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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리콴유-리센룽 父子의 싱가포르를 말한다 - 전제주의 도시국가를 돈으로 재단하는 수준 낮은 한국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우리에게 ‘독재국가’ 싱가포르는 롤모델 아냐… 1970년대 흑백사진과 과거의 향수로 현재와 미래를 덮으려는 리더십 지양해야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지난 3월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이 나라의 국부로 추앙받는다. 싱가포르 국회의사당에 마련된 리 전 총리 빈소에 조문객들이 줄지어 있다.
‘우리 연봉이 1억7497만원?’, ‘단돈 1만원에 팔린 기업?’, ‘태진아 억대 도박설 증거 있다’, ‘최고 1천만원 할인되는 수입차’, ‘아웅산 순직 장관, 서울대에 100억원 기부’, ‘태권도 사랑, 6년간 109억원 통 큰 지원’, ‘15년간 70억원 횡령한 신협 지점장’, ‘그리스, 나치에 330조원 배상금 요구’, ‘지경부 간부들, 1300억원 감면 의혹’

4월 9일자 모 일간지 인터넷 판에 실린 ‘돈’ 관련 기사의 제목들이다. 전체 45개 기사 가운데 10개가 돈과 관련된 기사다. 제목에 얼마라는 것이 나오지는 않지만, 내용을 읽다 보면 돈에 얽힌 얘기가 거의 절반에 이른다. ‘세월호 인양하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라는 식이다. 경제만이 아닌 일반 사회 기사에서도 ‘얼마?’가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 오른쪽 위에 자리하는 인기기사 랭킹을 봐도 돈 관련 기사가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사에 관한 부분은 돈 관련 기사와 더불어 한국 신문이 가장 주목하는 아이템이다. 일본에 대한 역사문제도 있지만, 해방 후 20세기 말까지 한국과 한국인을 둘러싼 흑백필름 기억이 과거사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듯하다. 과거사와 관련해 핵심이 되는 부분은 ‘그 어려웠던 시절에!’라는 말로 집약된다. 상투적 표현이 된, ‘독일 파견 광부, 간호사와 함께 눈물을 흘린 대통령’ 같은 얘기다.

물론 결론은 간단하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 우리는 참으면서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우리는 이렇게 해냈다.” 더불어 버스 차장의 애환과, 1970년대 구로공단 여공들의 분투기도 선보인다. 과거의 어려움을 이겨낸, 긍지와 자부로서의 자화상이 신문 지면 곳곳에 그려진다. 과거사와 함께 어제의 정치 얘기도 슬쩍 등장한다. 필자처럼 2015년의 현직 장관이나 정치인 이름에 익숙지 못한 사람에게 ‘딱 맞는’ 기사들이다. 더불어 1961년 5월 16일의 상황이 타임머신을 탄 90세 노인의 기억으로 재현된다. 진짜 여부인지도 희미한 ‘3김시대’의 정치 비화도 쏟아진다. 그때 그 시절에 대한 회한과 기억이 마치 경쟁하듯이 신문·방송을 뒤덮는다. 빛바랜 사진도 등장하고, 잊힌 사건 관계자들도 ‘지금 뭐하세요?’란 타이틀과 함께 부활한다.

‘돈’과 ‘과거사’는 2015년 봄 한국 사회의 두 가지 키워드로 비친다. 신문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라면 친구와의 대화 소재도 돈과 과거사로 달아오를 듯하다. 똑같은 얼굴의 탤런트나 대학교수의 성추행 가십도 흥미롭겠지만, 40대 이상 된 세대라면 돈과 과거사가 대세다.

돈은 현재성이 강한 테마다. 오늘을 살아가는 데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기능적인 것이 돈이다. ‘내가 옛날에 말이야’와 같은 어제의 스토리와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내일과는 거리가 있다. 돈은 지금 당장이다. 과거사의 경우는 말 그대로 과거다. 현재로서의 돈, 과거로서의 과거사가 2015년 대한민국의 주된 관심사다.

