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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종교 이야기 (3)] 어려울 때 찾는 그 이름 ‘관세음보살’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오는 ‘수호천사’ 

김환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치학 박사 whanyung@joongang.co.kr
위로는 불교의 지혜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 제도(濟度)하는 존재 ‘관세음보살’… 관세음 신앙, 동아시아에서 유교 효(孝) 사상, 불로장생 추구하는 도교와 공존

▎관세음신앙은 분열과 분파주의가 아닌 화합을 지향한다. 지난해 12월 대구 남구 봉덕동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서 스님과 참좋은유치원 아이들이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고 있다.
불자가 아닌 일반인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불교와 조우(遭遇)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몇 가지 경험이 낳은 기억의 파편들이 꼭 있다. 흥미롭게도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아니라 관세음보살과 관련된 것들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게 돌아가 의지하자’는 뜻이다. 드라마 <태조왕건>(2000~2002)에 등장해 유명해진 진언(眞言)인 ‘옴 마니 반메 훔’도 내력이 관세음보살이다. <천수경(千手經)>에 나오는 진언이다.

손오공이 주인공인 <서유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불교적 존재 또한 관세음보살이다. 임권택 감독의 1989년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오로지 관세음보살에게 바쳐진, 한자로는 260자로 된 반야심경(般若心經)의 마지막 말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가자 가자 피안으로 피안으로 아주 가자, 영원한 깨달음으로)’에서 따왔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물질적 형상의 세계는 곧 텅 빈 본질세계이며, 텅 빈 본질세계는 곧 물질적 형상의 세계다,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rm)’도 출처가 반야심경이다.[색즉시공(色卽是空)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현실의 물질적 존재는 모두 인연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서 불변하는 고유의 존재성이 없음을 이르는 말.” 공즉시색(空卽是色)에 대해서는 이렇게 풀이했다. “본성인 공(空)이 바로 색(色), 즉 만물(萬物)이라는 말. 만물의 본성인 공이 연속적인 인연에 의하여 임시로 다양한 만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상 속 관세음보살의 발자취는 끝이 없는 것 같다.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현신(現身)이다. 카메라로 유명한 캐논(Canon) 또한 관세음보살을 줄인 표현인 관음(觀音)에서 나왔다.

중생 위해 스스로 강등, 낮은 곳으로


▎중국 송나라 시대의 관세음보살상.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은 누구인가. 보살(菩薩)이다. 여자 신도(信徒)나 고승(高僧)을 높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원래 뜻을 따지면 보살은 위로는 불교의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존재다.

관세음은 또 무엇인가. ‘세상의 소리, 특히 고통에서 나오는 울부짖음을 듣는 존재’이다. 그는 열반(涅槃)에 들 수도 있었으나 모든 살아 있는 무리의 신음소리를 듣고 모든 고통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열반을 연기시키고 세상에 남아 있기로 결단한다.

간절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찾으면 그가 반드시 온다. 위급할 때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나타난다. 길 잃은 사람, 가난한 사람, 환난에 빠진 사람, 불행한 사람, 아픈 사람, 노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 여행 중인 사람, 침몰하는 난파선에 탄 사람, 강도를 만난 사람, 농부, 뱃사람 할 것 없이 관세음보살은 도움과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자연재해·인재뿐만 아니라 짐승, 심지어는 귀신으로부터 구한다.

요즘 말로 하면 ‘힐링(healing)’의 아이콘이다. 관세음보살은 특히 여성·어린이·상인·뱃사람·장인·죄수의 보호자다. 서양식으로 말한다면 관세음보살은 수호성인·수호천사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학식의 두터움·엷음도 가리지 않는다. 아들이나 재물 같은 복도 나눠준다. 관세음보살은 “아기를 점지하고 산모와 산아(産兒)를 돌보는 세 신령”인 삼신(三神)할머니 역할도 한다. 특히 중국에서는 시집간 딸이 자식을 낳지 못하면 관세음보살을 찾는다. 전통사회에서는 보통 아들을 원했지만, 딸을 바라는 경우에는 아주 예쁜 딸을 점지해준다.

<관음삼매경(觀音三昧境)>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은 석가모니의 ‘선배’ 부처다. 관세음보살은 석가보다 먼저 부처가 된 정법명왕여래(正法明王如來)라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전생에서 스승이었다. 중생 구제를 위해 스스로 부처에서 보살이 됐다. 대의를 위해 스스로 ‘강등’돼 낮은 곳으로 임했다.

기도는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빎”을 뜻한다. 기도가 없는 종교는 없다. 기도는 길게 할 수도 있고 짧게 할 수도 있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짧은 기도를 선호했다. ‘주님의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그리스어로는 57단어, 라틴어로는 49단어다. 우리말 기준으로 38단어다.

