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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시리즈 기획-애완의 철학②] 늑돌이와 함께 춤을! 

훈련인가, 교육인가? 아니면 기다림! 

한경심 자유기고가 icecreamhan@empal.com
훈련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기다리는 동안의 불안감 때문… 잘 못하면 무관심, 잘하면 칭찬하는 아이 키우기와 같은 원리

▎애완견이 주인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영특해서가 아니라 그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 사진·중앙포토
“그런데 ‘길들인다’는 게 뭐야?”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린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어. 그렇게 되면 내게 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나도 네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될 거야.”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나한테 꽃 한 송이가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꽃이 나를 길들였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를 길들여줘 제발.” 여우가 말했다. “누구든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는 알지 못해.”

“어떻게 하는 건데?”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아주 많아야 해. 말은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거든. 그러나 날마다 조금씩 다가앉아도 돼. 넌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영원히 책임을 져야 해. 넌 네 장미꽃에 책임이 있어.”

- 쌩 떽쥐페리의 <어린 왕자> 중에서


“손!” 이렇게 말하면 앞발을 척 내미는 강아지가 있다. 개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을 때 키우는 사람의 기쁨을 나는 잘 안다. “아! 우린 통하고 있는 거야”라는 기쁨과 뿌듯함이 솟구친다. 아이가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왔을 때처럼 대견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 늑돌이는 그런 재주를 보여주지 못한다. 산책길에 늑돌이를 보고 예뻐하는 이들이 늑돌이를 쓰다듬은 다음 으레 “손!” 하고 말하면, 늑돌이는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나는 조금 무안해져 “얘는 그런 것 안 가르쳤어요” 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다. 마치 못난 자식 감싸듯이.


사실 늑돌이에게 “손”이라는 말을 알아듣도록 가르치려 해본 적이 있다. 처음 “앉아”를 가르칠 때 금방 알아듣고 앉기에, 곧이어 “손!”이라고 해봤는데, 아무리 해도 통하지가 않았다. 참을성이 부족한 나는 “그래, 누구를 위해 이런 훈련을 하나” 싶어 금방 그만두어버렸다. “앉아”라는 말은 개를 진정시키고 훈련하는 데 효과적인 가장 초보단계의 방법이다. 늑돌이의 훈련은 이 초보단계에서 끝나고 말았다. 간식을 줄 때마다 “앉아”라고 몇 번 했더니 늑돌이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만히 앉아 간식이 놓여 있는 책꽂이를 올려다본다. 그러니 “앉아”라는 말도 이제는 하지 않게 되었다.

