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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총선 D-150, 입 다문 새누리당 수도권 의원들 왜? 

“내년 선거는 박근혜의 선거니까…” 

개헌·국정교과서·영남권 물갈이 등 메가톤급 이슈에 설 자리 잃어… 1천 표 안팎의 박빙 승부 앞두고 대통령에게 기대고자 몸 사려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새누리당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11월 중순 조찬을 함께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에게서 1987년 6·29선언 관련해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얘기를 접했다. 6·29선언은 5공화국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직선제 개헌, 구속자 석방, 김대중 연금 해제 등 야당과 시민사회가 요구해온 민주화 조치를 전격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정국의 큰 물줄기를 바꾼 일대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당시 민정당의 산파역이자 원내대표를 지낸 핵심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정 의원은 이 전 원장에게 ‘전두환 대통령의 민정당 시절 어떻게 6·29선언과 같은 상상력을 발휘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 전 원장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쏟아져 나왔다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당시 가락동 연수원에서 의원총회를 열었다는데 홍성우 의원이 ‘직선제를 해서 돌파해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리가 정권을 못 잡는다’는 등의 폭탄성 발언을 하길래 시당위원장 등 당 지도부가 급히 말렸다고 한다. 간신히 분위기를 진정시켰더니 이번에는 검사 출신의 이용훈 의원이 나서 ‘직선제를 해서 대담하게 정면돌파해야 한다’고 맞장구를 치더란다. 또 홍성우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같은 얘기를 하고…. 침묵을 지키던 다른 의원들마저 동조하고 나서자 이춘구 사무총장이 나서 토론을 중단시키고 대외에 함구해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정 의원이 이런 일화를 전하는 데는 지금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처한 고단한 현실이 반영돼 있다. 그는 “지금의 새누리당 의총과 비교해보면 그때가 훨씬 민주적이고 용기가 있었던 것 같다”고도 말했다. 거의 3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는 이유도 바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 때문이다. 정 의원은 국정화라는 게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정책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도 새누리당 의원들이 소신을 소신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했다. “나한테 누가 그랬다. (새누리당에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사람이 몇 안된다고. 그게 아니다.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안되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들이 말을 못하는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 철권통치의 서슬이 퍼렇던 5공 시절에도 여당 의원들이 소신발언을 하는데 지금의 새누리당 의원들은 주눅이 잔뜩 들어 몸 사리기에 급급하다는 게 정 의원의 새누리당 관전평이다. 심지어 “응당 할 말 하는 정치인을 소신 있는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아직 우리나라가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걸 반증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예전에 흔히 과거로 회귀하는 걸 빗대 ‘도로 민정당’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지금은 민정당 분들께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수도권도 박 대통령의 ‘마력(魔力)’에 홀리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교과서를 소신껏 반대하지도 못할 정도로 당내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있다고 주장한다.(왼쪽) / 지난 4월 미래연대·수요모임·민본21 등 중도개혁 성향의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 30여 명이 국회 사랑재에서 모임을 가졌다. 요즘은 쇄신파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평가다. / 사진·중앙포토
지금의 청와대와 새누리당 간 소통이 잘 안 된다는 비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소통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달고 다녔다. 하지만 얼마 전 청와대 행사에 참석한 여권의 한 인사는 박 대통령 참모로부터 정반대 얘기를 듣고서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참모가 “가까이서 모셔보니 박 대통령이 소통을 못하는 게 아니라 수석이나 장관들이 대통령과의 소통을 꺼리는 경향이 있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진지한 대화와 토론을 하려 드는데 내공이 없거나 국정철학에 대한 신념이 약한 이들이 슬금슬금 대통령을 피한다는 것이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대통령 앞에 장관, 수석 비서관들이 눈치를 보며 겉도는 경향이 있으며 여기에는 새누리당 의원들도 예외는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 인사는 전했다. 이 참모가 어떤 취지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요즘 박 대통령의 언행에 힘이 넘쳐 보이는 것만은 분명하다. 당청관계 재정립은 물론 국정교과서 논란, 내년 총선 문제에 이르기까지 소신 표명에 거침이 없다.

