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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폴리탄이 사랑한 도시⑥] 영국 런던┃매혹되거나 또는 미워하거나 - 그 매력은 밀크티 향처럼 느리게 다가온다 

런던에 싫증난 사람은 인생에 싫증난 사람… 중독된 자를 평생 포박하는 ‘이상한 완력’의 도시 

글·사진 권석하 재영 언론인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도시가 아니다. 두고두고 보면서 천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처럼 깊은 사랑에 빠진다. 런던을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 곳도 좋아할 수 없다는데, 런던은 그래서 모든 ‘도시 사랑’의 관문이다.

▎런던 템스 강의 타워브리지. 무미건조한 도시라는 피상적인 평가와는 달리 런던은 연중 세계의 관광객들로 들끓는다.
세계인들이 영국, 특히 런던을 바라보는 눈은 아주 상투적이다. 언제나 비 오고, 안개 끼고, 어둡고, 칙칙하고, 음식은 맛이 없는데 값은 눈이 홱 하고 돌아갈 정도로 오라지게 비싸고…. 길을 잘 몰라 택시는 돈 주고 타면서도 행선지를 먼저 말하고 기사 허락을 받아야 탈 수 있는데 미터기 요금 올라가는 속도와 금액을 보고는 하도 놀라 심장마비가 걸리는 줄 알았다 등등. 그래서 돈 아낀다고 지하철을 탔는데 낡아서 우중충하면서도 요금은 왜 그렇게 비싼가? 거기에 런던에 사는 남자들은 수줍고 무료하고 딱딱하고 건조하고 전통적이고, 여자들은 뚱뚱하고 무뚝뚝하고 패션감각 없고 그래서 매력 없고. 영국과 런던에 대한 인상은 이렇게 모든 것이 없고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다. 거의 모든 것이 부정적이다. 파리의 맛과 멋, 뉴욕의 활력과 세련미, 로마의 역사와 패션 같은 손에 잡히는 호감의 상징성이 이 도시에는 없다. 길거리에 묻어나는 역사와 전통을 빼고 나면 런던을 대표할 그 무엇이 잘 안 보인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말 무미건조하고 무표정한 도시 같다. 이 정도면 런던에는 아무도 안 올 것 같다.

그런데도 런던은 관광객으로 미어터진다. 세상에서 호텔비가 가장 비싼 도시가 바로 런던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호텔에 비해 관광객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제대로 사람같이 하룻밤을 묵으려면 가장 적게 지불해도 200파운드(35만원)가 든다.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분명 이렇게 비싸고 형편없는 도시가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들을 불러들이는 건 무엇일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런던에서 세상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살아온 나로서는 그 ‘무엇인가’를 알아낼 능력이 도저히 없다. 세상사람을 불러들이는 그 무엇인가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봐야지 안에 있는 내 눈에는 안 보인다. 내가 아주 일상으로 대하는 평범한 것들이 그들에겐 기가 막힌 것이 될 수 있고 나는 당연하게 느끼는 것이 그들에게는 흥분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냥 나는 내가 느끼는 내 입장에서 런던의 매력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도 사실은 제대로 된 매력이 아닐 수 있다. 예를 들면 내게는 런던이 세계 어느 도시보다 더 푸근하고 편하다. 심지어는 서울보다 더 친숙하다. 어느 골목을 돌면 어떤 가게가 있고 어디는 일방통행이고 어디에 가면 이 시간에 주차공간이 많은지를 훤히 알고 있으니 편할 수밖에.

‘비즈니스 디너’라는 말은 없다


▎런던의 중심 트라팔가 광장에서 바라본 영국 의회 건물 시계탑. 영국식 민주정치의 본산으로 무수한 역사적 스토리를 담고 있는 건축물이다.
런던에 처음 와서 짧게 머물다 간 사람들의 런던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미치도록 좋아하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싫어하거나. 영어로 정말 ‘love or hate’이다. 그런데 런던을 몇 년간이라도 눌러앉아 살다 간 사람들이 런던을 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언제나 런던으로 돌아오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런던은 파리처럼 첫눈에 반하는 그런 도시가 아니다. 처음에는 별로라고 하면서도 살아가면서 깊이 사랑하게 된다. 런던에 첫눈에 반했다는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이다. 장담하건대 절대 이 도시는 첫눈에 반할 도시가 아니다. 영국인들과 같다. 첫 만남에는 자신의 명함도 잘 주려 하지 않는 배타적이고 수줍어하는 영국인처럼 런던은 누구에게나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렇다고 친절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첫 대면의 영국인들은 런던처럼 친절하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개인적인 연관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절대 마음을 열지도 않고 가까이 오려고도 가까이 가려고도 않는다.

