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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4 브라질월드컵 7大 관전포인트 - ➊ 기대 반 우려 반, 역대 최다 해외파 

유럽파의 자신감과 경험 최대한 활용하라 

장지현 SBS플러스 해설위원
런던올림픽 대표 주축으로 조직력 문제 봉합… 감독 철학 반영하기엔 지휘봉 잡은 시간 너무 짧았다

▎브라질월드컵에는 23명의 엔트리 중 17명이 해외파로 과거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출장하는 23명의 최종 명단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과거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해외파 선수다. 23명의 필드플레이어 중 K리그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는 키퍼 정성룡(수원)과 김승규(울산), 이범영(부산)을 포함해 오른쪽 수비수 이용(울산)과 공격진에 김신욱(울산), 이근호(상주) 등 5명에 불과하다. 키퍼를 제외한 20명의 필드플레이어만 놓고 본다면, 국내파는 단 3명이다. 해외파의 비율이 20명 중 17명으로 85%에 이르는 셈이다. 또 해외파 중 유럽파는 9명으로 지난 남아공월드컵보다 3명이 늘었다.

물론 국가대표팀을 선발하는 데 있어서 해외파와 국내파를 가르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선수들 중에서 현재 가장 잘하는 선수 23명을 뽑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아무래도 국내파들이 많았을 때보다 서로 모여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조직력의 문제를 가져오지 않겠느냐는 시각이다. 특히 이번 대표팀의 경우는 한 감독 아래에서 조직력을 가다듬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안고 있다.

한국 대표팀은 남아공월드컵 이후 조광래 감독을 시작으로 최강희 감독이 최종예선을 책임졌고,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넘겨받은 것은 1년도 채 안 된다. 그 과정에서 감독이 자신의 철학을 팀에 입힐 만한 여유는 찾을 수 없었다. 사실 클럽팀 감독의 경우, 같은 선수들을 데리고 거의 매일 훈련을 하며 자신의 색깔을 낼 만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만 대표팀 감독은 이보다 훨씬 긴 호흡에서 팀을 운영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4년 주기로 열리는 월드컵본선 혹은 대륙별 선수권대회에 맞춰 감독과 계약을 하고, 그 기간 동안 많은 친선경기와 예선 경기를 치르며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클럽팀 감독보다 자신의 색깔을 팀에 녹여내기 쉽지 않은 자리가 대표팀 감독이다.

손발 맞춰볼 시간 현저히 부족했다

특히 이번 우리 대표팀처럼 해외파가 많은 경우는 더 그렇다.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의 경우 A매치 친선경기가 열리기 48시간 전에 소집이 가능하고, 월드컵 예선의 경우 5일 전 소집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실질적으로 현재 한국 대표팀의 주축 미드필더들과 공격진이 유럽파인 점을 고려하면 손발을 맞춰볼 시간이 현저히 부족했던 셈이다.

친선경기인 경우 장거리 이동을 한 유럽파 선수들이 여독을 풀 여유조차 없이 바로 훈련을 소화한다고 해도 조직력을 맞춰볼 시간은 실전경기를 포함해 단 하루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또 유럽파의 경우 빡빡한 자국 내 일정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친선경기 때마다 장거리 이동을 하며 매번 부름을 받기에도 제약이 따른다.

이런 상황에서 홍명보 감독은 여러 가지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작년 여름 감독 부임 당시에 한 기자회견을 보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원점에서 무언가 새로운 얼굴들로 새로운 대표팀을 꾸려보려는 의지가 몇 가지 원칙에서 엿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평가전을 치르면서, 현실적으로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통해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들어내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홍 감독은 런던올림픽 때 성과를 거뒀던 동메달 검을 다시 꺼내 들었다. 자신이 나름대로 긴 시간 동안 갈고 닦았던 연장에 기름칠을 한 뒤 다시 쓰겠다는 복안이다. 이번 대표팀의 중심축은 실질적으로 홍명보 감독이 런던올림픽 때 선보이려고 했던 베스트 일레븐에 손흥민과 이청용이 가세한 형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중앙 수비진에 김영권과 홍정호, 그리고 중앙미드필더에 기성용과 한국영, 세컨스트라이커 구자철과 원톱 박주영이 그 중심축이다.


▎나란히 영국 프로무대에서 뛰고 있는 박주영(왼쪽)과 기성용은 이번 월드컵의 키플레이어로 활용될 전망이다.
국내파와 해외파 소집 명확한 잣대 필요

이들은 나름대로 홍명보 감독 아래에서 전술적 철학을 공유했던 선수였고, 조직력을 확보하지 못한 현 대표팀에 일정수준 경쟁력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 조합이다. 논란이 됐던 박주영의 발탁도 결국 홍 감독이 생각해놓은 전술적 틀과 이해도의 차원에서 결단한 부분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새로운 선수로, 새로운 전술을 연마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을뿐더러, 그러한 전술적 유연성에 대한 자신감도 부족했던 셈이다. 물론 런던올림픽 때 상대했던 팀들과 월드컵 본선에서 상대해야 할 팀들은 수준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외에 새로 가세한 좌우 윙포워드 손흥민과 이청용의 몫은 크다. 그리고 그들은 유럽파로서 과거 선배들에게는 부족했던 자신감과 경험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국가와 소속 구단의 지원 아래 긴 합숙훈련을 할 수 있었던 과거 우리 대표팀의 가장 큰 무기는 체력과 조직력이었다. 또 해외파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들은 유럽리그를 소화하고 체력이 떨어진 강호들을 상대로 선전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이탈리아전과 1994년 미국월드컵 스페인·독일전 등이 다 그랬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정보부족과 스타 선수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은 극복하지 못한 채 판단미스로 인한 실책성 실점이 많았던 때이기도 하다. 또 1998년 네덜란드에게 0대 5의 수모를 당했던 경기처럼 유럽 선수들의 패스 속도와 경기 템포를 따라잡지 못한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물러난 적도 있었다.

과거 선배들이 극복하지 못했던 이런 시행착오를 이번 월드컵에선 유럽파들이 극복해줘야 한다. 독일무대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경험을 쌓은 손흥민의 자신감 있는 슈팅과 돌파, 그리고 유럽무대에서 노련미가 더 쌓인 이청용의 여유 있고 센스 있는 플레이가 팀에 큰 플러스 효과를 가져다 줘야 한다. 그리고 홍정호와 기성용, 구자철, 김보경 등 홍명보 감독과 오랜 기간 호흡을 같이해온 선수들도 유럽무대 경험이 축적된 상황에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실력으로 본선경기에 임해야 한다.

물론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이 올바르진 못했다. 3명의 감독이 예선과 친선경기를 통해 무려 75명의 선수를 테스트했다. 비효율적인 테스트와 수시로 바뀌는 라인업으로 인해 한국 대표팀은 하나의 팀이 되지 못했다. 월드컵 본선 결과와 상관없이 앞으로는 절대 되풀이해서는 안 될 일이다.

또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것은, 남아공월드컵 이후 급격히 늘어난 해외파와도 연관되어 있다. 비단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중동으로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가까이 볼 수 있는 국내파와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소집에 있어서 명확한 잣대가 없었다는 점도 되짚어봐야 한다.

아무튼 돌고 돌아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은 2010년 런던올림픽 세대가 중심이 돼 꾸려졌다. 수장인 홍 감독이 선택한 카드이고, 그 막중한 책임 또한 홍 감독이 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눈앞에 닥친 브라질월드컵에서 선수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응원을 해주고, 다음 월드컵 때부터는 그동안 해왔던 이와 같은 시행착오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준비하는 길일 것이다.

201406호 (201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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