끝없는 심연으로 추락하는 10∼30대들


▎지난해 9월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개최된 청년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 한국의 청년세대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치열한 취업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돈으로서의 현재와 긍지·자랑으로서의 과거가 키워드로 등장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사라지고 있다. 미래다. 2015년 현재를 넘어선 미래에 관한 부분이다. 멀리 10년 뒤, 20년 뒤를 가정한 미래가 아니다. 1년 뒤, 2년 뒤라도 좋다. 그런 미래에 대한 얘기가 극히 드물다.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에 국한되지 않는다. 밝고 아름다우며 품격이 있는, 인간으로 태어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이상으로서의’ 미래다. 좀 심하게 얘기하자면, 꿈이 바로 미래다. 2015년 한국에 꿈이 있는가?

미래에 관한 뉴스의 중심은 젊은이들에게 있다. 장년·노년도 미래에 대한 얘기가 가능하겠지만, 살 날이 오래 남은 젊은이가 그 미래의 주인공이다. 한국 신문·방송을 보면 미래에 관한 얘기, 즉 젊은이에 관한 얘기는 암흑세계로 느껴진다. 얼마 안 되는 미래에 관한 얘기는 온통 잿빛이다.

투전판 대학입시와 100대 1이 넘는다는 취직 관련 뉴스, 외국어 두 개 이상은 필수라는 스펙 쌓기, 외모지상주의를 보장하는 성형 경쟁, 군대 내 폭력, 대학교수에 의한 성희롱, 자동차 안 동반자살…. 장년층이 돈과 어제의 기억에 빠져 있는 동안 2030세대 나아가 십대들의 오늘과 내일은 바닥없는 심연(深淵)으로 추락하고 있다.

한국에서 젊은이들에게 롤모델이 될 만한 사람을 찾으라면 크게 세 가지 영역이 떠오르지 않을까? 엔터테이너, 운동선수, 재벌 2·3세다. 텔레비전과 영화 무대를 대상으로 한 레이스걸, 배우, 가수에서부터 야구·축구·농구·골프에 관련된 운동선수, 공항과 백화점에 세계적 브랜드를 간단히 유치할 수 있는 재벌 2·3세만이 성공한 젊은이의 대표주자에 해당된다. 신문·방송은 온통 그들에 대한 얘기로 채워져 있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이름을 올린다는 것조차 민망스럽지만, 외국에서 보듯 파릇파릇한 젊은 우상과 무관한 나라가 한국이다. 스펙 쌓느라 정신이 없거나, 아예 경쟁사회에서 이탈해 숨만 쉬면서 살아가는 젊은이만 존재하는 듯하다. 과연 한국에는 젊은 세계를 무대로 한, 젊은 가치관과 행동에 기초한 젊은이가 없을까? 과연 한국은 콜라병 몸매의 보톡스 탤런트만 존재하고, 나머지 젊은이는 세상에 찌들고 자신의 꿈을 포기한 지 이미 오래일까? 돈과 과거사만 존재할 뿐 미래는 그토록 어둡고도 답답한 것인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데 익숙하다. 따라서 보는 것이 믿는 것만은 아니다. 한국이라고 해서 패기 넘치는 젊은 롤모델이 없는 것이 아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주변을 밝게 만드는 것 하나만으로도 롤모델이 될 수 있다. 돈과 명성이란 각도에서 보면 별 볼일 없겠지만, 품과 격을 갖춘 아름다운 인간이란 각도에서 보면 닮고 싶은 인물이 될 수 있다. 천문학적 숫자로 나타나는 돈과 과장되고 신격화된 어제의 상황이 젊은 미래를 짓누르면서 롤모델이 될 만한 젊은이들을 밖으로 몰아세울 뿐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젊은 롤모델은 결코 적지 않다. 돈과 과거사에 보내는 시간의 100분의 1만 투자해도 젊은 미래가 곳곳에 넘실거릴 것이다.

너무도 달콤한 얘기는 거짓인 경우가 많다


▎1979년 10월 한국을 찾은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왼쪽 둘째)가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가운데)과 기념촬영을 했다. 당시 영애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만찬에서 통역을 맡았다.
3월 말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의 죽음이 한국사회 전체에서 ‘화제’가 됐다. 워낙 감동에 메마른 사회이기에, 싱가포르 국민처럼 리콴유 뉴스를 감동으로 받아들인 한국인도 적지 않았을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감동과는 거리가 먼, 화제로 해석한다. 엄청난 양으로 다뤄진 열풍으로서의 화제다. 우선 무려 10여 일간 한국의 신문·방송이 보여준 리콴유에 대한 관심이 놀랍다. 리콴유처럼 오랜 기간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외국인, 아니 한국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오마바 미국 대통령이 죽는다 해도 3~4일이면 사라질 듯하다.