지켜보는 새누리당 수도권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마력(魔力)’에 홀리기라도 한 듯하다. 최근까지 정국을 후끈 달군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만 해도 정부의 확정 고시 이후 수도권 의원들의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서울의 이재오·정두언·김용태 의원 등이 박 대통령에 맞서 날을 세우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수도권 국회의원, 원외 당협위원장은 너나없이 깊은 침묵모드로 빠져들었다.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 국무회의 가리지 않고 국정교과서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마당에 어깃장을 놓았다가는 이로울 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1천~2천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수도권 선거에서 박 대통령 지지자들의 미움을 샀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총선을 5개월 앞둔 여당 의원들이 지금처럼 조용한 적이 언제 또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새누리당을 둘러싼 정치 환경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급변한다. 공천 룰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살벌한 대치를 거듭하더니 최근 들어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선에서 전에 없던 찰떡궁합을 과시한다. 이 와중에서 대구·경북(TK) 정치권 물갈이론이 정국을 후끈 달군 데 이어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이 뜬금없이 제기한 ‘이원집정제 개헌론’까지 정치권 이슈로 떠올랐다. 개헌론과 TK 물갈이론은 친박계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 가능성과 맞물릴 수도 있어 총선을 앞둔 여의도 정치권이 뒤숭숭하기 그지 없다.

새누리당 수도권 의원들 입장에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곤혹스러울 따름이다. 정치상황이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른 까닭이다. 내년 총선에서 최대 승부처가 될 수도권의 의원들이 요즘은 국외자로 전락한 느낌이다.

TK 물갈이가 서울 선거를 망치는 경우의 수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11월 3일 국회 의원총회에서 올바른 역사교과서 만들기와 민생·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 사진·중앙포토
교과서 국정화와 공천 물갈이 같은 핫이슈에서도 수도권은 철저히 변방에 밀려나 있다. 자연 고려대상에서도 빠져 있다고 서울 의원들이 입을 모은다.

한국갤럽이 2015년 11월 첫째 주(3~5일)에 전국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자.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53%가 반대 입장을, 36%가 찬성 입장을 밝혔다. 서울·인천·경기는 반대가 56%로 평균을 웃돈다. 총선이 치러지는 내년 4월까지 국정교과서 이슈가 맹위를 떨친다면 득표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는 게 대체적 인식이다.

10% 안팎의 무응답층, 내지 중간층도 여당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나이든 유권자들은 이미 새누리당 쪽에 포함된 상태이며 중간층 대부분은 국정교과서 논란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새누리당 서울시당의 진단이다. 김용태 서울시당위원장은 “균형추 역할을 하는 10%의 중간층을 놓고 국정교과서 여론을 따진다면 우리가 2대 8, 혹은 3대 7 정도로 불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국정교과서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의연하게 나가는 것은 좋지만 서울 선거의 관점에서 보자면 문제를 제기하고 우려를 표명할 수 밖에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정두언 의원은 11월 1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친박 TK 패권주의 세력이 당을 주도하다 보니 당이 수도권에 관심이 없고 민심을 알지도 못한다”고 푸념했다. 새누리당이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려면 수도권에서 이겨야 하는데 수도권은 중도적인 데 반해 새누리당은 강하게 오른쪽으로 간다고 진단한다. “그러니 수도권 의원들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TK, 나아가 영남권 물갈이만 해도 수도권 입장에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예기치 않은 유탄이 걱정된다. 수도권 선거 지형이나 정국 이슈 측면에서 새누리당이 야권에 밀리는 건 사실이지만 그나마 위안이라면 야당은 분열이라는 고질병을 앓는다는 점이다. 야당이 쪼개질 때 새누리당은 똘똘 뭉쳐야 불리한 여건을 만회할 수 있다. 영남권에서 꿈틀대는 물갈이 바람이 ‘강 건너 불’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의 하나 영남권에서 공천싸움이 내분으로 번져 유력 새누리당 의원들이 집단 탈당해 무소속 연대를 꾸리거나 신당이라도 만드는 날에는 수도권까지 그 불통이 튄다. 특히 함량 미달의 신인이 낙점을 받는 영남권 선거구에서는 현역 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김용태 서울시당위원장은 “영남권에서 새누리당을 이탈한 정치인들이 정당이나 결사체를 만드는 날에는 서울에서도 여기에 올라타는 보수성향의 출마자들이 나오게 된다”면서 “이들이 1천~2천 표만 가져가도 새누리당은 아주 참담한 지경에 빠져들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영남권 물갈이가 통제 불능의 사태로 치달을 경우 수도권 선거에도 치명타가 된다는 분석이다.

