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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4월 訪韓 다나카 노부오 전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 - “한·중·일 ‘집단에너지안보’(Collective Energy Security) 체제 도입하자” 

냉전 당시 독일 주도로 러시아 에너지 도입한 유럽의 성공모델 동북아에도 가능… 3국 공동 교섭을 통해 에너지 가격 내리고, 역내 평화공존에도 활용해야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다나카 노부오 전 IEA 사무총장은 한국과 일본이 중동 석유 의존도를 줄여 에너지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기억해야 할 수치가 너무도 많다. 물가·실업률·환율·주가·경제성장률 같은 경제지수다. 하루 날씨의 예상 기온 정도만 알아도 되던 때가 천년만년 전처럼 느껴진다. ‘배럴당 얼마’ 라는 식의 수치도 그중 하나다. 한국인 가운데 1배럴의 규모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지만 159ℓ에 달하는 배럴당 얼마라는 뉴스는 외환, 주식가에 버금가는 빈도와 의미로 신문 지면에 등장한다.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어섰다면서 세계경제가 난리가 날 것처럼 말하더니 최근에는 배럴당 3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면서 또 한차례 세계경제 악화에 관한 뉴스가 판을 친다. 비싸도 탈, 싸도 문제인 것이 원유가라고 한다.

들쑥날쑥하는 원유가의 배경에는 보통사람들이 모르는 여러 가지 역학관계가 있을 듯하다. 석유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문제는 한국의 손에서 벗어난, 지구 밖의 이슈처럼 느껴진다. 어디 한자리 끼여서 능동적으로 결정하고 선택할 여지가 거의 없다. 산유국이나 산유국과 이권을 나눈 서방 선진국들의 결정에 순종하고 따라가야만 하는 것이 원유수입국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 정부 주도하의 해외 석유개발이란 얘기도 들리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결과는 미미하다. 원유, 나아가 에너지 전반에 관한 정책이나 국제적 감각이 절실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수동적인 환경에 처해 있기에 상황에 앞서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만 할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 이하 IEA)는 전 세계 모두가 공인하는 에너지문제 전문 국제기구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가 있으며 현재 29개 국을 회원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OECD국가를 가입 대상으로 한다. 한국은 2002년 가입했다. 1973년 석유 파동 직후 만들어 OECD를 중심으로 한 석유소비국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조직이다. 현재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대응하는 단체라 볼 수 있다. 당초 석유에서 시작됐지만 이후 원자력에서부터 그린을 포함한 대체에너지까지 활동 영역을 넓힌 상태다. 에너지 관련 세계 최고의 싱크탱크라 볼 수 있다.

현재 도쿄(東京)대학 교수로 재임 중인 다나카 노부오(田中伸男)는 2007년 9월부터 만 4년 동안 IEA 최고책임자로 일했다. 사무총장(Executive Director)이란 직함으로 외교 프로토콜로 보면 유엔의 반기문 사무총장과 동급이다. 다나카 교수는 일본인으로서 처음으로 국제기구 수장(首長)에 오른, 일본 외교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한국의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에 오른 2007년, 같은 해에 일본 1호 국제기구 대표로 올라섰다. 현재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에 오른 아마노 유키야(天野之弥)를 통해 제 2호 국제기구 대표를 만들어냈다. IEA 전 사무총장 다나카 교수와 만나 에너지 전반을 둘러싼 오늘과 내일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다. 장소는 다나카 전 사무총장이 명예고문으로 있는 도쿄 내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IEE)다.

OPEC이 유가 좌우하던 시대는 지났다

국제기구 사무총장으로 반기문 총장과 비슷한 시기에 일하셨는데?

“원래부터 면식이 많은 분입니다. 국제기구를 통해서도 자주 만났습니다. 사실 제가 IEA에서 일하게 된 배경에는 반기문 총장과 한국정부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문제에 관한 한 일본과 한국은 거의 형제국가에 가깝습니다. 비슷한 점도 많지만 함께 협력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다나카 교수는 원래 일본 경제산업성 출신 관료다. 워싱턴에서 경제공사로 일하는 등 경제산업성에 있으면서도 미국을 중심으로 일해왔다. 미국에서의 활동 배경을 가진 반기문 사무총장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도쿄대학 교수로 일하면서 젊은이들의 국제기구 근무를 적극 권한다고 한다.

