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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날치가 공중을 후다닥 나는 이유 

가슴지느러미(pectoral fin)가 몸길이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 것도 도망가기 위한 일종의 적응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포식자를 피해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 날치 떼 / 사진·중앙포토
‘공중을 나는 물고기’ 날치는 날칫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따뜻한 바다에 살고, 가슴지느러미가 새 날개처럼 큼직하여 위험타 싶으면 불쑥 물 위로 튀어나와 날아가기에 비어(飛魚, flying fish)라 한다.

날치를 처음 만난 것은 까마득한 옛날,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 2학점이 걸린 ‘해양생물학(海洋生物學) 실습’을 하느라 남해안을 갔을 적이다. 여수수산고등학교 강당에 진을 쳤다. 깡 촌놈이 난생 첨으로 넓디넓은 바다를 보고 놀라 자빠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깊은 바다에서 잡아 올린 심해어(深海魚)가 기압을 못 이겨 부레, 내장이 터져버리는 그런 느낌이랄까!?

현미경과 실험도구들을 챙겨 여수행 밤열차를 타고 밤새도록 내쳐 달려간다. 들뜬 설렘에 희희낙락했던 그런 시절이 어제만 같은데 속절없이 팔십 줄 늙정이 신세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나. 세월이 하 무상하다. 아무튼 요새는 흔하되 흔한 생석회(生石灰) 한 봉지면 둘러 쓸 것을 가지고 교실마다 돌아치며 백묵가루를 쓸어서 모았고, 비닐도 없을 때라 신문지로 겹겹이 그것을 둘둘 말아 노끈으로 꽁꽁 맸었다.

첫 시간으로 기억난다. 선배 조교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백묵가루를 한 옴큼씩 움켜쥐고 바닷가에 양탄자처럼 지천으로 깔린 해면(海綿, sponge)에 흩뿌려놓은 뒤 진득하게 기다린다. 아뿔싸, 얼마 지나지 않아 둘러쓴 흰 가루가 금세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갯솜(해면)이 후딱후딱 죄 빨아 먹어버린 까닭이다. 저쪽 언덕바지에서 팔깍지를 끼고 지켜보시던 최기철(崔基哲) 선생님이 환히 웃으신다! 제자들이, 해면이 하는 짓을 보고 놀라 날뛰는 모습에 마냥 흐뭇하셨던 것. 하긴 가르치는 재미가 다 그런 데 있지!

둘째 날은 굴(석화, 石花, oyster)의 발생 실험을 하는 날이다. 바윗돌의 굴을 따와 껍데기를 열고 배 중간쯤을 핀셋(pincette)으로 푹 찔러 주르르 흐르는 체액을 받침유리(slide glass)에 받아 문질러본다. 우유처럼 맑게 퍼지면 수놈정자이고, 자잘한 알갱이들이 생기면 암놈난자다. 둘을 바닷물로 채운 비커(beaker)에 섞어 두었더니만 어느새 굴 유생들이 맨눈으로 보아도 뿌연 먼지처럼 마구 휘젓고 다닌다. 새 생명의 탄생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스러운지 모른다.

400m 날면서 45초간 하늘에 머문 게 최고 기록


▎날치는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알 맛이 일품이다.
오늘은 잔잔한 바다로 나가 통통배를 타고 플랑크톤을 채집한다. 알싸한 바다 냄을 맡으며 한갓지게 한참을 달리는데 별안간 모두 우두망찰하여 정신들이 반나마 나갔다. 하늘 높이 번뜩이는 물고기들이 뱃머리에서 고물(선미, 船尾) 쪽으로 휙휙 날아간다. 넘실대는 바다하늘에 물고기가 나닐고 있는데 누군들 어찌 아니 놀랄 수 있겠는가. 뱃사공은 학생들이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선생님처럼 싱긋벙긋거린다. 그 물고기가 바로 날치렷다.

