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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日常반추’] 걷기, 발로 하는 철학 

‘하루 산책’은 속도와 효율성을 섬기는 현대성에 맞서는 경쾌한 ‘저항’… 시간을 소비해 생기를 얻는 새로운 탄생의 시간 

장석주
삶과 죽음 사이에서 거리는 견고하다. 그 견고한 자명함 속에서 움직일 때 시선은 거리의 파동치는 빛, 공기, 건물들의 아우라, 날렵한 간판들, 쇼 윈도우, 유행의 기표들을 채집하기 바쁘다. 며칠째 시드니의 도심 거리를 걷는 중이다. 걷기는 몸에 활력을 주는 해방과 자유의 느린 몸짓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한 방식이다. 걷는 자는 세계를 향해 제 온몸을 열어젖힌다. 온몸을 열어 존재 바깥의 풍경을, 온갖 소리, 냄새, 촉감과 색채로 뭉뚱그려진 덩어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걷기는 감각을 통한 전진이다. 보라,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가며 내딛고 몸을 앞으로 내밀며 나아갈 때 존재 내부에서 어떤 일이 얼어지는가를. 오감 속에서 풍경은 감각적 명증화에 이르고, 내면에서는 풍경이라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교향악이 울려 퍼진다.

걷는 자들은 풍경을 들이마시며 자기화하면서 일상의 속박과 의무에서 유예된 일시적 자유를 얻는다.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영문 모를 기쁨이 가득 차오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걷기는 더도 덜도 아닌 ‘가장 전형적인 인류학적 활동’(다비드 르 브르통, , 90쪽)이고, ‘괄호 속의 행복’(프레데리크 그로, , 15쪽)을 찾는 행위다. 걷기는 감각을 일깨우면서 몸을 쓰고 있다는 자각과 더불어 방향 정위에 대한 감각을 보상으로 베푼다. 숲길, 들길, 해변을 끼고 있는 길, 시내 한복판을 꿰뚫은 길이건 상관없이 걸음을 뗄 때마다 걷는 자는 몸으로 존재함, 그 느낌을 온전함으로 돌려받는다. 사람은 제 팔다리의 근육과 관절을 써서 이동한다. 한가롭게 걸을 때 일과 관계의 속박에서 자기를 분리해낸다. 가족부양의 책임과 소비와 상품의 재분배와 성과에 매달리는 일도 그친다. 걸을 때 우주의 중심점은 바로 자기 자아다. 이 중심점이 확장되며 세계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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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호 (20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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