영국에서 비즈니스 런치라는 말은 있어도 비즈니스 디너라는 말은 없다. 저녁에 만나서 식사를 한다는 말은 아주 개인적인 관계이거나 아주 친해졌을 때에 국한된다. 런던도 마찬가지다. 런던은 깨끗하고 슬럼이 없는 도시다. 밤늦게까지 다녀도 안전을 위협받는 일은 거의 없다. 밤늦은 시간에 전철을 타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반면에 야밤중에 흥청대는 동네도 없고 먹자골목도 없다. 심야 길거리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포장마차도 없다. 소위 말하는 런던의 유흥가라는 피카딜리 서커스와 소호 지역마저도 밤 12시만 되면 한산해지고 파장이다. 시차 때문에 잠자리에 못 든 관광객들이 밤늦게 호텔을 나서 뭔가 유흥거리가 없을까 하고 어슬렁거리는 런던의 다운타운이 이런 판이니 런던 근교의 베드타운은 오죽하겠는가? 밤 11시만 되면 런던 교외 마을의 중심가는 정말 적막강산으로 바뀐다. 빈틈없이 깔끔해서 정이 안 간다. 빈 구석이 전혀 없다. 인간적인 어수룩한 면이 없으니 가까이 가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영국인뿐만이 아니고 런던이 그렇다는 말이다.

런던의 젊은이들은 어디서 만나 청춘을 즐기고 사랑을 나누는지 참 궁금하다. 런던 시내의 몇 군데 나이트클럽이 거의 다가 아닌가 싶다. 귀청이 떨어지는 클럽에서 젊음의 열기를 발산할 수는 있지만 그런 곳에서 연인 둘이서 오붓하게 즐길 수는 없을 것 아닌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밤늦게 나와서 손잡고 길거리를 거닐어도 딱히 갈 만한 곳이 없다. 카페도 문을 다 닫았고 커피숍까지 끝난지 오래다. 열두 시가 넘어서도 포장마차가 문을 여는 서울 거리에 비하면 밤문화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으로 일하러 갔던 영국인 젊은이나 심지어는 교포자녀까지도 영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한국에 머무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한국은 재미있고 편하고 익사이팅해서 영국으로 돌아오기가 힘들다고들 말한다.

밀크티를 알면 런던이 보인다


▎런던 시내에 산재한 무수한 공원에서 망중한을 보내는 시민들.
재미와 ‘익사이팅’까지는 이해하기 쉽지만 편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있을 법하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배달문화를 비롯해 돈만 있으면 손끝 하나 까딱 안 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가? 한밤중에 전화만 하면 통닭이니 맥주가 30분도 안 되어 배달되는 나라를 달리 뭐라 말하겠는가? 한국에 근무했던 영국인들이 한국을 그리워하는 이유 중 제일 큰 것이 이런 편리함이었다. 그만큼 런던이 무료하고 답답하다는 뜻이다. 한 번이라도 영국과는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된다면 영국이 그만큼 무료하고 답답하다고 느낀다는 말이다.

