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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초점] ‘친노’의 분화 시작되나 

선발투수(문재인) 흔들리자 구원투수(안희정) 몸풀기 시작 

2007년 대선 패배 후에도 각자도생하다 2011년 야권통합으로 재결합한 경험 있어… 문재인 대세론 흔들리고 신당 창당 선언 잇따르면서 당 안팎에서 ‘안희정 대안론’ 부상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흔들리는 사이 친노 일각에서 ‘안희정 대안론’이 부상하고 있다. 지난 3월 5일 세종시 금남면에 있는 한 갤러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문 대표(왼쪽)와 안 지사. / 사진·중앙포토
2012년 총선과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문재인 중심의 단일대오를 형성했던 친노가 20대 총선을 반년쯤 앞둔 시점에서 파열음을 낸다. 당권을 쥔 문재인 대표를 옹위(擁圍)하는 ‘부산친노’와 비(非)부산친노, 즉 정치적 친노가 서로 다른 속내를 내비치는 것이다. 여야를 통틀어 결속력이 가장 강한 정치집단으로 평가받는 친노는 각자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더 강한 응집력을 보일 것인가?

새정치민주연합은 술렁거렸다. 지난 9월 10일, 당대의 대표적 부산친노인 최인호 새정연 혁신위원(부산 사하갑 지역위원장)이 친노의 좌장(座長) 격인 이해찬 의원에게 ‘칼끝’을 겨눴다.


▎2002년 3월 10일 민주당 대선후보 울산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처음으로 1위에 오르자 배우 명계남(맨 오른쪽)과 문성근(맨 왼쪽) 등 노사모 회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이 전 총리는 친노의 제일 큰 어른인 만큼 백의종군함으로써 계파싸움의 악순환을 끊는 마중물이 돼달라. 이 전 총리부터 결단하는 것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출부터 지금까지 커져온 고질적 싸움을 멈추게 할 수 있다. 내년 총선 때 세종시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누를 후보이고 한 석이 아쉽지만 10석을 위한 결단을 내려주는 게 제일 큰 어른의 역할이다.”

친노인사가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까지 좌장의 총선 불출마와 함께 사실상 정계은퇴를 촉구한 것은 ‘반란’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 새정연의 한 관계자는 “친박 핵심이자 대통령 정무특보를 맡고 있는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얼마 전 ‘김무성 대권 불가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보다 훨씬 강도가 셌다”며 “기자회견 전에 문 대표와의 사전교감설도 들렸다”고 귀띔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타임리서치’의 박해성 대표는 “최 위원의 발언은 당을 살리기 위한 충정이자 용기 있는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최 위원처럼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부산친노’와 이 전 총리 같은 ‘정치적 친노’의 결은 다르기 때문에 그의 도발적인 발언을 친노 분화의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노의 또 다른 ‘대표선수’인 안희정 충남지사의 최근 언론 인터뷰 내용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하다. 안 지사는 “저는 시합(대선)에 나서기 전 여러 가지 구종(球種)을 익히고 있는 불펜투수”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도전 시점이 차기가 될지, 차차기가 될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야권의 대표적인 잠룡(潛龍)인 안 지사가 문 대표의 행보와는 별개로 대권 도전의사를 분명히 한 점은 눈길을 끈다.

총선을 6개월쯤 남겨둔 시점에서 친노 내부에서 파열음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정치권에서는 새정연의 4·29 재·보선 참패(0대 4) 이후 문 대표의 리더십 불안과 신당 출현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비노(非盧)가 제기하는 ‘문재인 불가론’과 맞물려 호남발(發) 신당 창당이 이어지자 일부 친노가 대안을 모색하고 나섰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분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해성 대표는 “지난 9월 혁신위원회가 혁신안(내년 총선 후보를 일반시민 100%로 구성된 국민공천단 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골자)을 발표할 즈음, 문 대표가 돌연 자신의 재신임 카드를 던진 것도 당 안팎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새정연 내 친노는 문재인계, 김근태계(민주평화국민연대, 이하 민평련), 정세균계 등 세 갈래로 나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소속의원 127명 가운데 약 80명을 ‘범친노’로 볼 수 있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난해 말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던 새정연의 자체 의원 성향 분석자료에 따르면 현역의원 126명(당시 기준) 가운데 친노가 55명(민평련, 정세균계 제외)이었고, 이 가운데 문재인계가 33명으로 가장 많았다. 또 71명을 비노로 분류했는데 손학규계(15명), 김한길계(12명), 민평련계(8명), 박지원계(7명) 순이었다.