최근 원유가격이 들쑥날쑥한데?

“단순히 보면 수요와 공급에 따른 결과입니다. 미국·캐나다·이라크에서의 석유공급이 늘었습니다. 현재 새로 파내는 석유의 40%가 미국산입니다. 그렇지만 러시아와 유럽 경제 그리고 중국 경제가 식으면서 수요가 줄어들었습니다. 지난해 12월의 OPEC회의도 큰 전환점입니다. 당시 원유가가 6개월 동안 내리막인 상태였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어요. 오버슈팅(Overshooting), 즉 수요를 넘어선 석유채굴에 대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원유가는 2008년 외환쇼크 이후 한때 배럴당 148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7년 만인 지난해 35달러 최저선으로 내려갔지요? 그렇지만 내릴 때도 있고 오를 때도 있습니다. 현재 배럴당 50달러 선인데 곧 오를 수도 있습니다. 새 유전개발에 대한 투자가 줄기 때문입니다. 잉여 채굴로 인해 비축량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세계경제가 활황에 들어설 경우 한순간에 급등할 수 있습니다. 내려야 할 이유도 많지만 올라야 할 이유도 적지 않습니다.”

OPEC이 왜 수수방관했나요?

“현재 글로벌 원유시장에서의 OPEC의 영역은 30% 선에 그칩니다. 1980년대 이래 증산을 해왔지만, 공급비율은 점점 줄어들 겁니다. 나머지 70%가 따라주지 않을 경우 OPEC만으로는 시장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사실 감산할 경우 원유가가 올라간다는 보장도 없어요. 1980년대 세계시장에서의 OPEC의 비중은 약 50%까지 올라갔습니다. 사우디의 야마니 석유상이 감산을 내세우면서 원유가를 한층 더 올리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거꾸로 시장에서는 유가가 떨어졌습니다. 세계경제가 나빠지면서 원유를 사려는 나라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야마니 석유상이 해임됐지요. 이번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수수방관한 이유는 아마도 셰일의 위상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세계 에너지의 청사진으로 등장한 셰일가스와 석유가 글로벌 에너지시장에서 과연 얼마나 위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현장검증 정도라고나 해둘까요?”

저유가 파장으로 OPEC 와해 가능성도


▎미국 텍사스주 메버릭 분지 이글포드 셰일가스 생산 현장의 시추 타워 전경. 유가 하락의 마지막 승자는 미국일 수도 있다
현시점에서 어떤 부분에 주목해야 할지요?

“가격변동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곧 닥칠 변화에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지요? 셰일가스가 전 세계 에너지의 구세주처럼 등장했지만 채굴 가격은 아직도 비쌉니다. 개발단가를 낮추는 노력과 대체에너지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에너지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투자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입니다.”

OPEC의 영향력이 줄어들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OPEC의 비중이 줄고 석유가 하락에 수수방관한다는 것이 OPEC의 위상 저하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과거처럼 OPEC이 전면에 나서 유가를 결정하지는 않지만 OPEC이 갖는 영향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는 한층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로 경제적 측면과 지정학적 이유로 설명할 수 있어요.

먼저, 경제적 측면은 OPEC이 갖는 ‘지구력(持久力)’이란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합니다. OPEC 내 석유채굴의 개발비용은 배럴당 10달러 선에 그칩니다. 다른 지역에서의 개발비용은 최소한 갑절 이상 들어갑니다. 요즘 각광받는 셰일의 경우 배럴당 생산비가 40달러에서 80달러까지 들어갑니다. OPEC의 경우, 원유 판매가가 배럴당 20달러 선이라도 견뎌낼 수 있어요. 미국이나 북해산 석유의 경우 50달러 선 이하로 판매가가 지속될 경우 견뎌내기가 어려워집니다. 가격에 대한 적응성과 기동성이 강하다는 의미에서 OPEC의 저력이 결코 무시될 수 없어요. 그렇지만 낮은 가격의 석유가 지구력이 강한 나라에 꼭 도움을 주는 건 아니에요. 재정수입 때문입니다. 서방 산유국을 제외할 경우, 다시 말해 OPEC이나 러시아의 경우 석유 수출을 통한 재정수입 비율이 엄청납니다. 특히 OPEC의 경우 100%에 달합니다. 이들 국가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액의 최저 유가가 필요합니다. 배럴 기준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100달러 정도, 러시아는 120달러, 베네수엘라는 140달러는 돼야 국가예산을 집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하가 되면 여러 가지로 혼란이 생긴다는 얘기입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미 혼란이 시작됐지요?”