허름한 기울어진 집에 산다는 검소한 정치인, 자신의 기념관을 만들지 말라는 유언, 재산을 전부 사회에 환원한다는 얘기, 큰 무덤을 안 남기고 화장을 통해 세상을 뜨겠다는 얘기 등등.

한국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으로 살아온 인물이 리콴유다. 마치 한국의 지도자처럼 추앙되면서 세간에 퍼져나갔다. 기사만이 아니라, 사설 등을 통해 리콴유 집권 이전과 이후의 싱가포르를 비교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1인당 소득(GDP)이나 경제규모가 몇 천 배, 몇 만 배 증가했다는 식의 숫자놀음이다. 리콴유 스스로가 모범적인 리더로서, 싱가포르 전체 국민을 솔선했다고 말한다.

너무도 달콤한 얘기는 거짓일 경우가 많다. 거짓말 지수다. 모두에게 감동을 주고, 환상적인 얘기일수록 거짓말 지수가 높아간다. 영어로 ‘Too good to be true’라는 말이 있듯이, 너무 좋아서 사실이라 믿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한국에서 난리가 난 한 기업 회장만 해도 그렇다. 그의 생전 활동을 보면, 장학사업과 건설업 중 어느 것이 전문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세상의 빛이 되기를 결심한 기업가로 비쳐진다. 그러나 돈의 근본이 그러하듯, 세상에는 결코 공짜가 없다. 1천 명 단위의 정치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뭔가 냄새가 난다.

언젠가 전부 밝혀지겠지만, 가난을 앞세우면서 듣기 좋은 말과 행동으로 시선을 끄는 사람은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좋다. 진짜인 사람들은 아무리 가난했어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가난조차도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준 행복의 씨앗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가난으로 치자면 예수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성경 어디를 봐도 “내가 가난을 이기고…” 같은 표현은 없다. 중국 전 총리 원자바오(温家宝)는 재직 중 헌 운동화와 20∼30년 된 헤진 옷만 입고 다닌 인민의 대변인처럼 묘사됐다.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원자바오가 가족과 함께 약 3조원의 부정축재를 해왔다고 보도했다. 모두가 놀랐을지 모르지만 필자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드물게 예외도 있겠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얘기일수록 거짓말 지수도 높아진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를 ‘감히’ 이중인격자나 거짓말쟁이로 몰아가자는 게 아니다. 좋은 소리와 감동으로서의 리콴유처럼 느껴지지만, 그 이면에는 31년간 독재자로서의 모습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왜 자신의 아들 리셴룽(李顯龍)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후임 싱가포르 총리로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지, 6명 중 한 명이 가처분 소득 100만 달러 이상의 부자나라이면서도 최소임금제도 없고 국민복지도 거의 없는 빈부격차 대국인 이유는 뭔지, 53년 일당 독재에 반대하는 다른 정치단체들의 운명은 어떤지, 그렇게 성공한 나라라는데 국민의 행복지수는 왜 하위 10위권에 맴도는지, 모범적인 다민족 국가라고 하지만 인구의 74%를 차지하는 중국계가 정부 각료의 90% 이상을 독점하는 이유는 뭔지….

리콴유 리더십은 한순간에 무너질 모래성?


▎검정 정장 차림의 박근혜 대통령이 3월 29일 싱가포르 국립대학 문화센터에서 거행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해 각국 정상과 함께 앉아 있다.
필자는 싱가포르에 대해 호감도 악감정도 없다. 싱가포르 전문가도 아니고 민주투사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 최강의 국민소득이라든가, 서구 물질문명에 맞서는 아시아식 민주주의란 명분하의 독재 미화에는 반대한다. 리콴유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 곳에 엄청 큰 불만이 쌓여있을 뿐, 언젠가 한순간에 허물어질 모래성일지도 모른다.

