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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국정감사 둘러싼 대기업 로비 百態 

특명! 회장님의 증인 채택을 막아라 

학연·지연 등 ‘라인’ 총동원, 기업 오너의 국감행 저지에 총력전… 산자위·정무위·기재위·환노위 의원들은 항시 ‘관리대상’

▎재벌총수와 기업 대표들의 증인·참고인 채택 과정에는 기업의 대관업무 담당자들의 치열한 로비전이 있다. 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시작된 9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감 시작 전 피감기관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계 없음)
“확인만 부탁드릴게요.”

“글쎄, 저도 잘 모른다고 말씀드렸잖아요.”

9월 2일 국회 정무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의원실 앞에서 난데없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는 쪽은 2015년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의 대관(對官)업무 담당자였고, 다른 한쪽은 의원실 보좌관이었다. 결국 이 담당자는 내일 다시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이 담당자는 “회사 대표가 국감 증인 목록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왔다”며 “그래야 차후 대책을 논의하는데 아직 오리무중”이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은 정무위 여야 간사가 1차 증인 선정을 마무리하기로 한 날이다. 절충하는 과정에서 증인을 넣고 빼고 할 틈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필사적이다. 특히 야당 간사 의원실에는 기업 대관 담당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야당 간사실에 대관 담당자들이 진을 치는 건 여당에 비해 증인 신청자 수가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한 보좌관은 “여당에 비해 야당이 재벌그룹 총수나 기업의 대표를 증인으로 대거 신청한다”며 “아무래도 야당이다 보니 사안 별로 묻고 싶은 게 많은 것 아니겠나. 여당보다 신청자 수가 두 배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야당 간사실에 줄을 선 대관 담당자들이 모두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연이나 지연 등 모든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야 한다. 간신히 보좌관과의 만남을 성사시킨 대관 담당자들의 요구는 한결같다. “회장님 대신 회사의 다른 관계자를 출석하도록 해달라.” 자신이 속한 기업의 오너를 증인에서 빼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원하는 답변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무위 소속 관계자는 “국감 시즌이 되면 수많은 대관 담당자가 찾아와 부탁을 하지만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증인을 신청한 의원실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고, 다른 상임위에서 증인으로 채택될 수도 있다. 우리 상임위에서만 특혜를 준 것처럼 비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총수와 기업 대표들의 증인·참고인 채택 및 소환을 둘러싼 여야 줄다리기는 국감 때마다 반복해서 벌어지는 연례 행사다. 여야 줄다리기의 이면에는 기업의 대관업무 담당자들의 로비가 치열하다. 특히 올해는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과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 등 대형 이슈가 많아 야당의 증인채택 요구가 한층 거셌다. 대관업무 담당자들이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대관업무 담당자는 어떻게 ‘회장님 구하기’에 나설까. 이들의 ‘회장님 구하기’는 각 의원실에서 증인 신청 목록을 작성할 때부터 시작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회장님이 국감장에 서는 건 막아야 한다. 이유불문하고 완수해야 하는 미션이 떨어진 셈이다. 국감 증인출석 대상 선정은 각 상임위에서 개별적으로 이뤄진다. 소속 의원들이 증인신청 목록을 간사실에 전달하면 여야 간사가 머리를 맞대고 최종 명단을 작성한다. 의원별로 누가 어떤 증인을 신청했는지는 철저한 비공개다. 전체 목록을 알 수 있는 곳은 간사의원과 실무 보좌진뿐이다.

대관 담당자는 기본… 전사적 대응 나서기도


▎대관업무 담당자들의 ‘회장님 구하기’는 여야 간사가 1차 증인신청 목록을 교환하고 난 뒤부터 본격화된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 회의실 앞에서 피감기관 직원들이 국감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이때가 ‘회장님’을 구출할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 대관업무 담당자 A씨는 “여야 의원들이 제출한 목록을 간사들이 취합할 때를 노린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재벌그룹 총수를 증인신청 목록에서 제외시키는 최적의 타이밍은 각 당 간사가 각 의원실로부터 증인신청서를 취합할 때다. 증인신청서에 누가 올랐는가를 먼저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예외 없이 간사 의원실에 줄을 대 귀동냥이라도 하려 든다. 명단 확보 여부가 대관업무 담당자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첫 시험대다. 이때는 여야간 명단 교환이 이뤄지기 전이다. 회장님을 증인으로 신청한 의원실을 찾아가 읍소작전을 벌인다. ‘회장님 구하기’가 시작되는 셈이다.”

