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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루쉰의 세계에 어떻게 입문할까 

전기나 평전 먼저 뚫으면 광맥 만난다 

이주노 전남대 중문과 교수
한글본 <루쉰전집> 발간은 전 세계에서 중국, 일본에 이은 세 번째… 입문자는 ‘인간 루쉰’에 초점 맞춘 몇몇 평전부터 읽어보라

▎중국의 근대화를 기획한 영웅 가운데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 혁명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면, 루쉰은 사상가, 문화운동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 사진·중앙포토
누군가에게 루쉰은 젊은 날의 초상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었던 창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굴복을 모르는 루쉰의 정신세계가 경이롭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그쳐 시대와의 불화를 자청했다. 루쉰 애호가들은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루쉰의 저작 읽기를 부인에게 권하는 한 독자의 편지. 루쉰의 사상은 한중일 3국의 민중과 지식인 독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사진·중앙포토
루쉰(魯迅)은 현대중국의 사상사 및 지성사에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국가권력의 폭력성에 끊임없이 저항하였으며, 이데올로기의 경직성과 편협성에도 가차없는 비판을 가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삶은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전형적인 본보기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아울러 그는 인간의 개조와 변혁을 통한 근대적 주체의 탄생을 꿈꾸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근대적 인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근대화를 기획했던 수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마오저뚱(毛澤東)이 혁명가·정치가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면, 루쉰은 사상가·문화운동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루쉰이 지닌 이러한 대표성과 특수성으로 인해, 루쉰과 그의 사상은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정통성과 정당성을 담지해주는 하나의 기호가 되어왔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누군가에게는 억압과 통제를 가할 대상이 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에겐 찬사와 영광을 돌릴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의 글은 누군가에 의해 특정한 의미로만 해석되었으며, 때로 잘려나가거나 편집되었다. 따라서 그의 글을 온전하게 한데 엮어 묶는 행위는 루쉰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줌으로써 우리가 만든 족쇄에 갇힌 루쉰을 해방시키는 의미를 갖게 된다.

루쉰의 글을 전집의 형태로 출간하는 것은 단순히 루쉰을 연구하기 위한 1차 텍스트를 확정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루쉰 전집을 출간하는 편찬자의 의도가 출간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어떤 형태로든 전집에 스며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루쉰을 권력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담보하는 상징으로 이용하고자 할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루쉰의 전집을 출간했던 지난 1980년의 역사는 이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루쉰의 전집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일차적으로 루쉰의 글이 역사적 맥락에 따라 누구에게 어떻게 전유(專有)되고 해석되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루쉰을 ‘천고의 죄인’으로 간주한 대만 사상계


▎1923년 4월 베이징에서 국내외 문인들과 자리를 함께한 문인 저우줘런(周作人)과 루쉰(앞줄 왼쪽에서 첫째와 둘째). / 사진·중앙포토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 자체는 어쩌면 정치적 행위일지도 모른다. 도저히 평이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의 글을 굳이 찾아 읽겠다는 것은 그(의 글)에 대한 재구(再構)를 통해 우리의 현실사회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전집을 우리말로 옮기겠다는 발상은 더더욱 정치적 의미를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중국에서 루쉰의 전집을 발간하는 것 자체가 상당부분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이 글은 우선 최근 그린비 출판사에서 발간되고 있는 <루쉰전집>의 번역이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지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더듬어보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중국에서의 <루쉰전집> 발간의 역사, 우리나라에서의 루쉰 연구사도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 최초의 <루쉰전집>은 1936년 10월 19일 루쉰이 세상을 떠난 지 이태 후인 1938년 6월에 발간되었다. 이 전집은 루쉰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분위기 속에서 ‘루쉰선생기념위원회’의 주도 아래 기획되었으며, 당시 국민당의 엄혹한 검열과 중일전쟁의 혼란한 상황 아래 이루어졌다. 이 전집은 약 600만 자, 총 20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저술(제1권~제7권), 고적 정리와 저작(제8권~제10권), 번역(제11권~제20권)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전집은 루쉰의 저술과 번역을 망라하여 전집으로 엮어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녔지만, 서너 달만의 수집과 정리, 편집이 이루어진 까닭에 여러 가지 결함이 있다. 이를테면 교감의 부정확함에 따른 오자나 탈자, 그리고 루쉰의 일기 대부분과 서신을 전혀 수록하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신중국 수립 직후인 1950년대 초에 ‘루쉰저작편집실(魯迅著作編輯室)’을 두어 새로운 <루쉰전집>을 발간하고자 하였다. 당시 <루쉰전집>의 재발간은 신중국과 대만에서의 루쉰에 대한 평가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신중국에서는 루쉰을 ‘위대한 문학가, 위대한 사상가이자 혁명가’로 높이 평가하였던 반면, 대만에서는 ‘인격에 문제가 있는 작가’, ‘천고의 죄인’으로 매도했다. 그리하여 신중국은 루쉰을 통해 자신의 정치권력의 합법성과 정통성을 과시하고자 하였던 반면, 대만의 국민당정부는 루쉰에게 공산당 혐의를 뒤집어씌움으로써 반공이데올로기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입증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 <루쉰전집>의 발간은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 아래 순탄하게 개시되었다. 그러나 전집 발간의 총책임을 맡고 있던 펑쉐펑(馮雪峰)이 예상치 못한 정치적 위기를 맞아 1957년 반우파투쟁 당시 우파분자로 비판받게 되었다. 이러한 역경과 위기 속에서도 ‘루쉰저작편집실’은 1956년 10월 제1권을 인민문학출판사에서 출간한 이래 마지막 권을 1958년 10월 발간했다. 약 253만 자, 총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전집은 처음으로 5800여 항목에 54만 자에 달하는 주석을 덧붙였으나, 번역과 고적 정리는 제외된 채 저술과 서신 일부만을 실었다. 게다가 당시의 정치적 편향성으로 말미암아 본문의 일부가 삭제되거나 편파적이고 왜곡된 주석을 붙임으로써 <루쉰전집>의 완정성과 신뢰도에 치명적인 흠집을 남기고 말았다.