런던에 있는 5개 공항 중 가장 큰 히드로 공항에서 런던 시내로 들어 오는 M4, A4 도로에는 ‘아! 여기가 영국이구나!’ 하는 감탄이 나오도록 하는 풍경이 전혀 없다. 그냥 정말 우중충하고 구질구질한 마치 200년은 된 듯한 집들만 계속 이어질 뿐이다. 그렇게 영국에 대한 첫인상은 시작된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차츰 눈에 익고 지하철 지도 없이 지하철을 탈 수 있을 때쯤이 되면 런던이 하나 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향긋한 홍차에 밀크를 타서 구정물처럼 만들어 마셔야 제 맛이 난다고 느낄 때는 벌써 당신은 나처럼 런던을 제대로 평가할 제삼자에 속하지 않는다. 한 번 그렇게 런던의 매력에 빠지면 당신은 영원히 런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갔다가 돌아오고 갔다가 또 돌아오는 ‘런던되돌이’ 의 운명적인 굴레를 쓰게 되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런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도시가 아니라 두고두고 보면서 천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처럼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도시다.

세상사람들은 대개 런던에 올 때 ‘언제나 비 오고, 안개 끼고, 어둡고, 칙칙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온다. 그리고는 한 여름의 눈부신 햇빛과 어디서도 잘 보기 힘든 푸른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을 보고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왜인가? 아마 영화 때문인 듯하다. 무슨 억하심정 아니면 자격지심 때문인지 유독 영국인이라면 이상하게만 표현하고 런던을 음침하고 우울하게 표현하는 할리우드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영국 영화라고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는지 모르지만 영국영화와 드라마에는 영웅이 없다. 바로 우리들의 이웃집 사람과 같은 평범한 얼굴의 사람들과 그들의 구차하고 지난한 삶에 얽힌 구질구질한 이야기가 주조를 이룬다.

런던에는 진정한 런더너가 없다


▎1824년 개관한 런던 국립미술관. 이 미술관은 13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회화 23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오로지 어두운 면만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영국 영화들. 자기 부정, 자기 연민, 자기 비난, 자기 조소, 자기 조롱 모든 부정적인 명사 앞에 ‘자기’를 갖다 붙인 듯한 영화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트레인 스포팅〉 〈셀로우 그레이브〉 같은 일그러진 젊음의 초상 같은 영화다. 탄광폐쇄에 따른 광부들의 애환을 다룬 비슷한 영화들, 〈빌리 엘리어트〉 〈브라스트 오프〉 〈풀몬티〉 등에서 그려진 영국은 정말이지 너무나 찌질하고 처절하다. 이 사람들은 자학을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드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리고는 그런 우울한 스토리에 맞게 배경 장면도 ‘언제나 비가 오고, 안개 끼고, 어둡고, 칙칙한 느낌’의 것들이다.

그런데도 영국 영화는 인기가 있다. 바로 그 이유가 런던의 매력과 통한다. 아니 영국인의 매력과 일맥상통한다.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고 싸구려 동정을 구하지도 않는 영국영화는 감독이나 주인공이 나서서 애써 상황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관객에게 아무 말 없이 보여줄 뿐이다. 그들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면서 자신의 눈과 생각으로 느끼게 해줄 뿐이다. 그래서 영국 영화가 막을 내리고 엔딩 크레디트가 화면을 올라갈 때는 쉽게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한다. 한참을 영화에 빠졌던 감정을 추스른 뒤 분명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슬프고 안타까워서 우울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따뜻하고 훈훈해져서 극장 문을 나선다. 바로 이것이 영국 영화의 매력이다.

런던도 마찬가지다. 파리나 로마처럼 휘황찬란한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럽 도시 중 그냥 평범한 축에 속하는 런던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분명 있다. 그게 뭔지 확실하게 떠오르지 않아도 뭔가가 분명 있음은 분명하다. 남자들은 수줍고 무료하고 딱딱하고 건조하고 전통적이고, 여자들은 뚱뚱하고 무뚝뚝하고 패션감각이 없다. 그래서 매력 없다고, 앞서 얘기했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 나오는 휴 그랜트가 그렇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나오는 르네 젤웨거가 그렇다. 모두들 그렇게 처음에는 매력 없는 모습이지만 오래 보다 보면 뭔가의 매력에 마음을 뺏겨 급기야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영국 영화가 그렇고 영국 남녀의 사랑이 그렇고 런던이 그렇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 않아도 어딘가가 분명 부족한데도 무언가에 홀려 아주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런던에 살고 있는 런더너들은 런던의 마력과 매력을 즐기기보다는 남의 도시 보듯이 한다는 사실도 슬프다. 영국의 물가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지만 특히 런던의 물가는 살인적이다. 집값은 정말 미쳤다고 해야 할 정도다. 그래서 런던에는 진정한 런더너가 없다는 말도 있다. 런던에 직장을 가지고 있거나 상점을 가지고 있어 런던이 생활근거지인 사람 중에서 소위 말하는 ‘그레이터 런던(Greater London)’이 아니라 런던 중심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해야 맞다. 런던 집값은 이미 서민층은 물론 중산층의 손마저도 벗어난 지 오래다.

