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정치 포커스] 김무성 총선 이후의 야망 

“전국 지원유세? 나 말고 또 있나!”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총선 새누리당 압승 이끈 뒤 여름 정국 대선 레이스 돌입… 리더십 불신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 재설정으로 해소할 듯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3월 들어 친박계와의 갈등이 격화된 뒤로는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거의 묵언수행 행보를 보였다. / 사진·중앙포토
3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706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사무실 문은 닫혀 있었다. 평소에 활짝 열려 있던 문이 닫혔다는 건 긴한 일이 있어 외부 방해를 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호기심에 회관 복도 쪽으로 난 손잡이를 아래로 내렸더니 문이 스르르 열렸다. 안에 있던 비서실 직원들이 여느 때와 같이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김 대표 방 문도 역시 닫혀 있었다. 김 대표가 김학용 대표비서실장 등 측근 의원, 보좌진들과 1시간 넘게 마라톤회의를 하는 중이었다고 했다.

이날은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위원장 이한구)의 7차 공천결과 발표가 예고돼 있었다. 컷오프(공천 배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한 유승민(대구 동을), 이재오(서울 은평을), 윤상현(인천 남구을) 의원 등 거물 정치인은 물론이고 김 대표 쪽 사람인 김학용 비서실장(경기 안성), 김성태 의원(서울 강서을)의 거취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았다.

김 대표는 이틀 전인 3월 13일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중·영도 선거구 경선 참여가 확정되면서 컷오프 트라우마에서 벗어났지만 비박계 주요 인사들의 ‘생사’는 아직 유동적이었다. 상향식 공천제에 정치 생명을 걸겠다던 김 대표로서는 비박계 인사들의 무더기 낙천 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봄? 아직 온 건 아니지”

마침 김 대표 방 문이 열리면서 참모들을 뒤로 한 채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 대표는 자신의 경선 방침이 확정된 이튿날인 3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생을 챙기겠다”며 공약을 발표하는 등 공식석상에서의 3주간의 침묵을 깼다. 2월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청원 최고위원과 언쟁 끝에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이래 25일 만이었다. 그의 묵언수행이 막을 내렸다는 해석이 따랐다.

방 문 앞에서 마주친 기자가 묵언수행을 끝낸 소감을 묻자 그는 “지금 언급 하기는 좀 곤란하다”며 말을 아꼈다.

그럼 묵언수행은 계속된다는 말인가?

“내가 언론에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새해 들어 몇몇 언론과 약속한 인터뷰도 못하고 있다. 관훈클럽 토론 등 정당의 대표로 참여하는 일정만 소화할 참이다. 지금은 언론에 코멘트하지 못한다. 사정을 이해해달라.”

공천 작업이 막바지로 치닫는다. 당 대표로서 총선 구상을 듣고 싶다.

“그건 지금 개별적으로 언급하기 어렵다.”

언제쯤 언론과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겠나?

“…”

공천 작업이 끝나야 하나?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매듭짓는 시점쯤인가?

“그렇다. 공천 작업이 마무리돼야 가능하지 않겠나.”

얼마 전 김종필 전 국무총리 출판기념회에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이라고 했는데 (공천 참여가 확정된) 지금은 봄이 왔나?

“봄? 아직 온 건 아니지.”

말이 많아 탈이었던 그가 지금은 한마디라도 허투루 하지 않으려고 절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예전의 다변(多辯)으로 돌아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겠지만 어쨌든 그는 이날까지도 묵언수행을 이어나갔다. 얼마 전 공천 ‘살생부’ 논란에 연루돼 곤욕을 치른 입장에서 말을 아끼고 형세를 주시하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대표인 그조차 공천 국면에서는 이렇게 숨을 죽인다. 국회의원에게 공천관리위는 목숨을 뗐다 붙였다 하는 저승사자와도 같다. 김 대표도 낙천(落薦)의 충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2008년, 2012년 총선에서 연거푸 공천에서 배제돼 한 번은 무소속으로, 또 한 번은 재선거를 통해 겨우 정치생명을 이었다. “나는 5선이지만 두 번이나 공천을 못 받았다(2015년 3월 한국해양대, 같은 해 12월 새누리당보 창간 기념식)”고 하던 거듭된 발언에서도 낙천의 대한 그의 트라우마가 읽힌다.

이날 늦은 밤에도 김 대표의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자정이 거의 가까워오는 시각에도 김 대표와 측근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나눴다. 이에 앞서 늦은 저녁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제7 차 공천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비박계 수도권 중진인 이재오·진영 의원, 유승민 의원과 가까운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이 추풍낙엽처럼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날 컷오프된 현역 의원 8명 가운데 7명을 비박계가 차지했다. 비박계 ‘공천대학살’ 사태를 맞아 대책을 마련하고자 참모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김 대표 측도 “이렇게까지 비박계를 쳐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면서 “상향식 공천 원칙이 무너진 이상 그에 합당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급기야 김 대표는 3월 16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공관위 공천심사 결정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현역의원이 경선에 참여할 기회마저 박탈한다는 것은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며 공관위 결정이 당헌·당규에 어긋난다고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한구 위원장은 “김 대표의 기자간담회 내용 중에 공천위가 무슨 당헌·당규를 위반하고 임의로 결정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는데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즉각 일축했다. 공천 막바지 김 대표가 공관위의 독주에 반격을 가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이미 자신이 약속한 상향식 공천도 무너졌고, 김 대표의 우군이 될 수 있는 비박계 상당수가 공천에서 배제된 상태였다.

