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단독 인터뷰]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 

“트럼프도 임기 중 탄핵 가능성 크다”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보스턴=김동현 월간중앙 통신원 glutton4@joongang.co.kr
“최근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에 심대한 타격…박 대통령, 빠른 시간 내에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 그룹 회장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등 수퍼파워가 패권을 행사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월간중앙은 지난 12월 6일 미국 보스턴에서 이안 브레머(Ian Bremmer·47) 유라시아(Eurasia) 그룹 회장을 단독 인터뷰했다. 브레머 회장은 뉴욕대 교수로 재직하며 세계 최고의 정치 컨설팅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 시대의 지성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사적인 관계에서 거짓이 있었고, 국가의 기밀을 정당하게 다루지 못했으며, 국민 전체로부터 신뢰와 정당성을 상실했다”면서 “한국 민주주의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 박 대통령이 빠른 시간 내에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브레머 회장은 “과거 권위주의적 통치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확신했던 국가에서 발생한 일이라 놀라움과 낙담은 더욱 크다”는 심경을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브레머 회장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탄생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트럼프는 엄청나게 논란이 많은 대통령이 될 것”이라 전제하며 “트럼프와 그의 가족이 사업으로 인해 빚게 될 이해관계의 충돌,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판단, 정치적으로 실행 불가능한 조치를 이행하려는 고집, 사실과 현실에 크게 개의치 않는 그의 성향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브레머 회장은 만일 트럼프가 공화당이 지배하는 상하원과 원만한 관계 형성에 실패할 경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할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전망했다.

브레머 회장은 ‘정치적 리스크’라는 개념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체계화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를 어떻게 투자판단에 적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2001년 리먼 브러더스와 공동으로 개발한 로직이 바로 ‘글로벌 정치리스크 인덱스(GPRI)’다. 각국의 정치리스크를 점수로 매겨 지수화한다는 발상으로 당시 월가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트럼프 당선 이후 패권적 주도세력 더욱 약화


▎지난 12월 8일 당선사례 투어를 돌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인. 트럼프는 세계화에 저항하는 미국 백인 노동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렇게 그는 정치학과 경제학의 절묘한 조합을 만들어냈다. 브레머 회장은 1994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같은 대학 후버연구소 교수로 부임했다. 당시 나이 25세로 후버연구소 사상 최연소 교수로 화제가 됐다.

컬럼비아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교수생활을 하던 중인 1998년 유라시아 그룹을 설립했다. 유라시아 그룹은 기업과 금융기관, 각국 정부에게까지 정치경제 리스크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와 컨설팅을 제공한다. 단돈 2만5000 달러로 설립한 유라시아 그룹은 오늘날 뉴욕과 워싱턴, 런던에 지사를 갖고 있고 전 세계 수십 개국 수백 명에 달하는 전문가와 탄탄한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브레머 회장은 학계와 업계를 부지런히 오가며 정치 리스크에 대한 다양한 개념을 만들어냈다. 가장 유명한 이론이 바로 ‘J커브’로, 각국의 개방성과 안정성의 상호관계를 분석한 이론이다. 북한을 포함해 정치적인 리스크를 안고 있는 국가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이 개념에 포함돼 있다. 브레머 회장은 이 밖에 리스크를 얼마든지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팻 테일(The Fat Tail)’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를 이끌 패권적 국가가 사라지고 있다는 ‘G-제로’ 이론으로도 유명하다.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통해서도 트럼프 당선 이후 패권적 주도세력이 부재하는 ‘G-0’ 시대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브레머 회장은 북핵문제의 해결에 있어 냉정하고도 현실적인 접근방법을 제안했다. “북한이 핵 보유국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고,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지 않도록 할 수는 없으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북핵문제 해결에는 채찍도 필요하지만 “당근도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북한을 향해 “20개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감시관들의 입국을 허용하고, ICBM 개발을 중지하고, 미사일에 핵탄두를 싣는 군사적 프로그램을 중지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제공해주길 바라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다. 인터뷰는 12월 6일 오전(현지 시간) 미 보스턴 시내 한 호텔에서 김동현 월간중앙 통신원과 대면해 이뤄졌다.