한밤중엔 술 마실 곳도 술 살 곳도 없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점심 시간 직후의 휴식을 취하는 런던시민과 관광객들.
그래서 진정한 런더너들은 집값에 밀려서 이미 교외로 갔든지 처음부터 런던에 살 수 없어서 시골에서 살았든지 했다. 이제 런던 주민의 50%가 넘은 비율이 외국 출신 영국인이거나 외국에서 와서 사는 사람이거나 런던에 단기로 온 사람들이다. 런던 시내 건물의 과반수가 외국인 소유라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방 4개짜리 펜트하우스가 수십억 원이라면 이해가 가는가? 최근 런던 시내에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구입하려면 연봉이 7만7천 파운드(1억 3천만원)는 되어야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에서 이 정도는 최상위급 봉급에 해당한다. 영국에서 주택융자는 자신의 연봉의 3년치까지만 가능하다. 3년치는 23만 파운드(3억9천만원)인데 이 돈으로는 런던 시내에서는 원룸밖에 못 산다. 그런데 이런 원룸에 살 독신이나 젊은이들의 평균 연봉은 7만7천 파운드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런던 봉급쟁이들의 연봉 평균은 2만8천 파운드로 영국 전체 연봉 평균(2만2044파운드)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젊고 평범한 월급쟁이가 런던에 살기는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런던에는 진정한 런더너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모두 낮에만 런던에 있고 밤에는 근교나 교외로 나간다. 퇴근시간이 되면 런던 시내 각 곳에 산재한 기차역은 통근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래서 생긴 말이 ‘런던은 도넛’이라는 말이다. 밤에는 시내가 텅 비고 둥그렇게 교외에 베드타운이 형성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밤의 런던은 객(客)들만이 우글거린다. 그런데 객들만이 우글거리면 밤문화가 발달할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런던에는 아무리 세월이 바뀌어도 밤문화가 없다. 그래서 나온 말이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 영국은 재미없는 천국’이다. 정말 런던에는 밤 문화가 없다. 아니 영국 전체 어디에도 밤 문화가 없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런던에는 11시가 넘으면 술 마실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 11시까지만 술을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저녁 모임은 식당에서 시작해서 식당에서 끝난다. 식당에서 밥과 같이 술 마시고 그 자리에서 후식에 커피까지 마시고 얘기의 뿌리를 다 뽑고는 끝낸다. ‘2차’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와서 서울서 오신 손님 입에서 ‘간단하게 어디 가서 커피나 혹은 입가심으로 맥주 한잔 더?’라는 말이 나오면 그때부터 접대하는 사람은 당황하기 시작하면서 횡설수설을 하게 된다. 결국 적당한 곳을 못 찾게 되고 급기야는 지독히도 주변머리 없다는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정말 갈 만한 곳이 없다. 펍으로 가면 되지 않나 하지만 요즘은 11시에 끝나야 한다는 규제가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영국 펍들은 11시가 되면 칼같이 문을 닫는다. 손님들이 그 시간 되면 끊어지니 펍도 문을 열어놓을 이유가 없다.

