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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고미숙의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①] 욕망 과잉시대의 행복추구법 - “통치와 치유는 하나다! ” 

몸은 빅뱅 이후 인류문명의 궤적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서각’… 우주라는 ‘시공 매트릭스’ 안에서 문명의 고통 극복할 맹아 숨겨져 

고미숙 고전평론가
‘혁명’도 정권 교체도 온전한 행복을 가져오는 데는 실패했다. 총소득과 행복지수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실도 분명해졌다. 게다가 지금은 아담 스미스도 마르크스도 예상하지 못한 디지털 혁명의 시대다. 한마디로 판이 확 뒤집힌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전의 내비게이션이 졸지에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번 호부터 우리 시대 절정의 파워라이터 고미숙이 한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혁명적인 패러다임으로 대해부한다. ‘몸과 우주’의 탐구에 기반을 둔 독특한 체제 분석이며, 한국인이 처한 삶의 조건 전반을 되돌아보는 반성적 치유의 여정이다. 열독을 통한 동행을 독자 여러분께 권한다.<편집자>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촬영한 독수리 성운. ‘창조의 기둥(Pillars of Creation)’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이 성운의 모습은 마치 우주와 지구의 생명계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듯하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정치에는 완전 문외한이다. 정세분석은 고사하고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도 잘 모르는 수준이다. 경제학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물론 돈은 좀 좋아한다.^^) 하지만 평생 백수로 지낸 터라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규직이 돈을 어떻게 굴리는지 알 턱이 없다. 정치(혹은 경제)와 관련한 나의 경험이라곤 15년 정도 백수공동체를 운영해본 게 전부다. 그럼 운동권 경력이라도? 없다! 대학 때는 ‘의식화’가 전혀 안 됐을뿐더러 무엇보다 겁이 많아 운동권에 낄 처지가 아니었고, 대학원에선 늦깎이로 마르크스의 서적들을 읽고 큰 감동을 받긴 했으나 ‘특급 비염’을 앓는 바람에 대열의 꽁무니에서 겨우겨우 따라가는, 그야말로 ‘후방의 군중’에 불과했다.

그랬던 내가 왜 이 나이에 새삼 ‘정치경제학’인가? 그래서 참 사람팔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10년 전 우연히 동의보감을 만나고, 그 다음에 ‘몸과 우주’라는 키워드로 글쓰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자꾸만 시선이 ‘세상으로’ 향하는 것이다. 현대정치의 결론은 언제나 시스템과 제도다. 헌데, 참 이상하다. 세월호 참사가 단적으로 보여줬듯이, 왜 ‘그놈의’ 시스템과 제도는 수시로 오작동하는 것일까? 역시 시스템이 문제인가? 아니면 그것을 작동시키는 주체가 문제인가? 아주 비근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주 5일제와 노동시간 단축은 오랫동안 정치경제학의 과제였다. 헌데 놀랍게도 사람들은 휴일에도 쉬지 못한다.

불금으로, 쇼핑으로, 여행으로. 노동할 때보다 더 과격한 에너지를 발사한다. 더 어이없는 건 ‘워커홀릭’의 만연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그렇게 투쟁을 해왔는데 일중독이라니! 결국 휴식도 노동도 ‘미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뜻인가? 그럼 이것은 제도의 한계인가? 주체의 복속인가? 사회비리가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회가 온통 썩었다고. 맞다. 근데, 왜 자신의 ‘썩은’ 습관은 바꾸려고 하지 않을까? 노동해방을 갈망하면서 자신의 신체를 ‘중독의 늪’에 빠뜨리는 이런 배치에는 왜 분노하지 않을까? 그런 문제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 같은 가치와는 무관한 것일까? 기타 등등.

솔직히 말하자!