개를 주제로 한 영화 <하얀 신(White God)>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개를 잃어버린 소녀가 언덕에서 어느 고급주택을 내려다본다. 그 집 마당에서 주인이 개에게 “손!”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난 저런 거 안 가르쳐”라고 혼잣말을 한다. 내 마음도 꼭 그렇다. 어쩌면 늑돌이가 영리하게 금방 “손”이라는 지시를 이해했다면 나는 자랑스러워했을 테지만, 늑돌이에게 “손” 훈련을 억지로 시키려들지 않은 것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은 군대 간 아들이 휴가 나와 늑돌이와 놀다가 털 뭉치를 던지면 몸을 날려 입으로 척척 잘도 받아내는 늑돌이가 기특했던지 이번에는 “손!”이라고 말했다. 옆방에서 듣고 있던 내가 “그런 훈련을 왜 시키니? 늑돌이한테 아무 도움도 안되는 걸.” 그랬더니 아들도 “그렇지. 나 좋으라고 한 거지”라고 수긍하고는 다시는 “손”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늑돌이가 처음 집에 왔을 때 늑돌이를 먹이고 버릇 들이는 일은 당연히 늑돌이를 데려온 아이 차지였다. 나는 아이 한 명 키우는 것도 힘이 부치는 엄마인지라, 강아지 ‘육아’를 떠안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물론 귀여운 강아지를 안 안아줄 수야 없었지만, 그저 인사 정도였다. 아이는 제 방에서 강아지 늑돌이와 밀월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형제도 없고 조용한 아이가 늑돌이와 지내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서열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애완견 사료. 수의사들은 사료만 먹일 것을 권하지만, 위생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며 가족이 먹는 음식을 주어도 큰 문제는 없다. / 사진·중앙포토
늑돌이는 내 소관이 아니었지만, 완전히 모른 체하고 지낼 수는 없다. 강아지든 로봇이든 어떤 존재가 식구처럼 같이 생활하게 되면 ‘관계’라는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강아지가 커지면 어디서 재울 것이며, 또 수놈이니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한다면 언제 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할 일이 생긴다. 그런 크고 작은 결정은 늑돌이와 같이 사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일에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다. 그리고 나는 그런 문제에 정말로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다. 아마 늑돌이를 데리고 온 아이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우선 늑돌이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버릇은 어떻게 들일 것인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인터넷 검색을 해볼 수밖에.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수의사의 의견이 어떠한지 알고 싶었다. 그리하여 알게 된 것은, 개는 서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물이니 누가 대장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개는 잠자리가 서열에 결정적이니, 잘 때는 개가 사람보다 낮은 곳에서 자야 하며, 산책할 때도 사람보다 앞서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지금 보면 이런 정보는 다 엉터리였지만, 그때는 정말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아이가 혹시 늑돌이를 끼고 자지 않을까 싶어 데리고 자지 말라고 조언할 정도였다. 지금 늑돌이와 함께 자는 나로서는 잠자리와 서열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 그리고 개나 늑대는 무리지어 생활하는 동물이라 같이 어울려 자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산책할 때 개가 앞서나가게 하지 말라는 조언만큼 비현실적인 말은 없다. 어린애와 함께 길을 갈 때나 문을 열고 들고날 때도 몸집이 작은 아이를 앞세워야 안전하다. 어린애가 서열이 높아 앞세우는 게 아닌 것처럼 개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줄을 잡고 다니는 산책길에 어떻게 개를 뒤세우란 말인지, 이런 조언을 한 사람은 과연 진짜로 개를 키워본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한동안 아이 방에서 자던 늑돌이는 아이가 밤새 불 켜놓고 음악 듣고 기타 치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섯 달쯤 뒤부터 우리 부부가 자는 안방에 들이게 되었고, 늑돌이는 꼭 가로누워 자곤 했다. 이때는 이미 내 마음이 늑돌이에게 활짝 열린 다음이라 나는 잠들기 전에 늑돌이에게 다가가 어둠 속에서 얼굴을 어루만지고 내 뺨을 부비면서 “늑돌아, 사랑해. 부비부비. 잘 자”라고 속삭여주었다. 그러자 언젠가부터 늑돌이는 내게 다가와 제 뺨을 부비는 걸로 내게 사랑을 표현하게 되었다. 내가 앉아 있을 때도 그렇게 하지만 내가 누우면 특히 잘 그러니, 아마도 잠자리 인사의 영향인 것 같다.

가끔 산책길에서 다른 개와 보호자들을 만나곤 하는데, 삼삼오오 모여 마치 자식자랑이라도 하듯 저마다 키우는 개 이야기를 늘어놓곤 한다.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우리 늑돌이는 다른 사람이 주는 간식도 잘 받아먹지 않고, 귀여운 짓이라곤 하나도 하지 않고 있다가 내가 몸을 조금이라도 비스듬하게 기울이면 다가와 제 뺨을 내 뺨에다 대고 부비부비하는 필살기를 펼친다. 그러면 모두 “와! 저 애교 부리는 것 좀 봐!”, “꼭 사람같이 하네!” 감탄하며 부러워한다.

늑돌이를 처음 데리고 왔을 때 아이는 사료와 배변 패드도 사왔다. 어디서 배웠는지 아이는 사료를 물에 불려 주었는데, 내가 보기에 처음엔 양이 좀 많다 싶더니 나중에는 늑돌이가 더 먹고 싶어 하는데도 더 주질 않았다.

“왜 더 주지 않는 거니?”

“양을 지켜서 줘야지 너무 많이 주면 안돼요. 나 몰래 더 줄 생각하지 마세요.”