그 시간 이후에는 술 마실 곳은 물론 술을 살 곳도 없었다. 철야영업을 하는 대형슈퍼도 11시가 넘으면 주류판매 코너는 가리개로 막아 출입을 못하게 했다. 이제는 그런 규제가 많이 풀렸는데도 밤이 늦으면 술 마실 곳은 여전히 없다. 낮에 런던을 가득 매웠던 런더너들은 퇴근시간이 되기 바쁘게 런던을 빠져나가버리니 장사가 될 리 만무하다. 영국인은 밤에 친구를 만나서 술도 한잔 안 하나? 영국 직장인은 퇴근하고 회식도 안 하나? 영국에는 기업이 접대도 안 하나? 대답은 모두 ‘안 한다’이다. 기껏 한다는 것이 퇴근길에 직장 근처의 펍에서 동료들과 딱 한두 잔 서서 마시고 귀갓길을 재촉하는 것이 영국 직장의 술문화다. 영국 젊은이나 대학생은 술을 안 마시나? 물론 마신다. 영국 대학생은 기숙사나 자기 방에 모여서 술 마시는 것 말고는 돈이 없어 밖에서는 술을 못 마신다. 영국 직장에는 회식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 회식비는 경비로 회계상 인정이 되지 않는다. 영국 기업은 밤에는 접대를 하지 않는다. 만일 한다면 점심에 하거나 혹은 회사 외빈용 식당에서 접대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밤에는 런던 시내에 런더너들이 남아 있을 수가 없다.

그런대도 런던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왜인가? 런던을 이르는 말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말 “런던에 싫증난 사람은 인생에 싫증난 사람”이라는 238년 전 사무엘 존슨이라는 사람이 한 말은 너무도 많이들 써먹어서 이젠 진부한 말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그 이유를 나는 “런던에 없는 것은 아무 곳에도 없다” 혹은 “런던을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 곳도 좋아할 수 없다” 라는 말로 대신한다. 런던은 그만큼 없는 것 없이 다양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영국에는 영국 전통음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은 너무 유명하다. 그래서 런던에는 영국 전통식당은 없을지 몰라도 세계 어느 나라 음식이라도 모조리 맛 볼 수 있다.

50여 개 민족 공동체가 공존하는 도시


▎런던의 명물 붉은색 2층버스가 유명 쇼핑가 옥스퍼드 스트리트를 지나고 있다.
런던에는 동네마다 세계 각지에서 온 민족의 공동체가 존재한다. 히드로 공항 근처 혼슬로에는 인도인, 조금 더 들어온 햄머스미스 근처에는 폴란드인, 동쪽의 그리니치 천문대 근처에는 베트남인, 그리고 서부 런던 뉴몰던에는 유럽 유일의 한인촌이 있다. 런던은 이렇게 세계 각국에서 온 민족이 제각각의 색깔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이 고유의 영국음식이 없는 대신 ‘세상의 모든 요리가 런던에는 다 있다’라는 말이다. 이래서 런던에 없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런던에는 300여 개의 고유언어가 사용되고 1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50여 개의 민족 공동체가 존재한다. 한국인도 그중 하나다. 이런 다양성이 런던의 매력의 하나가 아닐까?

밤문화가 없다고 타박할 일이 아니다. 런던에서는 런던 스타일의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런던만의 즐거움. 예를 들면 세계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다양한 공연 예술이 있다. 런던은 공연 예술의 메카다. 클래식이면 클래식, 뮤지컬이면 뮤지컬 연극이면 연극 모두가 런던을 따라올 도시는 없다. 클래식을 예를 들어보자. 세계 어느 유명 도시든 거의 모두 유수의 교향악단 한둘을 다 가지고 있다. 베를린의 베를린 필하니모니로부터 시작해서 필라델피아, 보스턴, 뉴욕, 드레스덴, 비엔나 등 모든 유명 도시는 자신의 이름을 앞세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런던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교향악단을 여러 개 가진 도시는 없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를 시작으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LPO),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PO),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RPO) 그리고 BBC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인 수준의 교향악단 5개를 보유하고 있다. 한 도시에 이렇게 대단한 교향악단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다. 사실 그런데 거기에는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드,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같이 자신들이 5대 클래식 실내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화를 낼 만큼 세계적 명성을 지닌 악단은 제외돼 있다. 여기에다 로얄 오페라 하우스 악단이나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 악단 같은 특수 악단도 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발레는 어떤가? 로얄 발레, 잉글리시 내셔널 발레까지 언급하면 런던에는 매일 저녁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이 10개 이상 열리고 있다. 거기다가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를 세계 뮤지컬계의 정상에서 내려오게 한 런던의 뮤지컬은 또 어떤가? 연극도 빼놓을 수 없다. 할리우드에서 연기파 명배우 소리를 들으려면 런던 웨스트엔드 극장가에 와서 연극배우로서의 연기력을 반드시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서 런던 극장에서는 할리우드 명배우를 언제나 볼 수 있다. 위에서 사례로 든 모든 공연예술은 런던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세계 무대로 나갈 수 없다. 어떻게 해서 이런 공연단체가 매일 공연을 하는데도 청중을 모을 수 있는지가 궁금할 터이다. 그만큼 관객층이 두껍다는 말이다. 또 다르게 얘기하면 런던에는 저녁에는 이런 공연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 런던은 이렇게 영국만의 밤문화가 있어 먹고 마시는 밤문화가 시들한가 보다.

