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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향] 여당 물밑 공천전쟁 친박계는 ‘부글부글’ 

“서명운동 벌여서라도 개혁공천 관철할 터” 

박성현 기자 psh@joongang.co.kr
공천관리위원회 통해 전략공천 등 인적 물갈이 본격 추진… 현역의원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영남권 친박계의 선택이 관건 될 듯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 주도로 당의 면모를 일신하는 혁신적인 조치를 통해 과반의석 확보에 성공했다.
“역대 모든 위기는 항상 사람이 문제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참모그룹에 속하는 한 소장파 인사는 새누리당에 대한 유권자의 애정이 식어간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분열된 야당이 각기 명운을 걸고 인재영입 전쟁에 나서는 동안 새누리당은 한가한 공천룰 공방으로 날 밤을 새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어느 샌가 국민의 시선이 야당으로 향하면서 새누리당은 점차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니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대선주자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이 1월 들어 실시한 조사에서 김 대표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에게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지지율 격차가 비록 오차 범위 내라곤 하지만 여당 대표가 제1, 제2 야당 대표주자에게 밀린다는 건 집권여당으로서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다. 리얼미터가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 대표의 지지율은 16.4%로 문 대표(19.9%), 안 의원(19.4%)에 이어 3위로 처졌다. 한국갤럽이 비슷한 시기에 실시한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문 대표가 16%, 안 의원이 13%를 얻는 동안 김 대표는 12%에 그쳤다.

이 소장파 인사는 “야당이 인재 영입에 사활을 걸 때 새누리당은 인재 영입 통로를 스스로 차단하는 행보를 보였다”면서 “이는 총선에 아주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12년 새누리당 비대위 활동에도 적극 관여했던 이 인사는 “19대 총선에 즈음한 새누리당과 20대 총선을 앞둔 새누리당은 마치 다른 정당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4년 전 새누리당은 김종인 박사, 이상돈 중앙대 교수, 이준석 클라세 스튜디오 대표 등 주목받을 만한 인사들을 대거 끌어모아 비상대책위를 꾸렸다. 당의 로고 색깔, 노선, 당명까지 바꿔가면서 세상의 이목을 끌려고 안달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종인 박사의 갈등과 결별설 등으로 국민들은 한시라도 새누리당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고 이 인사는 돌이켰다. “지금 국민들의 시선은 야당을 향한다. 총선을 앞둔 새누리당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당 대표가 국민의 마음을 못 읽는다”


▎19대 총선 당시 공천에 탈락한 국회의원 지지자들이 정당을 찾아 항의시위를 벌이는 장면은 흔한 풍경이었다.
새누리당 내 친박계 의원 일부도 현재 상황을 곤혹스러워하는 눈치다.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공천룰에 가로막혀 외부 인사 영입과 같은 당의 외연 확장작업이 지지부진하다고 걱정한다. 그는 “김무성 대표가 ‘전략공천은 없다’며 상향식 경선을 고수하다 보니 인재를 영입하고도 제 발로 왔다고 둘러대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나아가 김 의원은 “당 대표가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 새누리당이 개혁과 변화의 큰 흐름에 뒤쳐지는 경향이 있다”며 김 대표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때는 새누리당이 1월 14일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상향식 공천’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새 공천룰을 확정할 즈음이다. ‘국민참여선거인단대회’(경선)의 당원 대 국민 참여 비율을 50대 50에서 30대 70으로 조정하고, 외부 영입인사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100% 여론조사로 경선을 치르도록 했다.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 어쩌면 대부분의 현역의원들이 내심 선호하는 완전국민참여경선의 취지가 많이 반영됐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박근혜 대통령을 따르는 친박계는 새누리당의 공천룰이 “현역의원들의 기득권은 충실히 보장하면서 외부인사 영입 등 표의 확장성에는 역행한다”고 비판한다. 김태흠 의원은 “경선 선거인단 구성 비율(국민 70%, 당원 30%)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당연히 앞서는 현역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 활동을 종료한 공천제도특위 위원으로도 활동한 김 의원은 이 기구가 이익의 당사자인 현역 의원들로만 구성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공천룰의 가닥을 잡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의 새누리당은 신인이나 참신한 인물을 영입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공천 제도특위 위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는 비박계대로 명분과 논리를 등에 업었다. 김무성 대표는 상향식 공천제도, 즉 완전국민참여경선(오픈 프라이머리)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의 권력자들이 행사하던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해왔다. 김 대표는 평소 “청와대에서 일했다고 꼭 공천을 받아야 한다는 법이 어딨느냐”면서 “그러면 우리나라 정치가 퇴보하는 것”이라고 규정해왔다. 김 대표는 또 “내가 정치판에 와서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틀을 만들어놓고 그만두겠다”며 상향식 공천제의 확립을 공언했다. 18대, 19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격렬한 ‘공천 학살’ 논쟁을 경험한 새누리당 국회의원 상당수도 ‘전략공천’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상향식 공천제도는 전체 국회의원의 이익과 맞아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친박계는 새누리당 공천룰이 상향식 공천이라는 미명 아래 신진 인사와 외부 전문가의 영입을 가로막는다는 문제의식을 깔고 있다. 친박계의 유기준 의원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자는 김무성 대표의 정신도 존중돼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대부분 현역이 공천을 받게 된다”며 “국민이 볼 때 이게 바람직한 공천인지 우려가 많다”고 유감을 표했다. 심지어 “종전에 했던 그런 방식대로 신인을 영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전의 방식이란 바로 전략공천을 말한다. 과거엔 정당의 지도자가 강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집권 역량강화 차원에서 분야별 최고 전문가들을 충원했다. 그 방법이 바로 위에서 내려보내는 ‘전략공천’이었다. 이를 위해 여야 정당은 평가에서 하위를 점한 일정한 비율의 국회의원들을 솎아내는 ‘컷오프(Cut off)’ 제도를 가동한 것이다.