80년대 부산에서 출발해 청와대 입성까지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6월 2일 서울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참여정부평가포럼 6월 월례강연회에 참석, 안희정 포럼 상임집행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이병완 포럼 대표. / 사진·중앙포토
지금은 당내 최대세력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친노의 출발은 미미했다. 이른바 친노 1기는 80년대 부산에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은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문재인 대표,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당시 여행사 대표)과 인연을 맺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로는 이호철 전 수석과 이광재 전 강원지사,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 등이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낙선하자 이듬해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열었다. 이때 안희정 충남지사, 서갑원 전 의원 등이 합류했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도 연구소장으로 영입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자리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386세대를 중심으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결성됐다. 최초의 인터넷 ‘팬클럽’ 형식의 노사모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전국적 조직을 만들었다. ‘노사모’에서는 배우 문성근과 명계남, 정청래 의원 등이 핵심멤버였다.

2002년 노무현 대선후보의 캠프가 있던 여의도 금강빌딩의 이름을 딴 ‘금강팀’에서는 염동연 전 의원과 이강철 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이 당내 조직 총괄을, 유시민 전 국민참여당 대표, 정태인·유종일 교수 등이 정책을 담당했다. 또 이해찬·천정배·이재정·임종석·김원기 의원, 원혜영 부천시장 등이 노 후보를 도왔다.

친노 2기에는 청와대에 입성하는 인사들과 열린우리당 핵심 인사들이 추가됐다. 관료 출신 가운데 청와대로 유입된 친노로는 이용섭·김진표·송민순 전 의원 등이 있다.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 창당은 ‘친노정당’의 탄생을 알렸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152석)을 차지하며 친노 결집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이뤘다. 하지만 ‘100년 정당’을 자부하던 열린우리당이었지만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과 함께 친노가 분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노사모에 뿌리를 둔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와 국민참여연대(국참연)가 당권을 놓고 대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적자(嫡子) 논쟁을 벌였던 두 조직은 정당개혁과 기간당원제 강화라는 같은 목표를 지향했지만 국참연은 실용노선의 염동연·송영길 후보를, 참정연은 개혁노선의 유시민·김두관 후보를 밀었다.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대패하고 2008년 1월 손학규 대표 체제가 출범하자 이해찬 의원은 “한나라당 출신이 당대표를 맡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며 탈당과 함께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다른 친노 인사들은 미래발전연구원, 노무현재단, 봉하재단 등으로 흩어져 각자도생(各自圖生)했지만 안희정 지사와 이광재 전 지사 등 참모진과 김원기·한명숙 등 현역의원들은 노 전 대통령의 만류로 당에 남았다.

친노 핵심 중 한 명인 안희정 지사가 2007년 12월 대선 패배 직후 “친노라고 표현돼온 우리는 죄 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폐족(廢族)”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친노는 사실상 해체의 길을 걷는 듯했다.

부산친노 중심 돼 ‘친문’으로 결집


▎이해찬 국무총리(왼쪽)가 2004년 7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문재인 시민사회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친노가 주축이 된 ‘혁신과 통합’, 한국노총, 진보시민단체 등과 합쳐 민주통합당이 탄생했다. 이해찬 의원과 문재인 대표 등이 ‘혁신과 통합’을 만들어 민주당과 합당한 것과 달리 참여정부평가포럼을 결성했던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이백만 노무현시민학교 교장, 천호선 정의당 대표, 이재정 전 의원 등과 유시민 전 의원이 대표로 있던 국민참여당은 민주노동당 등과 합쳐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19대 총선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흩어져 있던 친노가 또 한 번 뭉치는 계기가 된 것이다.