연장선상에서 그는 전략공천을 하더라도 민주당이 강한 지역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구를 내리꽂아도 당선되는 영남권과 서울의 강남권에 하는 전략공천은 사천(私薦)일 뿐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 수석비서관 등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이 강세를 보이는 서울의 지역구에 출마해 안정적인 국정기반을 다지는 게 바로 전략공천의 본질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흐른다. 김 위원장은 “이른바 박심(朴心)을 업었다는 인사들 대부분이 영남권에 눈독을 들인다”면서 “이들 중 누구도 험지에 몸을 내던지지 않는다는 게 바로 새누리당 서울 선거의 맹점”이라고 혀를 찼다.

되살아나는 2014년 지방선거의 악몽


▎지난해 6월 지방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가 부인 강난희 씨와 함께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울은 전통적으로 야세(野勢)가 강한 지역이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48석 중 16석을 얻었고 이후 보궐선거에서 얻은 관악 을 의석을 더해 지금은 17석을 보유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적어도 17석은 얻어야 본전이다. 승리한 지역구 면면을 보면 아슬아슬한 곡예를 연상케 하는 곳도 적지 않다.

보수당의 텃밭이라 할 강남3구(7석)와 중산층이 밀집한 용산, 강동 갑, 양천 갑 정도가 비교적 수월한 선거를 했다면 나머지 6개 선거구(은평 을, 서대문 을, 양천 을, 강서 을, 노원 갑, 동작 을)에서는 예측불허의 접전이 벌어졌다. 예컨대 은평 을의 경우 야당 표(통합진보당 48.4%, 정통민주당 2.15%)가 분열되지 않았다면 새누리당(49.5%)이 고배를 마셨을 것이다.

새누리당 이재오 후보는 당시 정통민주당 후보가 2천700표 가까이를 가져가는 바람에 통합진보당 천호선 후보에게 1400여 표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다. 서대문 을의 정두언 후보(3만5380표) 또한 민주통합당(3만4755표)과 정통민주당(806표) 후보의 단일화가 이루어졌더라면 여의도 국회 입성이 좌절됐을 운이다.

지난해 지방선거도 새누리당 서울 의원들에게는 악몽과도 같다. 서울시장, 교육감 선거의 패배는 차치하더라도 구청장, 시의회, 구의회의 주도권 마저 줄줄이 야당에 내줬다. 서울시내 구청장 25개 중 20개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넘어갔다. 텃밭이라 할 강남 3구와 중구, 중랑구만 건졌을 뿐이다. 서울시의원 선거에서도 72대 24로 일방적으로 밀렸고, 구의원 선거에서도 191대 171로 뒤졌다. 서울시장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후보가 얻은 56%는 서울의 국정교과서 반대 응답(56%)과 정확히 일치한다. 새누리당 서울 의원들이 좌불안석인 이유다. 그나마 10·28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이 약진했고,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48%를 얻어 51%를 얻은 문재인 후보를 바짝 추격한 게 근래의 가장 좋은 성적표다. 김용태 서울시당위원장은 “선거는 후보자, 선거 운동, 정국 이렇게 3개 요인으로 치르게 되는데 서울의 야당 조직은 잘 짜여 있는 데다 바람을 타기도 한다”면서 “반면 새누리당은 박근혜라는 이름으로 버티는 모래알과 같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경인 지역은 혼조세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경기도에서 21석을,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이 29석을 가져갔다. 야권연대를 통해 통합진보당이 챙긴 2석을 더하면 여야 의석 분포가 21대 31로 야세가 강한 지역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남경필 새누리당 후보가 신승을 거둔 데 이어, 정당득표율에서 새누리당(48%)이 새정치민주연합(43.8%)을 앞섰다.