그와 동시에 ‘몸과 우주’라는 키워드는 1980년대를 통과하면서 품었던 역사와 혁명의 비전에 대해 많은 상념을 불러 일으켰다. 그때 나는 ‘군중의 일환’이었지만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역사에 대하여. 혁명에 대하여. 인간해방에 대하여. 후미에서 쫓아간다고 ‘사상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시대와 더불어 이념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지금은 그 잔영만 희미하게 남았다. 하지만 그것을 되짚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왜? 나는 그 전제에 입각하여 글을 쓰고 밥벌이를 하고 인생의 길을 열었으니까. 한마디로 그것은 내 ‘피와 살과 뇌수’를 형성했으므로. 그런 점에서 사유야말로 물질적 토대다. 해서 다시 짚어봐야 한다. 앞으로 또 ‘먹고 살고 써야’ 하니까. 하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자니 많이 부끄럽다. 언급했듯이 현실정치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터라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유치찬란’한 질문일지라도 누구에게는 ‘화두’가 된다. 화두란 ‘질문의 절실함에 있지 내용 자체에 있지 않다’고 믿는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겠다. “대개 인간의 연구란 자신을 연구하는 것이다. 천지가 됐든, 산천이 됐든, 일월이 됐든, 성신이 됐든 모두 자기의 딴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나쓰메 소세키) 그렇다! 모든 질문과 탐구는 결국 나로 귀환하는 여정일 뿐이다. 정치가 됐든 경제가 됐든 ‘정치경제’가 됐든. ‘유치찬란한’ 질문 ‘두서너’ 가지.

구조적 모순에 청년의 패기는 실종


▎사회적, 법적 지위는 향상되었지만 여성은 성형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기도 한다. 왜 오늘날 한국여성은 타인의 성적 욕망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①노동조합이 합법화되면 모든 노동자가 철학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1980년대 그 엄혹한 시절에도 노동자가 있는 곳엔 야학과 책이 있었고, 지적 열정이 흘러 넘쳤기 때문이다. 해석에서 변혁으로!―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가?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이라는 ‘반동적이고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텍스트를 읽고도 자신의 몸을 불살랐는데, 정치경제학 저서들이야 말해 무엇하리. 그런데 지금 노동자는 지성의 해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고용안정과 임금인상, 이 두 가지면 충분한가? 지적 해방에 대한 주체적 열망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②전교조가 합법화되면 보충수업, 자율학습이 다 폐지되고 ‘참교육’이 구현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전국의 모든 학교가 무차별적으로 보충, 자율학습을 실시하고 있다. 이것이1980년대가 그토록 열망했던 ‘교육민주화’의 실체란 말인가. 그리고 그렇게 학습량이 늘었는데도 아이들은 똘똘해지지 않았다. ‘여긴 어디? 난 누구?’가 요즘 시대의 고사성어다. 그렇다면 대체 뭔 영광을 보려고 이렇게 주야장천(晝夜長川) 공부를 해대는 거지? 게다가 초중고의 종착지인 대학은 더 이상 지성의 전당이 아니다. 대학생은 책을 읽지 않는다. 지성이라는 단어도 잊은 지 오래다. 책을 읽지 않는 대학생, 지성이 없는 대학? 형용모순의 최고경지다.

사회구조가 문제란다. 그럴 것이다. 헌데 좀 의아하다. 언제는 사회구조가 문제적이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1970년대도, 80년대도 제도와 시스템은 늘 ‘이상하고 괴상했다’. 산업화 세대는 더 그랬을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 왕조실록>을 보라. 그 위대한 세종대왕 시절도 재난과 비리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제도 탓이야, 구조 탓이야’는 하나마나 한 말이다. 내가 궁금한 건 이런 구조적 모순에 균열을 일으키는 청년의 패기가 왜 전혀 발동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제도가 너무 ‘빡센’ 건가? 아니면 청년들이 너무 무기력한 건가? 그도 저도 아니면 혹시 제도와 청년들 사이의 ‘은밀한 결탁’이 진행 중인 건 아닌가?