경제 외적인 측면은 무엇입니까?

“둘째는 지정학적 이유로 중동이 갖는 복잡한 정치·경제학적 의미가 원인입니다. 낮은 가격에도 견딜 수 있는 나라이기에 상대적으로 시장에서의 수요가 한층 더 강화될 겁니다. 미국이나 북해산 원유는 다른 지역의 유가가 비쌀 때 각광을 받겠지만 가격 차이가 현저할 경우에는 싼 중동으로 몰리게 됩니다. 30% 선의 비중이기는 하지만 세계 원유의 주요 공급원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렇지만 낮은 판매가는 장기적으로는 OPEC 자체를 와해시키는, 국가적 재앙으로 닥칠 겁니다. 무기를 사고 국민들을 안정시켜줄 건전 재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집니다. 특히 최근의 이슬람국가(IS) 때문에 중동 내 석유개발이 주춤해진 상태입니다. 가격도 떨어진 상황에서 미래가 불확실해질 경우 세계 오일 시장의 재앙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OPEC이 한층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란 얘기입니다.”

일반인의 관심은 그 같은 환경보다 당장 유가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부분에 집중될 듯합니다.

“앞서 더 내릴 수도 오를 수도 있다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한순간 내려갔다가 곧바로 급등하는 식의 불안정한 가격 체계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중국·인도와 같은 오일 소비국이 있는 한 급격한 수요 감소는 없을 겁니다. OPEC처럼 무한정 시추경쟁이 불붙은 상황에서 급격한 공급감소를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하향세를 그린다거나, IS가 이라크 남부 유전을 공격하는 등의 뉴스가 터지면 시장에 급격한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21세기 세계경제의 축소판이라 할 석유시장의 불안정이 현저하게 확산된다는 말입니다.”

그 같은 상황이 한국과 일본 같은 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일본의 경우 중동에 대한 원유 의존도가 80% 정도입니다. 한국도 이와 비슷할 겁니다. 시장이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특히 OPEC의 불예측성을 감안할 때 중동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게 급선무입니다. 싸다고 의존할 것이 아니라 다변화해서 위험을 분산하는 게 현시점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됩니다.”

미국, 2040년 중동 석유 의존도 ‘0’


에너지 소비량의 30% 정도를 외국에 의존하는 중국의 경우도 한국·일본과 비슷한 상황이라 볼 수 있을까요?

“중국은 한국·일본보다 상당히 양호한 상태입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 자국 내 생산입니다. 전체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수입 원유 의존량이 월등히 낮아요. 현재 40% 정도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100% 정도지요? 따라서 중국의 대(對)중동 의존도는 한국·일본보다 훨씬 낮습니다. 중동 원유에 가장 민감한 나라가 일본과 한국입니다. 둘째 중국의 강점은 육로를 통한 파이프 공급망에 있습니다. 러시아·카자흐스탄·미얀마의 원유는 육상 파이프 라인을 통해 에너지를 수입합니다. 한국·일본은 전부 바다를 통한 에너지 수입입니다. 바다를 통한 에너지 수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안정적이지 못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이 훨씬 더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에너지 수입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동에너지에 대한 의존 정도도 일본이나 한국보다 적습니다. 참고로 현재 미국은 전체 석유소비량의 20% 정도를 중동 석유에 의존하고 있고요. 셰일가스 덕분에 2040년이면 중동 원유의존도가 제로가 될 전망입니다.”

유가 하락이 한국·일본·중국·미국의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겠지만 한국·일본·중국의 경우 GDP 증가에 도움이 될 겁니다. 수입단가가 떨어지면서 생산성 향상에 이바지할 겁니다. 미국의 경우도 셰일 분야에 피해가 가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긍정적입니다. 석유 메이저 회사들이 장래투자라는 측면에서 어려워진 셰일 기업을 흡수하는 식의 상황도 예상됩니다. 석유가 하락이 얼마나 오래갈지 여부에 따라 결과도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모두에게 좋습니다.”

