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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그림을 읽다] 분노하는 여인들 | 유디트, 메데아, 그리고 살로메 -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포기한 여인의 당당함이여! 

조국애와 실연의 복수심, 집요한 사랑 위해 … ‘보호받는 여성상’ 버리고 ‘화신’이 되어 운명에 맞서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여성의 패션을 말할 때 군복스타일의 ‘밀리터리룩(military look)’, 소년 같은 느낌의 ‘보이시룩(boyish look)’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었다. 여성들도 가끔 남성적인 느낌의 옷을 입어보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블리룩(lovely look)’이라는 것은 단번에 이해되지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것일까. 러블리룩의 이미지들을 찾아보니, 레이스가 달리거나 리본이 달린 옷들, 꽃무늬나 물방울무늬가 찍힌 원피스들이 대세를 이루었다. 좀 더 ‘여성스럽고, 보호해주고 싶고, 귀여워 보이는’ 옷들을 러블리룩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연 ‘러블리(lovely)’라는 뜻은 무엇일까? 무엇이 여성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일단 남성의 사회적 지위를 위협하는 당당함은 ‘러블리’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은 좋지만, 일에만 푹 빠져 집안을 돌볼 시간도 여유도 없는 여자는 ‘러블리’할 수가 없다.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대명사인 미국드라마 의 주인공 레이첼(제니퍼 애니스톤)은 끝없이 실수하고 그때마다 좌절하지만 여성에게조차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그녀의 ‘귀여운 모자람’과 ‘눈감아주고 싶은 백치미’는 전 세계인에게 ‘러블리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그녀처럼 사랑스러운 여성은 주변에 언제나 도와주려는 친구, 그 실수를 메워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를 보며 ‘레이첼처럼 러블리한 사람이 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번 일에 빠지면 주변을 둘러보기는커녕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에 부칠 정도가 되어버린다. 나 또한 실수를 곧잘 하지만 남들이 도와주는 것은 극도로 싫어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움’이 여성의 미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주어진 악조건과 싸우는 여인들에게서 매혹을 느낀다. 나는 ‘프렌들리(friendly)’한 것은 좋지만 ‘러블리(lovely)’한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다정한 것은 좋지만 애정을 갈구하는 눈빛은 고통스럽다. 나는 ‘러블리’함과 거리가 먼 사람들을 사랑한다.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조금은 ‘멋대가리 없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마음속에서는 ‘사랑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여인들이 항상 마음속 깊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남들이 싫어할까 봐, 나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까 봐 되지 못했던,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또 하나의 자아가 내 안에는 오랫동안 숨어 있었다. 나는 ‘러블리’하지 못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더욱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 용감한 여성들을 그린 그림들에 늘 매료되었다. 그 용감함은 배우고 싶지만, 그 분노와 고통만은 차마 닮고 싶지 않았던 여인들의 역사. 그 첫 번째 장면에 적장(敵將)을 유혹해 그의 목을 베는 놀라운 여인 유디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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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호 (20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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