③여성의 사회적, 법적 권리가 향상되면 여성이 자율적인 주체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보니 성형중독, 쇼핑중독, 연애중독에 빠져 있었다. 임금 인상을 목 놓아 외치면서 그 임금의 몇 배를 쇼핑으로 한방에 날려버린다. 또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성형을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도 건다. 교육의 기회가 확장되고 사회적 진출이 가능해졌는데 왜 여성은 이렇게 타인의 시선(특히 성적 욕망의 시선)에 예속돼버렸을까?

④대통령을 직접 뽑고 풀뿌리민주주의가 이루어지면 정치가 ‘일상의 축제’가 될 줄 알았다. 헌데, 여전히 정치는 여/야, 진보/보수 같은 1980년대식 담론의 틀에 묶여 있다. 또 이렇게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는데, 정치인은 왜 그렇게 돈에 약할까? 중앙 정치인은 특권층이라 그렇다 치고, 지방자치제의 대표들은 그야말로 국민 중의 한 사람 아닌가. 돈 앞에 서면 중앙과 지방, 특권층과 보통사람, 좌와 우의 구별이 무색해진다. 이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정체는 무엇일까? 구조적으로 ‘썩었기’ 때문이라고? 참 진부한 분석이다. 부패를 넘어 스스로를 파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이 생리적 메커니즘, 그것이 알고 싶다!

이외에도 숱한 질문이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일단 여기까지만. 아마 이런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물정 모르는 소리하고는! 노동자가 철학을 할 시간이 어디 있으며, 대학생들이 오죽하면 책과 지성을 버렸겠느냐, 여성들이 외모 때문에 얼마나 차별을 받는지 모르다니, 등등. 결국 남는 건 다시 증세와 복지, 빈부격차, 일자리와 임금, 갑을관계 등등. 이 모든 것의 종착지는 결국 화폐다. 그래서 정치는 결국 경제학이 되어버린다. 또 그때 경제학이란 단지 화폐의 양적 분배로 귀결돼버린다.

‘복지천국’에선 대체 무슨 일이?


▎열강 중 가장 늦게 산업혁명의 대열에 뛰어든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이르러 유럽 최고 수준의 제조업 기반을 완성했다.
이렇게 ‘유치찬란’한 질문을 던지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정치경제학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다. 정치건 경제건 핵심은 삶이다. 삶의 리듬과 현장을 창안하는 것이다. 한 정의에 따르면 경제학은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관한 궁극적 질문을 다루는 학문이란다. 정치는 본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다. 경제학이 정치를, 정치가 인문적 사유와 만나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왜 질문이 온통 그렇게 외통수로 쏠려 있는가? 정치건 경제건 오직 성장과 복지라는 목표가 전부다. 그럼 GDP가 상승하면, 일자리가 늘어나면, 임금이 오르면 만사형통인가? 그렇다고 치자. 그럼 그 다음엔 대체 어떤 삶이 펼쳐지는가? “우리는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도 불평을 그치지 않는다. 최근 한 연구에 의하면 현재 서구 세계에 사는 이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50년 전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에릭센, <만약 우리가 천국에 산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의 국가적 롤모델이기도 한 노르웨이 학자의 보고서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중산층의 안정과 권리를 누리는 복지천국! 그런데 삶은 권태롭고, 그래서 불평투성이란다. 그렇다면 저기에 도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래서인가? 언제부턴가 ‘행복지수’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어떻게 측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총소득과 행복지수는 크게 연관이 없다는 것. 때로 반비례하기도 한다는 것. 그렇다면 또! 이상하다. 성장해도 행복하지 않다면, 성장하지 않아도 특별히 더 불행할 것도 없지 않은가? 일자리가 있어도 만족도가 오르지 않는다면, 일자리가 없다 해도 크게 불만족스러울 건 없지 않은가? 물론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학은 이런 문제에 대해 응답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걸 파고들 능력이나 겨를이 없는 듯하다. 결국 정치경제적 담론과 삶의 현장 사이에는 크나큰 간극이 발생한다. 이 간극에서 억압과 소외, 번뇌와 질병이 만연한다. 그것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 바로 몸이다. 기꺼이 노동을 감내하는 것도 몸이고, 부를 향해 달려가는 것도 몸이고, ‘행복하다, 권태롭다’고 느끼는 것도 몸이다.

