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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불황기 중국의 신(新)성장전략 

민간 불리고, 공공 줄이는 ‘투 트랙’ M&A(인수·합병)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반도체, IT, 영화, 언론까지 싹쓸이식 해외기업 인수·합병에 천문학적인 자금 투하… 비대화된 자국 내 국영기업은 자체 인수·합병을 통해 강력한 구조조정 나서

▎중국 정부가 최근 들어 국유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한 경제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베이징의 한 공사현장 벽에 나붙은 ‘부강(富强)’이라는 표어가 눈길을 끈다. / 사진·뉴시스
중국 대기업들이 최근 들어 서방 각국의 주요 기업을 인수·합병(M&A)하면서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린다.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이 1월 15일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GE의 가전사업 부문을 54억 달러(6조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GE와 하이얼 이사회는 합병 안건을 의결했고, 앞으로 미국 독과점 규제 당국의 승인 등의 절차를 거쳐 인수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하이얼의 GE 인수 규모는 중국 기업의 가전분야 M&A에서 역대 최대 규모다. 이에 따라 하이얼은 북미 가전시장을 공략할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다. 미국 시장점유율이 고작 1%대인 하이얼은 미국 시장 점유율 20%인 GE의 가전사업 부문 인수를 통해 단번에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추격할 수 있게 됐다.

현재 프리미엄 가전제품 격전지인 북미시장 점유율은 미국의 월풀이 38%, 삼성전자 30%, GE 20%, LG전자 14% 순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냉장고 시장에서 1위(16%), LG전자는 드럼세탁기 1위(27%)다. 하이얼은 GE의 기술력, 브랜드 인지도를 십분 활용해 북미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GE의 가전사업 부문은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1878년 세운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출발한 미국의 간판 기업이다.

하이얼의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의 잭 웰치’로 불리는 장루이민(張瑞敏) 회장이다. 장 회장은 1984년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작은 냉장고 회사 공장장에서 시작해 30여 년 만에 하이얼을 글로벌 기업으로 일구었다. 장 회장의 꿈은 하이얼을 세계 1위 가전업체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장 회장은 2011년 뉴질랜드의 생활가전업체 피셔앤드파이클 인수를 시작으로 해외 공략에 나섰다. 2012년 1월 적자를 기록하던 일본의 산요전기를 사들여 2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하이얼은 중국 시장에서 냉장고·세탁기·온수기 분야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린다. 하이얼의 글로벌 판매는 2014년 2007억 위안(36조원)으로 전년대비 11% 성장했고 순익은 150억 위안으로 39%나 증가했다. 하이얼은 전 세계에 5개 연구개발 센터를 두고 있고 21개 공업단지와 66개 무역회사, 14만 개의 판매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미국 등 해외시장에서는 브랜드 인지도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M&A는 하이얼의 저가 이미지를 없애고 글로벌 시장점유율 확대로 세계 1위가 되려는 장 회장의 승부수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제조업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인수


▎중국은 해외기업 인수에도 해마다 100조원이 넘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중국 국유 화학기업인 중궈화궁(中國化工, Chem China)이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타이어 제조업체인 피렐리를 인수한 것도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인수금액은 71억 유로(8조 5855억원)로, 중국 제조업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인수다. 피렐리는 이탈리아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매출기준 세계 4위 규모의 타이어 업체다. 국제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원(F1)에 제품을 공급해왔고, 고급 타이어 시장 점유율이 50%에 이른다. 1872년 출범한 피렐리는 이탈리아 제조업의 자존심이다. 중궈화궁은 피렐리 인수를 통해 일본의 브리지스톤, 프랑스의 미쉐린, 미국의 굿이어에 이어 일약 제4위의 타이어 제조 업체가 됐다. 중궈화궁의 전략은 거액의 자금을 투입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향상된 기술력을 운용하여 단기간 안에 세계 타이어 시장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것이다. 중궈화궁은 계열사로 펑신(風神)타이어 등 타이어기업을 두고 있지만, 펑신의 주요 시장은 중국이며 해외 지명도가 낮아서 열세에 처해 있었다.

