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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해부] 친박-비박 또 하나의 전선(戰線), 여의도연구원 

공천룰 ‘컷오프’의 저승사자는 누구 손을 들까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새누리당 부설 정책연구원으로 조직개편 재단장… 여론조사실은 당 대표 ‘직할’로 대외비로 운영돼

▎여의도연구원은 단순한 정책연구원이 아니다. 총선 후보자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기관이다. 최근 김 대표와 격렬하게 충돌한 친박계는 당대표의 영향 아래 있는 여의도연구원의 내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 사진·중앙포토
지난 9월 정기국회를 앞둔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부설 여의도연구원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A씨는 갑자기 날아든 통보에 망연자실했다. 연구소를 떠나 달라는 통보였다. 이 연구원에 10년 이상을 몸담으며 한 길을 걸어왔던 그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윗선의 지시’에 따라 행해진 전격 인사조치였다. A씨와 한 팀에서 일하는 동료 두 사람도 비슷한 시간에 ‘퇴출 통보’를 받았다. 이들 세 사람은 일명 ‘숙주’로 불릴 정도로 오랜 세월 연구원에서 붙박이로 일해왔던 핵심 인력들이다.


▎사진·중앙포토
당혹스럽기는 남아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세월 한솥밥을 먹던 동료가 퇴출됐는데 그 사유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단지 연구원 이사장으로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측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된 인사로만 알려졌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여의도연구원에 대한 친정체제 강화 작업에 나섰다는 말도 나돌았다. 덩달아 위기감을 느낀 동료 연구원들도 영문을 모른 채 몸을 사렸다고 한다.

10월 12일 여의도연구원에서는 71차 이사회가 열렸다. 정무파트를 담당하던 팀의 명칭이 ‘연구기획실’로 바뀌는 등 조직개편이 단행됐다. 청년연구센터장이던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이 새 부원장으로 임명됐다. 지난 6월 새 원장 인선에 이어 이번에 부원장도 바뀌는 등 여의도연구원은 상층부에서 허리까지 인적 개편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여의도연구원은 단순한 정책연구원이 아니다. 총선 후보자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여론조사를 주관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이번 전격적인 물갈이 인사와 조직개편이 이뤄진 때도 청와대와 김 대표가 공천룰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던 와중이었다. 때가 때인 만큼 여의도연구원에 불어닥친 인사 회오리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특히 최근 김 대표와 격렬히 충돌한 친박계는 여의도연구원 내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연구원장 임명 두고 일합 겨루기도


▎김무성 대표와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난 6월 여의도연구원의 원장 임명을 두고 정면충돌했다. 10월 8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김 대표와 서 최고위원. / 사진·뉴시스
김 대표와 친박계는 이미 6월에도 여의도연구원 신임 원장 인선을 놓고 일합을 겨뤘다. 연구원장 자리는 민감한 자리다. 각종 선거와 정책 추진과정에서 주요 판단의 근거인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하고, ‘여론’ 비중이 높아질 상향식 공천제 아래에서는 어떤 인물을 임명하느냐에 따라 총선을 앞두고 계파 갈등이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임 원장인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임으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이 내정되면서부터였다. 이는 김 대표의 뜻이었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즉각 반발했다. 박 이사장이 박 대통령과 정치적 궤적을 달리한 까닭이다. 박 이사장은 2005년 박근혜 당시 당 대표가 추진한 행정중심복합도시법(세종시법)에 반대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또 2012년 총선 당시 박 이사장은 ‘국민생각’을 창당해 총선에 뛰어들었다. 이는 보수진영의 분열을 뜻했다. 박 대통령이 대선으로 가는 중대 길목인 총선에서 찬물을 끼얹는 행보를 보인 셈이다. 그런 박 이사장이 여의도연구원의 수장으로 온다는 건 청와대나 친박계로선 악몽과 다름없다. 친박계의 강한 반발에 김 대표는 박세일 카드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는 게 여권의 인식이다. 우여곡절 끝에 청와대와 가까운 비정치인 출신인 김종석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가 신임 원장으로 낙점됐다. 홍익대 경영대학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 교수는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또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와 사단법인 뉴라이트재단 이사도 맡았다. 여권의 관계자는 “김 대표가 새 원장에 대한 신임과 기대가 높고 원장 또한 김 대표와 원만한 관계 구축에 힘쓰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여의도연구원은 중대한 정치적 이익이 걸린 조직으로 자리매김한다. 누가 장악하는가에 따라 총선 공천의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컷오프’ 제도가 도입된 19대 총선 때가 그랬다. 컷오프는 2012년 19대 총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낸 ‘현역 의원 물갈이 룰’이다. 사전 여론조사를 통해 공천 후보군을 압축하는 제도다. 현역의원들의 순위를 매겨 하위 25%에 해당하는 의원들을 공천에서 일괄 배제했다. 이때 여론조사를 실시한 곳이 바로 여의도연구원이다. 컷오프 문턱에서 탈락하면 아예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현역의원 ‘저승사자’로 불리는 컷오프