새누리당의 사실상 대주주격인 박근혜 대통령도 상임전국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1월 13일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정치권 물갈이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박 대통령은 “20대 국회는 최소한도 19대 국회보다는 나아야 한다”면서 “저 뿐만 아니라 국민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민심판론’이 현역의원 물갈이론으로 읽혀진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다. 박 대통령은 평소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정쟁을 일삼는 정치권을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국민심판론’을 제기해왔다. 기자회견에 앞서 발표한 대국민담화문에서도 “이 나라의 주인은 바로 국민 여러분이다. 여러분이 앞장서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영남권 친박계 의원들의 게걸음


▎지난해 말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공천제도특별위원회 회의 장면. 친박계 위원 중에는 공천특위를 이탈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공천룰 협상 초기만 해도 친박계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당시 여권 언저리에서는 선친의 친일 경력, 집안 문제 등으로 각종 구설수에 오른 김무성 대표를 퇴진시키고 비상대책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구상이 맴돌았다. 박근혜 정부의 중간 평가와도 같은 총선을 흠집이 난 김 대표에게 맡겨 치르게 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발단이다. 언제부턴가 그런 얘기들이 일순간 잠잠해졌다. 특단의 변수가 없다면 김 대표 체제는 자연스럽게 총선까지 이어진다는 게 여권의 대체적 분위기로 굳어졌다. 박 대통령의 여권 장악력이 확고하고, 공천룰 협상에서도 친박계의 주장이 관철되는 마당에 굳이 김 대표를 낙마케 해서 혼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해석이 나돌았다. 친박계의 내부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는 “전략 공천을 비롯한 친박계의 모든 요구가 수용되는 쪽으로 공천룰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며 협상력 우위를 장담했다. 공천제도특위(이하 공천특위) 위원 12명 중 친박 성향이 8명으로 분류된 것도 한 배경이 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완전 딴판이었다. 공천특위는 회의를 거듭할수록 계파간 견해차로 난항을 겪었다. 친박계가 자신했던 전략공천과 현역의원 컷오프는 김 대표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현역 의원 물갈이가 인적 쇄신과 개혁 공천이 아닌 박근혜 사람들을 의미하는 ‘진박 후보’의 길을 터주는 포석이라는 의구심도 당 저변에 확산됐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이나 친박계의 의도와 달리 새누리당 공천 논의는 현역의원에게 기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공천특위 위원들이 전부 국회의원이었다. 현역의원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전략공천과 컷오프를 애써 추진할 이유가 없던 것이다. 또 의원총회에서도 다수가 공천특위 내 비박계 의견에 기울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친박계 의원들조차 자기에게 유리한 공천 환경을 제공하는 비박계 입장에 동조하는 결과를 낳았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의원 총회에서 상당수 친박계 의원이 현역의원에 유리한 상향식 공천제를 지지하거나 적어도 묵시적으로 동조했다”면서 “이는 정치적 배신과도 같은 것”이라고 격분했다. 나아가 “새누리당을 총선 패배와 파멸로 몰아가는 선택”이라고 이 의원은 규정했다.

