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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日常반추’] 웃음의 역설! 

웃음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인간적’ 특징… 웃음의 속성은 신랄함과 공격성, 미소의 본질은 자애와 행복감 

장석주 전업작가
웃는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사실 사람은 불행해서 웃는다. 사람은 수없이 실수하고 좌절하는 불행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은 자기 안의 불행들을 웃음으로 방출한다. 자신의 타락을 웃음으로 정화한다. 타락한 자들이여, 웃어라! 고난과 역경에 주눅 들지 말고, 기쁨만이 그대의 숙명인 듯!
얇은 살갗이 ‘나’라는 존재를 뒤덮고 있다. 자아의 껍질인 것, 나와 물질세계의 경계인 것, 우리는 피부라고 불리는 이것에 감싸인 몸의 형태로 존재한다. 피부는 몸 전체를 싸고 있는 방수복 같다. 피부는 숨쉬며, 외부 자극에 반응하고, 자외선과 나쁜 병균들이 침투하는 걸 막는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피부는 우리와 생을 함께한다. 지상에 체류하는 동안 우리는 피부에 많은 빚을 진다. 그리곤 죽을 때 피부도 함께 괴사한다.

프로이트는 자아를 무의식의 변형으로, 라캉은 거울 이미지로 본다. 반면 프랑스 정신분석가인 디디에 앙지외(Didier Anzieu, 1923~)는 피부가 자아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피부는 투과성이 있으면서도 불투과성이다. 피부는 피상적이면서도 심층적이다. 피부는 진실하면서도 기만한다. 피부는 지속적으로 고갈되면서도 재생된다. 피부는 신축성이 있지만 전체에서 떨어져 나간 피부는 놀라울 만큼 작게 수축된다. 피부는 자기애적이면서도 성적인 리비도의 투여를 불러일으킨다. 피부는 행복의 장소이면서 유혹의 장소이기도 하다. 피부는 우리에게 즐거움만큼이나 고통도 제공한다.”(디디에 앙지외, , 46쪽) 우리는 피부의 보호 아래 물리적 환경과 분리된 채 개별성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사실을 말하자면 사람은 ‘피부 자아’로 살아간다. 피부는 영혼의 거푸집이며, 죽는다는 것은 이 거푸집에서 해방되는 것, 더 이상 피부의 보호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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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호 (20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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