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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슈] 다시 뭉쳤다! 친이계의 총선 올인 전략 

“경쟁력은 우리가 친박보다 한 수 위!”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지난해 12월 중순, 1주일 새 이명박 전 대통령 참석한 모임 4차례 가지며 전의 다져… 이동관·임태희·김두우·박선규·진수희 등 각자도생하다 ‘스타트라인’ 앞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친이계 인사들과의 송년회를 마친 뒤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여권 내 친이(친 이명박)계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지난해 12월 중순에만 4차례나 자리를 함께하며 ‘우의(友誼)’를 다졌다. 참석자들은 “의례적인 행사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정치권에서는 20대 총선을 대비한 친이계의 세 규합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친이계 핵심 관계자는 “당내 경선에서 공정성만 담보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힘줘 말했다.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청계천 일대가 술렁거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MB정부 청와대 참모, 장관을 지낸 인사 20여 명이 복원 10주년을 기념해 청계천 걷기 행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올해가 가기 전에 청계천 전 구간을 꼭 한 번 걷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고 한다.

당초 이 전 대통령 측은 지난해 10월 초 대규모 행사를 계획했었다. 그러나 폭우, 민중총궐기대회 등으로 일정이 계속 밀리면서 12월에서야 간소한 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홍상표·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장다사로 전 총무 기획관, 김재윤 전 국정홍보비서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경한·이규남 전 법무부 장관,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함께했다.

이 전 대통령은 청계천 시작 시점인 청계광장부터 고산자교까지 약 5.8㎞를 걸으며 청계천의 문화유산과 시설 등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다음날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일 문화해설사가 된 양 광통교 신장석에 얽힌 옛이야기, 정조반차도(正祖班次圖)에 정조는 왜 없는지, 철거된 청계고가 다리는 왜 남겨놓았는지 부지런히 설명하는 동안 참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힘을 합치니 가능했고, 끊임없이 찾아가 설득하니 반대하던 이들도 마음을 열었다”고 적었다.

청계천 복원 10주년 행사 이후 6일 새 이 전 대통령과 친이계 인사들은 세 차례 더 자리를 같이했다. 12월 15일에는 이동관 전 홍보수석의 출판기념회, 17일과 18일에는 잇달아 송년모임이 열렸다.

경기 여주 강천보에서 진행된 17일 행사에서 이 전 대통령은 “우리가 힘을 합쳐서 잘 도와주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며 총선에 출마하는 ‘MB맨’들을 격려했다. 18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열린 송년만찬회에서도 이 전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 도전을 받는 사람도 있고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며 “내년 이 모임에는 더 많은 당선자가 나와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4년 전 ‘악몽’ 재현될까 전전긍긍


▎새누리당 지역당원들이 2012년 3월 8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공천심사에 탈락한 지지후보의 재심의를 요구하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만찬에는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재오·이병석·정병국·주호영·김용태·김영우·조해진·이군현·권성동 의원 등 새누리당 현역의원과 최병국·고흥길·안경률·권택기 전 의원,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 이동관 전 홍보수석,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류우익 전 통일부 장관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전 대통령은 참석한 전·현직 의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지역 상황은 어떠냐”는 등 덕담도 건넸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모두 새로운 꿈을 꿀 것”이라며 “무엇을 하든 바른 마음과 진정성을 갖고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며 격려했다는 후문이다.

친이계 인사들에 따르면 이번 20대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마하려는 범(汎)친이계 원외인사는 2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서울 성동갑, 장광근 전 의원은 서울 동대문갑, 김효재 전 의원은 서울 성북갑, 강승규 전 의원은 서울 마포갑, 박선규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서울 영등포갑, 이동관 전 홍보수석은 서울 서초을, 안경률 전 의원은 부산 해운대·기장을, 이윤성 전 국회부의장은 인천 남동갑,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성남 분당을,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전주 완산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정진석 전 국회사무총장도 각각 대구와 공주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수도권에 출마하겠다는 한 친이계 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 3년 동안, 이른바 친이계로 불리는 사람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하며 나름대로 역량을 키워왔다고 자부한다. 당에서 공정한 경선을 진행해줄 것으로 믿고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철저한 실용주의자다. 따라서 친이계 인사들 가운데에는 전문성을 갖춘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가 많다”며 “충성도에 따라 신분이 정해지는 친박과는 결이 다르다. 경선이 공정하게만 진행된다면 친이계가 대거 본선에 진출할 것이고, 당의 총선 승리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일부 친이계 인사는 “공천권을 반드시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김무성 당대표의 공언이 공염불에 그치지는 않을까, 경선이 공정하게 진행될 수는 있을까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말을 아끼며 표현은 에둘러서 하지만 4년 전의 악몽 재현을 우려하기도 한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박근혜 위원장이 이끈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는 ‘현역의원 물갈이 룰’을 고안해냈다. 이는 사전 여론조사를 통해 공천 후보군(群)을 압축하는 제도다. 현역의원들의 순위를 매겨 하위 25%에 해당하는 의원들을 공천에서 일괄 배제했다.

당시 전체 지역구 현역의원 131명(불출마를 선언한 13명 제외) 중 32명이 예선에서 탈락했다. 안상수(현 창원시장)·진수희 등 친이계 의원들은 추풍낙엽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서울지역 20여 명의 친이계 현역의원 가운데 1차 관문에서 살아남은 의원은 5명에 불과했다.