전 세계의 정치가 혼돈에 빠진 느낌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트럼프와 같은 아웃사이더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현재 유럽과 미국 같은 선진국 국민 다수는 세계화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정치권을 비롯한 기업, 은행, 언론의 리더가 보통사람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본다. 사회 계약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투표에 참여했다. 트럼프를 대안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투표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기득권 세력을 대표하는 양당 후보자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인물로 각인됐다. 힐러리 클린턴이 8년 전에도 버락 오바마에게 패배한 인물이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오바마는 초선 의원으로 트럼프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정도의 아웃사이더였다. 당시 오바마의 출현을 그 뒤 다가올 일들의 한 징후로 해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미국민 중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들은 세계가 자신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트럼프가 이들의 분노에 효과적으로 접근했다. 트럼프 등장의 중요한 배경 중의 하나는 미국인들의 정치적 무관심이다. 대다수 미국인의 생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선거였음에도 투표율은 55%에 불과했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끝났다


▎2015년 11월 파리협정 논의를 위해 만난 오바마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국가주석(오른쪽). 하지만 탈퇴를 공언한 트럼프가 당선돼 협정이 위기를 맞고 있다.
오바마 집권시기와 앞으로 시작될 트럼프 체제 사이의 차이는 뭘까? 과연 드라마틱한 변화가 시작되리라고 보나?

“이념이 아닌 현실의 차원에서 많은 변화가 이뤄질 것이다. 트럼프는 상하원 과반수를 차지한 공화당과 함께 통치를 시작하게 된다. 트럼프가 원한다면 많은 정책이 법안을 통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는 의회의 백업을 받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트럼프는 내각 인선에서 보았듯 민영화 또는 민간 부문의 활성화에 관심이 많다. 각종 규제 정책, 에너지, 기후, 금융, 세제 등의 분야에서 그런 성향이 발견된다. 많은 예산이 소요될 기간산업에 대해 적자를 감수하기보다 민영화의 길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정책에서도 트럼프는 오바마 정부와 현격히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외교에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오바마 정책의 단절이 아닌 연장선상에서 이뤄질 것으로 본다. 오바마 역시 우방국들의 무임승차를 지적하며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이 세계의 보안관 역할을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이 세계의 리더가 되길 원치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바마가 지지했던 자유무역과 TPP 의존에 대해 심각한 표정으로 반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정권 하에서도 많은 우방은 과연 미국이 의존할 만한 나라인가 우려했다. 트럼프 정권 하에서 특히 아시아의 우방국들은 그 같은 우려를 더욱 날카롭게 느끼며 대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정권 출범이 미국의 패권적 리더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팍스 아메리카나는 끝났다. 이제는 더 이상 미국의 패권적 리더십을 논할 수 없는 단계다. 그렇기에 중국이 다보스 포럼을 주최하고, 시진핑이 APEC에서 중국이 세계화와 다자주의를 리드할 것이라 밝히는 것이다. 이는 일정부분 트럼프가 스스로를 반세계주의자라 칭하고 미국의 패권을 거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 세계 무역의 설계자, 세계적 가치의 옹호자가 되길 원치 않는다. 마침내 우리는 ‘G-0’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5∼6년 전 내가 주장했던 것이 현실로서, 많은 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의 극단적인 국내외 정책이 그의 대통령 임기를 못 채우게 할 수도 있다는 진단도 있다. 이 같은 견해에 현실성이 있는 것일까?

“트럼프는 엄청나게 논란이 많은 대통령이 될 것이다. 본인과 그의 가족이 사업으로 인해 빚게 될 이해관계의 충돌, 즉흥적인 태도, 정치적으로 실행 불가능한 조치를 이행하려는 고집, 사실과 현실에 크게 개의치 않는 성향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할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공화당이 지배하는 상하원과 대립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 농후해진다. 첫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다면 (합리적으로 변화한) 트럼프가 재선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은 트럼프 정권과 어떤 관계를 추구할까? 트럼프를 활용해 자신의 전략적 목표를 관철할 수 있을까?