아들에게 이런 엄격함이 있었나 싶어 새삼 놀랐다. 속으로 “나는 너 먹고 싶어 하는 만큼 다 주었는데 넌 왜 늑돌이 한테 그리 인색하게 구는 거야?” 하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렇지만 아이가 없을 때는 아이가 의심한 대로 늑돌이가 먹고 싶어 하는 만큼 양껏 주었다. 아이를 키울 때도 젖을 얼마만큼 먹여야 하는지, 또 시간 맞춰 먹여야 하는지 울 때마다 먹여야 하는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초보엄마들은 이런저런 이론에 우왕좌왕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런 고민을 거쳐 아이가 먹고 싶어 할 때마다, 먹고 싶어 하는 만큼 젖을 물렸기에 시간 맞춰 일정한 양을 줘야 한다는 논리를 믿지 않는다. 충분히 먹으면 사람이든 개든 식탐을 부리지 않게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초연선사님’의 식습관 길들이기


▎군입대 후 휴가를 받은 아들이 모처럼 늑돌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늑돌이의 식사 문제에 관한 한 엄격한 훈육을 강조했다. / 사진제공·한경심
늑돌이가 오고 두어 달 지났을 무렵 열흘 남짓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늑돌이는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아마 객관적으로는 날씬한 정도였을 것이다) 아이도 중학교 때까지 저체중이었지만 나는 아이의 마른 몸을 소년다운 몸매로 보았지, 안쓰럽게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늑돌이가 야윈 것을 보자 희한하게도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이는 제 먹고 싶은 대로 먹었어도 말랐던 거고, 늑돌이는 제 먹고 싶은 만큼 못 먹어서 마른 것이니 안쓰러웠던 것 같다.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사료를 듬뿍 주었고, 늑돌이는 며칠 만에 토실한 몸매를 되찾았다. 남편과 아이는 늑돌이가 ‘짜구’난다고 나를 말렸지만, 나는 언제나 늑돌이에게 충분히 먹였고 덕택에 늑돌이는 식탐이 전혀 없는 개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지금 늑돌이는 내가 부엌에서 제 먹을 것을 준비하면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앉아 있다가 내가 밥그릇을 제 밥상에 놓으면 천천히 내려와 먹는다. 그 모양이 하도 같잖아서 “선사님, 공양 준비했으니 어서 드셔요”라고 농을 건넨다. 늑돌이는 강아지 때도 눈길이 초연한 데가 있고 채소를 잘 먹어서 우리가 ‘초연선사’라고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강아지 때 늑돌이는 내가 사료통을 집어 들면 좋아서 펄쩍펄쩍 뛰곤 했다. 그러면 나는 늑돌이의 뜀뛰기에 맞춰 “맘마! 맘마!”라고 외쳐줬다. 늑돌이도 나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처음 늑돌이 밥은 사료뿐이었다. 아이는 사료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말라고 했다. 개는 으레 사람이 먹던 밥을 주는 걸로만 알던 나는 사료만 먹인다는 데에 조금 뜨악했다. 때로 먹는 것도 귀찮아 알약 같은 걸로 필요한 영양분을 채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과일의 새콤함, 아삭하게 씹히는 김치의 식감, 짭짤한 생선의 맛과 냄새를 즐길 수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 것인가. 사람도 평생 시리얼만 먹고 살 수 없을 것이다. 개가 사료만 먹어야 한다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과일이나 채소도 주면 안 되니?”

“과일도 잘 못 주면 위험하대요. 일단은 아무것도 주지 마세요.” 역시 아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사료보다 생식이 좋아!


▎배변 패드와 소변판. 처음 강아지를 데려와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배변 문제일 것이다. / 사진·중앙포토
과일 중에서 포도는 개의 신장을 해치고 특히 건포도는 먹으면 즉사할 수도 있다고 한다. 몇 달 지난 다음 일이지만, 늑돌이는 남편이 사온 포도 봉지를 내가 채 치우지 못하고 잠든 사이 한 송이를 깔끔하게 해치운 적이 있다. 아침에 봉지를 열어보니 세 송이였던 포도가 두 송이만 있고, 한 송이는 줄기만 깨끗하게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먹었는가 싶었는데, 포도 껍질도 보이지 않고 줄기가 봉지 속에 그대로 들어있으니 범인은 늑돌이였다. 다행히 별다른 증상은 없었지만 어린 것이 포도를 한 송이 통째로 해치웠으니 가슴을 졸여야 했다. 또 한번은 반찬으로 시금치나물을 무쳐 앉은뱅이 밥상 위에 놓고 다른 준비를 하고 보니 빈 접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개가 매운 고추까지 넣은 시금치나물을 먹었을 리는 만무하다고 여겼기에 내가 나물을 담지도 않고 접시만 올려놓은 줄 알고 나물을 한참 찾았었다.