대선 경선캠프 올여름에 뜬다

이 와중에서도 김 대표는 자신을 비롯해 측근 인사 다수가 공천을 받은 반면, ‘친유승민’ 인사들은 거의 전멸하다시피했다. 윤상현 의원의 취중 녹취록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친박계와 김 대표가 모종의 타협을 시도했으며 그 결과가 공천 결과로 나타났다는 풍문까지 나도는 배경이다.

물갈이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승민 의원은 손발이 다 잘린 ‘산송장’ 신세로 전락한 반면, 같은 비박계인 김 대표는 전력을 온전히 보존함으로써 다음 관문인 대선에 도전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비즈니스 세계와 마찬가지로 정치는 냉엄하다. 공천 파동은 파동이고, 한쪽에서는 본선 채비를 서두르는 게 정당의 생리다.

김 대표 또한 공천 후유증을 수습하는 대로 총선 승리를 이끌어야 할 당대표로서 전국 유세에 나설 계획이다. 새누리당은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권을 떠난 뒤로는 표를 모아줄 스타 정치인 부재를 절감하고 있다. 총선은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 메워줌으로써 자신의 경쟁력과 상품성을 입증하는 기회다. 새누리당에서 전국 단위의 유세에 투입할 재원이 드물다는 점도 그의 의욕을 북돋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김 대표 측은 “그래도 ‘김무성’ 하면 전국 어디서든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인지도가 따른다”면서 “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김무성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평판이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에게는 ‘총선=대선’인 셈이다.

총선이 끝나면 개헌 논의 점화와 같은 특단의 변수가 없다면 바로 잠룡들의 물밑 레이스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잠룡을 중심으로 20대 국회의원들이 결집하게 마련이며 그 과정에서 세력 분화 및 재편이 이뤄진다. 김 대표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여권의 인사 중 확고 부동한 지지율 1위다. 새누리당 역대 유력 주자들은 선거 전 해 7~9월 사이에 대선후보 경선 캠프를 발족했다. 김 대표의 대선 경선 캠프도 이르면 올여름쯤 꾸려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총선은 김 대표에게 대선으로 가는 결정적 승부처다. 자신이 주도한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소기의 목표(180석)를 거둔다면 승리의 공은 일정 부분 그의 몫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엔 언제부턴가 의문부호가 따른다. 잦은 설화에다 거친 언어 습관, 거기에다 말 바꾸기까지 정치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무게와 신뢰가 떨어진다는 평가다.

마음에 새겨진 ‘인(忍)’


▎2월 16일 오전 국회에서 국정연설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본회의장을 나서는 김무성 대표. / 사진·중앙포토
2014년 7월 당 대표 취임 이후 그의 리더십은 툭하면 도마 위에 올랐다. 당직 인선과 상하이 개헌 발언, 기업인 가석방 주장, 경선 안심번호 도입 합의, 최근의 공천 살생부 발언까지 자기 입장을 번복하기가 다반사였다. ‘치고빠지기’식 정치를 해서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비아냥이 친박계 내부에서 제기됐다. 이번 총선에서도 김 대표가 대선 주자로서의 명분과 정치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신율 명지대 교수가 말했다. “김 대표가 자신이 연루된 공천 살생부 파문을 사과함으로써 대선 주자로서의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구기고 친박계와는 윤상현 의원 공천 배제로 관계가 더 악화됐다.” 겉으로는 남는 장사를 했더라도 안으로는 밑졌다는 뜻이다.

정두언 의원이 말한 ‘김무성의 30시간 법칙’은 김 대표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말을 해놓고 청와대나 친박계가 몰아붙이면 30시간을 못 버틴다 해서 나온 풍자다. 여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그립(장악하려는 시도)’을 너무 세게 잡는 통에 김 대표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아진 결과로 해석하기도 한다. 특정 현안에 청와대가 단호하고 강경하게 나오면 김 대표가 이를 다 들어주면서 무질서하게 퇴각하는 바람에 자기 페이스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 본인이 당대표 경선에서 공약한 ‘수평적 당청관계’를 실천하지 못한 자업자득이라는 비판도 따른다. 김 대표는 2014년 7월 당대표에 선출된 직후 당청관계를 자신했다. 그는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서 “대통령에게 밝은 눈과 큰 귀가 돼서 구석구석의 여론을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김 대표 두 사람은 철저하게 평행선을 그었을 뿐 한 번도 가까이 수렴하는 관계에 간 적이 없다. “박 대통령도 곁을 주지 않았고, 김 대표도 박 대통령을 설득하거나 감동케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 한계를 노출했다”고 황태순 정치평론가가 말했다.

김 대표 주변에서는 그의 마음에 적어도 ‘인(忍)’자 몇 개는 새겨졌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한 측근은 “대통령과 관계된 모든 사안은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라면서도 “안 그랬으면 판을 깨도 몇 번은 깼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을 위해 대승적 양보를 하는 과정에서 리더십 손상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이 측근은 “당 대표라는 자리는 하고픈 얘기, 원하는 행동을 다 하는 자리가 아니다”면서 “당의 분열과 갈등을 봉합하면서 통합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라고 항변했다. 오는 7월 김 대표가 당직을 내려놓는 순간 자유로운 입장에서 소신행보를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때는 김 대표 대선 경선 캠프가 꾸려지는 시점과 맞물린다. 차기 주자로서의 본격적인 ‘마이웨이’에 나서면 리더십의 진면목을 보여주리라는 의미다. 물론 이때쯤이면 박 대통령과의 관계도 재설정되리라는 게 김 대표 주변의 설명이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604호 (2016.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