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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바둑 최강 아이콘’ 이세돌 9단 

“ 이기는 바둑보다 창의적 발상이 더 절실” 

이세나 월간바둑 편집장
중국 측 카리스마 있는 승부사 출현하면 진짜 위기 맞을 것…젊은 기사들은 자신의 바둑 스타일 바꾸는 혁신에 몸 던져야

▎중국 내에서 이세돌 9단의 인기는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대회 통산 16회 우승, 중국 갑조리그 19연승(2007~2009년) 등 이창호에 이어 중국바둑계에 ‘공한증(恐韓症)을 안겨줬던 주인공 이세돌(31세) 9단. 근래 박정환 9단에 국내 랭킹 1위 자리를 넘겼지만 중국 내에서 이 9단의 인기는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4년 이세돌-구리 10번기의 점화로 화제의 중심에 선 이세돌 9단에게 최근 한중바둑 격돌의 형세와 승리의 비책을 물었다.

2013년은 중국바둑의 거센 물결에 한국바둑이 맥을 추지 못한 형국이었다. 중국이 이처럼 급속히 강해진 이유가 뭐라고 보나?

“사실 중국바둑이 어느 날 갑자기 강해진 건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비약적으로 성장해오고 있었고 2013년에 최고의 결실을 거뒀다고 봐야 한다. 중국바둑 성장의 원인은 국가적인 후원 아래 넓은 저변과 두터운 선수층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본다.”

중국에는 한국랭킹 1~10위권의 기량을 갖춘 정상급 선수들이 30~40명 이상 된다고 들었다. 이래서는 올해도 역시 한국바둑이 일방적으로 중국에 밀릴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바둑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3~5년 내에 중국에 완전히 밀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당장 올해 그렇게 된다고 볼 수만은 없다. 바둑의 승부는 층이 두텁다고 해서 일방적인 우세를 이끌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른 기사들을 압도할 수 있는 카리스마 있는 기사가 필요한데 최근 박정환의 성적과 기세가 좋으므로 이런 역할을 기대할 만하다. 만약 그런 기사가 중국에서 먼저 나온다면 그때는 정말 한국바둑이 암울해질 것이다.”

카리스마 얘기가 나왔는데 본인은 어떤가? 2013년에 부진했지만 그동안 한국바둑이 세계 최강국의 반열에 오르게 한 주인공 아니었나?

“물론 나 역시 한국바둑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나도 서른을 넘기면서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또 개인적으로 바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구리와의 10번기가 진행 중이므로 올해는 10번기에 더욱 전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0번기 역시 한·중바둑 대결의 연장선상에 있다. 10번기에서 우승한다면 그것으로 올해 내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구리와의 10번기 역시 한·중바둑 대결의 연장선”

그렇잖아도 이세돌-구리 10번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10번기 3국이 종료된 시점에서 2연승 후 1패를 당했다. 앞으로의 승부 전망을 어떻게 보나?

“3월에는 중국 주최 세계대회 개막이 한꺼번에 몰려 중국 체류 기간이 2주 넘게 이어졌다. 백령배로부터 시작해 초상부동산배, 춘란배를 둔 후 마지막에 10번기 3국을 두게 되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4국은 한국에서 열리고 그동안 대국 스케줄에도 다소 여유가 있으니 운동도 좀 하면서 체력을 키울 생각이다. 4국을 승리한다면 우승 전망이 한층 밝아지고 거꾸로 구리에게 4국을 내준다면 전체적인 흐름이 역전될 수 있는 만큼 만만치 않아질 것 같다.”

이 9단의 바둑 인생에 있어 10번기는 어떤 의미가 될 것으로 보나?

“앞으로 세계대회 우승 횟수를 20회(현재 16회)까지 늘리고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정상권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근래 들어 예전에 비해 목표의식이 많이 희박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0번기로 인해 다시 확실한 목표의식이 생겨났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의 바둑 인생을 자극하고 성장하는 데 충분한 요인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10번기를 후원한 몽백합그룹의 니장건 회장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창호, 이세돌의 뒤를 이을 기재로 평가받는 신민준(왼쪽)·신진서 형제 프로기사. 이세돌 9단은 신민준 초단을 제자로 받아 직접 가르치고 있다.
“올해는 먼저 우승하는 쪽이 흐름 주도할 것”

2013년에 세계대회를 우승한 중국 기사들은 천야오예를 제외하곤 모두 1990년 이후에 출생한 세대다. 반면 한국은 박정환 9단을 제외하고는 이 9단을 비롯해 최철한·박영훈·조한승·강동윤 등 여전히 1980년생 이후 기사들이 오랫동안 정상권을 지키고 있다. 이처럼 한국바둑의 세대교체가 완만해진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근본적으로 중국바둑에 비해 저변이 빈약한 탓도 있고 잘못된 바둑교육의 영향도 있다. 현재 정상권에 있는 기사들 대부분은 개성을 살리는 교육 방식을 체험하며 프로가 되었지만 이후 세대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기는 바둑에 익숙해지다 보니 번득이는 감각이나 창의적인 발상이 부족하다. 그런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정상권으로 치고 올라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 한국바둑의 주역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변상일·이동훈·신민준·신진서와 같은 영재기사의 발전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가?

“이들 역시 비슷한 교육을 받고 프로로 입문했다. 하지만 젊은 만큼 자신의 바둑 철학과 스타일을 바꿀 기회와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변화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면 앞으로 충분히 중국바둑에 대항할 정상급 기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신민준을 제자로 받아 직접 지도한다고 들었다. 이 9단의 지도로 약점을 극복하는 게 좀 더 수월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둑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수년 간 본인에게 익숙해진 틀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옆에서 지적해줘도 본인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면 큰 효과가 없다. 내 역할은 신민준의 바둑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고, 실제 변하는 것은 본인에게 달렸다. 억지로 이끌 수 있는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창의적인 노력과 대담한 도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올해 한·중바둑의 대결 구도는 어떻게 흐를 것으로 전망하나?

“2013년에 개인전으로 치러진 6개의 세계대회 우승컵을 중국이 모두 가져가면서 기세를 타긴 했지만 오랫동안 한·중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만큼 최근 1~2년 만의 결과로 한·중바둑계의 흐름이 확 바뀐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대회 우승의 출발점을 어느 쪽에서 먼저 끊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먼저 우승하는 쪽이 흐름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201405호 (201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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