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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바닷속의 낚시꾼 아귀 

밤낮없이 꼬박 한 자리에 숨어 줄기차게 먹잇감 기다려… 아귀의 간(肝)은 세계적 별미인 거위 간에 필적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아귀는 입이 커서 저보다 더 큰 고기도 잡아먹는다.
아귀찜은 마산 지방의 향토 음식이다. 아귀란 물고기를 60년대 이전에는 멍청하게 생긴 것이 추물(醜物)로 취급하여 먹지 않고 바다에 버리거나 가져와 썩혀 거름으로 썼다고 한다. 그러나 생선이 귀해지면서 새 요리법을 개발하여 아귀도 귀한 물고기로 대접받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매운 음식이라 맛들이면 중독성이 생겨 말만 해도 깜빡 죽는다.

경골어류(硬骨魚類)지만 뼈는 거의 물렁뼈 수준이고, 살은 쫄깃한 것이 탄력이 있으며, 알싸한 맛이 일품이다. 뿐더러 바다 향이 물씬 풍기는 향긋한 미더덕과 싱싱하고 아삭아삭 씹히는 미나리, 콩나물에 갖은 양념을 곁들인 아귀찜은 더할 나위 없이 먹음직스럽다. 살집 깊은 아귀 토막을 꾹꾹 씹는 것도 그렇지만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칼칼하게 버무린 뻘건 색깔도 눈을 자극한다. 입에 배여 드는 알알하고 은은한 풍미를 생각하니 입안에 침이 한가득 고인다. 아귀찜 외에도 각종 채소와 해물을 함께 넣고 끊이는 술기운 풂(해장, 解酲)에 좋은 아귀탕이 있다.

아귀(Lophiomus setigerus)는 경골어류, 아귀목, 아귓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한자어로는 흑안강(黑鮟鱇, 검을 黑 아귀 鮟 아귀 鱇)이고, 보통은 ‘아구’라고 부른다. 아귀라는 이름은 불교에서 말하는 ‘아귀(餓鬼)’에서 나온 것으로 살아서 탐욕스러웠던 자가 사후에 굶주림의 형벌을 받는 귀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얼뜨고 흉하게 생긴 이 물고기는 입이 된통 커서 제보다 더 큰 생선도 잡아먹는 먹성 탓에 그런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게 되지 않았나 싶다.

아귀는 별나게 몸이 등배 쪽으로 납작하다. 따라서 머리 폭도 턱없이 넓다. 몸 전체의 3분의 2가 머리에 해당하고, 아래턱이 위턱보다 앞쪽으로 조금 돌출했으며, 등 쪽에서 보면 입의 가장자리는 둥그스름하다. 몸빛은 회갈색이고, 엷은 색의 무늬와 반점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배는 희다. 살결은 부들부들하고 비늘이 없으며, 몸에는 많은 허접스런 돌기(突起)가 난다.

아래턱과 머리의 위쪽 테두리를 따라 수십 개의 수염 모양의 거친 돌기가 지저분하게 나 있다. 몸길이가 보통 30~40㎝고, 양턱에는 빗살 꼴을 한 날카로운 이빨이 3중으로 나 있고, 안으로 살짝 오그라져 일단 잡힌 것들은 빠져나가지 못한다.

아마도 다음 이야기가 이 글의 백미(白眉)일 터다. 의뭉스럽고 볼품없는 아귀는 미련하게도 밤낮없이 꼬박 한자리에 몰래 숨어 줄기차게도 얼씬도 않는 먹잇감을 기다린다. 기다림의 도사다. “미련이 담벼락 뚫는다”고 어수룩하고 미련한 사람이 오히려 끈기가 있는 법. 실은 낚시꾼들도 아귀의 인내와 끈기를 닮았다 하겠다.