루쉰의 글에 대한 자의적 편집과 왜곡을 바로잡음과 동시에 일기와 서신을 온전하게 싣기 위해, 1976년 중국 정부는 루쉰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새로운 <루쉰전집>을 발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루쉰저작편집실’을 지도할 ‘루쉰전집 영도소조’를 설립하고, 영도소조 아래 주석을 담당하는 소조와 교감을 담당하는 소조를 두어 전집 출간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1981년에 400여 만 자, 총 16권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루쉰전집>이 발간되었다. 이 전집에는 그동안 발견되었던 글들과 함께 서신과 일기를 망라하는 한편, 주석을 새로이 덧붙여 약 23400여 항목에 총 240만 자로 확장했다. 주석에서는 특히 그동안 정치적 이유로 밝히지 못했거나 왜곡했던 항목에 대해 덧붙이거나 바로잡았다.

이 전집은 오랫동안 진척되어온 루쉰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높은 완정성과 신뢰성을 획득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전집 형태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우선 시급히 진행해야 했던 일은 주로 주석의 형태로 남아 있는 이데올로기적 편향성, 특히 루쉰과의 논쟁에서 논적이 되었던 많은 문인과 문학사단, 사조에 대한 폄하나 비난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아울러 1981년의 <루쉰전집> 발간 이래 축적되어온 새로운 연구성과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즉 원문과의 대조를 통해 오탈자를 바로잡는 교감 작업, 그리고 새로운 서신의 발굴, 특히 마스다 와타루(增田涉)와 주고받은 서신의 정리 등은 대표적인 연구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형세 속에서 인민문학출판사가 조직한 ‘루쉰전집 수정공작좌담회’가 2001년 6월에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이 좌담회에서는 ‘루쉰전집 수정공작위원회’를 설립하고, 이 위원회 아래에 ‘루쉰전집 수정편집위원회’를 두기로 결정하였다. 이 ‘편집위원회’는 <루쉰전집> 수정본의 발간을 위한 국가중점문화건설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핵심적 사업단위였다. ‘편집위원회’는 여러 차례의 회의를 개최하여 증보해야 할 편목을 확정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구한 끝에, 2005년 11월 새로운 수정본 <루쉰전집>을 인민문학출판사에서 발간했다. 이 수정본 <루쉰전집>은 총 750만 자에 총 1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 <루쉰전집> 발간은 여전히 미완성