중궈화궁의 전략은 과거 일본의 브리지스톤과 비슷하다. 1988년 당시 세계 3위였던 브리지스톤은 3300억 엔으로 미국의 파이어스톤을 인수하면서 일거에 세계 1위로 등극한 바 있다. 브리지스톤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세계시장 점유율을 4위로 끌어올린 중궈화궁도 앞으로 1위를 목표로 총력을 기울일 것이 분명하다. 글로벌 타이어 시장에서 선전해온 한국타이어(세계 7위)·금호타이어(13위) 등은 앞으로 중국과 유럽 시장에서 더욱 강력한 경쟁자가 부상하는 악재를 맞게 됐다. 중궈화궁은 2월 3일에 스위스의 농업생물공학 기업인 신젠타를 430억 달러(52조4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인수가 최종 마무리되면 중국 기업이 해외 기업을 인수한 사례로는 역대 최대 규모가 된다. 신젠타는 종자와 살충제 생산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중궈화궁은 또 지난 1월 9일 독일의 크라우스마파이 그룹을 9억2500만 유로(1조2164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크라우스마파이는 플라스틱·기계 생산분야에서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 중 하나다.

중국은 제조업 분야뿐만 아니라 문화사업 분야에서도 해외 기업 인수에 적극적이다. 무엇보다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사 매입이 눈에 띈다. 중국의 대표적인 부동산 기업인 완다그룹은 1월 12일 미국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사인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35억 달러에 인수했다.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는 영화 <인터스텔라> <인셉션> <쥬라기 월드> <다크 나이트> 등을 만든 유명 제작사다. 완다그룹의 총수는 중국 최고 부자인 왕젠린(王健林) 회장이다. 완다그룹은 레저와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성장을 꿈꾸면서 2017년 오픈을 목표로 중국 내에 80억 달러 규모의 영화 스튜디오 제작도 진행하고 있다. 완다그룹은 이미 2012년 미국에서 제2의 극장 체인이며 379개 영화관을 보유한 AMC 엔터테인먼트를 26억 달러에 인수했었다.

완다그룹의 이번 인수는 중국 기업이 해외에서 진행한 문화사업 부문의 최대 규모로 꼽힌다.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 인수로 완다그룹은 영화 제작, 배급, 상영 등 전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왕 회장은 “완다와 레전더리는 새로운 국제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완벽하게 거듭났다”면서 “세계적으로 특히 중국에서 퀄리티 높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수요가 있다”고 밝혔다. 호텔과 유통업, 부동산업에서 출발한 완다그룹은 영화산업에도 진출해 중국에서 200개의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완다 그룹의 지난해 매출액은 2901억 위안(53조4000억원)이고, 왕 회장의 자산은 339억 달러(41조원)에 달하고 있다. 완다그룹은 올해 추가적으로 해외 기업 3개와 중국기업 2개를 인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내년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영화 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할리우드가 아니라 ‘찰리우드’(차이나+할리우드)가 세계 영화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의 11개 게임 관련 기업 인수한 텐센트


▎제주도에는 중국 자본에 의한 부동산 개발이 한창이다. 중국 백통그룹이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조성 중인 제주리조트 건설 현장.
중국의 정보통신(IT) 기업들도 M&A에 적극적이다. 이른바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라고 불리는 중국의 3대 IT 기업이 지난해 M&A에 쏟아부은 자금만 300억 달러(34조원)를 넘었다. 텐센트가 37개 회사를 인수·합병하며 163억 달러를 지출했고, 알리바바가 27개사 150억 달러, 바이두가 15개사 87억8000만 달러를 썼다. 올해도 이들 3개사는 800억 달러(103조7800억원)가 넘는 돈을 M&A에 지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알리바바가 M&A에 사용 가능한 돈이 380억 달러에 이르며, 텐센트와 바이두도 각각 350억 달러와 150억 달러의 실탄을 준비 중이다. 특히 알리바바는 미디어 사업에 관심이 크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말 홍콩의 유력 영자지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20억 6000만 홍콩 달러(한화 3152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알리바바는 인수 완료 후 SCMP의 유료 콘텐츠를 무료 공개해 전 세계 독자가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쉽고 빠르게 SCMP의 뉴스를 만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알리바바는 종합 미디어그룹을 만드는 계획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텐센트는 중국에서 가장 공격적인 M&A를 추진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만 CJ게임스, 넥스트 플레이 등 11개 게임관련 기업을 인수했고 미국에서도 에픽게임스, 액티비전블리자드 등 5개 게임회사와 1개 전자상거래 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