이제 런더너가 살아 가는 방식을 들여다보자. 영국 광고에 학생이 거리를 걷는 모습을 보고 등교하는 것인지 하교하는 것인지를 맞춰보라는 퀴즈가 있다. 답은 간단하다. 걸어가면 등교, 뛰어가면 하교다. 집에 빨리 가고 싶어하는 심정을 잘 묘사한 것이다. 저녁 퇴근 시간에 워터루 기차역에 가보면 바로 이를 확인해볼 수 있다. 옆을 지나치는 통근객은 걸어가는 법이 거의 없다. 거의 뛰다시피 잰 걸음이다. 빨리 집에 가고 싶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들의 행복은 단순하다. 주중에는 저녁을 집에서 먹고 동네 펍에 가서 한잔하고 들어온다. 주말에는 집에서 정원 손질하거나 자동차 수리하고 축구팬은 런던에 있는 프리미어리그 축구 클럽에가서 자신들 팀의 경기를 응원하면서 지낸다.

트라팔가 광장의 특별한 주말 모임


▎런던 시내에서 열린 ‘트위드 런’. 영화 <셜록 홈즈>에 나오는 복장을 입고 옛날 자전거로 시내를 일주하는 자선·친목 행사의 모습이다.
런던의 제일 중심부이자 영국 도시간 거리 기준점이 되는 트라팔가 광장에는 주말에는 특별한 모임이 참 많다. 평범한 시민들이 평범한 생활을 평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 모여서 일을 벌인다. 주로 자선모금이 많은데 한 번은 셜록 홈즈 영화에 나오면 딱인 ‘트위드 런(tweed run)’이라는 모임도 보았다. 옛날식 옷을 입고 옛날식 자전거를 타고 런던 시내를 행진하고 저녁에는 큰 홀에 모여서 파티를 해서 자선모금을 하는 식이다. 어느 것도 그냥 자신들만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 모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즐거움과 함께 누군가를 돕기 위한 모임으로 자기 만족도 찾고 자신들의 품격 또한 높인다. 중고등학교 동창회마저도 결코 서로 만나서 제 자랑하려고 모이는 것이 아니다. 물론 트라팔가 광장에서는 주말에는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운 각종 데모대가 출발하기도 한다. 질서정연한 데모대는 여기서 행진을 시작해서 바로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을 지나 웨스터민스터 의사당을 거쳐 웨스터민스터 브리지를 건너서 끝이 난다.

그래서 런던 삶의 중심은 트라팔가 광장 여기서 시작하고 여기서 끝난다는 말도 있다. 만일 사랑이야기를 런던에서 촬영한다면 트라팔가에서 시작하고 끝이 나야 한다. 그런데 런던을 배경으로 한 사랑의 이야기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런던은 사랑하기 적당치 않은 도시인가? 올드 영화 팬들에게는 명절이면 한때 매해 TV에서 틀어주던 흑백영화의 고전 〈애수〉가 겨우 생각날 뿐이다. 템스 강 위에 걸린 다리 중 워터루 역과 극장으로 유명한 동네 코벤트 가든을 연결하는 시멘트 다리가 바로 영화 애수의 원 제목인 ‘워터루 브리지’다. 미군 장교인 미남 배우 윌리엄 홀덴과 신비한 매력의 비비안 리가 운명적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워터루 브리지는 이제는 단순한 시멘트 다리일 뿐이어서 올드팬을 실망시킨다. 그래도 이 다리 위에서 보는 런던의 석양은 ‘워터루 브리지 선셋(Waterloo Bridge Sunset)’이라고 불릴 만큼 유명하다.