그렇다! 살아있다는 것은 몸이 있는 것이고, 몸이 사라지면 죽는 것이다. 이보다 자명한 현장이 또 있을까.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것도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니체) 동시에 이 몸은 빅뱅 이후 우주적 사건들의 ‘리포트’이고 생물학적 진화의 ‘정보통’이자 문명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서각’이다. 요컨대, 다시 니체를 빌면, “몸은 하나의 거대한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로 꿰어진 다양성이고 전쟁이자 평화이며 가축의 무리이자 양치기”다.

실제로 모든 권력과 체제는 늘 이 몸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노동력을 생산의 원천으로 삼는 자본주의야 말할 나위도 없다. 자본주의를 ‘생체권력’으로 규정하는 푸코는 단도직입으로 말한다. “내 몸, 이 가차없는 장소.”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이 몸을 소외시킨 채 별도로 정치와 경제, 시스템과 제도를 구성해왔다. 그 결과 신체는 점점 무력해진다. 중독되거나 마비되거나. 이 ‘가차없는’ 현장을 외면한 덕택(?)에 보수와 진보, 여와 야는 점점 닮아간다. 그러면 일치단결하여 좋은 정치가 이루어질 것 같지만, 천만에! 결론은 정치의 실종이다! 상극이 없는 상생이란 무력할 따름이다.

우리의 우주는 카오스, 곧 상극의 매트릭스이기 때문이다(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더 다루게 될 것이다). 요컨대, 몸의 리듬과 일상의 현장을 창조하는 데 개입할 수 없다면 정치와 경제란 그저 숫자놀음과 통계조작으로 전락하고 만다. 주지하듯이, 20세기 내내 정치경제학은 시대와 문명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했다.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고 또 재구성하는, 이름하여 혁명의 파토스를 담지하고 있어서다. 20세기 역사가 증언하듯, 수많은 실험이 시도되었으며, 더러는 성공하고 대개는 실패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21세기가 되었다. 혁명적 실험이 가능했던 출발점은 산업혁명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담 스미스도 마르크스도 예상하지 못한 디지털 혁명의 시대다. 한마디로 판이 확 뒤집힌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전의 내비게이션이 졸지에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전 없으면 좌우(左右) 모두 부패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 북부 지역에서 생산된 사탕수수. 사탕수수라는 식물의 단맛은 자본이 주도하는 산업혁명을 촉발해 세계사의 지도를 바꿨다.
이럴 땐 날렵하게! 처음으로, 근원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래서 몸이다. 헌데, 몸을 알려면 우주를 알아야 한다. 우주는 시공간이다. 존재와 시공간은 분리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시공간 또한 정치경제학의 토대다. 어떤 문명, 어떤 사회도 시공의 매트릭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서구식 사유에는 이런 전제가 부재한다. 자연과의 연대를 일찌 감치 끊어버리고 인간중심주의로 올인한 탓이다. 그것이 산업혁명을 이루고 식민지 개척을 하고 자본의 무한증식을 향해 달려간 원동력이리라. 하지만 이제 그것은 명백하게 한계에 봉착했다. 따라서 그 담론 안에선 출구가 없다. 하여, 몸을 통해 생명을, 생명을 통해 우주의 원리를 엿보고, 그것을 ‘힌트삼아’ 정치경제학의 지도를 다시 그려볼까 한다.