입의 바로 위쪽에는 등지느러미가 변한 가느다란 안테나(촉수)가 봉곳이 서 있고, 그 끝에는 주름진 흰 막으로 덮인 미끼(lure)를 매달고 있어서, 이것을 살래살래 흔들어 먹잇감을 꾀어 잡는다. 둘레 색과 비슷한 보호색을 가진 아귀가 납작 엎드려있는 데다가 몸에 난 수염돌기나 해초들이 눌러 붙어 위장(僞裝)됐기에 먹잇감(피식자)들이 눈치 채지 못 한다.

‘아구 먹고 가자미 먹고’

다시 말해서 맛있는 벌레로 보이는 미끼가 달린 낚싯대를 사방팔방으로 꼼작꼼작 흔들어 먹잇감을 꾀이다가 가까이 왔다 싶으면 덥석 물어 삼킨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아귀 무리의 물고기를 ‘낚시고기(anglerfish)’라 부른다. 암튼 먹고 먹힘에 지혜 싸움이 치열하다!

그리고 암초(巖礁)가 많은 곳이나 해조류(海藻類)가 무성한 수심 55~150m 층 해저에 서식한다. 육식성으로 주로 머리 위의 유인장치를 까닥까닥 흔들어 어류를 잡지만 낚시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오징어나 새우도 잡아먹는다.

소화력이 매우 뛰어나 먹잇감을 통째로 삼키니, 아귀의 뱃속에는 싱싱한 고급어가 들어 있는 수가 있으니 ‘아구 먹고 가자미 먹고’라는 일거양득의 속담이 생겼다. 입을 째지도록 벌리고, 제 몸 두 배나 되는 먹이를 먹어 위(胃)를 두 배까지 부풀일 수 있다 하니 이는 뼈가 상당히 유연하고 신축성이 있는 탓이다. 그래서 아귀는 뼈가 야문 경골어류인데도 뼈가 물렁한 편이다. 실제로 먹어보면 뼈가 물렁하게 씹힌다.

못생겼다고 깔볼 아귀가 아니다. 아귀의 간(肝)은 세계적 별미인 거위 간에 견준다. 그런데 우리는 살을 좋아한다면 일본 사람들이나 서양인들은 간을 아주 즐긴다. 하여 영어권에서는 아귀를 ‘거위물고기(goosefish)’로 부르며 높이 쳐준다. 서양 사람들은 3대 진미로 철갑상어 알 캐비아, 송로버섯, 거위 간(푸아그라)을 꼽는다고 하지. 알다시피 ‘푸아그라(foie-gras)’는 ‘비대한 간’이란 뜻으로 거위나 오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컴컴하고 따뜻한 방에 가두고 강제로 사료를 먹여 간을 엄청나게 크게 만드는 것이다.

다음에 황아귀(Lophius litulon)를 덧붙인다. 아구라 하면 보통 아귀와 황아귀(yellow goosefish)를 이른다. 황아귀는 역시 아귓과의 어류로 또한 전신에 많은 수염돌기(피부판, 皮膚瓣)가 나고, 역시나 등지느러미 살이 변형된 먹이를 유인하는 낚시와 미끼가 꼿꼿이 서 있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 서식하며 북서태평양에 주로 서식한다.

눈 안쪽 가장자리에는 2개의 딱딱하고 뾰족한 가시가 있고, 눈 뒤에도 역시 같은 꼴의 두 개의 가시가 있으며, 아래턱의 아래쪽 테두리선을 따라 수십 개의 수염 모양의 돌기물이 있다. 살갗엔 비늘이 없고, 아주 큰 놈은 150㎝에 달한다. 주둥아리는 엄청 크고 양쪽 턱에는 매우 날카로운 이빨이 두 줄로 줄지어 있다.

아귀들의 아가리가 큰 것은 육식(肉食)한다는 뜻이고, 아주 식성 좋아 큰 것들도 잡아먹는다는 의미렷다! 아무튼 얕볼 생선이 아니다. 아귀는 바닷속 낚시꾼으로 물고기를 낚는 재주가 있더라!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506호 (20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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