친이계 좌장 격이었던 이재오 의원은 “25% 컷오프 조항을 공정하게 적용하고 있다면 최소한 컷오프 탈락자들에게는 그 조사 결과를 열람하게 해주거나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은 결과를 제외한 기초자료는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공연한 분란만 가중시킨다는 게 당 지도부의 판단이었다.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새누리당으로서는 이른바 ‘MB돌이’들이 대거 당선됐던 18대 총선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서울만 하더라도 안형환(금천), 김성식(관악갑), 유정현(중랑갑) 등 친이계의 대부분이 접전 또는 열세지역에서 당선됐다. 이는 그만큼 친이계가 득표력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레임덕 늦출 수 있다면 흑묘(黑猫)든 백묘(白猫)든 OK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를 노리는 범친이계 인사들. 왼쪽부터 이동관·임태희·김두우·박선규·진수희.
야권의 분화(分化)로 ‘여당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것 아니냐’는 낙관론도 있지만, 야권의 경우 선거 막판 사표방지 심리에 따른 표 쏠림 가능성이 큰 만큼, 뜻대로만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중론도 설득력을 얻는다. 인물 경쟁력과 득표력을 우선시하는 틀 안에서 공천이 이뤄져야 당이 ‘안정적인’ 과반의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부연설명이 뒤따른다.

이와 관련,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은 같은 야당 시절이었을 때도 내부적으로는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상대를 전멸시키지는 않았다”면서 “당시에는 주류와 비주류가 늘 6대 4 정도로 나뉜 채 여당과 맞섰다. 이는 외부에서 공격이 있을 경우 내부적으로 손잡을 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친박과 비박이 적절히 제휴해야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을 최소화하고 국정운영의 안정화를 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진우 소장은 “친박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강남 3구와 대구·경북(TK) 등 이른바 ‘양지 바른 곳’으로 몰려들 가능성이 크다. 그럴수록 당에서는 인물 경쟁력과 득표력을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친박만 고집했다가는 되레 역풍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2014년 6·4 지방선거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 정부 2년차에 치러지는 중요한 선거를 앞둔 2014년 초, 친박·주류 진영은 적잖이 긴장했다. 친박 내에는 대중성과 득표력을 겸비한 인물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 안팎에서 실세를 자부하는 인물들조차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친박 후보만 고집하면 필패(必敗)”라는 우려가 나왔다.

결국 여권 내에서 ‘이기는 선거론(論)’이 힘을 얻었고, 이는 비주류 차출로 이어졌다. 청와대와 친박 내부적으로 ‘이기는 선거’를 통해 당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쪽으로 궤도를 수정한 것이었다.

그 결과 광역단체장 후보 17명 가운데 친박과 비박이 절반가량씩 나뉘게 됐다.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 권영진 대구시장 후보, 김기현 울산시장 후보,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 윤진식 충북지사 후보, 홍준표 경남지사 후보, 원희룡 제주지사 후보 등 최소 7명이 비박계였다.

이 가운데 정몽준 후보와 윤진식 후보를 제외한 5명이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친박과 비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덕분에 야당의 합당(민주당+안철수의 새정치연합) 시너지효과를 반감시키며 무승부(광역단체당 기준 여당 8석, 야당 9석)를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2012년 총선 때 ‘친이계 공천 학살’ 이후 2년여 만에 새로운 현상이 6·4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났다. 선거는 이기는 게 목적이고, 이기기 위해서는 될 사람을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이 6·4 지방선거 때 적용된 것”이라며 “20대 총선도 2년 전 지방선거와 같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레임덕을 최대한 늦춰야 하는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새누리당 간판을 걸고 당선될 수만 있다면 흑묘든 백묘든 상관없는 것 아니겠느냐? 그럼에도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친박 순혈주의를 고집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일부는 총선 후 안철수와 연대?

친박이든 비박이든 필승카드를 총동원해서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여권 내부적으로 더 큰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야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화현상’이 총선 후 여권에서도 재현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170석 이상을 얻어 압승을 거둘 경우 ‘미래권력(대선주자)’을 놓고 친박과 비박 간의 진검승부가 벌어질 것이고, 만일 패한다면 책임론 공방과 함께 당내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리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총선에서 승리해도 어차피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종착역을 향해 치닫기 때문에 친박과 비박 간의 주도권 쟁탈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여기에서 튕겨져 나가는 세력들 중 일부는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과 연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인지 안철수 의원의 측근인 문병호 의원은 지난 연말 KBS 라디오에 출연해 새누리당의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의 신당 참여 가능성을 열어뒀다.

문 의원은 “지금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대통령 중심의 수구·보수적인 행태를 보인 부분에 대해서 비판하고 나름대로 합리적인 대안을 내신 분들이 있다”며 “예를 들자면 유승민 전 원내대표라든가 남경필·원희룡 지사, 이런 분들은 합리적 보수론자”라고 말했다.

반면 새누리당 일부가 국민의당으로 이동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탈당 후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서 안철수 의원이 갖는 파괴력이 여권의 지형까지 변화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안 의원의 탈당 기저에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등을 돌린 호남의 민심이 깔려 있다. 따라서 새누리당 인사들의 입장에서는 중도의 기치를 세운 국민의당에 합류할 명분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여권 관계자는 “새누리당 공천이 물건너갔다고 판단한 원외 인사 중 일부가 국민의당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있겠지만 현역의원들은 입장이 다를 것”이라며 “그러나 새누리당 공천 탈락에 불만을 품은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총선 전에 국민의당에 합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총선을 통해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이 관계자도 “현재 정치권은 친박·비박·친노·비노 크게 네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두 갈래를 차지하는 쪽이 이기는 것 아니겠느냐”며 “MB의 실용주의를 달리 표현하면 중도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총선 전후 정치지형의 변화에 따라 중도를 표방한 안철수 의원 쪽과의 연대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602호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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