2012년 1·15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쥔 한명숙 민주통합당 초대 당대표가 김기식·남윤인순·도종환·은수미 등 시민단체 인사들을 비례대표로 공천해 국회에 대거 입성시킴에 따라 친노는 단숨에 당내 최대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새정연 내 일부 비주류 측에서 비례대표 폐지 또는 축소를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경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면서 친노 3기가 결집한다. 문 후보의 최측근 참모진으로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함께 일했던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 전해철 의원(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호철 전 민정수석 등 이른바 ‘3철’이 있다. 이들은 대선 과정에서 “친노인사들이 대선캠프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자 2선으로 물러나긴 했으나 지금까지도 문 대표의 측근이자 친노의 핵심이다.

청와대 출신 측근그룹으로 정태호 전 청와대 대변인, 윤건영 전 대통령 정무기획비서관과 윤후덕·박남춘·김용익 의원 등도 참여정부 출신이다. 이들도 ‘친노 독식론’이 거세지자 ‘3철’과 함께 대선캠프에서 물러났다.

문재인 후보의 대선 패배 후 참여정부 비서진 출신과 대선 캠프 출신 의원들을 주축으로 ‘문지기’ 모임이 결성됐다. 모임에는 김경협·김용익·김윤덕·김태년·김현·노영민·도종환·박남춘·우윤근·윤호중·전해철·홍영표 의원 등이 참여했다. 전해철·박남춘·김경협(전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김현(전 청와대 춘추관장)·김용익(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근무 경력이 있다.

문재인 캠프에 몸담았던 인사로는 우윤근(공동선거대책 본부장)·노영민(비서실장)·홍영표(상황실장)·윤호중(사무총장) 의원이 있다. 홍 의원은 저서 <비망록>을 통해 문재인·안철수의 대선후보 단일화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고, 윤 의원은 문재인의 대변인 노릇을 했다. 노 의원은 민평련 출신이지만 대선경선부터 문 대표의 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대선 패배 후 2년 가까이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던 문 대표는 올해 2월에 치러졌던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시 신발 끈을 조였다. 그리고 박빙승부 끝에 박지원 의원을 따돌리고 당권을 거머쥐었다.

문 대표가 대권 재수를 결심하고 당권에 도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친문’으로 거듭난 부산친노가 있다. 문재인의 사람들, ‘친문’ 역시 뿌리는 친노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함께 일한 수석비서관들과 2012년 대선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인사들이 주축이다.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이정호 부경대 교수,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한 이호철 전 민정수석, 최인호 사하갑위원장, 송인배 양산지역위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법조계에서는 법무법인 ‘부산’의 정재성 변호사가 눈에 띈다.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 변호사는 선거 때마다 문 의원을 보좌한다. 연제구지역위원장인 김해영 변호사도 빼놓을 수 없다. 김 변호사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부산선거대책위원회 법률단장을 맡기도 했다.

지역위원장 중에는 박재호 남구을 위원장,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해성 중동구위원장, 한국거래소 이사장 출신의 이정환 남구갑위원장, 이재강 서구위원장, 청와대 행정관 출신의 전재수 북강서갑위원장 등을 들 수 있다.

‘충청 대망론’ 품고 불펜으로 나온 안희정


▎2012년 11월 국회에서 열린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왼쪽)가 안철수 무소속후보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야권의 차기 대선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안희정 충남지사의 최근 행보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안 지사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펜투수론’을 강조하고 나섰다. ‘불펜투수론’은 안 지사가 강조했던 ‘김대중·노무현의 장자론’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으로 ‘안희정 역할론’으로도 읽힌다.

인터뷰에서 안 지사는 “시합에 나서기 전 여러 가지 구종을 익히고 있는 불펜투수”라고 자신의 위치를 설명했다. 안 지사는 또 “기회가 오면 1이닝이라도 정확하게 던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대권 도전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친노의 대안’으로 평가받는 안 지사가 ‘불펜투수론’을 꺼내든 시점에 정치권에서는 적잖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4·29 재·보선 참패 이후 친노의 ‘대표선수’인 문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안 지사가 대권 도전의지를 밝힌 것 자체가 의미가 작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대권 잠룡(潛龍)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차원을 넘어 ‘선발투수(문 대표)’가 무너지면 언제든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안 지사의 ‘불펜투수론’은 친노뿐 아니라 야권 지지층 전체를 향한 어필이라는 분석도 이어진다.

