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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동향] 일본은 왜 ‘환태평양 파트너십’에 올인했나? 

“안보법안과 TPP는 중국 포위하는 쌍두마차”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부편집장
야심적이고 포괄적인 높은 수준의 합의 이뤄져… 아베 총리는 TPP를 ‘경제의 안전보장’으로 간주

▎환태평양경제공동체(TPP) 협정이 타결된 10월 5일 미국 애틀란타에서 미국 등 12개 회원국 무역장관들이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사진·뉴시스
아베 일본 총리에게 9월의 안보법안 정비, 10월 TPP 체제 정돈은 한 가지 목표를 향한 두 가지 수단이다. 중국에 대한 군사, 경제적 포위망을 강화한다는 동북아 전략의 일환이다. 일본의 TPP 참여가 중국에 대항하는 ‘무기’ 중 하나라면, 한국의 TPP 참여는 신중하고도 전략적인 선택이 되어야 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여성은 아니지만 평소 집을 나설 때 공들여 화장을 한다. 2013년 4월 19일, 아베 총리가 니혼 TV의 아침 정보 프로그램인 <슷키리(산뜻한) TV> 에 생방송으로 출연했을 당시, 방송국 스태프들은 “아베 총리의 얼굴을 이대로 화면에 내보내면 시청률이 떨어진다”고 걱정했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 타이틀이기도 한 ‘아침부터 산뜻한 얼굴들’을 모아놓고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안색이 너무나 칙칙했기 때문에 프로그램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불안감을 나타낸 것이다. 지병인 궤양성대장염으로 매일 많은 종류의 약을 장기간 복용하고 있는데, 그 부작용으로 얼굴이 거무칙칙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혼 TV의 메이크업 스태프는 아베 총리의 얼굴에 피부색의 ‘도우란’(무대화장에서 사용하는 커버력이 뛰어난 파운데이션)을 두껍게 바르는 화장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 도우란 효과 덕분에 프로그램 시청률도 튀어 올라갔다.

이때 누구보다도 기뻐한 사람이 아베 총리 본인이었다. 생방송에 출연한 자신의 모습을 녹화해서 다시 돌려본 그는 텔레비전에 비친 생기 넘친 자신의 얼굴에 대단히 흡족해 했다. 그래서 니혼 TV로부터 선물 받은 도우란이란 화장품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이후 매일 아침 그 화장품으로 정성껏 얼굴을 분칠하고 나서 저택을 나서는 것이다. 2015년 10월 6일 아침,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을 맛본 아베 총리는 이날은 특별히 정성을 들여 화장을 했다. 그리고 그는 총리 관저에서 기자단 앞에 얼굴을 내밀고 배우처럼 웃음을 띠면서 기세 좋게 입을 열었다.

“TPP(환태평양 파트너십 협정) 교섭이 일본 시각으로 어젯밤에 드디어 큰 틀의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이때 아베 총리의 뇌리에는 평소 라이벌로 여기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얼굴이 어른거린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TPP 타결 뉴스를 전해들은 시 주석이 인상을 찡그렸을 것을 상상하면서 유쾌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순간 총리를 둘러싸고 있던 기자 한 사람이 그런 ‘망상’을 간파라도 한 듯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중국도 TPP에 참가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아베 총리는 그 질문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앞으로 중국도 TPP에 참가하게 되면 일본의 안전보장,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정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이 즉시 가입할 리 없는 것은 알고도 남지만 시진핑 정권을 향하여 변죽을 올린 것이다.

“일본의 룰이 세계로 확대된다”


▎아베 일본 총리는 이번 TPP 합의로 “일본의 룰이 세계로 확대되고, 경제의 안전보장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 사진·중앙포토
이보다 조금 앞선 시각, 일본의 TPP교섭단 단장인 아마리 아키라(甘利明)·경제재정담당장관도 체류하고 있던 미국 애틀랜타의 웨스틴 호텔에서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다.

“이번 TPP 합의에 의해 우리의 룰이 세계로 확대됩니다. 이에 따라 참가국 간의 상호의존 관계가 강화되어갈 것입니다. TPP는 경제의 안전보장입니다.”

