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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정치인이 음미해야 할 마키아벨리 어록 15 

“인민의 목표는 귀족의 목표보다 명예롭다” 

김경희 성신여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지배하고 억압하고자 하는 기질은 권력욕 수반… 지도자 능력은 인민의 지지를 통해 권력의 기반을 확충하는 것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썼던 피렌체 외곽의 빌라 건물. 오른쪽은 베키오 궁전 안에 있는 마키아벨리의 흉상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욕망이 분출하는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국가간의 영토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지도자의 능력을 그는 중시했다. 종교와 도덕이 지배하는 세상보다, 욕망과 이익이 인정되는 세계에 그는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인민의 성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주가 될 필요가 있고, 군주의 성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인민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_<군주론>, 헌정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지배자의 권력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조언서로 알려져 왔다. 때문에 폭군을 위한 지침서나 매우 위험한 저서로 치부돼왔다. 하지만 헌정사에서부터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설파한다. 군주는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지도자의 권력은 자신이 아닌 평범한 인민들에게 기반하기 때문이다.

“영토를 확장하고자 하는 욕구는 매우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욕구이며, 유능한 자들이 이를 수행할 때, 그들은 항상 찬양받거나 아니면 적어도 비난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취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 어떤 경우든 가리지 않고 이를 추구하려 할 경우, 그것은 비난을 받을 만한 실책이 된다.”_<군주론> 3장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이행기의 세계를 산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욕망이 분출하는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국가간의 영토전쟁 나아가 그것을 수행해야 하는 지도자의 능력에 대한 성찰은 종교와 도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욕망과 이익이 인정되는 세계로의 변화를 반영한다.

“그들의 행적과 생애를 검토해보면, 질료를 자신들이 생각한 최선의 형태로 빚어낼 기회를 가진 것 이외에는 그들이 행운에 의존한 바가 없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기회를 가지지 못했더라면, 그들의 위대한 정신력은 탕진되어버렸을 것이고, 그들에게 역량이 없었더라면 그러한 기회는 무산되어버렸을 것이다.”_<군주론> 6장

그들은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던 인물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들도 기회가 없었다면 역량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영웅은 상황을 창조하는 이가 아니라, 기회를 잘 이용하는 사람이다. 상황을 창조하는 이는 무맥락적이고 독존적이다. 반면 기회를 잘 이용하는 이는 상황과 맥락 그리고 시중(時中)을 중요시 여긴다. 따라서 기회의 파악은 주변 관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모든 도시에는 인민과 귀족의 두 계급이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편으로 인민은 귀족에 의해서 지배당하거나 억압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 귀족은 인민을 지배하고 억압하고자 하기 때문에 초래된다. 도시에 존재하는 상이한 이 두 가지 기질로부터 세 가지 가능한 결과가 초래되는데, 곧 군주정, 공화정 그리고 무정부상태가 그것이다.”_<군주론> 9장

마키아벨리는 공동체 구성 세력들의 관계 속에서 정치체제가 구성된다고 보았다. 그들은 귀족과 인민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근본적으로 갈등관계에 있다. 더 많은 정치·경제·사회적 자원을 가진 귀족은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인민들은 자유롭게 사는 것을 바란다. 이들은 관계 속에는 긴장과 갈등이 내재적이다.

“인민들의 목표는 귀족들의 목표보다 명예롭다. 즉 귀족들은 단지 억압하고자 하는 데에 반해서 인민들은 단지 억압당하는 데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 나는 군주가 그에게 우호적인 인민들을 가지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겠다. 그렇지 않으면 역경에 처했을 때 속수무책이 될 것이다.”_<군주론> 9장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지도자들이 귀족보다는 인민들에 기반해야 함을 강조한다. 지배하고 억압하고자 하는 기질은 권력욕을 수반하기에 분란의 원인이 된다. 반면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은 공동체에 유익하다. 따라서 인민들의 지지를 획득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지도자의 필수과제다. 지도자의 능력은 인민의 지지를 통해 권력의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 십상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필요에 따라 부도덕을 이용하거나 이용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배워야만 한다. (…) 얼핏 유덕한 것으로 보이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_<군주론> 15장