선진문명국이라면, 아무리 유능한 인물이라 해도 65세를 전후해 퇴직한다. 아마도 정치가란 직업이 유일한 예외일 듯하다. 100세 수명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65세는 아직 팔팔한 청년에 해당된다. 일할 수 있고, 자신이 쌓아온 일을 한층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퇴직이다.

상왕(上王)으로 남아 후임자를 조종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제대로 된, 상식에 기초한 인물일수록 모든 것을 털고 떠난다. 선대가 아무리 옳고 좋더라도 후임 세대 스스로가 정해야 한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다는 의미다. 인류 역사가 그러했듯이, 깨끗이 물러나 다음 세대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것이 미래다. 시간을 끌수록 노욕(老慾)과 노망(老妄)이다. 주변에 아첨꾼들이 늘어나면서 젊은이들의 세상을 가로막는다. 늙을수록 바로 옆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늙기 전에 이성적으로 판단해뒀다가 때가 오면 정확히 실행해야 한다. 삼라만상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이 아닌 이상, 내가 모든 것을 영원히 독차지할 수는 없다. 리콴유는 67세까지 총리로 있다가, 이후 88세까지 싱가포르의 상왕으로 활동했다. 88세까지 권력을 유지해온 능력에 박수를 보내지만, 전지전능한 지도자에게 코가 꿰인 싱가포르 젊은이들이 불쌍하게 느껴질 뿐이다.

리콴유에 대한 평가와 의미는 서거 직후와 이후로 구분된다. 한국 신문을 보면 초기에는 용비어천가로 도배를 했다. 서거 3∼4일이 지나면서 리콴유의 어두운 면이 실리기 시작했다. 원인은 미국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서방계 미디어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국민소득과 같은 경제지수만이 아닌, 언론·정당·문화라는 측면의 민주주의 지수로 싱가포르를 평가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일방적인 분석이지만, 미국 언론의 흐름을 보면 대략 긍정적인 평가가 5, 부정적 평가가 5 정도인 듯하다. 미국이 현역 정치가가 아닌 과거의 인물을 장례식에 보낸 것은 바로 그 같은 이유에서다. 조문단 대표 격인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나마 일본을 경유, 케네디 전 대통령 관련 이벤트에 참석한 뒤 들렀다. 리콴유가 국민소득을 올려준 인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독재자다. 서방 선진국의 가치관으로는 독재자의 죽음을 찬미할 수가 없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미국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면서 소규모 대표단을 보냈다. 못사는 나라지만, 죽음 이후 한층 더 혼란에 빠진 나라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부 넬슨 만델라에 비교될 수 없는 인물이 리콴유다.

리콴유 열풍을 일으킨 한국 대통령


▎싱가포르 시민과 군인들이 3월 29일 싱가포르 국립대학 문화센터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리콴유 전 총리의 마지막 길에 조의를 표하고 있다.
한국에서 분 리콴유 열풍의 배경 중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에 있다. 박 대통령은 리콴유 서거 즉시 애도 성명서를 내고, 장례식 참가를 결정한다. 놀랍게도 리콴유 서거 바로 다음날 아스라한 기억의 흑백사진 한 장이 등장한다. 1979년 10월 20일자 사진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퍼스트레이디, 그리고 한국을 찾은 리콴유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돈과 과거사라는, 2015년 한국사회의 키워드 중 하나가 리콴유 서거를 통해 또다시 등장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사진이 찍힌 10월 20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 피격 6일 전이다. 리콴유는 한국을 모두 네 번 방문했다고 한다. 마지막 방문길이다. 영부인 역할을 맡았던 박근혜 씨는 당시 통역을 맡았다고 한다.

흑백시대의 기억, 나아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과거사에 관한 얘기들이 사진과 함께 여기저기 일제히 실렸다. 리콴유와 박정희와의 돈독한 우정, 영어 통역을 능숙하게 처리했던 박근혜, 한국을 모델로 삼았던 리콴유 리더십…. 필자는 이 기사들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리려고 작정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흑백사진과 관련 기사는 1인당 국민소득(GDP) 5만5천 달러의 ‘지상천국’이 한국과 얼마나 가까운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싱가포르의 번영과 리콴유의 강한 리더십에 관한 동경과 애정이 넘친다. 한국 인구의 10분의 1 크기의 작은 도시국가라는 점과 앞서 말한 싱가포르의 어두운 모습은 전부 무시한 채 ‘돈’으로 나타난 환상에 빠져든다.

