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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치] 7·10 참의원선거와 개헌론자 아베의 진로 

당분간 경제에 힘쓰며 내용과 시기 저울질할 듯 

오영환 도쿄 특파원 oh.younghwan@joongang.co.kr
자민당·공명당 등 개헌파 4개 정당 77석 얻어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 의석 확보… 당 안팎 견제세력 없는 자민당 사상 가장 강력한 총리, 총재 3선 여부는 아베노믹스에 달려

▎아베 신조(가운데) 일본 총리가 참의원선거가 치러진 7월 10일 밤 자민당 본부에서 다니가키 사다카즈(오른쪽) 자민당 간사장, 고무라 마사히코 자민당 부총재와 함께 자민당 소속 후보 명단에 당선표를 붙이고 있다.
일본 집권 자민당이 7월 10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다음날 우익 성향의 산케이 신문이 1면에 의미심장한 기사를 실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자민당 총재의 3기 연임을 시야에 넣고 있다는 내용이다.

자민당 총재 임기는 3년으로 당규상 연임만 가능하다. 아베 총리는 2012년 9월 총재에 오른 뒤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다. 그런 만큼 총재 임기는 2018년 9월까지다. 일본은 국회의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내각제인 만큼 현재로선 아베가 그 이상 집권할 수는 없다. 산케이는 당규를 개정해 총재의 연임 제한을 없애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총리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자민당은 1986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총리가 중·참의원 동시 선거에서 압승한 후 예외적으로 총재(총리) 임기를 1년 연장한 바 있다. 당내 중·참의원 의원총회 결정을 통해서였다. 산케이가 전한 총리 주변 얘기는 그런 예외가 아니라 아예 새 제도를 통해 총재 3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명분으로는 아베의 개헌 전략을 들었다. 중·참의원 헌법심사회 심의와 본회의 가결, 국민투표로 이뤄지는 개헌 절차를 감안하면 현재의 총재 기한까지는 맞추기 어렵다는 논리다. 산케이는 아베를 지지하고, 아베가 애독하는 신문이다. 기사는 참의원 선거 후 아베의 진로와 그를 떠받치는 우파들의 지향점을 함축하고 있다.

7·10 참의원 선거는 여러모로 특기할 만하다. 전체 242석 가운데 절반(121석)을 새로 선출하는 선거에서 개헌세력이 3분의 2를 확보했다. 자민당·공명당의 연립 여당과 오사카 유신회,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당’ 등 개헌파 4개 정당이 77석을 얻었다. 4개 정당은 기존 의석 84석을 합쳐 161석을 확보하게 됐다. 개헌안 의결과 국민투표 발의 정족수인 3분의 2(162석)에 1석이 모자라는 의석이다.

하지만 무소속 의원 4명이 개헌을 지지하는 만큼 개헌세력은 3분의 2를 넘는다. 중의원은 자민·공명당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개헌이 중·참의원 3분의 2의 찬성과 국민투표 과반 찬성으로 이뤄지는 만큼 국회 차원의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전후 일본 정치에서 이런 적은 없었다. 1955년 창당 이래 개헌을 당시(黨是)로 삼아온 자민당은 호헌(護憲) 세력의 3분의 1 이상 의석의 벽을 깨지 못했다. 호헌·진보 세력이 몰락하면서 개헌·보수 세력에 둘도 없는 기회가 생겨났다. 평화헌법 체제를 축으로 일본의 전후 정치는 중대 분수령을 맞았다.

일본에 강력한 리더십이 탄생한 것도 주목거리다. 아베 총리는 총재 취임 이래 4차례의 국정선거에서 모두 승리해 선거 불패(不敗)신화를 이어간다. 2012년 중의원 선거, 2013년 참의원 선거, 2014년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데 이어 이번에도 자민당의 단독 과반수에 1석 모자라는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했다.

그 스스로 “국정 선거에서 4연승 한 총리는 전후 처음이 아닐까 한다”고 자부심을 내비쳤다고 한다. 2000년대 중반, 총리가 1년에 한 번꼴로 바뀌던 일본의 리더십 적자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 대신 리더십 절대 흑자 시대가 도래했다. 일본의 보수적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런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아베의 개헌은 가능한 것일까. 아베 1강 체제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뼛속까지 개헌론자… 최대 걸림돌은 국민 여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월 27일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해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왼쪽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두 정상의 맞은편에 보이는 원폭 돔은 원폭피해의 참상을 상징하는 건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참의원 선거운동 기간 아베 총리는 전국을 누볐다. 1만6198㎞를 오가며 지원 유세를 펼쳤다. 그는 유세에서 한 번도 개헌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집권 기간 동안 이뤄진 명목 GDP 상승과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강조했다. 아베가 개헌을 우회한 것은 당연한 선거 전술이었다. 거의 모든 여론 조사에서 개헌에 대한 반대가 찬성보다 높기 때문이다. 개헌을 전면에 내걸면 국민의 알레르기만 부추길 뿐이다. 선거 쟁점을 철저히 경제 문제로 압축한 이유다.