▎그린비 출판사에서 간행 중인 <루쉰 전집>의 일부. 현재 9권이 출간됐고 1∼2년 내에 20권 전권이 발간될 예정이다. / 사진·중앙포토
수정본 <루쉰전집>은 1981년의 <루쉰전집>에 비해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일기와 서신이 각각 한 권씩 늘어났다. 이 밖에도 1500여 항목에 이르는 주석의 증보가 이루어지고, 이전의 주석 1000여 항목에 대해서도 수정을 가하였다. 이렇듯 완전성을 기하기 위해 노력한 수정본 <루쉰전집>은 지금까지 출간된 <루쉰전집> 가운데 연구자의 신뢰도가 가장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2005년 본은 여전히 많은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는데, 오탈자는 물론 인물이나 작품, 문맥상 설명이 필요한 부분 등에 여전히 주석이 가해지지 않았다. 수정본 <루쉰전집>이 발간된 이래 지금까지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고 결함을 보완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루쉰전집>의 발간은 여전히 미완성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대로 중국에서는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루쉰전집>이 발간되었다. 그렇다면 루쉰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한 일본에서의 <루쉰전집> 및 루쉰 작품에 대한 번역 상황은 어떠한가? 일본에서는 단행본의 번역·출간은 말할 나위 없고, 선집과 전집의 출간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일본 최초의 선집은 1932년 가이조샤(改造社)에서 출간된 <루쉰전집>(이노우에 코바이井上紅梅 역)으로, 루쉰의 <외침>과 <방황>을 수록하고 있다. 이어 1935년 6월 이와나 미쇼덴(岩波書店)에서 <루쉰선집>(사토 하루오佐藤春夫와 마스다 와타루增田涉 역)이 출간되었는데, 여기에는 루쉰의 소설과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미국과 유럽은 아직도 전집 발간 못해


▎풍자적이고도 중의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한 루쉰. 전문가들도 읽기 쉽지 않아 이해를 위하여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작가다. / 사진·중앙포토
이들 선집 번역을 토대로 하여 전집의 형태를 갖추어 출간된 것이 <대루신전집(大魯迅全集)>이다. 이 전집은 루쉰의 서거 직후인 1936년 11월 4일 도쿄에서 열린 루쉰추모대회에서 출간하기로 결정되어, 1937년 2월부터 8월 사이에 총 7권의 <대루쉰전집>을 가이조샤에서 출간하였다. 중국보다 1년 남짓 앞서 출판된 이 전집은 루쉰의 소설과 산문시, 잡문은 물론 소설사 연구 및 서신과 일기 등을 두루 망라하고 있다. 하지만 잡문과 서신, 일기는 일부만을 선택적으로 싣고 있다는 점에서 온전한 전집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전후 일본에서 루쉰의 글을 번역한 주요 선집과 역자, 수록 내용은 아래와 같다.

- 1954년 아오키쇼덴(靑木書店)에서 출간된 <루쉰선집>(전5권): 오다 타케오(小田岳夫)와 다나카 세이치로(田中淸一郞) 역. 소설과 산문시를 수록

- 1957년 이와나미쇼덴에서 출간한 <루쉰선집>(전13권):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와 마스다 와타루 등 역. 소설과 산문시, 잡문, 일기와 서신을 수록.

- 1983년 치쿠마쇼보(築摩書房)에서 출간된 <루쉰문집>(전6권): 다케우치 요시미 역. 소설과 산문시, 잡문을 수록.