통치와 치유는 하나다! 당연히 그 사상적 베이스는 동양 고전이다. 동양의학의 최고 경전인 <황제내경>에 따르면, 통치자는 철학자이자 의사다. 몸을 다스리는 실마리로 천하를 경영하고, 천지의 원리를 궁구하여 세상을 통치하는 존재, 그것이 곧 황제다.[쉬운 예로, 다스릴 ‘치(治)’는 ‘고치다’의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⑴“한 사람의 몸은 곧 한 나라의 형상이다. 가슴과 배는 궁과 같고 팔다리는 교외와 같고 뼈마디가 나뉜 것은 여러 부서와 같다. 신(神)은 임금과 같고, 혈(血)은 신하와 같고, 기(氣)는 백성과 같으니 몸을 다스릴 줄 알면 나라도 다스릴 수 있다.”(<포박자>)

⑵“오장육부는 곧 몸을 다스리는 기관의 형상이다. 심장은 군주의 기관으로 신명(神明)이 나온다. 폐는 재상의 기관으로 온몸의 진액과 기운을 조절한다. 간은 장군의 기관으로 모려가 나온다. 담은 인재를 판단하는 기관으로 결단이 나온다. 단중은 군주의 명령과 의사를 전달하는 기관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나온다.”(<소문>)

이렇듯 동양사상에선 몸과 정치를 고스란히 오버랩시킨다. 몸이 곧 생명과 우주의 교차지대라 여긴 탓이다. 그러므로 몸을 떠난 통치의 기술, 자연의 이치가 생략된 문명은 상상할 수 없다. 유불도 삼교회통 및 주자학과 양명학 등으로 이어지는 사상사의 흐름이 말해주듯, 동양의 정치에선 한번도 ‘천인감응’, ‘천인상관’의 원리를 배제한 적이 없다. 하지만 서구의 도래와 더불어 자연과 정치 사이의 이러한 대칭성은 여지없이 붕괴되어버렸다. 그럴 때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혁명의 파토스에 몸을 던지거나 아니면 자본의 무한증식에 올인하거나. 20세기 역사가 보여준 바대로다. 성장과 혁명의 동력이 다 떨어진 지금, 그 결과는 한없이 누추하다. 정치 하면 좌우의 노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고, 경제 하면 투자와 증식의 기술만 떠올리는 수준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떠도는 농담(?) 하나.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하지만 이것도 다 옛말이다. 보수나 진보 모두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철학적 비전이 빈약해지면 결국 물질에 승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전이 없으면 둘 다 부패한다. 그 경우, 진보가 더 치명적이다. 부패한 진보는 더 ‘진부’해지는 법이므로. 대중은 비리보다 진부한 걸 더 못 참는다. 공익 다큐보다 막장드라마가 더 ‘땅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왜 그럴까? 막장에는 최소한 현장의 활력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즉, 중요한 건 현장성 혹은 실감이다. 감응과 소통, 상생과 상극이 어우러지는! 그것이 생명의 이치다.

설탕지옥, 자본천국의 산업사


▎1792년 영국의 매카트니 백작이 이끄는 사절단이 청나라 건륭제에게 무역 확대를 요청하는 모습을 그린 당시 삽화. 건륭제는 “외국 야만인의 물품은 필요 없다”며 영국 사절단의 요청을 거부했다.
‘몸과 우주’, ‘정치경제학’―이 둘은 지금까지 결합된 적이 없는 항목들이다. 이 느닷없는 마주침이 어떤 ‘케미(화학적 결합)’를 연출할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허나 지식이 워낙 일천한 관계로 이 여정에는 <동의보감><장자><그리스인 조르바>같은 고전을 비롯하여 루쉰과 푸코, 스피노자, 이반 일리히와 들뢰즈/가따리 등 동서양의 고수들이 함께 동행하게 될 것이다.

연재를 통해 다루게 될 테마는 대강 6가지 정도다.

①혁명의 ‘역사’와 우주의 ‘리듬’ ②생명주권과 사주명리학 ③계몽이성 대 ‘Let it go’ ④계급투쟁에서 세대갈등으로 ⑤영혼 없는 화폐에서 증여의 소용돌이로 ⑥백수는 미래다! 이 테마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버전들이 파생될 것이다. 이번 호는 프롤로그인 만큼 밑그림에 해당하는 한두 가지 이슈만 간략하게 터치해보기로 한다.