일명 ‘날치어’, ‘날치고기’로 불리는 날치(Prognichthys agoo)는 길이 30~40㎝가량에 가늘고 길며, 양 옆으로 눌려 약간 납작하다. 부연하면 유선형(流線型)인 길쭉한 원기둥꼴(방추형, 紡錘形)로 주둥이는 짧고, 잔 이빨이 잔뜩 나며, 눈은 꽤 큰 편이다. 새 날개 같은 아주 큰 가슴지느러미에다 배지느러미·등지느러미·꼬리지느러미도 크고 우뚝우뚝 선다. 등 푸른 물고기 청어처럼 등은 어둔 청색이고, 배는 희며, 무리지어 사는 소형 어류다. 날치는 소형갑각류나 동물성플랑크톤을 잡아먹고, 상어·돌고래·다랑어·물새·문어 따위에 잡아먹힌다.

그리 깊지 않은 근해의 표층(表層)에서 수심 30m 사이에 지낸다. 전 세계에 64여 종이 있고, 열대·온대 해양에 걸쳐 살며, 동양에서는 한국 중부 이남, 일본 남부, 대만 등지에 분포한다. 산란기는 5~7월로서 수심 20~30m의 암초지대의 해초에 산란하는데 성어(成魚)는 한 배에 1만5000여 개를 낳는다.

사실 날치가 공중을 후다닥 나는 것은 포식자(捕食者, predator)를 피해 곧장 도망가는 행위로, 아마도 우리가 탄 배를 돌진해오는 상어나 고래로 여겼을 터다. 아무튼 위협을 느끼면 수중에서 공중으로 거침없이 날아오른다. 날치의 가슴지느러미(pectoral fin)가 유별나게 크고 넓은 것이 몸길이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데 이런 지느러미의 변형은 도망가기 위한 일종의 적응이다.

수면을 전속력으로 헤엄치다가 단박에 상체를 발딱 세우면서 꼬리를 잽싸게 흔들어 수면을 타듯 가뿐히 도약(跳躍), 비상(飛翔)하고, 마침내 가슴지느러미를 활짝 편 채 글라이더(glider)처럼 활강(gliding)한다. 물에 내릴 때에는 두 가슴지느러미를 슬며시 접고, 꼬리지느러미가 스르르 먼저 수면에 닿는다. 해서 1900년대 초기에는 비행기 모형으로 쓰기 위해 많은 연구를 깊이 했다 한다.

날치 하면 살보다 오히려 날치 알(flying fish roe)을 더 쳐준다. 입 안에서 오독오독, 톡톡 터지는 알 말이다. 지름이 0.5~0.8㎜쯤 되는 동글동글하고 반짝거리는 날치 알은 비빔밥, 김밥에도 넣는다. 일본인들은 우리보다 더 즐겨 먹어서, 알을 오징어먹물(squid ink)로 검게, 유자즙으로 노랗게, 고추냉이(wasabi)로 연두색 물을 들여 초밥에 올린다. 또한 생선·야채·과일 등 다양한 재료를 써서 서양인들의 입맛에 맞게 한 캘리포니아롤(California roll) 초밥이 유명하다. 날치 알은 영양가가 매우 걸어서 푸짐한 비타민과 단백질에 지방산(fatty acid)인 오메가-3, 오메가-6도 무척 풍부하다.

물 위로 뛰쳐나오는 순간 속력은 시속 70㎞ 정도고, 나는 동안에 꼬리지느러미를 매우 빠르게 흔들어 방향을 조절한다. 해면(海面)에 살짝 닿거나 2~3m 높이로 나는 것이 예사인데 지금껏 최고 6m를 날아올랐고, 또 보통은 공중에서 50m 거리를 날지만 최고로 400m를 날면서 45초 동안 하늘에 머문 것이 최고 기록이라 한다. 이렇든 저렇든 날개 가진 물고기 놈이 하늘을 씽씽 날아대니 예사로운 생물이 아니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604호 (20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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