정무위 소속 야당의원실의 보좌관은 로비당하는 입장에서 본 대관업무의 실태를 이렇게 전한다. “기업 관계자들은 우리가 신청한 증인 명단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부리나케 찾아온다. 의원실 별로 일대일 마크에 나서는 것 같았다. 요구는 단 하나. 회장님을 증인에서 빼달라는 것이다. 융통성을 발휘할 때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기업의 오너나 탈·불법을 저지른 경영인은 빼도 박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원실이 완강하게 거절할수록 기업은 더 적극적으로 달려든다. 대관업무 담당자를 넘어서 전사적인 대응을 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만약 B의원실에서 C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의원실의 학연·지연 등 모든 정보가 그룹에 알려진다. 이후 B의원실을 공략하는 일도 그룹 차원에서 이뤄진다. 전화 통화는 기본이고 술자리와 친인척 동원, 심지어는 의원의 아내에게 선물공세를 하는 등 흔히 봐온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고 한다. 한 보좌관은 “국감을 앞둔 시점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동창이나 지인이 전화를 걸어오면 십중팔구 증인 신청 청탁 때문”이라며 “기업은 가용한 모든 채널을 동원하는 듯한데 보좌관의 아내에게까지 접근하는 사례도 왕왕 있다”고 말했다. 오너 2세를 집요하게 추궁하는 형사의 부인에게 돈다발을 안기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 <베테랑>은 다소 과장됐지만 본질적으로는 국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셈이다.

여야 간사 의원은 소속 정당 의원들이 제출한 증인 신청 명단을 갖고 1차 협상에 들어간다. 여야간에 명단 교환이 이뤄지는 순간인데 이때 국감 증인의 전체 면모가 윤곽을 드러낸다.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의원실을 어떤 방식으로 공략할까. 읍소형부터 협상형, 협박(?)형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자의 설명이다. “대부분이 읍소형이다. 그쪽이 ‘슈퍼 갑’인 상황인데 부탁하고 매달리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있나. 그것도 ‘맨 땅에 헤딩’은 안 된다. 인맥을 이용해 자리를 만들어야 읍소도 가능하다. 정치권은 물론 다양한 루트를 활용해 특정 의원실을 공략한다.” 그러면서 그는 “일부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하고, 협상을 하기도 한다”며 “친한 선후배 사이면 ‘이번에 명단에 포함되면 각오해’ 이런 정도의 협박을 하거나, 연배가 있는 보좌관에게는 기업 내 ‘자리’를 내걸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명단에서 빼기가 ‘최선’, 질문지 조율이 ‘차선’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여야간 1차 협상에서 웬만한 증인들은 결정되지만 여야간 이견이 있는 증인의 경우 2차 협상 테이블로 넘어간다. 2차 협상에서 최종안이 확정되기 전에 기업은 또 열심히 구명운동을 벌인다. 이때가 대관 담당자들의 노하우가 더욱 절실한 시기다. 한 대관업무 담당자의 설명. “여야 간사들은 1차 협상을 통해 큰 틀에서의 증인 신청 목록을 작성한다. 여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민감한 증인들의 경우 2차 협상에서 다뤄진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가 그랬다. 비슷한 의견을 도출해내면서 1차 증인 목록을 작성하는데, 이때까지 일차적으로 치열한 로비전이 벌어진다. 대부분 야당에서 신청했지만 여당에서 반대하는 경우 2차 협상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때가 가장 결정적 순간인지라 불미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증인 신청을 한 의원의 후원회에 기업의 직원들이 무더기로 후원금을 넣는다거나, 의원 지역구의 사회공헌 활동에 지원을 약속하는 일이 벌어진다. 기업을 대상으로 민원 해결을 요청하거나 심지어 직접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회장님을 증인신청 목록에서 빼는 데 실패한 기업의 대관업무 담당자는 2단계 작전에 돌입한다. 국감 예상 질문지를 입수해 민감한 질문을 빼달라고 애원한다. D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는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안이라면 아무리 의원실과 친밀한 관계에 있어도 명단에서 빠지기가 어렵다”며 “불가피한 경우에는 질문의 강도를 낮추고 순화하는 작업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당초 19대 국감에서는 재벌 관련 이슈가 많아 재벌 오너나 총수 일가의 국감 출석이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여야 협상 결과 관심을 모았던 재벌 오너나 총수 일가는 대부분 빠지고 최고경영자(CEO)나 전문경영인이 무더기로 채택됐다. 당초 출석 대상자로 거론된 10대 그룹 총수일가는 신동빈 회장(롯데그룹)·신동주 전 부회장(일본롯데)·이재용 부회장(삼성전자)·조양호 회장(한진그룹)·정몽구 회장(현대차그룹)·정의선 부회장(현대차그룹)·정용진 부회장(신세계그룹)·조현아 전 부사장(대한항공)·구본무 회장(LG그룹) 등 10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최종 확정된 국정감사 증인·참고인 출석 요구안에 따르면 이들 중 증인으로 채택된 사람은 신동빈 회장뿐이었다.