합리적인 질서가 성립되지 않은 시기에 도덕주의자들은 국가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악한 의도를 지닌 자들 앞에서는 선한 의지는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이나 윤리로 세상을 재단하지 말고, 현실의 냉혹함을 그대로 보아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 세계관을 잘 드러내고 있는 구절로 지도자는 공동체의 보존을 위해 상황에 따라 악덕도 행할 수 있어야 함을 설파하고 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종종 신의 없이, 무자비하게, 비인도적으로 행동하고 종교의 계율을 무시하도록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운명의 풍향과 변모하는 상황이 그를 제약함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거기에 맞추어 자유 자재로 바꿀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내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급적이면 올바른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말아야 하겠지만 필요하다면 악행을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_<군주론> 18장

변화무쌍한 세계와 예측불가능한 사건의 진행 속에서 지도자는 문제해결을 위해 유연한 사고와 행동양식을 지녀야 한다. 악행을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태 해결을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한다.

“군주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요새는 인민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 (…) 나는 요새를 구축하는 군주이건 그렇지 않은 군주이건 모두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요새를 너무 믿고 인민의 미움을 사는 것을 개의치 않는 군주는 비난받아 마땅하다.”_<군주론> 20장

지도자가 의존해야 하는 권력의 최종보루는 인민들이다. 강력한 요새를 통해 적을 방어할 수 있다고 방심하면 인민의 지지를 소홀히 하게 된다. 공동체 보존의 최종적이며 가장 강력한 요새는 인민과 그들의 지지인 것이다.

“자신들이 오랫동안 다스리던 왕국을 잃게 된 우리의 군주들은 운명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을 책망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평화 시에 그들은 사태가 변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날씨가 좋을 때 폭풍을 예상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약점이다) 그러다가 상황이 바뀌어 역경에 처하면, 그들은 방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도망갈 궁리만 했다.”_<군주론> 24장

지도자의 덕목과 역량은 평화 시에 위기를 대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태는 끊임없이 변하고 태평성대는 곧 위기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평화기는 보통 나태와 태만을 가져온다. 이때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권력만을 탐닉하게 되고, 인민들의 지지를 얻는 데 소홀해진다. 갈등과 분열 속에서 위기는 외부와 내부에서 찾아오게 된다. 따라서 위기의 대비책은 항상 긴장을 유지하고 인민들의 지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몸의 사지인) 개개인들 사이에는 탁월한 역량이 잠재해 있는데, (머리인) 지도자들은 이러한 기질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결투나 적은 수의 사람들이 싸울 때 이탈리아인들의 힘, 능력 및 재주가 얼마나 우수한가를 보십시오. 그러나 일단 군대라는 형태로 싸우는 일에서는 결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은 지도자의 유약함에서 비롯됩니다. 유능한 사람에게는 추종자가 없고, 모든 사람은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다른 지도자들로 하여금 우월성을 인정하게 할 정도로 자신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할 만한 충분한 역량이나 행운을 가지지 못했습니다.”_<군주론> 26장

이탈리아의 일반 인민들에게는 역량이 건재하지만 지도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자신의 조그만 권력에 취해 인민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군대로 충원하는데 소홀히 하였다. 그 결과 이탈리아의 지도자들은 인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권력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 군주 즉 지도자의 권력은 인민의 지지에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고립되고 독단적으로 되어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도자는 독존의 정치가 아닌, 인민과 같이하는 공존의 정치를 펴야 강력한 국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후일 선출이 아니라 세습에 의한 군주정이 세워지게 되었을 때, 상속자들은 조상과 달리 쉽사리 타락하게 되었고, 군주는 유덕한 행동을 소홀히 한 채 누구 못지않게 사치와 색욕 등 온갖 종류의 방탕에 탐닉한 나머지 그 밖에는 아무런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군주는 미움을 사게 되었고, 그러한 미움을 두려워하고 겁에 질려 당장 폭력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그 즉각적인 결과가 참주정치였다.”_<로마사 논고> 1권 2장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세습을 비판한다. 덕성과 역량은 세습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습은 권력자들을 타락시킨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마키아벨리는 역량의 계발과 권력자나 공직자의 선출을 강조한다.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의 마키아벨리 묘비. “어떤 찬사도 그 위대한 이름에 합당하지 않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귀족과 평민간의 내분을 비난하는 자들은 로마를 자유롭게 만든 일차적 원인을 비난하고 그러한 내분이 초래한 좋은 결과보다는 그것들로부터 유래하는 분란과 소동만을 고려하는 것처럼 내게 보인다. 그들은 모든 공화국에는 두 개의 대립된 파벌, 곧 평민의 파벌과 부자의 파벌이 있다는 점 그리고 로마가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제정된 모든 법률은 그들의 불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 게다가 그토록 많은 명예로운 처신으로 가득 찬 공화국을 놓고서 무질서하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합당하지 않다. 이토록 좋은 모범적 처신은 좋은 교육에, 좋은 교육은 좋은 법률에, 좋은 법률은 많은 이가 무분별하게 규탄하던 그러한 대립과 불화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 결과를 엄밀히 검토한 자라면 누구나 그러한 대립이 공동선에 유해한 추방이나 폭력보다는 공공의 자유에 도움이 되는 법률과 제도를 생산해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_<로마사 논고> 1권 4장