아마리 각료의 발언 역시 이 교섭에 참가하진 않았지만 참가국 모두가 의식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코멘트는 좀 더 직접적이었다.

“중국이 아니라, 우리들이 세계 경제의 룰을 정하는 것입니다.”

미국 시각으로는 10월 5일, 미국·일본·칠레·페루·멕시코·캐나다·베트남·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루나이·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 12개국 대표가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TPP교섭이 큰 틀의 합의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하버드 대학 시절 동급생으로, 교섭타결에 큰 역할을 한 프로맨 미 통상대표는 “야심적이고 포괄적인 높은 수준의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자신 있게 선언했다.

총 31개 분야를 커버하는 TPP에 의해 앞으로 12개 참가국의 공업품 관세는 99.9% 철폐된다. 그뿐 아니라 지적재산권과 환경보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룰이 정비된다. 인구로 8억 명, GDP로는 세계의 4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권이 탄생하는 것으로 이후 12개국 각각의 비준을 거쳐 내년 안에 발효될 예정이다.

TPP는 원래 2002년 멕시코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체)에서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의 3개국이 시작한 EPA(경제제휴협정) 교섭이 단초가 됐다. 2005년 싱가포르와 버금가는 ‘ASEAN의 선진국’ 브루나이도 합류해 2006년 5월에 4개국에서 발효됐다. 이에 따라 4개국 간 무역관세의 90%가 철폐됐다. 이 단계까지는 이른바 작은 나라들끼리 체결한 ‘공동 EPA’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에 주목한 것이 2008년 금융위기에 빠진 초강대국 미국이었다. 당시 미국은 전후 세계의 금융질서인 브레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의 사활을 걸고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을 때다. 같은 해 11월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G20(주요국 서밋)을 소집했으며 자국의 경제를 부활시키고 세계의 리더로서 권위를 유지할 목적으로 TPP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리먼 사태로부터 1주일 후인 같은 해 9월 22일 미국은 TPP 참가를 표명했다. 뒤를 이어 곧바로 오스트레일리아도 참가를 선언했으며, 그 후 베트남·페루·말레이시아가 가입했다. 2010년 11월의 요코하마 APEC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9개국의 의장을 맡고, 조기에 교섭을 마무리 지을 것을 결의했다. 2012년 11월에는 미국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맺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도 합류하면서 같은 해 연말 시점으로 교섭 참가국은 11개국으로 늘어났다. 이때 아시아에서 TPP에 주목한 인물이 2012년 12월 3년 3개월 만에 민주당으로부터 정권탈환에 성공한 아베 신조 총리였다.

일본 주도로 ‘중국 포위망’ 구축

그전의 민주당 정권은 농민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TPP 참가를 망설였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2013년 2월 22일 워싱턴에서 열린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번째 일미정상회담에서 일본의 TPP 참가를 강하게 희망했다. 아베 정권의 고위관리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아베 총리의 사고는 정치 스승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의 사고와 매우 흡사하다. 즉 일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오직 견고한 일미동맹이며, 일미동맹을 강화하면 할수록 일본은 아시아 맹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의미로 아베 총리는 TPP가 일미 동맹을 견고하게 하여 일본이 아시아 경제의 주도권을 쥐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물론 아베 총리의 시야에는 강렬한 라이벌 의식을 품고 있는 중국의 존재가 있었다.”

2000년대 전반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매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복해 중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정냉경열(政冷經熱)’, 즉 ‘정치는 차갑고 경제는 뜨거운 시대’로 명명되기도 했다. 이런 고이즈미 정권을 2006년 9월에 이어받은 제1차 아베 정권은 표면상으로는 총리취임 13일 만에 서둘러 중국을 방문하는 등 고이즈미 시대와는 다르게 중국과의 ‘전략적 우호관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 뒤편에선 아시아에서 부상하는 중국을 봉쇄하는 전략 마련에 부심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2006년 연말에 내건 ‘자유와 번영의 호(弧, arc)’라는 외교전략이었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가진 각국이, 그렇지 않은 나라(중국)를 해상에서 포위함으로써 번영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는 일본·한국·필리핀·오스트레일리아·타이·인도·터키 등을 이은 ‘중국 포위망’을 일본이 주도권을 쥐고 구축한다는 구상이었다. 물론 그 뒤에는 미국이 있었다.

