이황 같은 동양 철학자의 삶을 정리한 철학교양서로 1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철학서로 떠올랐다. 그는 그 뒤로도 <철학콘서트2>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 등 철학 교양서를 꾸준히 출간했다.

그 밖에 <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말하다> <철학, 역사를 만나다> <열일곱 살의 인생론> <철학에게 미래를 묻다> 등을 펴낸 1세대 철학교사 안광복,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의 주체성>을 시작으로 최근의 <행복 스트레스>까지 펴낸 탁석산, 수유너머의 창립 트로이카인 이진경·고미숙·고병권,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의 김용규 등도 철학 교양서 시장을 넓힌 주인공들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으로 주목받은 강신주는 그 뒤로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강신주의 다상담 1∼3>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잇따라 내놓았다. 시민이 함께 모여 인문학을 공부하려 해도 처음에는 함께 글을 쓰기 어려우니 함께 읽고, 함께 읽는 것도 힘드니 함께 듣는 것일까?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은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는 강신주 철학 입문서이다. <다상담> 시리즈는 “사랑 몸 고독”(1권), “일 정치 쫄지마”(2권), “소비 가면 늙음 꿈 종교와 죽음”(3권) 등 유형별로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가 그의 저서<에티카>에서 정의한 48가지 감정을 고전을 텍스트로 하여 우리 현실에 비추어 세심하게 설명해 준다.

원래 철학에서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그러나 강신주는 ‘돌직구’의 정답을 던진다. 비판자들이 문제삼는 예를 하나 들어 보자. “행복한 공동체를 원하는가? 재래시장을 살리고 싶은가? 생태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가족들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안전하고 싱싱한 식품을 원하는가? 그럼 냉장고를 없애라! 한 번에 없앨 자신이 없다면, 냉장고의 용량이라도 줄여라!”라고 외친다. 거의 자기계발적인 가르침이다. 하지만 체제 전복적인 것은 맞다. 이런 ‘폭력적인’ 가르침에 골드미스이거나 경력 단절의 30∼40대 여성이 열광한다. 능력은 있지만 사회의 높은 유리천장에 신음하는 여성들은 그의 가르침에 목말라한다.

강신주가 체제전복적이라면 <언니의 독설>을 출간하며 ‘국민언니’로 떠오른 김미경은 체제 순응적이다. 김미경은 “나는 슈퍼맨처럼 모든 일을 해냈는데 당신들은 왜 못하느냐!”고 일갈한다. 강신주나 김미경의 화법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다. 강신주는 <강신주의 다상담 > 1권의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제가 C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의견인 A와 B는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저는 철학자입니다. 그러니 제 말을 믿으세요. C가 옳습니다. 나머지 A와 B는 일고의 가치도 없이 잘못된 것입니다.’ 독선적으로 보일 만큼 단호한 제 어투 때문에 오해도 많이 샀지만, 그래도 가장 효과적인 강연 방법이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치열해진 경쟁 논리로 몸살을 앓는다. 대중 인문학 열풍도 경쟁사회가 낳은 스펙 쌓기 일환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아이돌’에 버금가는 인기 누려

그렇다면 ‘강신주 현상’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나? 강신주는 처음에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같은 철학서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란 대중 인문서가 10만 부를 넘기자 대중 철학자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그는 이즈음 강연의 수를 늘린다. 체제비판적인 그이지만 삼성경제연구소의 강연프로그램에서도 강연한다.

2011년 MBC 라디오의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색담)>에 패널로 초대된다. 6개월 만에 MBC에서 추방됐지만 <색담>은 2012년에 김어준의 ‘벙커1’에서 <강신주의 다상담>으로 거듭난다. 이렇게 강신주는 패널에서 진행자로 격상했다. 강신주라는 브랜드가 확실하게 형성된 다음 <아침마당> 등에 출연하다가 <힐링캠프>에까지 등장한다.

강신주가 <힐링캠프>에 등장하자 그의 책은 곧바로 인기가 폭발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잠시 오른 이후 줄곧 5위 이내에서 맴돌았다. 이 책은 출간 두 달 만에 15만 부를 넘겼다. 다른 책들의 인기도 뜨겁다. 소셜미디어에서의 반응도 후끈 달아올랐다.

트위터에는 “답답함에 내쉬는 숨 훅… 힐링캠프 강신주의 직설, 돌직구로 그동안 얼어있던 내가 깨진 느낌이다. 숨을 쉬고 웃고 목표를 세우자!” “어쩌면 내가 강신주를 좋아하는 이유가 내게 돌을 던지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는 등의 열렬한 호응이 일었다. 어쨌든 이제 대중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강신주 현상’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판도 쏟아졌다. 이 글에서는 그에 대한 비판보다 그가 뜰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에 주목하자. 국가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나이 19세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평생의 운명이 결정됐다. 그 나이에 서울대에 입학하면 평생 상승의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글로벌 시대가 되면서 그 기준은 하버드나 스탠포드 등의 외국 유명대로 격상됐다. 그러나 지금은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취업 자체가 어렵다.