반도체 기업들도 앞다투어 해외 M&A를 추진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M&A에 나서는 기업은 칭화유니그룹.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낸드플래시 사업을 강화할 목적으로 미국 업체 샌디스크를 190억 달러(21조9000억원)에 사들였다. 지난해 11월에는 대만 패키징 업체 파워텍 지분 25%를 6억 달러(7000억원)에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최근에는 135억 위안(2조4500억원)을 투자해 메모리 칩 후공정업체인 대만 SPIL과 칩모스 지분을 각각 25%씩 확보하기도 했다. 칭화유니그룹 산하에는 시스템칩 전문 팹리스 업체 스프레드트럼과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있다. 이 회사는 일본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공장 지분을 인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회사의 목표는 앞으로 메모리 전공정 생산 기술력을 확보해 삼성전자 같은 종합반도체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자오웨이궈(趙偉國) 칭화유니그룹 회장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5년간 3000억 위안(한화 약 54조 9400억원)을 투자해 세계 3위 반도체 업체로 올라 서겠다”고 밝혔다. 칭화유니그룹은 지난해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의 인수도 추진했지만, 미국에서 국가 안보 우려가 제기되면서 무산된 바 있다.

반도체 기업들도 앞다투어 해외 M&A를 추진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M&A에 나서는 기업은 칭화유니그룹.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낸드플래시 사업을 강화할 목적으로 미국 업체 샌디스크를 190억 달러(21조9000억원)에 사들였다. 지난해 11월에는 대만 패키징 업체 파워텍 지분 25%를 6억 달러(7000억원)에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최근에는 135억 위안(2조4500억원)을 투자해 메모리 칩 후공정업체인 대만 SPIL과 칩모스 지분을 각각 25%씩 확보하기도 했다. 칭화유니그룹 산하에는 시스템칩 전문 팹리스 업체 스프레드트럼과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있다. 이 회사는 일본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공장 지분을 인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회사의 목표는 앞으로 메모리 전공정 생산 기술력을 확보해 삼성전자 같은 종합반도체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자오웨이궈(趙偉國) 칭화유니그룹 회장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5년간 3000억 위안(한화 약 54조 9400억원)을 투자해 세계 3위 반도체 업체로 올라 서겠다”고 밝혔다. 칭화유니그룹은 지난해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의 인수도 추진했지만, 미국에서 국가 안보 우려가 제기되면서 무산된 바 있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 바람이 더욱 거세진다. 중국 자본이 미국 GM의 협력사를 인수하는 등 자동차 산업의 본고장인 미국에까지 미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자동차 관련 M&A는 지난해에만 93억 달러(11조원)에 이른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GM 뷰익은 미국으로 역수출되기 시작했다. 중국 최대 자동차 유리기판 업체인 푸야오글래스는 미국 마운트자이언을 인수했다. 푸야오글래스는 중국 자동차용 유리 시장의 65%, 전 세계 유리 시장의 18%를 점유하고 있는 업체다. 중국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완상그룹은 미국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피스커오토모티브를 인수했고, 현재 쿠페형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출시한 상태다.

유럽-아프리카 잇는 항구도 사들여


▎홍콩 인근 해역에서 석유 시추작업을 벌이는 중국 해양석유총공사(CNOOC) 직원들. / 사진·중앙포토
중국 기업들은 심지어 외국의 항구까지 인수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가 자산 매각을 위해 설립한 ‘그리스 자산개발기금’이 지난 1월 20일 이사회를 열어 중국 국유 해운회사인 중국원양운수집단(COSCO)을 피레우스 항구의 지분 67%를 인수할 우선투자자로 선정했다. 정식 인수 여부는 피레우스 항구의 기존 주주들과 그리스 회계당국, 의회 등의 승인 절차를 거쳐 오는 3월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중국 원양운수 집단이 단독으로 입찰했기 때문에 인수는 사실상 확정됐다. 인수 금액은 3억6850만 유로(4849억원)이다. 그리스 아테네 근교의 피레우스항은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이 그리스에서 가장 많은 항구이자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항구 중 하나다.

피레우스 항구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물류의 요충지다. 중국원양운수집단은 이미 2009년 40억 유로(5조2770억원)를 투자해 피레우스항의 부두 운영권을 35년간 이용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에는 제2 터미널을 짓기 위해 2억3000만 유로를 투자하기도 했다. 특히 피레우스 항구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중국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의 중요한 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 항구를 이용해 유럽으로의 수출 일정을 7∼10일 정도 단축할 수 있게 됐다. 이 항구는 또 중국 해군의 보급기지로 활용될 수도 있다. 지난해 2월 중국 최대 수륙양용선인 창바이산 호가 이 항구에 기항했던 적이 있다.