그러나 이 ‘자유와 번영의 호’ 구상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의 주변국 대부분은 이미 중국이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던가, 혹은 가까운 미래에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 될 것이 예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 당시부터 아시아 각국은 방위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주변국은 중국을 자극하는 전략에 가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7년 9월 아베 총리의 지병인 궤양성대장염이 악화되면서 제1차 아베 정권 자체가 붕괴되고, 이 중국 포위망은 환상으로 끝나버렸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이 구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정권을 발족시킨 후 이번에는 TPP를 중국 포위망으로 이용하려고 생각한 것이었다. 제2차 아베 정권 발족 당시, 정부 내부에서 외교 문제와 관련해 가장 큰 논란이 됐던 것은 ‘중국과의 관계설정’이었다. 중국에서는 같은 시기인 2012년 11월 대일강경파인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의 수장인 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에 취임했다. 앞서 언급한 아베 정권의 고위관리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에겐 3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첫째는 중국에 종속한다는 선택이다. 이것은 고대 아시아의 봉건체제처럼 중국에 조공하는 것이다. 이 전략의 메리트는 시진핑 정권과 우호관계를 쌓을 수 있고, 중국 비즈니스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점은 아시아에서 중국의 패권을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둘째는 중국에 대항한다는 선택지다. 이 경우의 메리트는 과거 150년에 걸쳐 아시아를 견인해온 일본의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점은 중국과의 대립에 의한 경제적 손실과 군사적 긴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전략의 성패는 과거보다도 한층 강화된 일미동맹을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셋째 선택지는 중국을 무시하는 정책이다. 이것은 에도막부(1603년∼1867년)가 취했던 것 같은 중국에 대한 쇄국정책이다. 하지만 셋째 선택지는 21세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첫째 선택지는 아베 총리를 필두로 우리 모두가 ‘악몽의 선택’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둘째 선택지로 키를 돌려서 방향을 설정해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태평양지구의 새로운 경제질서인 TPP에 한시라도 빨리 가입할 필요가 있었다.”

시진핑이 추구한 3개의 대항책


▎시진핑 중국 공산당 주석은 미국·일본 중심의 TPP에 맞서기 위해 실크로드 경제벨트 구상,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아베 총리는 2013년 2월 22일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번째 일미정상회담에서 “7월의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곧 바로 TPP에 참가하겠다”고 약속했다. 참의원 선거를 5개월 후로 예정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선거 전까지는 자민당의 지지층이 많은 농민에게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TPP에 참가한다는 것은 일본 국내적으로 말하면 농업을 희생해서 공업의 발전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본의 TPP참가 표명은 2013년 3월에 국가주석에 취임한 시진핑 주석에게 있어서 커다란 위협으로 비쳤다.