“김정은이 그 같은 시도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김정은은 세계의 많은 권위주의적 정치 지도자가 그랬던 것처럼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을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이 현재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전 세계의 대다수 국가를 적으로 만들었다. UN 제재를 비롯해 미국, 유럽, 일본, 한국으로부터의 독자 제재가 확산되는 상황이다. 가장 최근의 UN 제재는 광물 수출 제한으로 북한에 연 8억 달러의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굉장한 액수로 북한이 트럼프에 접근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핵 확산에 강한 우려를 명백하게 표시하고 있다. 그가 각료로 지명한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지명자 등의 면면을 볼 때 미국과 북한이 급속히 화해할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트럼프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일례로 대만 총통과의 통화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세리머니였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만날 가능성과 이들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가능성은 반반으로 엇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행동반경 커진다


▎독일 자동차회사 다임러의 자동운전 트럭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모습. 무인 자동차 시대의 도래 등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개막은 심각한 실업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 상반기 조기 선거를 통해 한국에 진보 성향의 정권이 들어설 확률이 커졌다. 그럴 경우 트럼프 정권과 갈등과 마찰이 빚어지진 않을까? 이와 관련해 한국의 차기 정부에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차기 정부가 어떤 방향을 갈 것인가에 따라 다르다. 많은 아시아 국가는 주변을 바라보며 ‘중국이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 이전 미국과의 안보동맹 관계를 원치 않는다며 중국이 자신들의 경제, 안보의 미래라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정부의 등장, 미국 주도 TPP의 실패, 역사적으로 미국이 맡아온 패권적 지도력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인해 시진핑은 중국의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차기 한국 정부가 ‘RCEP(중국 주도의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와 중국이 우리 경제의 미래다. 우리는 중국에서 돈을 벌 것이며 중국의 군사력 또한 성장할 것이다. 미국과의 안보동맹 유지가 썩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다’라는 식의 입장을 취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그러한 변화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까다로운 입장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서울과 지방 곳곳에서 연인원 수백만 명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유례가 없는 이 거대한 촛불시위를 보고 무엇을 느꼈나?

“시위 현장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많은 수의 한국민이 평화시위에 참여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한국민의 긍지를 잘 보여줬고, 한국의 강점이 잘 드러난 시위라 생각한다.”

퇴진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야기한 한국정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박 대통령이 이제는 그 지위를 유지하기는 어렵게 됐다.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전 세계의 지도자 중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는 사적인 관계에서 거짓이 있었고, 국가의 기밀을 정당하게 다루지 못했으며, 국민 전체로부터 신뢰와 정당성을 상실했다. 권위주의적 통치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믿었던 국가에서 발생한 일이라 낙담과 놀라움은 더욱 크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으며, 나는 개인적으로 박 대통령이 빠른 시간 내에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한국민이 위기를 극복하여 역동적이며 새로운 국가 시스템을 재건할 수 있을까?

“장담하기 어려운 문제다. 다만 미국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포퓰리즘의 문제를 겪고 있지 않다는 점이 한국민에겐 다행스런 일이다. 한국은 중산층이 꽤나 건실하고 단일한 민족 국가를 유지하며 난민 등 골치 아픈 문제를 겪고 있지 않는 나라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정확하게 대응해야 한다. IT기술의 발달로 시민이 정부를 바라보는 관점에 큰 변화가 생겼다. 박 대통령을 둘러싼 단기성 정치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뿐만 아니라 장기적 정치사회적 변화를 정확하게 짚고 대처해야 한다.”

한국민 앞에는 북핵 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가 가로놓여 있다.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세계화의 진전과 통신혁명을 감안할 때 전체주의적 국가를 유지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역 내 정보 유통을 통제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따라서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북한의 붕괴 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준비해야 한다. 이는 분명히 중요한 과제가 될 터인데, 한국 정부는 (북한 붕괴와 같은) 과도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전 세계의 ‘지정학적 침체(geopolitical recession)’를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의 리더십이 축소된 것을 그 원인으로 봤는데, 향후 어떤 힘이 미국의 그러한 공백을 메울까? ‘지정학적 침체’의 시대에 세계정세를 개관한다면?