여야 모두 승리를 장담하는 경인지역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시 새누리당은 서울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윤상현 당시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지지를 호소했다. / 사진·중앙포토
반면 광역·기초의회선거에서는 야당이 앞서는 등 전반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곳이 경기도다. 새누리당 경기도당은 내년 총선에서 여세를 몰아 60%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새누리당 쇄신모임인 정치연대플러스 소속의 김순택 시흥 을 당협위원장은 “도농이 혼재하는 경기도 선거는 여전히 지역 발전론이 국정교과서 논란보다 더 파급력이 큰 이슈”라면서 “2012년 총선 이래 지역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호전되고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는 10·28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맛본 승리감에 기인한다는 측면도 있다. 새누리당은 경인지역 광역·기초의원 선거구 8곳 중 7곳에서 후보를 당선시켰다. 선거전 새누리당 2명, 새정치민주연합 6명이었던 점을 견줘볼 때 양호한 성적이라 하겠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참패한 10·28재보선에서 희망을 찾는다. 표밭에서는 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득표전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고 새정치민주연합 인천시당 권보근 대변인이 전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승리한 인천 서구 제2선거구가 그렇다. 야당은 이곳의 투표율이 전국 9개 광역의원 선거구 중 가장 낮은 11.5%에 머물자 조직선거에서 진 것으로 여겨 일찌감치 기대를 접었다고 한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극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30~40대 학부모들이 밀집한 청라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몰표가 쏟아졌다. 권 대변인은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50대 초반 이하 학부모들이 대거 야당을 지지한 것”이라며 “국정교과서 이슈가 확실히 선거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또 10·28 재보궐선거는 야권의 단일화가 왜 절실한가를 증명한 선거라고 야당은 의미를 부여했다. 인천시의원을 선출하는 부평구 제5선거구에서는 당선된 새누리당 후보가 얻은 표(40.5%)가 야당인 정의당(28%), 새정치민주연합(26%)이 얻은 표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야당이 힘을 합치면 승산이 있는 곳이라는 게 새정치민주연합의 설명이다. 권 대변인은 “선거는 졌지만 국정교과서 이슈가 야당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고, 야당의 분열은 필패라는 교훈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과 천정배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은 뿌리와 성향이 비슷해서 유권자들은 양당간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지적한다. “새누리당에 부담을 주는 국정교과서 같은 이슈가 발생해도 집안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야당은 반사이익을 담아내지 못한다.” 국정교과서 문제에 보수층은 결집하고, 진보층은 분노한다. 그 사이의 중간층은 답답함을 느낀다. 정부 여당의 일방주의에는 반감을 갖지만 그렇다고 쪼개진 야당을 신뢰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야당을 지지하는 대신 정치에 대한 관심을 거둬들일 공산이 크다는 게 정 교수의 진단이다. “새누리당에 비판적인 이들을 받아낼 곳이 없기에 새누리당의 위기의식도 자극되지 않는다. 청와대는 계속 밀어붙일 것이고 분열된 야당은 유권자들의 짜증을 유발하게 된다.”

이처럼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수도권·지방 할 것 없이 모두 불확실성의 시대를 산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여야 모두 공천룰이 미정인 관계로 어떤 상황에 직면해서든 본선(총선)의 유불리보다는 예선(공천)의 유불리를 먼저 따지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수도권 의원들은 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국정교과서 드라이브를 그저 불안한 눈으로 바라다볼 뿐이다. “지금 시점에서 내년 총선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는 건 성급하다”고 박성민 민 컨설팅 대표가 말했다. 새누리당 수도권 의원들이 정국 이슈에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는 배경으로 이해된다.

국정교과서는 야당에 주어진 ‘정치적 장난감’?


▎2012년 대선 당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유세현장에 지지자들이 모여 있다. 박 후보는 48%를 얻었다. / 사진·중앙포토
수도권 선거와 관련해 국정교과서 논쟁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모두에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일단 새누리당은 “총선에 불리해도 국정화는 추진하겠다”(김무성 대표)고 말하는 등 선거에 불리한 소재임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고 반드시 야당에 이롭다고만 볼 수 없는 게 바로 교과서 국정화 논쟁이다.

진보정부의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국정교과서 파동이 총선 국면의 야당에 뼈아픈 패배를 안기는 함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치현상을 오랜 세월 관찰해온 이 인사는 국정교과서 논쟁이 야당 혁신의 장애물이 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선명성을 내세워 교과서 싸움의 선봉에 섰다. 정부여당의 국정교과서 밀어붙이기에 맞서자면 야당이 단일대오를 형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자연히 야당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요구하는 비주류의 목소리는 설 자리를 잃는다. 야당은 10·28 재보궐선거가 증명한 호남민심 이반을 치유할 마땅한 대책도 없이 내년 총선을 맞이하게 된다.” 한마디로 친노 패권주의가 지배하는 야당이 현재의 모습으로 고착화되는 데 결정적 동인을 교과서 논쟁이 제공한다는 논리다.