친박계가 집단행동에 나서는 경우

비박계는 물론이고 친박계 의원들도 내심 상향식 공천제를 반긴다. 또 자신에게 불리한 룰(전략공천, 컷오프)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다. 경북의 모 중진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공공연히 오픈프라이머리 예찬론을 펼친다. 심지어 친박계 거물급 의원조차 오픈프라이머리와 같은 상향식 공천제를 지지하다가 청와대의 기류를 간파하고선 한순간에 전략공천 전도사로 돌아선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서성교 바른정책연구원 원장은 새누리당 현역의원 물갈이 폭이 역대 선거와 견줘 아주 협소하리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권력이 분산된 새누리당의 구조로 봐서는 물갈이를 추진할 동력이 약해 보인다. 문제가 많은 현역의원 교체조차 쉽지 않은 게 여당의 현주소다.” 나아가 서 원장은 “친박계가 이른바 공천개혁 바람몰이에 내세울 인재풀을 충분히 확보했는지도 의문”이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친박계 핵심 의원들은 계파를 같이하는 영남권 의원들의 미온적 태도가 지금과 같은 사태에 일조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충남 보령·서천 출신의 김태흠 의원은 “의총 등에서 영남 의원들이 개인적인 유불리에 따라 처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주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았다”고 공천룰 협상 과정에서 쌓였던 감정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노선에 충실해야 할 영남권 친박계가 웬일인지 결선투표 적용 범위와 정치신인 가점 부여 등의 현안에서 비박계의 노선에 동조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영남권 의원들은 출신 성분으로 따지면 새누리당의 성골에 해당한다”면서 “그런데도 박 대통령 당선 이후 국정원 댓글사건, 야당의 대선 불복 논란에서부터 최근 공천룰 협상에 이르기까지 TK(대구·경북)를 비롯한 영남권 의원들은 매사에 소극적이었다”고 돌이켰다. “이들은 당직 등 개인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는 기민하게 반응하면서도 당의 성공, 대주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할 상황에서는 한 발 물러섰다”고 김 의원은 비판했다. 나아가 김 의원은 “영남권 의원들이 제 역할을 안하고 개인의 실리를 앞세우면서 새누리당이 점차 어려운 지경으로 빠져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제 공은 1월 하순 출범할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로 넘겨질 전망이다. 공관위는 세부적인 공천룰 해석·적용과 후보자 선출을 책임지는 기구다. 공관위에서의 공천룰 해석을 놓고 친박·비박계는 2라운드 파워게임을 펼친다. 김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는 상향식 공천 정신에 따라 위로부터의 전략공천이나 인위적인 컷오프는 없다고 못을 박는다. 하지만 친박계는 우선추천 지역구 선정과 부적격 의원 선정을 통해 실질적인 전략공천과 컷오프 효과를 거둬야 하는 입장이다.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전략공천과 컷오프 제도 실시와 관련해 “당헌·당규에 정해져 있는 공천룰을 탄력적으로만 운영해도 충분히 소기의 목석을 달성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번에는 김 대표가 하자는 대로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겠다는 말이다. 공관위 활동 기간 동안 새누리당이 획기적인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4월 총선은 패배로 귀결되리라는 게 친박계의 현실인식이다. 이완 조짐을 보이던 영남권 친박계의 ‘군기반장’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여의도로 복귀하면서 친박계의 화력도 강화될 전망이다. 친박계는 또 공천혁명과 당 지도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집단성명서를 내거나 서명운동을 펼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친박계 한 의원은 “당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이와 관련한 중지를 모으는 중”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달 후에는 상황이 지금과 아주 판이하게 전개될 수도 있다.” 새누리당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지 관심이 모아진다.

- 박성현 기자 psh@joongang.co.kr

201602호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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