양파나 마늘, 초콜릿, 아이스크림도 개가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예전에 개를 기를 땐 이런 것도 모르고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겠다. 요즘에는 이런 지식 덕분에 개의 수명이 늘었고, 또 그 ‘덕택에’ 개도 암이나 당뇨, 고혈압 같은 성인병에 시달리는 시대가 되었다. 늑돌이를 만나기 전, 퇴직한 어느 교수가 자기 집 개가 당뇨에 시달린다며 귀한 약재를 구해 손수 약을 지어 먹인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그 교수의 정성에 탄복하기도 했지만 개도 당뇨에 걸린다는 데에 더 놀랐다. 그만큼 나는 무지했으니, 예전에 개를 키웠던 경험은 진짜 경험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냥 집에 개가 있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들 개가 먹을 수 있는 것과 못 먹는 것을 가리고 조심한다. 사람을 기를 때보다 더 호들갑이라 할 수 있지만 사실 자식은 나와 같은 사람이니 내 먹는 것을 그대로 주면 그만이다. 개는 다른 종이기에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맞다.

처음에는 아이 말대로 늑돌이에게 사료만 주고, 대신 음식을 만들 때마다 재료의 냄새를 맡게 해주었다. 그러다 사과를 조금씩 주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 몰래. 아삭아삭 씹는 소리까지 내며 늑돌이는 잘도 먹었다. 그러다 사료에 올리브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려 주게 되고, 귤도 주고,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 물 탄 요구르트, 양배추, 고구마, 삶아 마요네즈를 넣은 감자, 푹 끓여낸 닭고기, 우려낸 멸치, 황태…. 그러다 드디어 참치나 삶은 고기를 밥에 섞어 사료 옆에 놓아주고(늑돌이는 사료와 비벼주는 걸 싫어한다), 아이가 먹다 남긴 치킨 껍질을 벗기고 살을 발라 주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음식을 주게 된 것은, 우리가 맛나게 먹는 걸 옆에 앉아 바라보는 갈구하는 눈빛(개 특유의 애절한 눈빛)을 차마 견디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늑돌이에게 많은 것을 맛보게 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수의사들도 흔히 사료만 주라고 한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함부로 먹이면 위험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개도 사료보다 진짜 음식을 주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을 한참 뒤 알게 됐다. 물론 이를 썩게 하는 과자나 강한 양념, 기름기가 든 음식은 금물이다. 그러나 양배추나 익힌 당근, 고구마는 개가 즐겨 먹을 수 있으며 생닭같이 뼈째 먹는 날고기는 치석도 없애주고 미네랄도 보충해주어 피부도 좋게 하고 면역력을 높여준다고 한다. 요즘 늑돌이는 사료 말고도 자주 생닭을 먹고 매일 양배추와 고구마, 황태를 조금씩 먹는다.

황태나 고구마를 넣어 만든 개 간식도 있지만, 진짜 황태나 고구마를 주면 씹는 즐거움과 향과 식감도 살릴 수 있다. 그 덕분인지 늑돌이는 개들이 사족을 못 쓴다는 개통조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어쩌다 아들이 사온 햄버거의 쇠고기 패티(소금기가 거의 없는 것이 있다)를 조금 잘라 주면 늑돌이는 환장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늑돌이에게 “사람이 먹는 게 참 맛나지? 너도 다음에 사람으로 태어나렴”하고 말해준다. 늑돌이가 개라서 불만이 아니라 이 세상이 사람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람은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을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개는 사람이 데리고 나갈 때만 나갈 수 있고, 주는 것만 먹어야 하니 미안하기 때문이다.

