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스타와 만남 |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 열연 배우 김옥빈 

“삼류인생이라고요? 우리 주변을 돌아볼 좋은 기회죠” 

김슬기 월간중앙 기자 rookie@joongang.co.kr
‘인터넷 얼짱스타’ 출신의 카멜레온 같은 연기 변신…“아직 갈 길이 멀죠. 제 안의 다른 모습 계속 찾아가고 싶어요”

▎김옥빈의 연기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왔다.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에서도 20대 여배우로서는 드물게 무르익은 연기력을 선보인다.



‘전설의 소매치기’라고 불리던 아버지를 둔 딸이 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보고 자란 딸은 성인이 돼 결국 소매치기로 세 번이나 감방을 드나들었다. 어두웠던 생활을 청산하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그의 인생은 여전히 ‘삼류’다.

그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노래방 사장으로 전락한 강력계 형사반장, 주먹 인생을 접고 콜라텍을 운영하는 전직 조폭 두목, 건달 출신 노인 등 밑바닥 인생들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이들 이웃은 저마다 따뜻하고 진지한 관계를 이어간다. 서로 부대끼고 위로하며 세상으로부터 받았던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주고 치유해나간다.

최근 안방극장에서 인기를 모으는 JTBC 월화드라마 <유나의 거리>의 스토리 얼개다. 이 드라마는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 등 ‘막장 요소’가 없는데도 시청자들의 반응이 사뭇 뜨겁다. “요즘 보기 드문 따뜻한 이야기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드라마”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방영 횟수가 늘어날수록 ‘유나앓이’를 하는 시청자가 늘고 있다.

극중 ‘유나’ 역을 맡은 배우 김옥빈(27)에게도 뜨거운 관심이 쏟아진다. 그는 우리 사회 하류층의 인생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김옥빈에게는 오랜만에 찾아온 안방극장 나들이다. 영화 <박쥐>로 주목받은 뒤 다양한 영화를 넘나들었다. 방송가에서 흔치 않은 50부작 드라마에 출연하며 깜짝 변신을 시도한 그를 만나 드라마 안팎의 이야기와 연기자로서 꿈을 들어보았다.

“늘 감독님께 ‘한 번만 더 찍자’ 조르고 싶죠”

오랜만의 안방극장 복귀라 팬들이 반가워합니다. 그동안 주로 영화계에서 활동했는데 드라마를 선택한 계기가 있었나요?

“영화, 드라마 장르와 상관없이 새로운 배역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줄 작품이 필요했죠. 그동안 캐릭터가 강한 역할을 맡아 연기하다 보니 평범한 인물의 일상을 연기하고 싶더라고요. 생활 연기를 하는 데에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 갈증이 있던 차에 김운경 작가님의 <유나의 거리>를 만난 건 행운이에요.”

<유나의 거리>의 어떤 면이 마음을 끌었어요?

“소매치기라는 직업이 평범하진 않지만, 주인공 ‘유나’가 내뱉는 대사들이나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이 정말 서민적이거든요. 대본을 처음 읽는데 가슴을 후려치는 듯한 느낌이 오더라고요. 무조건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물론, 드라마가 영화를 찍을 때와 달리 어려운 점도 있어요.

촬영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감정을 세세하게 다듬을 틈이 없거든요. 감독님이 ‘컷’을 외치고 나면 너무 아쉬워 감독님 바지자락을 붙들고 ‘한 번만 더 찍자’고 조르고 싶을 정도에요. 그래도 드라마 특유의 ‘맛’이 있어 재밌어요.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 분위기가 화면에 생생하게 녹아들기도 하고요. 매일매일 현장에 적응하며 드라마를 새로 배워가고 있어요.”

김옥빈 씨가 보는 ‘유나’는 어떤 인물인가요?

“유나의 아버지는 전과 17범인 ‘전설의 소매치기’에요. 딸이 소매치기를 관두길 바라는 마음에 손가락까지 자르지만, 유나는 소매치기를 그만두지 못해요. 할 줄 아는 게 소매치기뿐인 거죠. 유나는 소매치기 외에 다른 일도 무수히 시도해봤을 거예요.

그런데 세상이 그를 도와주질 않아요. 소매치기 바닥에서는 유나가 최고거든요. ‘일등’ 대접을 받는 그 바닥을 쉽게 벗어날 수는 없겠죠. 진심과 다르게 행동하고 남의 호의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나에게서 마음의 큰 상처가 느껴져요. ‘달라지고 싶어. 나도 똑바로 살고 싶어. 근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이게 지금 유나의 마음인 것 같아요.”

연기를 하다 보면 주인공을 닮아가게 된다고 하던데, ‘유나’와 닮은 점을 꼽으라면요?