▎김 대표와 비박계는 일반국민 여론의 비율을 현행 50%에서 70~80%까지 끌어올려야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고 보고 있지만 여론조사가 얼마나 신뢰를 갖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새누리당 당사에 ‘공천권을 국민에게’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다.
당시 전체 지역구 현역 의원 131명(불출마를 선언한 13명을 제외한 수) 중 32명이 탈락됐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공천에서 안상수, 진수희 등 친이계 의원들은 추풍낙엽 신세였다. 서울 지역 20여 명의 친이계 가운데 공천 관문에서 살아남은 의원은 5명에 불과했다. 친이계 좌장이었던 이재오 의원은 당시 “25% 컷오프 조항을 공정하게 적용하고 있다면 최소한 컷오프 탈락자들에게는 그 조사 결과를 열람시켜주거나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의도연구원은 결과 외의 기초자료는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공연한 분란만 가중시킨다는 당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결과만 통보했다. 이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도 공천에서 탈락했다. 자신이 몸담은 조직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물먹은 김 전 부소장은 “이번 공천에서 박근혜 위원장에게 완전히 속았다. 철저하게 정치 사기를 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무성 대표도 컷오프에 걸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당시 여의도연구원은 후보자들에겐 ‘공포의 저승사자’로 통했다.

당연히 김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비박계는 컷오프를 없애 친박계의 전략공천 가능성을 차단하려 든다. 반면 친박계는 신진인사 영입과 정치권 물갈이 차원에서 일정 수준의 컷오프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룰은 당내 설치될 특별기구에서 결론을 내겠지만 당헌·당규 해석부터 절충안 도출까지 적지 않은 진통을 겪으리라는 전망이다.

전운은 이미 감돈다. 10월 5일 김 대표는 “현역 국회의원의 컷오프는 절대 없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구체적으로 공천룰에 대해 언급한 건 이때가 처음이다.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컷오프 문제가 거론됐으나 사안이 민감해 논의를 하지 않았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컷오프는 불가피하며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강세 지역에서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며 “3선 이상 중진들은 당의 요구가 있을 때는 수도권 열세지역 투입을 원칙으로 하는 기준도 있어야 한다”며 중진 차출론도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은 친박계의 지원으로 ‘공천제도 특별기구’ 위원장 하마평까지 오른 상태에서 전략공천의 필요성을 제기한 거라 당내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친박계 핵심 중진 홍문종 의원은 김 대표의 ‘전략공천 제로(0)’ 주장에 대해, “저쪽(야당)은 신식무기로 전쟁을 준비하는데 우리는 구식 따발총으로 전쟁을 준비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총선에 임박할수록 여야는 경쟁적으로 개혁공천을 강조한다. 접전지 당락의 키를 쥔 중간층의 표심을 흡수하고자 변화와 혁신의 기치를 내거는 것이다. 개혁성 경쟁은 보통 현역의원 교체율에서 판가름난다. 역대 총선의 새누리당 지역구 현역의원 교체율을 보자. 한나라당 시절이던 16대 총선에서는 31.0%, 17대 36.4%, 18대 38.5%, 19대 41.7%였다.