유가 하락의 유일한 승리자는 미국이라는 말도 들리는데요?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게 가고 있어요. 러시아 오일가격이 하락하면서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위상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반미 최전선에 섰던 베네수엘라도 여러 가지 면에서 위기상황으로 치닫습니다. 경제제재 해제를 둘러싼 이란과의 협상에서도 미국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됩니다. 고유가 국면에서는 이란도 느긋하게 대응할 수 있겠지만 유가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미국이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미국 경제 자체만이 아닌 국제·정치학적 차원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IEA 수장을 역임한 전문가 입장에서 현재의 원유가 하락의 교훈을 짚으신다면요?

“앞서 말했듯이 중동 석유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낮추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가격만이 아니라 시장이 불안정해질 경우를 대비해서 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러시아의 석유가 한층 더 긴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러시아 석유 개발과 파이프를 통한 공급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러시아가 첨예하게 맞서는 상황입니다. 러시아 석유에 주목하라는 주문은 다소 뜻밖인데요?

“사실 우크라이나 문제는 국내문제, 나아가 아무리 커도 유럽 내 문제에 불과합니다. 독일의 요청으로 미국이 자유와 인권의 관점에서 적극 관여하면서 국제문제로 비화된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국내문제로 귀착될 겁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것과 러시아 석유는 별개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안정적인 석유를 다량으로 공급해줄 최적의 나라는 러시아뿐입니다. 미국의 입장과는 궤를 달리하겠지만 러시아 석유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적당한 가격으로 공급받느냐가 향후 글로벌 에너지 정책의 핵심이 될 겁니다. 특히 한국·일본에 있어서 러시아 에너지의 의미는 점점 더 중시될 것입니다. 만약 한국·일본이 멀리할 경우, 중국이 러시아 에너지의 최대 수혜국이 될 겁니다. 그 같은 상황은 사실 러시아, 나아가 미국도 원치 않습니다.”

에너지가 평화를 가져온다


▎2008년 7월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열린 G8 정상회담 리셉션에 참석한 다나카 노부오 당시 IEA 사무총장(가운데). 그는 한국정부의 지지를 받아 IEA 사무총장이 됐다고 밝혔다.
2006년과 2009년 겨울, 러시아가 파이프라인을 통한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면서 유럽 전체가 얼어붙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물론 러시아에 대한 불신은 일본도 여전합니다. 문제는 ‘지나치게’ 러시아에 의존할 경우에 일어납니다. 서부 유럽의 경우 전체 에너지 수입량의 30% 정도를 러시아에 의존합니다. 동부 유럽은 사실상 100% 의존하고 있고요. 의존량이 클수록 러시아의 입김도 세집니다. 적당한 선에서 러시아 오일을 수입할 경우 독자적인 카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도 유럽 일변도의 에너지 수출을 원치 않습니다. 러시아 에너지 수출량의 70% 정도가 유럽에 집중됩니다. 유럽 경제가 어려울 경우 에너지 수출량이나 가격면에서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가시화되고 있는 러시아 경제의 침체는 유럽 경제 악화에 따른 에너지 수출량 및 단가의 저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의미에서 한국과 일본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통해 러시아 에너지 수출량과 가격 안정화를 꾀하는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전략이라 할까요? 중국은 그 같은 러시아의 생각에 가장 먼저 응한 곳입니다.”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에너지가 통하는 건 피가 통한다는 의미인데 러시아를 믿을 수 있을까요?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는 러시아 에너지를 유럽에 끌어들인 장본인입니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러시아 파이프라인을 끌어들일 때 당연히 미국의 반대가 있었죠. 독일은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지 않는 대신 외국으로부터 에너지 수입에 진력합니다. 당시 유럽은 러시아 에너지수입 비중을 전체 수입량의 30% 이하로 한다는 묵시적인 합의 하에 파이프라인 건설에 들어갑니다. 유럽 전체와 러시아가 추진한 ‘집단에너지안전보장(Collective Energy Security)’란 차원에서 이뤄진 계획입니다. 에너지는 생존 그 자체입니다. 미국도 응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추진됐고, 그 결과 별다른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일본 나아가 중국은 여러 차원에서 불화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상황에서 보듯 ‘집단에너지안전보장’ 차원의 협력체제를 구축할 경우 극한 상황은 면할 수 있습니다. 물론 러시아가 보여줄지도 모를 전횡도 3국이 동시에 나서면 쉽게 막아낼 수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 러시아와 양국간 거래를 통해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격이 전부 다릅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일본·중국이 하나로 합쳐져 러시아에 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 같은 집단에너지안전보장을 통해 3국간의 평화도 구축할 수 있겠지요? 에너지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은 가장 확실한 보증서입니다. 참고로 현재 일본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규모는 가스의 경우 10%, 석유는 4% 정도입니다. 앞으로 20%까지 늘려도 좋을 듯합니다.”