먹는 것보다 누는 것이 문제로다

식탐을 보이거나 편식하는 개로 골치를 썩이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배변문제일 것이다. 아이는 배변 패드를 제 방과 화장실에 깔아놓고 훈련했다. 그 시절, 늑돌이가 배변을 제대로 했는지 못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아마 성공도 하고 실수도 했으리라. 다만 화장실에 가보면 배변 패드는 오줌 대신 물에 젖어 있기 일쑤였다. 아들은 가끔 늑돌이를 화장실로 데리고 와 배변 패드 위에 올려놓는가 하면, 늑돌이가 마루에 실수하면 그 자리에서 콧등을 손가락으로 살짝 때리며 “여기서 이러면 안 돼” 하고 타이르곤 했다.

실내에서 개를 키워본 적이 없던 나는 배변 패드라는 것도 그때 처음 보았다. 예전에 마당에 놓아 키우던 개가 어떻게 똥오줌을 가렸는지는 기억에도 없다. 그런 건 개가 다 알아서 했던 것 같다. 개가 똥 누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아마 집 주변 산언덕에서 해결했을 것이다.) 그런데 집안에서 기르게 되자 똥오줌 가리기가 큰 문제가 됐다. 요즘은 개 행동전문가인 강형욱 씨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아주 쉽게 해결하는 법을 가르쳐주지만, 늑돌이가 처음 왔을 때 우리식구 중 어느 누구도 그런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강씨의 방법을 소개하자면 배변패드를 집안 여기저기 놓아두고 먹이를 하나씩 얹어놓으면 강아지가 패드에 익숙해져 곧 배변을 하게 되고, 나중에는 한두 곳에서만 하게 된다. 무엇보다 산책하며 바깥에서 누게 하면 집에서도 더 잘 가리게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수의사 말대로 늦게까지 늑돌이를 집안에만 두었다.(이 때문에 늑돌이의 사회화 시기를 놓쳐 한동안 애를 먹었다)

마음먹고 개를 키우려다가 배변습관 들이기에 실패해서 키우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알고 보면 쉬운데, 모르면 집안 곳곳에 남는 똥오줌의 흔적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애견가게에서 사온 강아지는 특히 잘 가리지 못한다고 한다. 작 은 우리 안에서는 먹는 곳과 용변 보는 곳이 분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미 곁에서 젖을 빨고 자란 강아지는 어미를 따라 자연스럽게 용변을 가리게 된다. 그래서 아이에게 늑돌이를 혹시 가게에서 사온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다행히 늑돌이는 어미와 아비 개가 사는 집에서 나온 새끼라고 했다.

마루에 실수한 오줌 자국을 뒤늦게 발견하면, 아들은 늑돌이를 현장에 데리고 가 콧등을 두드리고, 남편은 화를 내며 혼을 내려 들었다. 나는 아들처럼 해보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텔레비전 육아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서양의 어느 교육자가 “아이를 교육 시키는 것은 간단합니다. 개를 키울 때와 똑같이 하면 됩니다. 잘못하면 무시하고, 잘하면 칭찬해주는 것이죠”라고 한 말이다. ‘아이를 개처럼 키우면 된다’는 말에 의아해 귀를 기울였다가 말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났다.

그때부터 늑돌이가 실수를 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레로 깨끗이 닦아 냄새를 없애고 내가 화장실에 볼일 보러 가면 따라 들어오는 늑돌이에게 “쉬 해야지”라고 웃으며 말해주었다. 어쩌다 용케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면 호들갑을 떨며 칭찬을 하고 (사실 과하게 칭찬하면 역효과라 한다) 간식을 주었다. 그러자 늑돌이는 금방 화장실에서만 용변을 보게 되었다. 아, 이렇게 쉬운 거였구나! 물론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늑돌이가 식구들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따라 배운 것 같아 기특했다. 이후 늑돌이는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기 시작하는 특별한 시기에 한두 번 마루에 눈 것을 제외하고는 실수한 적이 없다. 훈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게 됐을 때는 이렇듯 부작용 없이 완벽하다. 더구나 배변 패드도 필요 없고, 화장실은 그때그때 물 뿌려 씻어내니 간편하고 깨끗하다.

내 말을 알아듣나, 마음을 알아듣나?