친박계가 컷오프를 포기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반대로 미래 권력을 노리는 ‘박근혜 키즈’들 때문이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친박계는 현 정부 들어 청와대와 각 정부부처 등에서 일하며 내년 총선 출마를 꿈꿔온 신인이 많다”며 “이들이 원내에 입성하려면 그만큼 이들에게 주어질 장벽이 낮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 여론조사로 후보의 지지율을 가리게 되면 대부분 현역에게 유리하다. 인지도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입장에서는 후보를 계속 염두하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질문을 듣게 된다”며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어느 후보를 지지하십니까’라고 물어보면 직관적으로 익숙한 이름을 답하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일반 여론조사로 공천자를 결정할 경우 현역의원이 절대 유리해진다는 말이다. 결국 컷오프를 활용해야 현역의원이 탈락한 공간을 통해 신진인사들이 정치권에 진입할 수가 있다.

여론조사실 운영 자체로 파워 행사


▎친박계와 비박계의 공천룰 갈등은 당내에 설치될 특별기구에서 결론을 내겠지만 절충안 도출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지난 7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새누리당 산하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원이 제2라운드 전쟁의 무대가 될 것이라는 배경이 여기 있다. 컷오프나 전략 공천룰에 대한 가닥이 잡히면 지역의 공천 후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관심지역 공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여론조사 기능이 활기를 띠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실이 실무기능을 담당하는 새누리당 산하의 여의도연구원이 권력의 핵으로 부상하게 된다.

여의도연구원이라는 칼자루는 누가 쥐고 있는 걸까? 김 대표는 이 기구의 이사장으로 있다. 또 원장은 앞서 봤듯이 친박의 의중에 따라 김종석 홍익대 교수가 맡고 있다. 김 대표나 친박이나 서로 칼자루를 쥐고자 할 것이다.

여의도연구원은 김 대표의 강력한 영향권 안에 자리한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여의도연구원 핵심 조직이라고 하는 여론조사 파트는 연구원 내부에서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고 했다. 그는 “일설에는 당 대표의 직할 부서처럼 운용된다는 얘기도 있다”고 귀띔했다. 19대 총선 당시의 트라우마도 있고 해서 이 조직의 여론조사 기능은 철저한 비밀에 부쳐질 수도 있다는 것. “총선을 앞두고 특정 지역의 특정 후보에 대한 검증 차원에서 여론조사를 맡길 수 있다. 그런데 조사를 했다는 것이 소문나면 지역이 발칵 뒤집힌다. 현역의원으로부터 항의를 받거나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에 휩싸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조사는 은밀하게 진행이 된다.” 여론조사 기관의 한 관계자는 “여의도연구원은 여론조사실을 운영하는 것 그 자체로 파워를 행사한다”면서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조사를 하는지 모르는 게 더 공포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도 여의도연구원의 동향에 정통하리라는 게 당내 시각이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대선 당시 여의도 연구원 고문으로 상근했고, 조인근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도 여의도연구원 기획조정실장으로 일했다. 총선으로 가는 결정적 관문격인 여의도연구원은 이처럼 이해당사자들이 이중삼중으로 꼬여 있다. 여의도연구원에서 진행하는 여론조사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만 이뤄진다면 이처럼 서로를 의식하고 견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바이어스가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쌍심지를 돋우고 여의도연구원에 관여하려는 것이다.