특히 조양호 회장은 ‘땅콩회항’ 사건 및 관광진흥법 개정 등과 관련해 국토교통위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에서 증인으로 신청되면서 출석 여부에 큰 관심이 몰렸지만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수감 생활 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감 증언대에 다시 불러 세우는 것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분위기가 작용했다고 업계는 관측한다. 하지만 그 이면은 이들 기업 대관 담당자의 ‘회장님 구하기’가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대관업무 담당자는 “증인 목록에서 ‘회장님’을 빼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1년 동안 보좌관들에게 공을 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관업무 담당자의 정보력이나 소위 ‘커넥션’은 어느 정도일까. 한 보좌관이 들려준 일화를 보면 대기업 대관 담당자들의 정보력이 실로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보좌관의 설명이다. “최근 국회 한 상임위 소속 야당 보좌진들이 국감 증인 신청을 앞두고 모임을 가졌다. 한 보좌관이 모 대기업 회장의 국감 증인출석을 거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보좌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알았던지 회장 증인출석을 요구한 기업의 대관업무 담당자였다. 누군가 내부의 동향을 신속하게 외부로 전달했던 것이다.” 모임에서 행한 발언이 거의 실시간으로 이해당사자에게 ‘보고’되는 현실에 이 보좌관은 혀를 내둘렀다. 대관업무 담당자들의 ‘안테나’ 높이를 실감하는 계기였다고 이 보좌관은 돌이켰다.

‘묻지마 증인신청’, 은밀한 뒷거래용?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평소에도 관심 의원들을 관리한다. 주로 산업통상자원위원회·정무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이 그 대상이다. 이들 상임위의 공통점은 특성상 기업과 관련된 이슈를 많이 다룬다는 점이다. 대기업 한 대관업무 담당자는 “환노위나 기재위·정무위·산업통상위 등은 특별 관리대상 상임위”라며 “특별한 이슈가 없더라도 해당 상임위 의원실 관계자들과 자주 식사를 하고 어울린다. 모든 것이 다 오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뢰 관계는 일조일석(一朝一夕)에 형성되는 게 아니므로 일찌감치 친분을 쌓아둔다는 말이다.

국회는 왜 기업 총수를 증인석에 세우는 데 열을 올리는 걸까? 일각에서는 국회가 기업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 대관업무 담당자는 “일부 의원이 증인 채택을 민원 해결의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기업 오너 문제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의원들은 일단 오너나 대표를 불러야 기업이 즉각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평소에 부탁하기 힘든 지역구 민원을 증인 신청을 추진하면서 해결하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일까. 국감 증인 중 기업인 채택 비중은 갈수록 늘고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에 따르면 피감기관과 일반 증인 수는 2011년 556개, 212명에서 2014년 672개, 315명으로 늘었다. 일반 증인 가운데 기업인 비중은 36.8%(78명)에서 41.6%(131명)로 증가세에 있다.

여기에다 재벌들의 잇단 사건사고로 재벌개혁 여론이 거세지자 ‘재벌 때리기’로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의원들의 흥행심리까지 개입되면서 기업인 증인 신청이 봇물을 이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증인신청 자체를 권력이라 생각하고 이를 통해 정치자금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개인적으로 구린 점이 없다면, 제대로 질문도 한 번 하지 않을 증인을 부를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의원들도 ‘묻지마 증인신청’의 관행이 시정돼야 한다는 점을 잘 안다. 그래서 어느 의원이 누구를 왜 증인으로 신청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증인신청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증인신청실명제는 정책위에서 개정안을 검토 중이며 증인채택소위를 별도로 구성해 회의 내용을 속기록으로 남긴 다음 증인 채택 완료 후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는 일반 증인을 신청한 의원과 신청 이유를 기록해 보관하고 있지만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국감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자면 재벌총수나 기업 대표를 불러야 한다고 맞선다. 한 야당 보좌관은 “자본의 힘이 갈수록 비대해지는 요즘 기업의 횡포와 전횡을 바로잡는데 가장 효과적 방법이 회장의 증인출석 요구”라며 “이는 꼭 필요한 의정활동의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떤 비판과 지적에도 콧방귀도 안 뀌던 기업이 증인출석 요구에는 화들짝 놀라며 죽는 시늉을 한다. 사실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감독기관의 기능이 미흡한 한국에서는 국회의 국감 증인출석 요구는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유력한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 대관업무를 맡고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인들을 국감 증인으로 출석시킬 때는 그 원칙과 기준, 명확한 사유가 제시돼야 한다”며 “묻지마식 증인 신청은 국민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최재필 월간중앙 기자

201510호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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