중국 기업들이 업종불문하고 외국의 주요 기업을 대거 M&A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부족한 기술력과 브랜드 경쟁력을 자금력으로 만회하면서 세계 산업계의 강자가 되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의 저성장 기조를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보고 해외시장 개척으로 성장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국유기업의 정리 수단으로도 동원


▎2013년 6월 중국 베이징의 기업 행사에 참석한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 완다그룹은 올해 초 할리우드 한 제작사를 35억 달러에 인수했다. / 사진·뉴시스
특히 해외 M&A의 증가 배경에는 중국 증시가 고평가된 것도 주요 요인이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 기업들보다 3배 높이 평가돼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중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54.2배로 미국의 3배 이상이며 홍콩보다는 5배가 넘는다. 게다가 국내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 때문에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데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해 해외 진출을 적극 장려하는 것도 이유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이 지난해 외국 기업들에 대한 M&A 규모는 397건, 935억 달러(113조3220억원)로 전년보다 62% 증가했다. 올해 들어서만 중국 기업들의 M&A 규모는 이미 110억 달러를 넘었다.

중국 기업들의 해외 M&A와 버금 갈 정도로 중국 대형 국유기업들도 업종별로 대대적인 M&A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대형 국유기업들의 M&A는 중국 정부의 국유기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국유기업 개혁은 지난해 12월 18일부터 21일까지 시진핑 국가주석 주재로 열린 중앙경제공작 회의에서 제13차 5개년 계획(2016~2020년)의 핵심 과제로 공급개혁을 적극 시행하기로 결정한 것에 따른 것이다. 공급 개혁이란 자원·인재·기술·자본 등의 효율적인 구조조정과 혁신을 추진해 생산효율을 최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선 공급개혁의 핵심과제로 공급과잉 해소, 기업원가 절감, 부동산 재고 해소, 지방정부의 부채 축소 등 5개의 과제가 제시됐었다.

공급과잉 해소를 위해선 무엇보다 국유기업 개혁이 가장 중요하다. 국유기업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가 고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실제로 국유기업들은 그동안 에너지·철강·화학·통신·항공 등의 주요 산업부분에서 중심축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국의 국유기업은 15만5000개나 된다. 2013년 말 기준 국유기업의 연간 총 매출은 47조1000억 위안(7조3600억 달러)이다.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66%에 달한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주도형 성장모델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국유기업은 중국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전락했다. 중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과잉공급, 과잉재고, 과잉부채 등 ‘3대 과잉’ 문제의 진원지가 국유기업이었다. 과잉공급과 과잉재고는 국유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국유기업의 부채는 갈수록 늘고 있다. 중국의 은행 대출 중 89%가 국유기업에 몰려 있다. 이 때문에 국유기업들만 잘나간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국유기업은 국가 전략산업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까지 문어발식으로 확장해왔다. 전체 국유기업들 중 51%에 이르는 8만 개 정도가 국가 전략산업과는 무관한 호텔, 쇼핑몰, 레스토랑 등의 업종에 분포돼 있다.

중국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는 110개에 달하는 대형 국유기업을 M&A를 통해 40여 개로 줄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M&A는 이미 시작됐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중국 양대 고속철 제조회사인 중궈베이처(中國北車)와 중궈난처(中國南車)의 합병을 들 수 있다. 두 회사는 세계 1위와 2위의 고속철 제조 기업들이다. 두 회사의 연간 매출은 2280억 위안에 달한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시가 총액 1300억 달러(145조원)인 세계 최대 고속철 기업인 중궈중차(中國中車)가 지난해 6월 출범했다. 이 회사의 규모는 세계 최대 제조업체인 미국의 GE 다음이다. 두 거대 국영 철도회사의 합병은 수출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이뤄졌다. 2013년 아르헨티나 고속철 입찰 과정에서 중궈베이처가 대당 230만 달러를 제시하려 했지만 중궈난처가 127만 달러에 입찰액을 제시했고, 이 과정에서 두 회사는 소송전까지 벌였다.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은 정부로 하여금 통합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새로 출범한 중궈중차는 앞으로 중국 정부가 각국을 상대로 벌이는 고속철 세일즈 외교 덕분에 상당히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이 회사는 그동안 입찰과정에서 제 살 깎아 먹기식의 가격 경쟁을 벌이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던 부분도 상쇄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사는 첫 사업으로 6000만 달러를 투자해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 공장을 지어 보스턴의 지하철을 생산할 예정이다.