런던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 사실이 아니다. 유럽에서 건물신축용 타워크레인이 제일 많이 보이는 곳이 런던이다. 런던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런던을 잘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옛날에 얼핏 보고 지나갔기에 다시 와보니 변한 사실을 잘 감지 못하기 때문이다. 런던은 외관뿐만 아니라 런더너의 삶도 상당히 많이 변하고 있다. 영국인의 상징인 홍차에 밀크를 타서 마시는 밀크티 마시기가 커피 마시기보다 더 어렵다. 만일 아프터눈 티라고 해서 유명 호텔에서 하는 오후 차마시기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면 몰라도 웬만한 길거리에는 전통의 티룸보다는 커피집이 더 많다. 사실 영국인들이 향긋한 냄새에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홍차에 멋없이 밀크를 타서 냄새와 맛 그리고 발그스름한 아름다운 홍차 색깔을 희끄무레한 물로 만드는 이유를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마셔서 그 맛에 중독이 되지 않은 사람은 감히 그 이유를 말할 수 없다.

이제 런더너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한마디로 정의하고 런던에 대한 이야기를 마감하자. 런더너들은 교외에 살던 런던 시내에 살던 삶을 펍에서 시작해서 펍에서 끝낸다. 십대를 지나 술을 합법적으로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 펍에서 친구와 첫 연인을 만난다. 펍에서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축구 클럽의 경기 관전도 펍에서 이뤄진다.

딱 하나 명심할 일이 있다. 영국 펍에서는 웨이터가 테이블로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르고 영국 펍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웨이터는 오지 않는다. 또 어느 자리에 앉으라고 안내도 하지 않는다. 카운터로 가서 주문해야 한다. 마실 것도 식사도 모두 다 말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낯선 사람과 말을 잘 섞지 않는 영국인들을 카운터 근처로 불러 모으려는 이유에서다. 주문을 하려고 기다릴 때는 옆에 사람에게 말을 걸어도 전혀 실례가 되지 않는다. 영국인 특유의 낯가림의 해방구인 셈이다. 그래서 여기서 말이 되어 합석도 하고 사랑도 나누게 된다. 그렇게 하려고 펍에는 웨이터가 없다.

런던의 역사는 펍에서 이뤄진다


▎런더너는 대체로 과음하지 않는다. 귀가하기 전 펍에서 선 채로 맥주잔을 들고 가볍게 한잔하는 것이 그들의 음주법이다.
이와 연관해서 하나만 더! 외국 영화에서는 카운터에 앉은 여인에게 말을 건네는 남자들을 볼 수 있는데 그렇게 안 하면 오히려 실례다. 일행이 없이 혼자 카운터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말을 걸어달라는 표시다. 그래서 아리따운 여인이 혼자 카운터에 앉아 있는데 그 옆의 남자가 말을 안 걸면 사실 큰 실례다.

이렇게 펍은 수줍은 영국인에게는 정말 귀중한 탈출구다. 누가 못 오게 말리는 사람도 없고 간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혼자 들러 한 잔 사서 옆 사람들과 말을 트고 그러다가 시간이 되면 그냥 사라지면 된다. 초대하는 사람도 없고 초대받는 사람도 없는 일종의 상설 파티장이다. 만일 영국에 펍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할까? 나그네로서는 정말 귀한 장소다. 런던에 오면 외롭게 혼자서 호텔 방에서 지내지 말고 동네 펍으로 가라. 거기서는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

권석하 - 무역학과 졸업 후 1982년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현재까지 살고 있다. 현지에서 정치·역사·문화·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왔고, 국내 매체에 영국을 소개하는 다양한 주제의 글을 꾸준히 게재했다. 저서로는 영국의 이면을 깊게 천착한 <영국인 재발견>이 있다.

201506호 (20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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