이에 대해 시진핑 정권은 크게 3개의 대항책을 펼쳤다. 첫째는 RCEP(포괄적 경제제휴 구상)의 조기체결을 목표로 한 것이다. RCEP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가입된 16개국, 곧 ASEAN 10개국과 일본·한국·중국·인도·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에 의한 자유무역협정이다. 이 협정이 실현되면 인구로 세계의 과반을 차지하고 GDP와 무역액수로 세계의 30%를 차지하는 광역경제권이 아시아에서 출현하게 된다. 또한 RCEP의 최대 포인트는 미국이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RCEP은 2011년 11월에 ASEAN의 제창으로 시작되었다. 시진핑 정권은 아시아 최대의 경제 대국으로서 이 RCEP교섭의 주도권을 쥐고 2013년 5월 브루나이에서 교섭의 첫 번째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이 첫 모임은 전도가 다난한 장래를 예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담당자였던 일본의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당시는 고위급 실무자에 의한 무역 교섭 위원회와 더불어, 물품무역·서비스무역·투자에 관한 개별회의를 개최하여 교섭 준비나 분야 같은 큰 테두리에 대해 상의했다. 그러나 논의를 주도하려던 중국은 중국의 기간산업을 독점하고 있는 국유기업의 민영화나 자유화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노’라며 강경한 태도를 이어갔다. 일본도 비참가국인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경제산업성에서는 TPP 교섭 그룹과 RCEP 교섭 그룹을 같은 멤버로 구성했는데, 총리 관저나 모테기 요시미츠 장관으로부터 TPP를 우선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세계 제2의 경제 대국과 제3의 경제 대국이 이 같은 상황 아래서 교섭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는 없었다. 시진핑 정권이 당초 기대하고 있었던 RCEP는 TPP보다 먼저 체결될 전망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시진핑 정권이 TPP에의 대항책으로서 구상한 두 번째의 조치는 오바마 정권과의 직접교섭이었다. 정권 출범으로부터 3개월 가까이 지난 시점인 6월 7~8일, 캘리포니아주 서니랜즈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첫 번째 미중정상회담이 열렸다. 참고로 오바마 대통령이 같은 해 2월의 일미정상회담 당시 아베 총리에게 준 시간은 불과 1시간이었다. 게다가 주요의제를 ‘일본의 TPP참가’로 한정했다. 그런데 정상회담 12일 전에 북한이 3번째 핵 실험을 강행했기 때문에 북한 문제를 상의하는 런치 타임이 더해져, 총 1시간 45분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첫 번째 미중정상회담에서 세계에서 제일 바쁜 사나이 오바마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준 시간은 1박 2일, 총 8시간 이상에 달했다. 의제는 양국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치·경제· 군사관계·사이버 분야의 안전·북한·남중국해 문제 등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문제는 중국과 상의하고 결정한다”는 자세를 명확히 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미중 정상회담의 모두 발언을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세계는 중국과 미국 양대국이 견인해가는 시대(G2의 시대)를 맞이했다. 이제부터는 태평양의 동쪽 곧 미국 대륙과 유럽은 미국이 책임지고 관리하고, 태평양의 서쪽 곧 동아시아는 중국이 책임지고 관리하는 ‘새로운 대국 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시 주석은 이 ‘새로운 대국관계’라는 개념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인정받으려고 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즉답을 피했다.

미국과의 직접교섭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시진핑 정권은 세 번째 전략을 단행했다. 그것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실크로드 경제 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의 구축과 이를 추진하기 위해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2013년 9월에서 10월 외유 기간 중 시진핑 주석은 이 구상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실크로드 경제 벨트는 중국을 기점으로 유럽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의 인프라 정비를 진척시킨다는 구상이다. 그 중심은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연결하는 고속 철도 계획이었다.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는 2015년 말 6억 명의 경제통합을 달성하는 ASEAN을 포함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일본과 미국이 1966년에 설립한 ADB(아시아개발은행)에 대항하는 AIIB를 2015년 연말에 베이징에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도 일본도 의지할 수 없다면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한다는 아시아 최대의 경제 대국으로서의 자부심이었던 것이다.

“일본 농민의 저항도 불사하겠다”


▎2013년 5월 도쿄 도심에서 미국 주도 TPP에 반대하는 농민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가 든 피켓에는 “(아베 총리는) 혀가 몇 개인가? 부끄러운 줄 알라”고 쓰여 있다. / 사진·중앙포토
다시 시계 바늘을 2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2013년 7월의 참의원선거에서 압승한 아베 총리는 즉시 TPP교섭에 뛰어들었다. 교섭 참가국은 12개국이지만, 미국과 일본이 12개국 전체 GDP의 81%를 차지한다. 즉 TPP의 성공여부는 오로지 일미교섭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베 총리는 일본 국민을 향해서는 “5개 주요품목의 관세는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거듭 약속해 왔다. 5개 주요품목이란 가장 중요한 쌀, 소·돼지고기, 유제품, 설탕, 밀이다. 예를 들면, 일본은 쌀 수입에 세계최고 수준인 778%나 되는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TPP는 기본적으로 이것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그대로 받아들이면 일본 농업은 근저에서 붕괴하게 된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5개 주요 품목에 종사하고 있는 일본인은 전 국민 1억2천만 명 중, 160만 명밖에 없다. 게다가 160만 명의 평균 연령은 약 70세다. 이러한 이유로 아베 총리는 ‘일미가 함께 중국에 대항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최종적으로는 농가의 저항 세력을 묵살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미국과의 교섭 과정에서 이 5개 주요품목에 관해 점점 더 타협의 길로 나아갔다. 미국은 일본의 예상보다 훨씬 터프하게 교섭을 강요해 왔다. 앞서 언급한 경제산업성의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일본의 ‘5개 주요품목’, 특히 육류에 관해서 공격해올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미국의 방어 또한 상당히 견고했다. 즉 자동차 부품의 미국 관세를 내리는 대신, 미국산 자동차의 일본 시장에서의 연간 최저수입량을 설정한다든가, 일미 간 무역 마찰이 일어났을 때에는 미국법에 따라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가 ‘그런 터무니없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거부하면, 미국은 ‘이것은 연방의회의 요청이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회의 비준을 얻을 수 없다’며 의회에 책임을 돌렸다. 오바마 대통령도 프로맨 통상대표도 변호사 출신이지만, 정말로 악덕 변호사의 수법이었다.”