공룡 국영기업의 등장과 민간경제의 위축


▎2015년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 참여한 중국 하이얼의 커브드 TV. 하이얼은 GE 가전사업 부문을 합병했다. / 사진·뉴시스
중국 5대 원자력 발전업체 가운데 하나인 중국전력투자집단(CPI·중국전력)과 국가핵전기술공사(SNPTC·국가핵전)도 지난해 6월에 합병됐다. 중국전력의 중국 원전 시장의 점유율은 10%를 넘는다. 국가핵전은 세계적인 원자력기업인 미국 웨스팅하우스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운영해왔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자산 7000억 위안(125조원), 매출액 2000억 위안( 35조원) 규모의 거대한 에너지 기업인 국가전력투자집단(SPI)이라는 새 회사가 출범했다. 중국 정부가 두 거대 원자력 관련 국유기업의 합병을 승인한 것은 원전의 해외 수출을 활성화하겠다는 정책적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최대 원전 기업인 중국핵공업집단(CNNC)과 중국광둥핵전집단(CGN)을 합병시킬 계획이다.

중국 양대 해운사인 중국원양운수집단(COSCO)과 중국 해운집단도 합칠 계획이다.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의 합병 승인에 따라 전체 컨테이너 수송업의 7.7%를 차지하는 세계 4위의 업체가 탄생한다. 두 회사의 매출을 합치면 400억 달러(47조원)에 달한다. 또 해운 물류 기업인 자오샹쥐(招商局) 집단과 중국 와이윈창항(外運長航)집단도 합칠 예정이다. 와이윈창항이 자오샹쥐집단의 자회사로 흡수되면서 초대형 해운물류 국유기업이 탄생할 예정이다. 자오샹쥐집단은 지난해 말 기준 자산 6242억 위안을 기록한 육로와 해로를 이용한 에너지 운송과 항만물류 주력 국유기업이다. 와이윈창항 집단도 총 자산규모 1091억 위안의 항공 운송, 선박, 중공업 관련 사업을 펼치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인 국유기업이다.

금속·광산개발 국유기업인 우광집단(五鑛集團)과 예진커궁집단(冶金科工集團)도 합병 대열에 합류했다. 두 기업 모두 세계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대형기업이지만 구리·아연 등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실적이 악화된 상태다. 중국 증권업계는 이들 두 기업이 합병하면 자산 7000억 위안의 공룡 금속기업이 탄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 중국 3대 이동 통신 기업 중 차이나유니콤과 차이나텔레콤의 합병 가능성도 높다. 두 회사는 최근 전략적 협력계약을 체결하고 향후 통신 인프라 자원을 공유해 고객서비스 품질을 높이기로 합의했다.

중국 3대 항공사 중 2개 항공사의 합병설도 나돈다. 2개 항공사만 합병한다고 해도 이를 통해 재탄생하는 항공사는 단번에 세계 3위권의 항공사가 된다. 현재 항공기 보유대수는 국제항공(에어차이나)이 322대(세계 10위), 남방항공이 472대(세계 5위)로 이 두 기업이 합병하면 세계 1위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967대)이나 2위 델타항공(785대)을 단번에 위협하게 된다.

공룡 국유기업들은 앞으로 경쟁력 제고를 통해 세계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은 ‘제조 2025’ 계획을 통해 철도·원자력발전·통신 등 중공업 분야의 세계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며 “국유기업간 합병을 통한 대형화는 중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겨냥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의 장시푸(張喜富) 부주임은 “대형 국유기업들이 합병을 통해 낙후된 생산설비를 도태시키고 빠른 기술혁신을 추진, 품질을 높일 경우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같은 업종의 국유기업간 합병을 통한 대형화는 글로벌 무대에서 중국 기업의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각에선 공룡 국영기업의 합병은 민간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중국 정부의 기본방침을 뒤엎는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합병을 통해 재탄생하는 국영기업이 강력한 힘을 얻게 돼 중국 경제의 또 다른 이익세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해외와 국내에서 ‘투트랙’의 M&A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공룡으로 군림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나치게 덩치가 큰 공룡이 반드시 살아남지는 않는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201603호 (201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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