마키아벨리가 모범적인 국가로 칭송하는 로마는 혼합정부였다. 군주나 귀족 혹은 인민, 어느 하나가 독단적으로 지배하지 않고, 원로원, 호민관(민회), 집정관의 세 주요 기관을 통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내는 체제였다. 공동체를 이루는 주요 두 세력인 귀족과 인민들이 서로 정치에 참여해 공치(共治)를 이루어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평민과 귀족 간의 불화를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불화를 통해 서로를 견제하고 공적인 자유를 위한 법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로 다름을 드러내고 그것을 논의하여 공동의 이익과 자유를 위한 법체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부패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자질의 결여는 도시에 존재하는 불평등으로부터 유래한다.”_<로마사 논고> 1권 17장

마키아벨리는 자유의 수호자를 평민층에 맡겨야 함을 역설한다. 지배욕을 가진 귀족은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귀족이 없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평민층의 우위 속에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여기서 자유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반면 불평등은 이에 가장 해로운 존재이다. 불평등은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생산하여 부자유를 낳기 때문이다.

“좋은 도덕은 그것이 유지되려면 좋은 법률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법률은 그것이 준수되기 위해서는 좋은 도덕을 필요로 한다. 이외에도 사람들이 선량할 때인 공화국의 탄생기에 형성된 관습과 도덕은 사람들이 사악하게 된 후에는 더 이상 적용 가능하지 않다. (…) 법률제정과 관련하여, 로마에서 본래 호민관 및 일반 시민들은 직책을 불문하고 민회에 법률을 제안할 권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에 관해 모든 시민은 결의를 하기 전에 찬성 또는 반대 발언을 하도록 허용되었다. 이 관습은 시민들이 양식이 있었을 때는 좋은 제도였다. 왜냐하면 공익에 관심을 가진 각 개인이 법률을 제안할 권리를 갖는 제도는 항상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자가 그 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인민이 각각을 들은 후 보다 나은 안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사악하게 되었을 때, 그러한 기본적인 관습은 매우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오직 권세 있는 자들만이 법률안을 제안하게 되었고, 그것도 공동의 자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랬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세 있는 자들이 두려워 아무도 그러한 법안에 감히 반대를 제기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민은 속임수에 넘어가거나 강요에 못 이겨 자신들의 파멸을 초래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게 되었다.”_<로마사 논고> 1권 18장


제도의 선용은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로마는 타락하기 전에 행정관의 선임이나 법률의 제정에서 능력 있는 적격자를 뽑고 공동의 자유를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하지만 로마가 강대국이 되고 더 이상 적이 없게 되자 시민들은 직무능력이 아니라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권세가를 지도자로 뽑았다. 법률도 공동체가 아닌 권세가들의 이익을 위해 제정되었다. 불평등과 타락의 도래는 자유가 아닌 복종의 관계를 낳는 것이다.

“나는 신중한 인간이라면 관직이나 영예를 분배하는 것과 같은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인민의 판단을 무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러한 사안에 관한 한 인민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설사 그들이 때로 속는다고 해도, 이런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분배를 소수의 사람이 담당하는 경우에 속는 일이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_<로마사 논고> 1권 47장

마키아벨리의 인민에 대한 믿음이 드러나는 구절이다. 다수가 모이면 군주나 귀족에 비해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마키아벨리는 오히려 군주나 소수 즉, 귀족에 비해 인민이 더 현명하다고 본다. 법률에 구속되는 인민에게서 오히려 많은 능력을 보고 있다.

- 김경희 성신여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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