이들 선집은 루쉰의 글을 온전히 싣고 있는 전집은 아니었다. 일본 최초의 전집은 1984년부터 1986년에 걸쳐 가쿠슈켄큐샤(學習硏究社)에서 출간된 총 20권의 <루쉰전집>이었다. 이 전집은 중국에서 1981년에 출간된 <루쉰전집>을 저본으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이토 토라마루(伊藤虎丸), 마루오 츠네키(丸尾常喜), 마루야마 노보루(丸山昇), 이이쿠라 쇼헤이(飯倉照平), 다츠마 쇼스케(立間祥介), 기야마 히데오(木山英雄) 등 당시의 저명한 중국문학 연구자들이 대거 번역진에 참여하였다. 이 전집은 그동안의 번역성과를 총결함과 동시에, 루쉰에 관한 새로운 연구의 디딤돌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미국과 프랑스를 살펴보면, 대체로 루쉰의 작품 가운데 소설과 산문시, 잡문의 번역 단행본이 상당수 출간되어 있다. 주목할 만한 번역으로는 미국의 경우 4권으로 이루어진 <루쉰선집(LU XUN SELECTED WORKS)>(Yang Xianyi & Gladys Yang 역, Foreign Languages Press, 1980)이 있다. 이 선집에는 루쉰의 단편소설, 산문시와 잡문 등이 실려 있다. 또한 프랑스의 경우에는 <중국소설사략(Bréve Histoire du Roman chinois)>(Charles Bissotto 역, Gallimard, 1993)의 번역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도 아직 루쉰의 전집은 발간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의 루쉰의 글에 대한 번역상황은 어떤지 거칠게나마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루쉰의 소설이 최초로 번역·소개되었던 것은 1927년 8월의 일로, 유수인(柳樹人)이 번역한 <광인일기>가 <동광(東光)> 잡지 제16호에 실렸다. 이어 양백화(楊白華)가 번역한 <머리카락 이야기>(1)이 개벽사(開闢社)에서 1929년 1월에 펴낸 <중국단편소설집> 속에 수록되었다. 양백화는 이 작품에 이어 <아Q정전>을 번역하여 1930년 1월 4일부터 2월 16일까지 총 24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정래동(丁來東)은 같은 해 3월 27일부터 4월 10일까지 <중외일보(中外日報)>에 루쉰의 <죽음을 슬퍼함(傷逝)>을 <애인(愛人)의 사(死)>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연재하였다. 또한 루쉰이 서거한 후인 1936년 12월에 이육사(李陸史)는 <고향>을 번역하여 <조광(朝光)> 14호에 발표하였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일제 강점기에 번역·소개되었던 루쉰의 작품은 모두 단편소설이었다. 루쉰의 작품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해방 이후의 일로, 김광주와 이용규(李容珪)가 공역한 <노신단편소설집>(전3집)이 1946년 서울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이후 1963년에는 이가원(李家源)의 <노신소설선>(정연사精硏社)이, 1974년에는 세계문학전집(대양서적)의 일부로 장기근(張基槿)의 <노신과 그의 소설>(대양서적)이, 1975년에는 성원경(成元慶)의 <아Q정전>(삼중당)과 이가원의 <아Q정전·광인일기>(동서문화사)가, 1977년에는 하정옥(河正玉)의 <아Q정전>(신아사) 등이 잇달아 출간되었다. 이후에도 1986년에 출간된 김시준(金時俊)의 <노신소설전집>(한겨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루쉰의 소설이 번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루쉰의 소설에 대한 번역에서 벗어나 산문시와 잡문에 대한 번역으로 확장된 데에는 한무희(韓武熙)가 번역하여 1987년에 출간된 <루쉰문집>(전6권, 일월서각)이 크게 기여하였다. 이 문집은 다케우치 요시미가 번역하여 1983년에 출간한 <루쉰문집>을 저본으로 중역한 것이었다. 아울러 1983년에 루쉰과 쉬광핑이 주고받은 서신의 일부가 박병태(朴炳泰)에 의해 <루쉰선생님>(청사)이란 제명으로 출간되었다는 것 또한 특기할 만하다. 어쨌든 <루쉰문집>의 출간 이후 1991년에 이욱연의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창)와 유세종의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창) 등의 잡문집 및 서신집이 잇달아 출간되었다.

루쉰의 글에 대한 번역, 특히 잡문과 서신 등으로의 영역 확장은 <루쉰문집>의 출간 외에도, 중국의 인민문학출판사에서 출간된 <로신전집>(전4권)의 도움도 매우 컸다. 이철준(李哲俊)·박정일(朴正一) 등이 공역하여 1988년에 출간된 이 전집에는 루쉰의 소설, 산문시, 잡문과 서신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루쉰문집>의 출간과 더불어 <로신전집>이 우리나라에 소개됨으로써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루쉰의 잡문에 대한 번역이 탄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도 루쉰의 전집을 번역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로써 싹트기 시작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전집 발간 위해 국내 연구자들 피나는 노력


▎중국 상하이 훙커우취 소재 루쉰 공원 안에 있는 윤봉길 기념관. 훙커우 공원으로도 알려진 공원에는 루쉰의 묘와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 사진·중앙포토
이제 완간을 눈앞에 둔 한글본 <루쉰전집>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에서 <루쉰전집>의 번역을 기획했던 것은 1993년 여름이었다. 당시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의 소장 연구자들이 2000년 완간을 목표로 <루쉰전집>을 번역하겠노라 기획안을 짰던 것이다. 다소 무모하게 보이는 이 기획에 따라 이들은 국내에서 출간된 문집과 선집을 모으고 외국, 특히 일본의 선집과 전집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나 항산(恒産) 없이 항심(恒心)이 있을 수 없는 일, 학위논문에 쫓기고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소장 연구자들은 잠시 꿈을 접어야 했다.

이러구러 여러 해가 흘러 세기말에 이르러 그 꿈을 포기하지 않던 이들이 ‘루쉰 읽기 모임’을 만들어 루쉰의 글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루쉰의 글을 번역하여 발표하면서 루쉰의 글 특유의 결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함께 고민하면서, 짬짬이 번역과 관련된 이론서를 훑어보기도 했다. 루쉰의 글에 쓰인 용어 하나를 가지고 갑론을박 시비를 가리노라면 어느덧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 작업에 넌더리를 치기도 했다. 서너 해가 흐른 뒤에 출판된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케이시, 2003)는 바로 이 고투의 산물이었다. 이들은 좀 더 시간을 가져야 하겠노라며 꿈을 잠시 접기로 하였다.