하지만 뼛속까지 개헌론자인 아베가 개헌을 포기할 리 없다. 개헌은 정치인 아베의 원점이다. 자주 헌법 제정론자인 외조부 기시 노부(岸信介) 전 총리의 맥을 잇고 있다. 아베의 슬로건인 전후 체제 탈피는 미군 점령기에 완성된 헌법을 새로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실제 아베는 관방장관 시절인 2006년 7월 “아버지(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전 외상)도 조부(기시)도 이루지 못한 과제를 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베가 당초 개정에 공을 들인 것은 헌법 9조다. 교전권을 포기하고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이른바 평화조항이다.

아베는 1993년 정치인 입문 이래 이 조항의 개정을 되뇌어왔다. 1차 아베 내각 때인 2006년 11월에는 “자위대라는 실력(實力) 조직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헌법에서 명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대규모 재해 등 비상 상황시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는 긴급사태조항 신설을 강조하고 있다.

아베는 참의원 선거 이후 일단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7월 11일 기자회견에서 “(중·참의원 상설기구인) 헌법심사회에서 먼저 논의해야 한다”며 “자민당 개헌안을 바탕으로 어떻게 3분의 2를 구축할지는 정치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가 개헌 의지를 조심스럽게 내비치면서 원론적 입장만 되뇌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이번 선거에서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지 않은 점이다. 다른 하나는 개헌에 대한 부정적 여론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 7월 10일 교도통신의 참의원 선거 출구조사 결과, 아베 정권의 개헌에 대해 50%가 반대했다. 찬성 비율은 39.8%였다. NHK 출구조사에선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33%, 필요없다는 답은 32%였다. 3년 전 참의원 선거 출구조사와 비교하면 필요하다는 의견은 6% 줄고, 필요없다는 답은 7% 늘었다. 개헌의 최종 관문이 국민투표 과반 찬성인 만큼 현재로선 여론의 벽이 만만찮은 셈이다. 아베가 9조 개정에서 긴급사태조항 신설로 방향을 튼 것은 이와 맞물려 있을 수 있다. 국민적 반발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여론 외에 개헌 세력간 입장차도 아베로선 넘어야 할 과제다. ‘평화의 당’을 표방하는 공명당은 9조 개정에 극도로 신중하다. 환경권 등 국민의 권리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사카유신회는 총리 직선제 도입을 축으로 하는 권력구조 개편에 큰 관심을 둔다.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될 경우의 파장도 아베에겐 고려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내각 총사퇴가 불가피하다. 개헌이 영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온다. 그런 만큼 아베 총리로선 9조 개정을 뒤로 미루고 긴급사태조항이나 환경권 신설 등을 내세워 국민의 공감대 확산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른바 2단계 개헌론이다. 아베는 당분간 경제를 본궤도에 올려놓는 데 힘쓰면서 개헌 내용이나 시기를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대항마 없는 아베, 롱런 가도 열릴 수도


▎2015년 11월 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5차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한 한·일 정상이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한 채 리커창 중국 총리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아베 총리는 관저를 드나들 때 곧잘 오른팔을 머리 쪽으로 든다. 그 나름의 가벼운 인사일 게다. 이 모습은 1970년대 절대 권력자로 군림하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연상시킨다. 다나카도 차를 타거나 문밖을 나설 때 오른팔을 드는 특유의 포즈를 취하곤 했다.

권력자에게 오른손을 드는 포즈는 자신감의 표현일까. 참의원 선거까지 승리로 이끈 아베가 2018년 9월 자민당 총재 임기까지는 재임할 것이라는 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아베의 인기와 권력은 반석이다. 내각 지지율은 50% 안팎이다. 최근 1년 새 큰 변화가 없다. 개인적 인기도 높다. 이번 선거에서 아베가 전국 유세에 소극적이었다면 자민당의 승리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미에(三重)현과 도쿄도 나카노(中野)구 두 군데의 유세장에 가보니 그를 보고, 악수하려는 유권자로 가득 찼다. 아베는 지난해 11월 아사히 신문이 실시한 역대 자민당 총재에 관한 당원 평가에서도 19%로 1위를 차지했다. 다음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17%), 다나카 가쿠에이(16%), 나카소네 야스히로(5%) 순이었다.

아베 1강 체제는 선거구제 개편이 가져온 자민당 정치의 구조적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자민당은 창당 이래 진보에서 극우까지의 이념 스펙트럼을 가졌다. 당내 파벌간 견제와 균형은 오랜 전통이었다.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조부), 기시 노부스케, 다나카 가쿠에이, 나카소네 야스히로 시대에도 자민당 내에는 반(反)주류·비(非)주류가 존재했다.

파벌 정치가 작동하면서 주류-반주류·비주류 간 균형이 잡혔다. 하지만 아베 정권의 자민당에는 반주류파·비주류파가 없어졌다. 대신 총재(총리)의 의향만 살피는 해바라기 정당이 되고 있다. 94년 중의원 소선거구제 도입으로 공천권이 파벌간 나눠먹기에서 당 총재를 비롯한 집행부의 전권 사항으로 넘어간 영향이 컸다.