이지호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정치학) 교수는 “야권이 어려운 시점에서 안 지사가 불펜투수를 언급한 것은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며 “문 대표의 입지가 흔들릴 경우 대안이 필요할 텐데 그런 측면에서 안 지사가 자신의 ‘역할론’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새정연 입장에서도 안 지사의 ‘불펜투수론’은 나쁠 게 없다”고 해석했다.

박해성 대표는 “‘충청 대망론’을 품고 있는 안 지사가 대권 도전의지를 밝힌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앞으로 변수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도전 시점이 차기인지, 차차기인지는 단언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경험, 두 차례 충남지사 당선 경력 등을 감안하면 야권에서 안 지사만한 정치적 자산을 가진 인물도 흔치 않다”고 말했다.

박범계(대전)·이해찬(세종)·나소열(충남)·노영민(충북) 등 새정연의 충청권 4개 시·도당위원장을 모두 친노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도 안 지사에게는 힘이 된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이해찬 의원이 문 대표 대신 안 지사를 미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안희정 대안론’이 탄력을 받고 있다.

안 지사는 자신의 발언 등과 관련한 ‘민감한 해석’을 염두에 둔 듯 “정치하기 싫어하는 분(문 대표)을 (당에) 모셨다. 그분이 당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하면 좀 더 응원해 줘야 한다. 어떤 분열행위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문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안 지사가 손사래를 칠수록 친노 내부적으로 구심력(求心力)이 아닌 원심력(遠心力)으로 작용하면서 분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부산·경남(PK)를 기반으로 하는 문 대표는 선명성과 대여(對與) 투쟁에 초점을 맞추면서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는 반면, 충청권을 근간으로 하는 안 지사는 중도·실용노선을 내세워 대중적 지지를 끌어 모으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도 문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 강경파’와 ‘친노 실용파’ 간의 분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 지사 측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불펜투수의 등판 여부와 시점은 감독(국민)만이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선수는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야 감독이 불렀을 때 마운드에 올라가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안 지사가 불펜투수 이야기를 한 것은 자신이 지금 당장 마운드에 올라가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선발투수가 더 잘 던져줬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되돌아보면 문 대표와 안 지사는 민감한 현안을 두고 적잖은 견해차를 보여왔다. 노무현이라는 한 뿌리에서 태어났지만 줄기가 다른 만큼 두 사람의 생각과 입장이 다른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2013년 여름,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문제를 놓고도 두 사람은 정반대 목소리를 냈다. 문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발언 확인 시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며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는 대화록 원본 공개를 제안했다. 이에 안 지사는 “국민은 대통령기록물의 공개와 전임 대통령을 정쟁(政爭)에 끌어들여 공격하는 일에 대해 옳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원본 공개에 반대했다.

한 뿌리, 두 줄기의 숙명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김근태 선대위원장(오른쪽) 등 선대위 지도부가 2004년 4월 16일 당사에서 열린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17대 총선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정 의장의 옆으로는 한명숙 의원, 조세형 전 의원. / 사진·중앙포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가 18대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을 때도 두 사람은 극명한 입장차이를 보였다. 문 대표는 재협상을 요구했지만 안 지사는 “노무현 정부의 협상은 잘됐지만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으로 나빠졌으니 비준에 반대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며 한미 FTA 비준 반대론자들을 비판했다. 두 사람의 본격적인 ‘다른 행보’의 시작을 이때부터로 보는 시각도 있다.

18대 대선후보였던 문 의원은 ‘부산친노’를 중심으로 선거를 치렀고, 안 지사는 대선 기간 중 문 의원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오히려 안 지사는 문 의원의 경쟁자였던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 회동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같은 ‘친노’이긴 하지만 태생과 정치적 색깔은 많이 다르다. 즉 한 뿌리의 두 줄기”라며 “정책이나 현안 등을 놓고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안 지사는 1994년 노 전 대통령이 만든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장으로 참여하면서 ‘노무현의 남자’가 됐다. 이때 안 지사와 함께한 사람이 이광재 전 강원지사다. 이후 안 지사는 줄곧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안 지사는 2002년 대선 때 후보캠프에서 자금 등 궂은일을 맡았고, 정작 노 전 대통령 재임 때는 불법대선자금 등의 책임을 지고 1년간 옥고를 치렀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008년 1월 안 지사의 출판기념회에 보낸 동영상 메시지에서 “나는 안희정 씨에게 엄청난 빚을 졌다”고 말하다가 눈물을 쏟아낸 일화가 있다.