더 짧게 할 수도 있다. 가톨릭 전통에서는 ‘화살기도(oratio jaculatoria)’가 있다. <가톨릭대사전>은 화살기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아무 때나 순간적으로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매달리듯 그때그때 느껴지는 정(情)과 원의(願意)대로 간단하게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화살처럼 직통으로 하느님께 간다고 해서 ‘화살기도’란 이름이 붙었다. 예를 든다면 ‘예수, 마리아여!’, ‘하느님, 나를 도우소서’, ‘내 주(主)시오, 내 천주로소이다’, ‘지극히 거룩한 예수 성심이여, 내 마음을 네 마음과 같게 하소서!’ 등이다.”

6세기 이후 중국 모든 사찰에서 숭배


▎경남 남해 금산 보리암에서 바라본 해수 관세음보살상과 남해 앞바다.
불교의 진언은 화살기도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옴 마니 반메 훔’이 그렇다. 무슨 뜻일까. “옴, 연꽃 속에 있는 보석이여, 훔”을 뜻한다. 6음절에 불과하지만 막강한 힘이 있다. 이 진언을 발설하면 관세음보살이 불행으로부터 지켜준다. 성불할 수도 있다. ‘옴’은 인도에서 출발한 종교에서 신성한 소리다. ‘마니’는 보석, 구슬이다. ‘반메’(파드메가보다 정확한 발음이다)는 연꽃이다. 연꽃은 불교에서 신성시 되는 꽃이다. ‘훔’은 깨달음의 정신을 표상한다.

관세음보살은 비교종교학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주제다. 보통 그리스도교는 구원의 종교,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말한다. 불교는 자력신앙, 그리스도교는 타력신앙이라고 하는가 하면, 그리스도교는 사랑, 불교는 자비라고도 한다. 이러한 이분법은 나름 유용하다. 하지만 이분법을 넘어서는 뭔가도 있다. 불교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교에도 있고,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에 있는 것은 불교에도 있다. 강조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에는 사랑이 포함된다. 대자 대비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넓고 커서 끝이 없는 부처와 보살의 자비. 특히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이른다.”

구세주(救世主)는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도 사용하는 용어다.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 사이에는 일종의 ‘분업’을 발견할 수 있다. 석가모니불은 창조주나 신(神)에 대해 ‘무관심’했다. 관세음보살을 둘러싼 전통은 창조주·신의 개념을 포섭한다. 관세음보살과 불교 이전의 인도 종교는 어떤 관계일까.

불법 전파 위해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


▎중국 안후이성 (安徽省)에 있는 천수관음상.
브라만교에는 세 주신(主神)이 있다. 시바는 “파괴와 생식의 신으로, 네 개의 팔, 네 개의 얼굴, 그리고 과거·현재·미래를 투시하는 세 개의 눈”이 있다. 비슈누는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신”이다. 브라흐마는 “창조를 주재하는 신”이다. 관세음보살의 전통은 놀라운 주장을 한다. 관세음보살의 눈에서 해와 달이, 이마에서 시바가, 어깨에서 브라흐마가 나왔다.

모든 종교는 보수성·진보성, 혁명성·반동성, 개인적인 기복 신앙, 기복을 초월하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는 신앙이 공존하는 현장이다. 양성평등은 21세기에도 혁신적·진보적인 가치다. 관세음보살 신앙은 양성평등을 뛰어넘는다. 관세음보살 신앙 전파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관세음보살 신앙은 인도에서 3~7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인도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은 아왈로키테슈와라(Avalokiteshvara)로 불렸다. 관세음보살 신앙은 중국으로 1~3세기에 전래됐다. 6세기가 되면 중국의 거의 모든 사찰에서 관음상을 모셨다.

인도에서 아왈로키테슈와라는 ‘남성’이었다. 중국에서도 초기에는 ‘남성’이었다. 콧수염, 턱수염이 있는 젊은이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8세기부터 ‘여성’의 모습 등장한다. 10세기까지도 주로 ‘남성’으로 표현됐으나, 송나라(960~1279)를 거치며 ‘여성’ 비율이 더 높아졌다. 12세기부터는 거의 ‘여성’이 주류가 됐다. 양성(兩性)내지는 중성(中性)으로 볼 수도 있다.

관세음보살은 왜 ‘여성화’됐을까. 관세음보살 신앙에 대한 최초의 문헌인 법화경(法華經)의 영향일 수도 있다. 법화경은 지극히 혁명적인 문헌이다. 법화경은 누구나 득도(得度)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여성·동물뿐만 아니라 극악무도한 살인자까지도.

400년경 중국어로 번역된 법화경의 지지자들은 법화경이 석가세존(釋迦世尊)의 궁극적이며 완전한, 그의 지상에서 마지막 몇 년의 가르침을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법화경의 25장인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은 관세음경(觀世音經)으로 불리는데, 관세음경에서 관세음보살은 무수히 많은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난다.

불법을 퍼트리기 위해 관세음보살은 어린이·어른, 사람·동물, 특히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법화경은 관세음보살을 ‘여성’으로 이해할 ‘명분’을 제공했다.