어린 강아지는 용변을 잘 가리지 못하고 실수할 수가 있다. 오줌보가 작기 때문에 오줌이 마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미 늦었기 때문이다. 사람도 아이 때는 오줌보가 작아서 실수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 친정어머니는 아이에게 어떤 배변훈련도 시키지 못하게 하셨다. 때가 되면 자연히 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주변사람들은 내게 화장실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고 말도 많았고, 나도 내심 불안했다. 그러다 어느 하루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앉은 아이는 이후 한 번도 실수가 없었다. 얻어온 어린이용 변기를 사용한 적도 없고, 자다가 오줌을 싸는 일도 없었다. 배변 훈련을 일찍이 받은 아이는 오히려 나이 들어서도 자다가 오줌을 싸는 부작용을 겪는데, 나는 어머니 말씀대로 참고 기다린 덕에 아이도 나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한방에 해결했다. 사람들이 훈련하고 싶어 하는 것은 기다리는 동안의 불안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개를 키울 때처럼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개도 사람처럼 키우면 되는 것 같다.

늑돌이는 비록 ‘손’이라는 말은 못 알아듣지만, 화장대 대용으로 쓰는 낮은 앉은뱅이책상에 놓인 내 화장품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 의젓한 면이 있다. 내가 화장을 할 때면 호기심 가득한 강아지 늑돌이는 야릇한 화장품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며 다가들곤 했다. 화장품 중에는 개들이 물기 딱 좋은 길쭉한 것들이 있는데다 무엇보다 그 묘한 냄새가 개를 유혹한다. 내가 화장하려고 바닥에 앉으면 곧잘 내 무릎을 파고드는 늑돌이에게 나는 화장품을 순서대로 바를 때마다 냄새를 맡게 해준다. 그리고 “이건 만지면 안 돼. 냄새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도 늑돌이는 집에 혼자 있을 때도 한번도 어지럽힌 적이 없다. 이제는 화장품에 아예 관심조차 없어졌다. 수놈이라 그런가? 다만 머리를 마는 롤러만큼은 내가 작은 갑에서 꺼내 들자마자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가끔 내가 안 보는 사이 슬쩍 입에 물고 마루로 나가 갈비 뜯 듯 물기도 한다.

늑돌이가 내 물건을 전혀 어지럽히지 않는 것을 처음에 남편은 잘 믿지 못했다. 호기심이 왕성하여 이것저것 물고 뜯고 맛보고 핥는 강아지 시절 늑돌이도 현관의 신발이나 빗자루, 책이나 종이, 연필, 볼펜 같은 것을 뜯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 휴지를 씹는 버릇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내가 “늑돌이한테 하지 말라고 말하면 늑돌이는 안 해”라고 말하면 남편은 “설마?” 했다. 사실 나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한다. 대신 나는 많은 것을 허용해준다. 남편의 양말 냄새도 실컷 맡게 해주고(개아빠들의 양말은 모든 개의 영원한 로망인 것 같다), 신문을 싼 비닐도 맘껏 찢게 해준다.(내버려두면 신문은 안 찢고 비닐도 안 삼킨다. 맛이 없으니까.)

택배 상자가 오면 늑돌이 먼저 냄새 맡게 해준다. 또 내가 외출해서 돌아오면 나한테 마구 올라타게 하고 오로지 늑돌이한테만 집중해준다. 아이를 두고 직장에 나가야 했던 시절 퇴근하고 온 직후 아이에게 20분만 집중해주면 아이를 충족시킬 수 있었는데, 늑돌이는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10년 만의 상봉인 듯 온몸으로 기뻐 날뛰는 개는 그만큼 쉽게 만족한다. 그러니 고맙다. 아마 늑돌이가 내 말을 듣는 것은 다른 개들처럼 영특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해서 그런 것 같다. 늑돌이는 내가 싫어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내가 싫어할 일을 하지 않을 뿐이라는 걸.

한경심 - 이화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동아일보> 출판국에서 기자로 15년간 일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월간중앙> <이코노미스트> <신동아> <여성동아> 등에 문화와 관련한 글을 썼다. 저서로 전통공예 장인들을 소개한 <우리는 어떻게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짓는가>, 한식의 철학을 담은 <우리는 왜 쌈 싸먹고 비벼먹고 말아 먹는가>등이 있고 번역서로 <글렌 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 김병연의 한시를 소개한 (공역)이 있다.

201607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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