이 인사는 이를 ‘정치적 장난감(Political Toy)’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이슈를 던져주면 정적이 이를 물고 늘어지느라 함정에 빠져드는 것도 모르게 하는 도구를 뜻한다. 그는 “내년 총선을 생각한다면 여권은 무조건 문재인 대표 체제를 온존시키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라며 “실제로 국정교과서 파동 이후 문 대표 체제에 힘이 실렸다”고 했다. 결국 여권이 국정교과서를 강행함으로써 더욱 커진 것은 야권이 분열할 가능성이다.

나아가 그는 교과서 논쟁은 쉽게 판가름 나지 않는 게임과 같다고 했다. 야권이 일시적으로 승기를 잡은 듯하지만 야당이 여기에 매달릴수록 이념논쟁으로 빠져들게 된다. 야당은 자기 변신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념전쟁에서는 한국에서 진보가 보수를 이긴 역사가 없으며, 더구나 교과서는 정부의 몫이라 야당 입장에서 어떻게 해볼 수단도 없는 게 딜레마라고 이 인사는 분석했다. “거리에서 계속 싸우는 것도 한계에 봉착했다. 국정화교과서 문제점에 대한 여론은 환기했지만 새정연으로서는 얻은 게 없는 싸움이 될 공산이 크다. 여권에서 누가 이를 기획했다면 지금 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 중에서도 이런 인식을 갖는 이들이 더러 있다. 야당세가 강한 노원갑을 지역구로 하는 이노근 의원은 “야당의 국정교과서 반대 공세는 정치적으로 실각의 위기로 내몰렸던 문재인 대표 구하기 차원에서 진행되는 감이 있다”면서 “지금은 반짝 효과를 보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효력은 점차 수그러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정교과서 이슈는 유권자들에게 피로감을 안기면서 뇌리에서 점점 잊혀갈 것으로 이 의원은 예상한다. 교과서 파동에도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40%를 웃도는 등 공고하고 새누리당의 지지율도 탄탄하다. 반면 야당 지지율은 내리막길이다. 그래서 “국정교과서 이슈는 총선의 변수로 작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이 의원의 시각이다. “국정교과서 문제가 내년 총선 수도권에서 어느 정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더 지켜봐야 안다.”

여당 안정의 일등공신은 프레임 못 만드는 야당

지금까지는 집권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당이 제 기능을 못해서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박성민 민 컨설팅 대표는 말한다. 집권여당의 표면적 안정의 일등공신이 야당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궁지에 몰린 야당이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암중모색은 그렇게 시작된다.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상임고문이 “총선을 앞두고 당이 살길은 문재인 대표가 명예롭게 물러나고 대선 주자급 인사들로 통합 선거대책위를 꾸리는 것”이라고 문 대표의 퇴진을 전제로 한 총선전략 수립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박 대통령이 국정교과서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에 대한 반발감이 반대여론으로 표출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국정교과서 때문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 야당으로 돌아선다고 보는 것은 다른 변수를 생략한 채 현상을 극도로 단순화한 분석이라고 서성교 바른정책연구원장은 말한다. 서 원장은 야당 스스로가 정국의 프레임을 만들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국정교과서 논쟁이나 메르스 파동 등의 정국 이슈는 대부분 여권발(發) 프레임이거나 정국 상황이 만든 프레임이었다”면서 “야당은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만든 프레임에 여권을 끌어들여 방어케 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주요 경제 지표나 국정 어젠다를 과거 정권의 그것과 비교해 비판하는 등 자신이 만든 프레임으로 여당을 끌어들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서 원장은 “야당이 여권의 정책 실패를 준엄하게 꾸짖는 등 정권 심판론을 효과적으로 제기하지 못 한다면 내년 총선 수도권에서 여당이 우위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누리당에 불리해 보이는 이슈가 반드시 그렇게 작용한다는 보장이 없는 게 내년 총선이다. 그래서 수도권 여당 의원들은 다가오는 선거에 발은 동동 구르면서도 말을 아끼는 것일까?

-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201512호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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