미국은 대선, 일본은 정권 불안이 변수

그러나 아베 정권은 계속해서 협상을 감내했다. 그것은 오직 “시진핑의 중국에 아시아 패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라는 일념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올해 봄부터 여름에 걸쳐서라고 한다. 중국군이 남중국해를 매립해서 군용비행장을 만들기 시작한 것과, 미국에서 대하여 벌인 사이버 테러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9월 22일에서 25일까지 시진핑 주석이 국빈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지만 국빈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적’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던 모양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마치 카우보이가 무법자를 위협하는 모양새로 시 주석을 몰아붙였다고 한다. 시 주석은 “중국은 미국의 적이 아니다”라는 변명을 되풀이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미 양국은 어떻게든 교섭을 타결시키고자 서로 양보하는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10월 5일 큰 틀의 합의에 이른 것이었다. 지금까지 설명한 대로 아베 정권은 TPP를 단순한 무역협정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익명 인터뷰에 응한 정부 고위관리는 새삼 이를 강조했다.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미국 정부에 TPP교섭의 책임자를 프로맨 미 통상대표에서 국방장관이나 CIA 국장으로 변경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것은 TPP가 이후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대항하는 ‘무기’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9월에 안보법제를 정비하고, 군사적으로 중국에 대항해가는 법체계를 갖췄다. 뒤이어 10월에는 경제적으로 중국에 대항하는 TPP 체제를 정돈했다. 이제부터는 이 ‘두 가지 무기’를 구사하여 아시아에서 중국의 패권 장악을 저지해갈 것이다.”

10월 6일 일본의 각 신문 조간은 TPP타결 뉴스로 도배됐다. 그 중에서 전 외무차관으로 현재 일본 국제문제연구소 이사장인 노가미 요시지(野上義二) 씨가 <니혼게이자이신문>에 기고한 글이 시선을 끌었다. 노가미 씨는 이렇게 지적했다.

“당장은 한국이 TPP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 주목하고 있다. 무역·경제 면에서 한국이 TPP에 가입하는 메리트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한국의 안전보장 면에서 보면 일미 양국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현재의 박근혜 정권이 시진핑 정권에 지나치게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중국과의 무역액수는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크기 때문에 경제적 측면에서 당연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군사면에서는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같은 동맹국인 일본과 비교해서 중국 쪽에 현격하게 치우쳐 있다. 9월 3일에 베이징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가한 것도 일본과 미국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한국이 TPP 참가 입장을 어떻게 정리할지 앞으로 주목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위해서 하나 덧붙이자면, 한국은 TPP에 참가할 것인가 아닌가에 관해서 그다지 결론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미국 의회의 비준 수속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의회에서 논의가 시작되는 것은 내년 1월부터지만, 대통령 선거의 해인만큼, 어떤 변수가 작용할 지 알 수 없다. 어쩌면 TPP는 대통령 선거의 돌풍에 휩쓸려 날아가버릴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일본의 정국불안이다. TPP를 강하게 추진해온 아베 총리는 10월 7일 개각을 단행하고 9명의 각료를 교체하여 새로운 아베 정권을 발족시켰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화장은 날마다 짙어갈 뿐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부편집장

201511호 (20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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