너무도 당연해지면서 잊기 쉬운 한국만의 자랑거리가 있다. 한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일본처럼 입식된 민주주의도 아니고, 싱가포르나 중국처럼 사이비 민주주의도 아닌, 국민 모두가 나서서 피를 흘리며 쟁취한 민주주의 국가다. 필자는 그 같은 시대의 한가운데서 대학시절을 보낸, 자랑스러운 기억을 갖고 있다. 1년 6개월짜리 형무소행이 두려워 ‘빨간 책’도 천정 위에 숨겨놓은 겁 많은 청춘이었지만, 그래도 죽음조차 불사하던 그 시절 학우들에 대한 존경과 믿음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당시의 그 대학생들이 현재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의 문제는 다른 관점에서 해석돼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박종철·이한열 같은 청춘이 있었기에 현재의 분에 넘치는 자유가 한국인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져 있다.

주(周)에서 은(殷)의 가치관으로 넘어가는 한국


▎싱가포르의 번영과 혁신을 상징하는 마리나베이샌즈 리조트(오른쪽) 주변의 야경.
그러나 리콴유 열풍을 보면 그 같은 어제의 자랑스러운 기억이 GDP 5만5천 달러의 위력 앞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된다. 아시아 최초의 민주주의 쟁취국가로서의 자부심이나 긍지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일당독재 싱가포르의 돈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것만 진하게 묻어난다. 독재를 숨기려는 ‘아시아적 가치관’이란 낭만적인 말도 곳곳에 등장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흘린 피의 결과가 리콴유를 부러워하는 나라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인간의 품격(品格)은 나라의 국격(國格)에 기초한다. 국격은 국혼(國魂)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그 나라의 정신이다. 민주주의 한국의 국혼이 도시국가 독재자를 추앙하는 상황으로까지 추락해가고 있다. 돈과 과거사에 묻혀 한국 지도자에서부터 신문·방송 그리고 세상 대부분이 국혼·국격·품격을 포기한 듯하다. 재벌 2세와 3세에 대한 얘기로 날밤을 세우는 토크쇼, 월급부터 물어보는 남녀의 첫 데이트, 화장실이 3개라고 자랑하는 탤런트…. 그 같은 대세 속에서 한국의 국혼, 국격 그리고 인간의 품격은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다.

미래를 상실한 채 돈과 과거사에 주목하는 한국의 세태는 경제대국으로 등장한 중국식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고, 중국 경제 속에 흡수되면서 중국식 사고와 가치가 한국사회 저변에 밀어닥치고 있다. 리콴유 열풍은 그 같은 증거 중의 하나다. 일본 히로시마(広島) 대학의 가토 토루(加藤徹)교수는 중국을 흥미롭게 분석하는 일본 내 중국전문가 중 한 명이다. 중국, 중국인, 중국 문화를 알리는 키워드로 크게 두 개의 한자를 내세운다. ‘양(羊)과 패(貝)’다. 5천 년 중국의 역사는 양과 패의 순환이자 싸움이었다는 것이 카토 교수의 생각이다. 양은 말 그대로 들판을 달리는 동물 양이다. 패는 바다와 강물 속에 드러누워 물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조개다. 고대 중국은 조개껍질을 돈으로 사용했다. 움직이는 식량으로서 인간 모두에게 현물로 통하는 양, 사람들의 약속을 통해 새롭게 탄생된 가치로서의 조개다. 카토 교수는 기원전 20세기 이전에 이미 발견된 양과 패 두 글자에 기초한 세계관이 중국의 사고를 지배해왔고, 21세기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양과 패의 역사와 문화는 두 글자를 중심 부수로 하는 한자로 풀어져 설명된다. 먼저 조개 패를 부수로 하는 한자를 살펴보자. 寶·財·費·貢·貨·貪·販·貧·貴·貸·貰·貯·貿·買·資·賃·賜·質·賞·賠 같은 한자가 열거될 수 있다. 보석·재산·비용·공물·재화·빈곤·판매·귀족·대부·세입·저축·무역·매매·자원·임금·사사·질량·상금·배상 같은 단어로 이어지는 한자들이다. 전부 돈과 관계된 말이다. 이들 한자는 고대 중국을 지배했던 은나라(殷)가 중시했던 세계관의 파생물이다. 은나라는 기원전 1600년부터 기원전 1046년까지 지속된 왕조국가다. 다신교에 입각한 은나라는 상(商)이라 불린 나라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사용되는 상인(商人)이란 말은 돈벌이이 능숙한 은나라 사람을 의미한다. 돈에 주목하면서, 한 곳에 정착하는 농경문화권의 세계다.