설탕지옥, 자본천국! 다들 알다시피, 자본주의의 기원은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부르주아 혁명이 일어나고 다시금 프롤레타리아 대투쟁으로 이어지고. 여기까지는 익히 아는 바다. 헌데, 반드시 짚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KBS 다큐 <바다의 제국>을 보면, 산업혁명은 설탕무역에서 시작되었다. 설탕과 노예무역을 통한 ‘부의 빅뱅’이 있었고, 그것이 기계와 공장, 금융과 보험 등 각종 근대적 시스템을 탄생시켰다. 쉽게 말해, 사탕수수라는 식물의 단맛이 세계사의 지도를 바꾼 것이다. 처음 설탕을 맛본 유럽인들은 그 단맛에 열광했다. 그 이후 설탕은 곧 부의 상징이자 문화의 척도가 되었다. 당연히 설탕값은 치솟았고, 그것을 확보하기 위한 무역전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탕수수는 유럽에서는 재배할 수가 없었다. 콜럼버스에 의해 종자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겨졌고, 그 노동력은 아프리카 노예들로 충당했다. 설탕이 졸지에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세 개의 대륙을 연결해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대학살이 자행되었고, 아프리카 노예들 1천만 명 정도가 희생되었다. 설탕의 단맛이 지옥문을 연 셈이다. 그 지옥에서 확보한 부로 총을 만들고 무기를 개발하여 식민지 개척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는 단맛에 대한 도취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설탕지옥이 자본천국의 밑거름이었다는 것. 요컨대, 자본주의는 단순히 문명적 차원이 아니라 신체의 감각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코카콜라, 햄버거, 원두커피 등등으로 미각은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그에 비례하여 우리의 몸도 계속 달아오른다. 그래야 노동을 열망하고 소비에 미치지 않겠는가. 고로, 사회 구조는 늘 생리적 회로와 함께 간다. 더 달게, 더 세게, 더 핫하게! 이렇게 욕망의 흐름이 바뀌어야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라는 자본의 명령에 부응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성호르몬의 항진으로 이어진다.(뉴욕 월가의 상징이 ‘황소의 성기’라는 사실을 환기하라.)

이것이 바로 생체권력의 진상이다. 하여, 자본주의와 대결하려면 내 안에 있는 욕망의 회로를 주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투명하게 예리하게. 너무 소박한가? 하지만 그 전투는 곧 세계 전부와 대결하는 것이 된다. 즉, 내가 걷는 한걸음이 전 우주의 파동을 바꾼다. 설탕의 단맛이 바로 그러했으므로.

한 인류학자의 말대로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게 된 건 서구문명의 우월함 때문도 인종적 우수함 때문도 아니었다. 지중해를 둘러싼 오랜 전쟁과 대항해 시대 이후 노예무역 및 식민지 개척 과정에서 고도로 발달한 무기로 인해서다. 총과 대포의 화력 앞에서 동양의 오랜 가치들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들이 도래하면서 함께 옮겨온 바이러스는 전쟁보다 더 많은 인명을 살상했다. 그렇게 서양의 기계 문명은 동양에 도래했다. 그럼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왜 동양은 그토록 속수무책이었던가?

‘지대물박(地大物博)’과 ‘총·균·쇠’

1792년 영국 왕 조지 3세는 매카트니 백작을 특사로 중국에 보냈다. 매카트니 백작의 임무는 청나라 건륭제를 설득해 외국인의 무역이 유일하게 허용된 광저우 항구를 벗어나 중국 전역에서 교역할 자유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은 새로 알게 된 차 맛에 매혹된 탓에 중국을 상대로 엄청난 무역 적자를 내고 있었다. 당시 건륭제는 “우리 청나라는 지대물박(地大物博)하여 다른 나라의 물품은 필요하지 않으며, 따라서 청나라의 물품을 외국 야만인들의 물품과 교환할 필요가 없다”라고 선언했다.(<장하준의 경제학강의>, 394쪽)

때는 바야흐로 18세기. 동양이 서양을 압도했던 시절이었다. 건륭황제의 요점은 간단하다. ‘지대물박’, 곧 땅은 넓고 물산은 풍부하다. 즉, 충분히 살만한데 뭣 때문에 서양과 교역을 한단 말인가? 중국땅을 다 밟아보기도 벅찬데 굳이 바닷길을 열어 서양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 중화권에 있었던 조선이나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서양은 절박했고, 동양은 무관심했다.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 폭력뿐이었다.