원래 여론조사는 추세와 동향을 확인하고 이 결과에 따라 의사를 결정해 정책결정에 반영하기 위한 민주정치체제의 산물이다. 정부에는 국정 여론조사를 담당하는 부서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 전문 여론조사기관을 활용한다. 후보단일화의 잣대로 활용되고 공천 결과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대통령의 지지율로 읽혀 그 등락에 따라 청와대 기류가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한다. 대선후보 지지도는 정당 내 역학구도 정립, 정치인 브랜드 제고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공천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후보검증에 필요한 사전여론조사라는 점에서 컷오프는 “후보도 모르게 여론조사를 실시하기 때문에 철저히 대외비다. 변형된 전략공천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당 정책연구원의 여론조사 기능이 각광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의도연구원은 1995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정당정책 연구기관이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의 부설 정책연구소로 출범했다.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를 벤치마킹했다. 지난 20년 동안 국정과제 발굴과 각종 여론조사를 실시하며 당의 정책과 전략 수립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여의도연구원은 평시엔 정책연구가 주업무지만 전시(戰時), 즉 총선이 다가오면 공천작업의 한 축을 담당한다. 공천의 핵심 기준 중 하나인 지역구별 여론조사를 총괄한다. ‘친박(친박근혜계) 학살’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이방호 당시 사무총장은 공천 탈락한 현역의원들의 항의에 당시 여의도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로 맞받아치기도 했다. 여권의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가 천명한 상향식 공천 제도 아래서는 여의도연구원이 제공하는 여론조사 결과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설 여론조사 기관은 보통 1천 명 정도가 표본이지만 우리는 2천 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여의도 정치 현장에서 신뢰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여론조사 표본추출 기준 따라 결과 달라져