국제적인 차원과 국내적인 차원도 있다. 관세음보살 신앙의 전래 통로인 중국의 북서 지방은 실크로드의 길목이었다. 문화와 신앙의 용광로였다.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교(景敎)·마니교·조로아스터교·이슬람·불교·도교·샤머니즘이 경쟁한 곳이었다. 특히 경교는 성모자상(聖母子像), 즉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을 중시했다. 습합(習合)이 활발했다. 습합은 “철학이나 종교 따위에서, 서로 다른 학설이나 교리를 절충함”을 뜻한다. 습합과 전혀 무관한 종교는 없다.

국내차원에서 불교는 여신이 있는 도교와 경쟁해야 했다. 도교와 경쟁관계였던 불교가 경교 성모자상의 영향하에 관음신앙을 발전시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관세음보살은 16세기부터 중국의 주요 여신이었고 현재는 중국의 ‘국가 여신’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관세음신앙은 분열이 아니라 화합을 지향한다. 분파주의를 초월한다. 관세음신앙은 동아시아에서 유교의 효(孝) 사상,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도교와 공존했다. 북방과 남방으로 퍼져나간 불교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한·중·일 삼국, 티베트뿐만 아니라 상좌부(上座部) 불교를 신앙하는 지역과 나라에서도 관세음보살은 빠트릴 수 없는 전통 신앙의 일부다.

일반인들이 느끼기에 불교와 가톨릭은 상대적으로 사이가 좋다. 왜일까. 어쩌면 관세음보살이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서울 길상사에 가면 성모마리아상을 닮은 관음상이 있다. 길상사를 처음 세웠을 때 가톨릭 신자인 최종태 조각가가 만들어 봉안한 석상이다. 종교간 화해의 염원이 담긴 관음상이다.

일본에 가면 ‘마리아관음상’이 있다. 가톨릭 신자들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 관음보살의 모습을 한 마리아상을 만들었다. 성모발현(聖母發現) 건수는 2만 번 이상이라고 한다. 관세음보살도 무수히 발현한다.

서양 문헌에서는 관세음보살을 ‘자비의 여신’(Goddess of compassion)이나 ‘불교의 마돈나(Buddhist Madonna)’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이 ‘어머니 하느님(God the Mother)’, ‘아버지-어머니 하느님(Father-Mother God)’를 운위하는 시대다. 관세음보살은 그들에게 영감을 준다.

관세음보살은 어떻게 형상화됐을까. 나무·옥·대리석·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가 동원됐다. 뜻을 모르고 관세음보살상이나 탱화를 보면 어리둥절하다. 머리가 3개, 11개인 경우도 있다. 머리마다 보살의 한가지 측면을 반영한다. 평화롭고 자애로운 얼굴뿐만 아니라 근엄하거나 화난 얼굴도 있다. 1000개의 팔, 1000개의 눈은 많은 중생을 동시에 도울 수 있는 능력을 표현한다.

모든 계층 사로잡은 끈질긴 생명력


▎서울 길상사에 있는 관세음보살상. 가톨릭 신자인 최종태 조각가가 만들어 봉안한 것으로 성모마리아상을 닮아 화제를 모았다.
연꽃을 들고 있기도 하는데 연꽃은 모든 중생이 타고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을 상징한다. 염주는 모든 생명체, 버드나무 가지는 덕을 상징한다.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동물 조천후(朝天吼)를 타고 있는 모습은 자연에 대한 관세음보살의 완전한 권세를 표현한다. 활·화살·방패로 무장한 모습은 미혹(迷惑)과 싸우는 관세음보살을 상징한다. 명상하는 모습도 있다. 관세음보살처럼 막강한 힘을 지녔어도 명상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관세음신앙은 역사 속에서 진화했다.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했다. 송대 이후 선종을 제외한 불교는 대부분 쇠퇴했다. 관음 신앙만 예외적으로 모든 계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대에는 신흥종교의 주요 요소다. 우리가 개벽을 말하는 것처럼 서양 일각에서는 ‘물병자리의 시대(Age of Aquarius)’의 도래를 기다린다. 현재 또는 이윽고 들이닥칠 점성학적 시대다.

1세기경 스리랑카에서 문자화된 초기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는 이렇게 말한다.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라.” 이 말은 “다니는 종교를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라. 믿음을 물으라”는 말로 응용해 바꿔볼 수 있다.

<숫타니파타>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뛰어나다’든가 ‘나는 뒤떨어진다’ 또는 ‘나는 동등하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같은 다종교 맥락에 대입하면 이런 말이 될 것이다. “‘우리 종교가 뛰어나다’든가 ‘우리 종교가 뒤떨어진다’ 또는 ‘종교들은 동등하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숫타니파타>의 뜻을 실현하는 데 관세음보살은 상당한 도전이 된다.

김환영 - 중앙일보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 외교부 명예 정책자문위원. 단국대 인재 아카데미(초빙교수), 한경대 영어과(겸임교수), 서강대 국제대학원(연구교수)에서 강의했음.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 스탠퍼드대 중남미 학 석사,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쓴 책으로 <마음고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등이 있다.

201607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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