“처음엔 유나와 제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해서 괴리감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엔 연기하면서 유나와 제가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껴요. 짜릿한 기분이라고 할까요? 연기하면서 주인공과 제가 점점 닮아가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촬영 기간 내내 극중 인물로 살다가 작품이 끝나고 나면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어요.

실제 김옥빈과 연기했던 인물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다고 할까요? 배우 시절 초반에는 극중 인물과 저를 완벽히 분리시킬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매일 ‘그 캐릭터의 감정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하는데 어떻게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있겠어요. 드라마 속 인물과 실제 저를 분리시키지 못하는 걸 보면 제가 그리 똑똑하지는 않은가 봐요.”(웃음)

<유나의 거리>는 삼류 인생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인데요, 소매치기나 전직 조폭 두목 등 그동안 나쁜 일을 했던 사람들의 삶에 쉽게 공감이 안 갈 거 같은데요?

“유나가 하는 소매치기가 올바른 일은 아니죠. 하지만 방식이 잘못됐을 뿐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감이 가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누군가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사람을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똑같잖아요. <유나의 거리>에 나오는 악인도 ‘나쁘다’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어설픈 사람들이죠.

돈 백만 원 때문에 남한테 상처를 주질 않나, 사기를 쳤는데 다른 사람한테 똑같이 사기를 당하질 않나... ‘무조건’ 나쁜 사람은 없어요. 악행이 용서되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나쁜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니까요.”


▎김옥빈은 능숙하게 지갑을 터는 소매치기 연기를 위해 전직 소매치기로부터 특별과외(?)를 받을 만큼 드라마에 열의를 보였다.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역할 탐났어요”

<유나의 거리>는 1994년 MBC 인기 드라마 <서울의 달>을 썼던 김운경 작가의 작품이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 드라마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은 <유나의 거리>는 김옥빈이 찍은 티저 영상으로도 화제가 됐다. <서울의 달>의 한석규와 <유나>의 김옥빈이 만나 대화를 나눈 장면 때문이다. 김옥빈은 “앞에 한석규 선배님이 있다고 가정하고, 혼자서 촬영을 했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며 “연기를 하다 보니 극중 한석규 선배의 딸이 된 것 같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달>이 방영됐을 당시 김옥빈의 나이는 고작 여덟 살. 부모님 세대가 즐겼을 그 드라마를 성인이 돼서 재해석하게 된 것이다.

김옥빈은 “삶을 위해 양심을 버린 인물의 이야기를 계승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마치 내가 홍식이(한석규 분)의 딸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당시에 한석규 선배님이 맡은 역할이 제비였고, 유나는 소매치기라는 점만 다르다”고 말했다.

소매치기 ‘유나’를 연기하기 위해 김옥빈은 전직 소매치기로부터 직접 ‘특별지도’를 받기도 했단다. “소매치기를 ‘은퇴’하고 작은 사업을 하시는 분께 특별수업을 받았어요. 소매치기는 혼자서 털어가는 건 줄 알았는데 굉장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털어가더라고요. 털어가는 금액도 한 푼 두 푼이 아니라 어마어마해서 소‘ 매치기’만으로 먹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래요. 그 수업을 받고 나서 스태프들이 전부 다 ‘옥빈이 조심하라’고 농담을 하셨는데 저 그렇게 양심이 불량하진 않아요.”(웃음) 특별수업 덕분인지 극중에서 김옥빈은 다른 소매치기 일당이 이미 훔친 지갑을 다시 낚아채는 등 실제 소매치기범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줬다.

극중 직업이 소매치기라 그런지 <유나의 거리>에서 김옥빈 씨의 연기가 색다르게 느껴져요. 목소리도 예전보다 굵어진 느낌이 들던데, 어떤 변화를 준 건가요?

“드라마 초반에 저보다 나이 많은 소매치기 패거리들을 다그치고 제압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다 보니, ‘거친 느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하게 변화를 준 것이 목소리였는데, 그래서 시청자들이 제가 평소보다 더 터프하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본래 제 목소리가 중저음이기도 한데, 영화 <박쥐>나 <열한시>에서보다 더 낮은 톤으로 연기하고 있거든요.”

시청자들이 드라마에서 함께 공감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요?

“<유나의 거리>가 멋지고 폼 나는 드라마는 아니에요. 대신 수수하고 꾸밈이 없죠. 옆집에서 일어날 것만 같은 소박한 재미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으리라고 봐요. ‘피곤한 인생’들과 어울려 사는 유나의 모습을 통해 우리네 주변을 한 번쯤 돌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드라마를 보는 모든 사람이 치유받고 행복해졌으면 해요.”

대사가 재밌고 특이하다는 평이 많은데요, 지금까지 촬영하신 드라마 가운데 가장 공감이 갔던 대사가 있나요?