가장 큰 이유가 “국경을 뛰어넘는 노동자 고용 시스템”인 ‘글로벌 옥션’ 때문이다. 가장 값싼 임금을 제시하는 사람이 고용되는 역경매 시스템이 작동하다 보니 개인의 몸값은 엄청나게 떨어졌다. 미국 기업의 제조업은 중국의 노동자가, 서비스업이나 회계업무는 인도의 노동자가 담당한다. 신흥국의 대졸자들이 고급 노동력을 염가 할인하는 역경매 방식으로 일자리를 빼앗아가니 미국의 대졸자들은 실업자로 전락한다.

그 불똥이 우리에게도 튀었다. 고비용의 유학을 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귀국해도 국내의 여건 또한 다르지 않다. 설사 취업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이기 십상이다. 운 좋게 상장기업에 취업해도 회사를 떠날까 번민하는 ‘신입사원 사춘기’에 시달린다. 그리고 1년 안에 그만두는 ‘신입사원 손절매’를 하는 이가 둘 중의 하나다.

<더 많이 공부하면 더 많이 벌게 될까>를 함께 쓴 필립 브라운, 휴 로더, 데이비드 애쉬턴 등은 이렇게 된 이유로 ‘디지털 테일러리즘’을 제시한다. “자동차·컴퓨터·텔레비전과 같은 제품의 부품을 전 세계에서 나눠서 생산하고 고객의 수요에 맞게 조립·판매하는 방식”이 서비스 업무에도 도입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회계사·교수·엔지니어·변호사·컴퓨터 전문가와 같은 직업도 이제는 더 이상 수입·직업 안정성·커리어 전망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오로지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 구조로 빠져들고 있다.

방송강의와 SNS 통해 팬층 늘려

최고의 스펙을 쌓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가? 달라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론이 필요했다. 그것을 글로벌 시민의 기본 소양이라고 치자. 1994년생 이후는 그런 소양을 대학에서 배워본 적이 없다. 새로운 시대의 윤리적 토대나 가치체계를 속 시원하게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이들이 대학 밖의 공간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출범한지 10년이 훨씬 넘은 수유너머는 수유너머N, 수유너머문, 수유너머R, 인문팩토리 길, 남산강학원 등으로 세분화됐다. 인문학 동영상 강의로 정평이 난 아트앤스터디를 비롯해 철학아카데미, 대안연구공동체(CAS), 다중지성의 정원, 문지문화원 사이 등이 명성을 쌓아가는 한편 집단지성의 실험실 카이로스, 생활기획공간 통, 자유인문캠프, 돌곶이포럼, 인문연대 금시정, 연구모임 비상, 기술미학연구회, 세미나 네크워크 새움, 상상마당 아카데미같은 인문연구공동체도 개설돼 가히 백가쟁명 시대를 방불케 한다.

이런 곳을 가장 많이 찾는 이들이 공부하는 주부를 뜻하는 ‘공주’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강좌를 듣는 사람의 90%가 ‘공주’다. 지금의 대중 인문학 붐은 여성·지방대 출신·백수·저소득자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인 계층이 주도하는데, 이 열풍을 가장 열성적으로 주도하는 것이 바로 ‘공주’다. 골드미스와 ‘공주’가 강신주 현상을 낳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스마트 기기의 유행과도 맥락이 닿아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스마트TV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호모 스마트쿠스’라고 한다. 이들은 스마트기기의 재생장치를 이용해 자신들이 필요한 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다.

한번 시간을 놓치면 볼 수 없었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프로그램마저도. 이들은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만을 골라내 열렬히 소비한다. 아즈마 히로키가 말하는 ‘데이터베이스적 소비’다. 이렇게 스마트 기기가 갖는 다양한 기능이 독자와 콘텐트 제공자의 새로운 관계성을 만드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고 있다.

이들에게 엄기호가 <단속사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속(거부)되지 않으려면 그들의 이성(머리)뿐만 아니라 감성(몸과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최근의 대중 인문학자들은 영상이미지가 지닌 정서와 환상에 부합하는 사람들이다. <인생수업>의 법륜 스님이나 전문 강사 김미경, 심리학자 황상민,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사마천의 <사기>만 27년을 연구한 재야 역사학자 김영수 등은 방송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이들은 저마다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를 냈지만 책은 단지 포트폴리오에 불과하다. 이들의 밥줄은 ‘강연’이다. 방송을 통해 확보한 신뢰감으로 마니아 독자를 몰고 다닌다. 결국 방송의 힘이 스타 인문학자를 키워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들은 한 번 찍히면 소셜미디어에서 ‘거절’당할 운명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할 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201404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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