일본의 경우 북방 영토문제와 러시아 석유 수입문제가 연계된 상태이죠?

“물론 러시아가 불법 지배하는 북방 영토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러시아 에너지 수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를 보면 러시아 에너지 수입으로 양국간의 교류가 활발해진 상태에서 동독과 통일을 이룩하게 됩니다. 지정학적 차원의 에너지 교류가 독일통일의 근본적 이유는 아니겠지만, 중요한 이유가 된 것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통해 양국 관계가 일체화되는 과정에서 북방 영토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굳이 일본 문제가 아니라 해도 북한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집단 에너지안전보장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중요하고도 절실합니다.”

한·일 에너지 협력분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사실 이미 손마사요시(孫正義: 한국 이름 손정의)에 의해 제안된 ‘한일에너지협력구상’이 있습니다. 내몽골의 고비사막에서 만든 태양에너지를 중국·한반도를 통해 일본에 끌어 들이자는 방안입니다. 에너지를 통한 협력 사례는 중국과 동남아에서도 발견됩니다. 정치적으로는 긴장관계 있는 베트남과 중국도 남은 전기를 사고파는 사이입니다. 전후 유럽의 통합은 여러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을 듯합니다.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석탄·석유·원자력을 둘러싼 유럽의 통합입니다. 가해국·피해국을 넘어서 에너지라는 목전(目前)의 이해에 모두가 동의하면서 평화체제로 접어들었습니다. 한국·일본·중국은 그 같은 역사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일간 에너지 교류는 정치적 결단이 선행돼야 할 듯한데요?

“결론은 그렇겠지만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을 이해할 경우 모두가 납득할 겁니다. 유럽의 전력회사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효율과 생산성 관점에서도 특출합니다. 현재 일본은 각자의 전력회사가 지역을 독점하는 구조입니다. 독점에 근거해 시장을 분할하는 과정에서 비효율적이고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경을 넘어선 지역적 차원, 다시 말해 한국·중국을 상대로 한 전력회사가 될 경우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대한해협에 전력선을 깔아 일본이 한국발 전기를 사거나, 거꾸로 파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요? 결국에는 그 같은 과정을 통해 서로간의 진정한 통합이 이뤄질 겁니다.”

한·일 원자력 협력도 핵심 현안으로 등장할 것

다나카 교수와의 인터뷰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에너지가 물리적 의미만이 아닌 소통으로 연결되는 역사적·정신적 다리 역할로도 발전된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한·일간의 에너지 협력이야말로 미래를 향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수차례 강조했다. 작은 섬이나 역사문제로 마음을 닫기보다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이라 말한다.

3·11 동일본 대지진 4주년을 맞아 소회(所懷)를 들어봤다. “천재(天災)가 아니라, 미리 막을 수 있었던 100% 인재(人災)입니다. 한국과 에너지 협력이 필요한 이유는 일본의 실패 경험을 다른 나라와 공유하면서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를 국제적 재앙을 막자는 데 있습니다. 한·일간의 원자력 관련 협력은 앞으로 두 나라의 핵심 현안으로 등장할 겁니다.” 한국에 이미 수차례 다녀왔지만 오는 4월 서울에서 열리는 에너지 관련 포럼의 초청인사로 다시 찾을 예정이라고 한다. 한·일간 에너지 협력문제를 한층 더 강조하는 것이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 중 하나라고 말한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504호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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