“영국은 인도에서 들여오는 아편의 수출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아편중독이 널리 퍼지자 위기감을 느낀 중국 정부는 1799년 아편 무역을 금지했다”, “영국은 이에 대응해 1840년 아편전쟁을 일으켜 중국을 완전히 격파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1842년 난징조약을 맺어 아편을 포함한 모든 물품의 자유 무역에 대한 승인을 강제로 받아냈다. 그 후 1세기 동안 중국은 끊이지 않은 외침, 내전, 국가적 수모를 견뎌내야만 했다.”(장하준, 395쪽) 서양이 동양의 문을 열 수 있었던 두 가지 수단은 아편과 총이었다.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비열한 전쟁인 아편전쟁, 그것이 서구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런 역사를 되뇔 때면 늘 이렇게 말한다. 좀더 일찍 개방을 했더라면, 서양처럼 산업혁명을 하고 상업을 증진시켰다면 하고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한가? 동양의 매트릭스에선 결코 ‘총·균·쇠’가 가능하지 않다. 대지의 은택이 이토록 충만한데, 뭣 때문에 굳이 총을 개발하고 노예를 학살하고 식민지를 개척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것을 지금의 관점에서 요구하는 게 타당한가? 그것은 실로 협소한 역사주의다. 역사도 우주의 운행과 무관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발산했다가 수렴하는 법. 18세기는 동양문명의 정점이자 황혼이기도 했다. 중화권에 속했던 조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건륭제의 죽음(1799)과 정조의 죽음(1800), 그것은 동양의 중세가 종언을 고했음을 알려준다. 19세기 들면 청나라나 조선 모두 더 이상 위대한 군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왕조를 지탱할 양기가 고갈되어버린 것. 왕의 신체가 곧 체제를 대변하는 중세체제의 특성상 왕이 더 이상 생식능력이 없다면 그 왕조는 막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야말로 천운이라고 할밖에.

그러므로 미리 예방했더라면 서구의 침탈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식의 인식은 참으로 부질없다. 역사는 그런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체제나 배치가 정점을 향해 달려가다 문득 전혀 다른 방식으로 리셋되곤 한다. 이전의 모순이 변증법적으로 해소되어 다음 단계로 가는 경우는 없다. 낮의 모순을 제대로 해소하기도 전에 문득 저녁이 오는 것처럼. 여름의 극점에서 문득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그렇게 서구는 동양에 도래했다. 자본주의라는 아주 낯설고 폭력적인 문명과 함께!

18세기까지는 동아시아가 세계 제국의 중심이었다. 더 나아가 동양사상은 이미 5천 년 전에 서구적 사유의 한계를 돌파했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한다. “그런데 왜 유럽처럼 기술문명을 발전시키지 못했는가?”라고. 쉽게 말해 그렇게 잘났는데 왜 그렇게 어이없이 당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거기에는 정신문명이 높으면 물질적으로도 우월해진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풍요는 비례하지 않는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 질량 불변의 법칙, 그 둘을 멋지게 결합한 상대성원리(E=MC2)를 환기해보라. 정신과 물질은 서로 맞물리면서 갈마드는 관계이지, 함께 비례 상승하는 관계가 아니다. 서구문명이 그 증거다. 설탕지옥이 초래한 부의 빅뱅! 거기에 대체 무슨 고매한 가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또 하나. 그런 질문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근대문명의 이 가열찬 진군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은 왜 이토록 누추한가”라고 묻는다면 뭐라 답할 것인가? 이 부를 바탕으로 고귀한 정신이 출현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기는커녕 서구는 다시 동양의 오래된 가치들을 리바이벌하고 있다. 서구화의 길을 가열차게 밟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대장정과 문화혁명으로 전통을 다 쓰레기통에 처넣었던 중국공산당은 다시금 공자와 부처를 끌어내 저잣거리에 내세우고 있다. 20세기 내내 그토록 혁혁한 업적을 일구었는데, 왜 거기에서 더 드높은 정신적 가치를 생성시키지 못했단 말인가?