안 지사는 출소 후에도 “대통령에게 폐를 끼칠 수 없다”며 참여정부 5년 동안 어떤 공직도 맡지 않고 야인으로 지냈으며 18대 총선 때는 당 공천에서도 배제됐다. 하지만 2008년 ‘민주정부 10년 계승론’을 앞세워 전당대회에 출마해 지도부에 입성했고 2010, 2014년 지방선거에서 잇달아 충남지사에 당선됐다.

반면 문 대표는 노 전 대통령 부산인맥의 ‘간판’으로,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비서실장 등을 지내며 참여정부 내내 대통령을 보좌했다. 문 대표는 1982년 부산에서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열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1998년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로도 문 대표는 변호사로 일했고, 2002년 대선 때 부산선거대책본부장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문 대표는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국민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으며 실질적인 상주(喪主) 역할을 했다.

새정연의 한 관계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부산친노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연결고리로 하는 정치적 친노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며 “문 대표가 대선에서 이미 한 차례 실패한 만큼 이전과 같은 단일대오 형성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 문 대표와 안 지사는 시소의 서로 맞은편에 올라타 있는 운명”이라고 말했다.

끊임없는 ‘리크루팅’, 소멸은 없다

문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가운데 안 지사가 부상하는 것이 일시적으로는 친노의 분화로 비칠지 몰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되레 친노의 결속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지호 교수는 “친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그 이후 ‘신화화(神話化)’ 과정 속에서 대중적 기반이 한층 탄탄해졌다. 따라서 만 19세를 갓 넘긴 젊은 유권자 가운데 반드시 친노는 생기게 마련”이라며 “이처럼 끊임없이 리크루팅(충원)되기 때문에 친노는 정치인 몇 사람이 퇴장하거나 세가 나뉜다고 해서 소멸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 등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는 내부적으로 분화가 생길지 모르겠지만 결국엔 다시 합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돌이켜보면 과거에도 친노의 분화 조짐은 있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한 몸’을 유지했다. 가장 가까이는 2011년으로 당시 친노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유시민 전 의원,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를 지지하는 삼분(三分) 양상을 띠었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손 전 대표를, 안희정 충남지사는 정 전 대표를 지지했다. 친노는 2007년 대선 참패 후 여러 갈래로 나뉜 채 퇴화되는 듯했다. 그러던 친노는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뭉쳐 이전보다 더 크고 단단한 몸집을 만들었다.

반면 친노는 태생적으로 결이 다른 집단들의 연대인 만큼 분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해성 대표는 “친노는 지역(부산), 정치(진보), 팬클럽(노사모)의 연대이다. 따라서 부산친노를 기반으로 하면서 선명성을 강조하는 문 대표와 중도·실용주의 성향의 안 지사 간의 분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대표는 이어 “그럼에도 친노 내부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그림은 문 대표가 선발투수로 등판하고 안 지사가 불펜에서 구원등판을 준비하는 모습일 것”이라며 “이 그림이 깨진다는 것은 곧 안 지사가 2017년 대선에 출마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 과정에서 파열음은 더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분석과 전망, 정치지형 등을 종합해보면 내년 총선의 결과가 친노에 큰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총선에서 패한다면 문 대표 체제가 막을 내리게 될 가능성이 크고, 그럴 경우 안 지사의 조기 등판을 재촉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 대표는 “총선에서 패배하면 정치적 미래(대선)는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

새정연의 한 관계자는 “만일 문 대표가 2선으로 물러난다면 친노는 곧바로 대안을 찾을 텐데 현실적으로 안 지사가 가장 유력할 것”이라며 “안 지사 측에서는 충청을 기반으로 하되 호남과 PK까지도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201511호 (20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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