양을 부수로 하는 한자어를 살펴보자. 美·善·祥·養·義·儀·犠·議·羨… 등이 떠오른다. 미술·선의·상서로움·양식·의리·제의·희생·회의·선망 등으로 연결되는 한자들이다. 이들 한자는 중국 서북부 유목민이 배경인 주(周)나라의 세계관을 반영한 한자다. 은을 무력으로 넘어뜨린 고대국가다. 기원전 1046년부터 기원전 256년까지 지속된 장수 국가이기도 하다. 은나라가 중시한 패와 관련된 한자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형이하학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에 반해 주나라의 양은 큰 그림 하의 형이하학적 개념의 단어로 연결된다. 주는 유목국가답게 대자연 속에서 하늘을 공경하며 살아온 일신교에 바탕을 둔 왕조국가다.

의리보다 돈 따지는 중국의 세계관이 팽배

기원전 16세기 은과 기원전 11세기의 주나라를 새삼스럽게 언급한 이유는 한국의 원류가 무엇인가라는 점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인기를 끈 유행어로 ‘의리(義理)’라는 말이 있다. 2류 수준의 가죽장갑을 낀 탤런트가 등장해 던지는 ‘의리’라는 말은 세파에 찌든 한국인을 일깨운 명언으로 해석됐다. 인간으로서의 의리, 친구간의 의리, 부자간·부부간·직장동료간·남녀 간의 의리다. 돈에 의해 무시되는 진짜 중요한 가치를 역설적으로 반증한 말이다. 사람들은 한물간 허장성세일지도 모를 가죽장갑 탤런트의 의리에 감동하고 박수를 보냈다.

의리는 유목민에 기초한 주나라의 가치관이다. 현실로서의 돈이 아니다. 뜻을 함께 한 사람과 목숨조차 내걸면서 더불어 나아가는 인간의 품격이 의리라는 말 속에 배어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웃기는 원맨쇼 정도로 받아들이겠지만, 의리라는 말 하나만으로도 인간이 갖는 품격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한국의 원류는 남방의 농경민족과 북방의 유목민으로 구성돼 있다. 패와 양의 조화다. 한반도의 발전과 번영은 둘 사이의 장점이 효과적이고 균형적으로 발휘될 때에 가능할 것이다. 한국이 세계의 변경으로 전락하게 된 배경에는 이상으로서의 양을 무시하고, 현실로서의 패도 어정쩡하게 대한 데 있을 듯하다. 해방 이후 한국의 성장은 패에 기초하면서 양을 120% 발휘한 데 따른 것이다. 양의 기상은 만주만이 아니라, 바다로도 통한다.

한국을 강타한 리콴유 열풍은 양을 버리고 패에 집착한 결과라고 판단된다. 은나라 패의 가치관으로 무장한 21세기 중국의 세계관이 한순간 한반도에 밀어닥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한국은 싱가포르를 이상시할 만한, 그렇고 그런 나라가 아니다. 사소하고 작은 것에도 배울 대목이 있겠지만, 싱가포르가 한국의 미래일 수는 없다. 1970년대 흑백사진을 통해 과거의 향수로 현재의 문제를 덮으려는 리더십도 현재 한국이 필요로 하는 대안이 아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지도자가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청년들이 주목받는 나라라야 미래가 펼쳐진다. 2015년 한국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패의 세계가 아니다. 패가 일방적으로 득세하는 세상이기에, ‘밥 빌어먹을지도 모를’ 양의 가치관에 무게중심을 둘 필요가 있다. 돈과 과거사가 판치는 세상이기에 젊은이가 주도하는 양의 세계가 더 한층 아쉽다. 패만이 아니라, 양의 세계, 의리의 시대가 한국에 열릴 것을 확신한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505호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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