이렇게 덧없이 흐르는 듯한 세월 속에서도 개인의 분투는 여전히 이어졌다. 루쉰의 <화변문학(花邊文學)>이 유병태의 <꽃띠문학>(지영사, 1999)으로 번역되고, 홍석표의 <무덤>(선학사, 2001)과 <한문학사강요>(선학사, 2003), <화개집·화개집 속편>(선학사, 2005) 등의 번역본이 연이어 출간되었다. 이제 중국현대문학계의 숙원 사업인 루쉰전집의 번역을 몇몇 개인의 분투에 내맡긴 채 박수만 쳐서는 안 되는 상황이 다가왔다. 그리하여 아직도 꿈을 잊지 않았던, 이제는 소장의 딱지를 떼고 중견 학자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들이 후배들에게 이 숙원사업의 짐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다시 모였다. 2007년 늦봄의 일이었다.

루쉰 왜 읽나?-소이부답

지난날의 실패와 좌절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조급함을 버리는 일이 우선이었다. 작업 기간으로 길게 5년 혹은 10년을 잡기로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각자가 맡은 분량의 조금씩이라도 윤독하기로 했다. 계속 만나는 과정에서 번역의 통일안을 만들고 루쉰 특유의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용어를 조율했다. 작업은 더뎠지만 성과는 쌓이기 시작했고, 비판은 날카로웠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는 두터워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린비 출판사에서 2010년 12월 세 권을 출간한 이래 지금까지 모두 9권을 출간했고, 올해 상반기에 3권을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아마 1년 안에 일기와 서신을 포함한 20권이 완간되리라 예상하고 있다.

혹 누군가는 묻는다. 루쉰이 대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기에 전집 번역에 매달리느냐고? 소이부답(笑而不答), 딴청을 부리는 게 정답이다. 아마 누군가에게 루쉰은 젊은 날의 초상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었던 창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루쉰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그쳐 시대와의 불화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으로 족하다. 루쉰의 글은 늘 우리에게 불의에 맞서도록 스스로를 담금질하라고 채찍질한다. 루쉰의 말을 빌리자면, 루쉰의 글이 더 이상 읽혀지지 않아도 좋을 세상이 속히 오기를 우리는 바란다.

루쉰의 글은 전문연구자일지라도 읽기가 쉽지 않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용어에 풍자적이고 중의적인 표현까지 겹치다 보면 아예 책을 놓고 싶어진다. 루쉰에 관심이 있다면 먼저 루쉰의 전기나 평전을 읽는 게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읽을 만한 루쉰의 전기나 평전이 꽤 출간되어 있다. 일반 독자들이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는 왕스징(王士菁)이 지은 <루쉰전: 기꺼이 아이들의 소가 되리라>(다섯수레, 1992)를 권한다. 1949년 초판이 발행되었던 터라 다소 딱딱하고 경전화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루쉰의 인간적인 면모를 맛보고 싶다면 루쉰의 아들 저우하이잉(周海O)이 지은 <나의 아버지 루쉰>(강, 2008)을 읽는 게 좋다. 루쉰의 자질구레한 가정사로부터 문단의 일사까지 두루 맛보는 재미가 있다.

이 밖에 루쉰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책으로 우선 주정(朱正)이 지은 <루쉰평전>(북폴리오, 2006)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평전의 이미지를 벗어 던진, 평이하고 말랑말랑한 평전이다. 왕샤오밍(王曉明)이 지은 <인간 루쉰>(동과서, 1997)과 린시엔즈(林賢治)가 지은 <인간 루신>(사회평론, 2007)도 볼 만하다. 둘 다 루쉰에 대한 연구가 경전화된 루쉰에서 벗어나 인간 루쉰으로 바뀌었던 이후의 역작이다. 루쉰의 피와 땀 내음을 좀 더 진하게 맡고 싶다면 린시엔즈가 지은 <노신의 마지막 10년>(한얼미디어, 2004)을 읽어도 좋다.

이주노 - 서울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석사, 서울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현대중국의 농민소설 연구’다. 저서로 <중국현대문학과의 만남>(동녘, 2006, 공저) 외 다수, 역서로는 <중화유신의 빛 양계초>(이끌리오, 2008) 등 여러 권이 있다.

201605호 (201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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