“유럽의 어느 나라도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순 없을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가장 유력한 후보였지만 작년에 비해 그의 파워는 훨씬 약해졌다. 메르켈 총리 개인의 문제, 독일의 핵심 기업들인 폭스바겐·도이치뱅크·루프트한자의 문제, 난민 위기에의 대응, 메르켈 정권의 대안으로 부상하는 정당, 메르켈 총리의 연합 정당 내부 문제점 등이 노정되고 있다. 메르켈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 총리 자리를 지키고 있고 차기에도 선출이 유력하지만 그 후의 역할에 대해선 솔직히 기대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을 둘러봐도 가까운 미래에 강력한 지도자가 출현할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어떤 국가도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도 초강대국이 되긴 힘들다


중국과 일본은 어떤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국가는 중국이다. 경제적으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다. 현재 미국보다 더 많은 국가와 교역을 하고 있고 곧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갖게 될 것이다. 중국은 이에 부합하는 산업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야심적인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시장 경제를 운영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위안화는 기축 통화의 지위를 얻을 수 없다. 다른 측면을 살펴봐도 초강대국이 되긴 힘들다. 외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소프트 파워의 측면에서, 기술적으로, 군사적으로는 더더욱 아니다. 중국은 석유와 에너지, 식량을 수입하고 있는 나라다. 따라서 미국의 역할을 대신하여 중국이 패권국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본은 다방면에서 미국과 트럼프 정권에 중요한 동맹국이다. 일본의 경제규모는 세계 3위이지만 성장을 멈췄다. 인구 또한 증가하고 있지 않다. 그런 국가 구조는 결국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본에는 현재 아베라는 강력한 정치 리더십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역할을 일본이 대신할 것으로 기대할 순 없다. 이런 맥락에서 ‘G-0 시대’의 개막을 나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북한이 핵 보유국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지 않도록 할 수는 없으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할 수도 없다. 북한은 현재 2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과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다자 제재라는 채찍이 필요하다. 오바마 정부는 중국을 제재에 참여시킬 것이라고 밝히며 중국의 책임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북핵문제 해결에는 당근도 필요하다. 우리는 북한에 ‘20개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감시관들의 입국을 허용하고, ICBM 개발을 중지하고, 미사일에 핵탄두를 싣는 군사적 프로그램을 중지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제공해주길 바라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거대한 실업자 발생의 위기

이안 브레머 당신이 이끄는 유라시아 그룹은 2017년 세계가 당면할 가장 커다란 위기를 무엇이라 진단하는가?

“비국가 행위주체가 점점 더 큰 안보 위협이 되고 있다. 그래서 사이버 안보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했다. 테러리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중동 내 테러그룹의 신규 인원 충원 가능성은 더 커졌다. 미·중 관계는 더 악화되고 있다. 이제 전 세계는 패권국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상 ‘G-0의 시대’에 도달했다. 지정학적 침체가 심각한 상황에서 지정학적 불황(geopolitical depression)이 세계 시장에서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2016년 8월 리우올림픽 때 남북 체조선수들이 셀카를 같이 찍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올림픽을 하는 이유”로 극찬한 바 있다. 2018년 한국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 올림픽을 남북 평화의 장으로 승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한다면?

“남북 체조선수들의 우정은 리우올림픽의 가장 멋진 장면 중 하나였다. 당시 내가 남북 체조선수들의 애틋한 모습을 트위터에 올린 바 있는데, 이는 온라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고 수많은 사람이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1등이 되기 위해 전 세계인이 경쟁하는 와중에 국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 순간이었다. 우리는 국경이 실제로 존재하며 변경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받아들이지만, 사실 국경은 인위적인 것으로 그것이 궁극적으로 사람들을 분리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평창올림픽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모두 같은 인간이듯 남북한이 하나의 국가임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것이 어떤 다른 가치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평창올림픽은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만 있다면) 남북한이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점치는 학자가 많다. 그 혁명이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일까? 혹시 일부 자본가의 배만 불리는 가짜 혁명은 아닐까? 인류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어떻게 방향 지워야 조화롭고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은 분명 실체가 있다. 기술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인공지능의 경우가 특히 더 그렇다. 4차 산업혁명이 막대한 양의 부를 창출하겠지만, 이는 또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지는 거대한 불평등을 가져올 것이다. 미국의 50개 주에서는 운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인 자동차와 무인 트럭의 개발로 10년 이내에 이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와 기업이 역할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계약과 사회안전망을 혁신해야 한다. 이는 빠른 시일 내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문제로 현존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문제들이 트럼프 정부 하에서 발생할 것으로 본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빠른 시일 내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보스턴=김동현 월간중앙 통신원 glutton4@joongang.co.kr

201701호 (2016.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