“있죠. 괴한들이 칼을 들고 찾아와 유나를 찌르려고 할 때 남자 주인공인 창만(이희준 분)이 유나를 구해 주는 장면이 있어요. 창만이 유나에게 ‘너 왜 이렇게 사냐. 마음잡고 착하게 살 수 있잖아?’라고 하는데 유나는 되레 ‘그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데? 너나 똑바로 사세요. 나는 그렇게 못살아’라고 버럭 소리를 질러요. 전 이 대사가 정말 슬펐어요. 창만은 유나와 다르게 바른 삶을 살아온 청년이거든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순수한 사람이 유나에게 진심을 담아 한 말인데, 유나는 반항심부터 확 튀어나온 거죠. 겉으로는 ‘누가 그걸 모르냐’고 강하게 반발하지만 유나 스스로 바르게 사는 방법을 모르거든요. 정말 ‘유나’다운 대사라고 생각했어요.”


▎대선배 송강호와 함께 출연한 영화 <박쥐>는 김옥빈을 연기 잘하는 여배우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얼짱 스타’를 넘어선 ‘연기파’ 배우

김옥빈은 ‘인터넷 얼짱’ 출신으로 연예계에 데뷔를 이뤘다. 인터넷 포털이 붐을 일으키던 시절 김옥빈은 네이버의 ‘얼짱 선발대회’ 1위를 차지하면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얼짱 스타’가 되었다. 연기자가 꿈이었던 김옥빈은 스타들의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여고괴담4:목소리>(2005)를 찍으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였고, 많은 영화를 찍으며 필모그래피를 늘려갔다. ‘김옥빈’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알릴 만한 대표작이 없던 그에게 행운을 안겨준 작품은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다.

<박쥐>에서 욕망에 가득 찬 여주인공 ‘태주’를 연기하며 과감한 노출 신까지 선보인 그는 칸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기도 했다. 당시 김옥빈의 나이는 스물두 살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는 송강호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연기를 펼쳤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당시 미국 유명 주간지 <타임(TIME)>은 김옥빈을 가리켜 “22세의 사랑스러운 김옥빈이야말로 이 영화의 놀라운 발견이다”고 평했다. 다른 ‘얼짱 출신’ 연기자들이 부족한 연기력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김옥빈은 그만의 연기력과 매력으로 톱스타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 후로도 김옥빈의 연기 변신은 계속됐다. 일찍 성공한 나머지 허무감에 사로잡힌 20대 톱스타의 역할(영화 <여배우들>)부터 저격수(영화 <고지전>), 비밀을 간직한 과학자(영화 <열한시>) 등 예쁘고 여성스러운 역할보다는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에 단골 출연했다. 사랑스럽고 예쁘게 보이는 역할을 맡으며 ‘풋풋한 20대’로 어필하는 다른 여배우들과 구분되는 행보였다.

그런 김옥빈에게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흥행 성적에 흔들리지 않는 배우이기도 하다. 언론과 대중의 평가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연기를 고집해왔다. ‘20대 여배우 기근현상’을 말하는 이들에게 그는 행동으로 보여주듯, 차근차근 그만의 색깔을 그려왔다.

김옥빈씨는 주목받을 만한 배역이나 작품보다는 스스로 정한 기준에 따라 작품을 선택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영화나 드라마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따로 있나요?

“저와 작품 사이에 흐르는 ‘교감’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요. 대본을 보는 순간 ‘이 작품은 해야겠다’는 느낌이 오는 배역이 있거든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긴 한데,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여러 인생을 경험해보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컸어요. 많은 분이 저보고 ‘변신’에 능하다고 말씀하시는데,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은 제 욕심이 계속해서 캐릭터 변신을 하게끔 만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스크린에 보여지는 모습에 국한되지 않고, 제 안의 다른 모습을 계속 찾아가고 싶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20대 여배우 중 한 명이에요. 벌써 20대 끝줄에 서 있기도 한데, 혹시 ‘30대 여배우’가 되는 것에 대한 각별한 느낌이 있나요?

“‘20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라고 하니까 부끄럽네요. 30대야 물론 기대 되죠. 30대라는 것이 여자로서도, 배우로서도 좋은 의미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20대를 허술하게 보낸다면 멋진 30대도 오지 않겠죠? 시간이 흘러 ‘20대에 참 열심히 살았다’고 뿌듯해 할 수 있을 만큼 제가 할 수 있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양하게 해보려고 해요.”

<유나의 거리>는 돈이나 명예가 아닌 ‘진정한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인데요. 김옥빈 씨가 최우선으로 두는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궁금하네요?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요.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내가 처한 상황에서 행복을 찾는 게 인생의 목적이라고 봐요. 거창하지 않더라도 웃고 있는 사람이 최고의 인생을 사는 거라고 믿거든요.”

연기자로써 김옥빈 씨가 꿈꾸는 미래는 뭘까요?

“좋아하는 작품 실컷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애 낳고 행복하게 사는 거요. 말은 쉬워 보이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요.”(웃음)

201408호 (2014.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