‘화극금(火克金)’에서 ‘금생수(金生水)’로


▎스마트폰을 기기에 끼운 뒤 착용하면 가상의 영상이 펼쳐지는 가상현실 헤드셋. 디지털 세계의 발전이 인류의 화복(禍福) 어느 편으로 작용할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총·균·쇠’는 화극금(불이 금을 이긴다는 뜻)의 문명이다. 서구는 방향상 금기운이 치성한 곳이다. 서쪽은 태양이 저무는 곳이라 태양신에 대한 숭배가 일찌감치 발달했다. 서구의 점성술인 열두 별자리의 중심은 태양신이다. 빛을 진리로, 어둠을 악마로 상징하는 이분법이나 기독교라는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가 등장한 것도 그 때문이다(크리스마스는 동지 이후 다시 지중해에 태양이 떠오르는 때임을 환기하라). 금은 가을의 살기(殺氣)이고 전쟁의 기운이다. 서양문화의 시원에 해당하는 고전 <일리아드/오디세이>가 전쟁영웅의 이야기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금의 기운을 머금고 불을 열망하는 문명. 이 금을 제련해주는 것이 곧 불이다. 그것이 서구문명의 고유한 속성이다. 총·균·쇠 모두 ‘불을 품은 금’이다. 겉은 단단한 금속인데 그 안에 놀라운 파괴력을 품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강하지만 그 불은 결국 자연을 태우고, 자신을 태워버린다. 사회주의 역시 그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마르크스를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친 대가로 독수리한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영웅이다). 아울러 혁명은 불로 상징되고, 그 불은 늘 쇠와 같이 한다. 1980년대를 불의 연대, 노동자 투쟁을 강철대오라고 부르는 것 등이 좋은 예다. 결국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인식론적 배치, 나아가 우주적 기운의 차원에선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여, 영화 <인터스텔라>가 잘 보여주듯, 근대문명의 천적은 자연과 마음이다. 일상을 위협하는 미세먼지, 그리고 분열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마음. 이것이 불의 문명이 초래한 대재앙이다.

화극금의 배치를 바꾼 것은 결국 디지털문명이다. 디지털과 더불어 인류는 비로소 산업혁명의 프레임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디지털은 고도로 정련된 금이고 이 금은 불을 품지 않고 물을 낳는다. 금생수! 불의 혁명에서 물의 지혜로의 대전환! 인터넷의 세계는 바다요, 대양이다. 정보가 쉼 없이 흘러가고 흘러온다. 마르크스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고 했지만 지금 디지털 문명은 토대와 상부구조의 장벽을 허물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노동과 휴식, 정신과 물질의 경계까지 허물고 있다.

늘 그렇듯이, 화극금의 문명을 충분히 극복하고 모순을 해결하기도 전에 우리는 전혀 다른 배치에 놓이고 말았다. 설탕지옥이 인류의 생리구조를 전면적으로 뒤바꾸었듯, 스마트폰 역시 신체의 대변혁을 초래할 것이다. 그 방향에 따라 정보의 바다에서 익사할 것인지 아니면 그 바다를 유쾌하게 유영할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요컨대, 존재와 세계는 분리되지 않는다.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이 가능한 이유다.

“나의 몸은 생명의 역사이자 문명의 흔적이다. 모든 자취가 기록되어 있다. 내 안에 일어나는 일은 인류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크리슈나무르티)

고미숙 - 고전평론가. 강원도 정선군에 속한 작은 광산촌에서 자랐다. 고려대학교에서 고전시가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40대 이후 지식인 공동체 활동을 해왔고, 현재는 감이당&남산강학원에서 ‘공부와 밥과 우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지금까지 낸 책으로는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등이 있다.

201506호 (20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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