▎현재 여의도연구원의 이사장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칼자루를 쥘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 대표가 9월 30일 최고중진연석회의를 마친 뒤 대표실을 나서며 공천룰에 관한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손을 저으며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국회를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들은 여의도연구원이 생산한 자료를 입수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고 한다. 오픈프라이머리,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공천을 둘러싼 이슈와 외교 이슈, 포털 사이트 등 각 분야별로 정책보고서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부분 보고서는 비공개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당 대표와 지도부들이 볼 수 있는 자료들로 대부분 비공개”라며 “예전에 문건 유출이 된 이후로는 자료보안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할 때 잘못된 표본 선정이나 미묘한 질문 차이로 편향된 결과를 유도하는 ‘조작’의 가능성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여론조사기관이라면 여론조사 결과로 장난치는 것은 범법행위라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준점을 특정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설정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마케팅 용어로 생산할 때 주문자의 요구사항만 들어주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상품)과 생산자가 개발과 생산을 책임지고 관여할 수 있는 ODM(제조업자생산방식)으로 비교할 수 있다”며 “클라이언트가 ‘여론조사 기준을 이렇게 설정해달라’라고 의뢰하는 ODM 방식에서는 이에 따른 결과 또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의 표본추출 규칙을 설정할 때 경쟁후보에 비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예측도 가능하다.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특정 후보에게 불리하거나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연령대 구간이다. 일례로 40대를 기준으로 샘플을 구분했을 때 높은 연령층에서 인기가 많은 사람이 지지도가 더 높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 40대 이하를 젊은 연령층으로 구분하면, 49세 이하를 60%, 50세 이상 샘플을 40%로 정한다. 나머지 60% 중에 20대, 30대가 10%만 응답하고, 나머지 50%를 40대가 선택해도 표본 샘플이 다 찼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2030세대에서 인기가 없어도 40대 이상에서 인기가 많은 사람은 대표성이 커진다. 한편 연령구간을 20·30·40·50세 등 10세 구간으로 잘게 쪼개서 설정하면 오히려 전 연령층에서 고루 인기가 있는 사람이거나, 젊은층에서 인기가 있는 사람도 불리하지 않다. 박해성 타임리서치 대표는 “연령별 구간 설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표본추출 설정은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는 후보들의 ‘대표 이력’도 중요한 변수다. 박 대표는 “선거인단을 모집한다고 하면 비주류가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며 “특정 지역구에서 여론조사를 할 때 유권자들에게 정보를 주는 이름과 대표 이력만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약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자, 선거인단을 모집하자, 오픈프라이머리를 하자고 하면 비주류의 반대에 부딪힌다. 이유는 경험에 있다. 지역에서는 지명도가 떨어지는데 정부의 행정관, 비서관을 했다는 이력만 있으면 기간과는 무관하게 수 년간 지역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지지도가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 밑에서, 누구와 함께 일했느냐’는 것이 대표 이력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전문가는 “이렇게 된다면 수도권의 경우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여론조사 전화가 와서 응했을 때 ○○경력을 가진 A후보, △△경력의 B후보라는 선택지를 주면 바로 듣기에 ‘좋아 보이는’ 이력을 지닌 사람을 지지하게 되기 때문에 후보의 능력과 상관없이 왜곡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민여론의 비율이 확대됐을 때 여론조사 방법의 신뢰도가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 대표와 비박계는 일반국민의 비율을 현행 국민 50%에서 최소 70~80%대까지 끌어올려야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약속을 이행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 대표 측은 “새정치연합에서 당원 30%, 국민 70% 여론조사 얘기가 나온 마당에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고 한 새누리당은 최소한 이보다는 국민의 비중이 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친박계는 현행 규정인 ‘국민 50%, 당원 50%’ 유지를 하자고 주장한다. 이 규정은 국민과 당원 선거인단을 구성해 추인하자는 것인데 실제로는 예산의 한계로 잘 이뤄지기가 힘들어 ‘여론조사’로 갈음해왔다. 이 여론조사가 얼마나 신뢰도를 갖추고 있는지는 여전히 설왕설래가 많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후보 승패를 가늠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론조사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박빙일 경우가 더 심하다. 1천 명 조사에서 오차범위는 ±3.1%p 정도다. ‘과학적으로’ 6.2% 범위 안에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오차범위 사이에서 접전을 벌였을 때는 격차라고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범위 안에 들어온 경우에 컷오프 대상이 된 사례도 있다. 박해성 타임리서치 대표는 “반드시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식의 표현을 해줘야 한다”며 “오차범위 내에 있는 것은 절대 우위를 가를 수 없어서 이 경우 승패를 가리는 것은 복불복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후보 승패 가늠하는 수단으로는 부적절

컷오프로 낙천한 새누리당 현역 의원들은 총선을 한 달 앞둔 2012년 3월 ‘불공정 컷오프’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당시 낙천한 현역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컷오프 룰이 편파적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공천 탈락의 주요한 기준인 여론조사를 131명에 대해 실시하지 않고 93명에 대해서만 실시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초선이던 이종혁 전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은 당 사무처가 작성한 컷오프 자료를 언론에 공개하며 “전체 지역구 현역 의원이 아닌 일부 의원에 대해서만 컷오프 여론조사를 실시했다”면서 격분했다.

2014년 지방선거 공천경선에서도 컷오프는 논란에 휩싸였다. 여의도연구원은 컷오프 용도로 보유하고 있는 회선과 외부 ARS(자동응답시스템을 이용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회선을 사용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ARS조사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응답자가 누구인지, 비정상적인 응답은 아닌지 가려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이라고 응답하거나, 초등학생이 60대라고 번호를 누르는 경우에도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불가능하다.

여의도연구원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처럼 한두 가지가 아니다. 총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선거 여론조사를 전담하는 기구를 뒀다는 점에서 총선 출마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운다. 여의도연구원이 이번 싸움의 새로운 무대가 될 것이라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여의도연구원은 ‘컷오프’와 전략공천을 둘러싼 당청 갈등의 숨은 ‘뇌관’이 될 수도 있다.

- 글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 사진 오상민 기자

201511호 (20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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