탈(脫)파벌을 내건 고이즈미 전 총리 이래 내각 인사도 총리의 전권 사항으로 굳어지고 있다. 당정 관계도 당고정저(黨高政低)에서 정고당저(政高黨低)로 바뀌었다. 총리 비서실장 겸 정부 대변인 역을 하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사실상 정권의 2인자로 통하는 이유다.

그런 만큼 자민당에서 아베 후임 얘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아베가 무투표로 재선된 것이 현재의 자민당 분위기를 상징한다. 당시 자민당 내 7개 파벌은 경선 전에 아베를 지지했다. 굳이 후임 후보를 꼽는다면 파벌 영수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지방창생 담당상이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 정도다.

이시바는 2012년 자민당 총재 경선 1차 투표에서 아베를 포함한 후보 5명 중 1위를 차지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아베에 19표 차로 패배한 바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당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언론의 주목도도 높지 않다.

군소정당은 몰락… 민진당은 수권능력 못 보여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들어서고 있다. 이곳에는 1853년 개항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등 전몰자 246만여 명 안치돼 있다.
여기에 야당은 분열돼 있고, 제1야당 민진당은 대안 정당으로 자리를 굳히지 못했다. 민진당은 2009~2012년 전신인 민주당 집권 시기의 실정(失政)에 대한 국민의 집단기억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베 1강 체제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 안팎에서 견제세력이 없는 아베는 자민당 사상 가장 강력한 총리일지도 모른다. 그가 당규 개정을 통해 총재 3선을 할 수 있을지는 아베노믹스의 성패에 달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 개헌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진당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하나의 배수진을 쳤다. 자신의 고향이자 중의원 지역구인 미에(三重)현에서 민진당 후보가 패하면 9월의 차기 당대표 경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당대표가 미에현 당대표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민진당 확보 의석에 관한 승패 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개헌 세력의 3분의 2 저지를 내건 그였다. 치열한 경합지였던 미에현에서 민진당 후보는 신승했다. 오카다는 경선 불출마 입장을 백지화했다.

민진당은 이번에 43석이 교체되지만 32석밖에 얻지 못했다. 3년 전 참의원 선거 당시 획득한 17석에 비하면 약진했지만 수권 능력을 각인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민진당은 공산당·사민당·생활당과의 선거 협력을 통해 1인 선출 32개 선거구에서 단일후보를 냈지만 자민당에 21대 12로 졌다. 전국 단위의 비례대표 득표수도 1175만 표로 자민당의 2011만 표와 큰 차이가 났다. 2009년 역사적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재집권을 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성적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당내 움직임은 엇갈린다. 보수계 의원들은 공산당과 연대하면서도 개헌세력 3분의 2를 저지하지 못한 데 대해 오카다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과거 자민당 탈당 의원 등인 이들은 아베식 개헌안에는 반대하지만 개헌 자체에는 적극적이다. 오카다 대표가 선전했다는 반응도 적잖다. 당의 한 간부는 아사히 신문에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라고 말했다. 다른 간부도 “당이 살아남았다. 오카다 대표의 책임론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소정당은 몰락했다. 사민당은 요시다 다다토모(吉田忠智) 당수가 낙선하고 1석만 건졌다. 과거 진보세력의 보루로서 자민당의 3분의 2 의석 확보를 저지해온 사민당의 몰락은 보수화된 일본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탈(脫) 원전을 내건 신당개혁의 아라이 히로유키(荒井廣幸) 대표도 낙선했다. 아라이는 당을 해산하겠다고 밝혔다.

보수 야당이자 개헌에 적극적인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당’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의 생활당은 비례대표에서 한 명이 당선됐다. 오자와의 지역구인 이와테(岩手)현과 니가타(新潟)현에서 당선된 무소속 2명이 입당할 예정이어서 겨우 정당을 유지하게 됐다. 일본의 정당조성법상 정당 요건은 중·참의원을 합쳐 5명 이상의 소속의원이 필요하다. 오자와는 2014년 9월 방한 당시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야당이 후보자를 한 명으로 하면 꼭 이긴다. 한 번 더 정권교체를 하는 것이 정치가로서의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상 정권교체는 쉽지 않다. 다나카 가쿠에이의 문하생으로 자민당 최대 적자(嫡子)였던 그는 93년 탈당해 비(非)자민 연립정권인 호소카와(細川) 내각 탄생의 산파역을 맡았다. 이후 2009년 민주당 대표 대행 당시 선거 압승을 진두지휘해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킨 것도 그였다. 이번에 겨우 체면은 지켰지만 일본 정계의 이단아이자 풍운아로서의 존재감은 엷어지고 있다. 반면 공산당과 개헌세력인 오사카유신회는 각각 6석과 7석을 얻어 약진했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표를 모은 오사카유신회는 개헌 정족수와 맞물려 아베 정권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갖게 됐다.

선거의 진정한 승자는 실버 민주주의

이번 선거의 저류엔 실버 민주주의(silver democracy)가 꿈틀거렸다. 유권자 비율이 높은 고령자(실버)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현상 말이다. 일본의 실버 민주주의는 통계로 입증된다.

일본 총무성이 지난 6월 발표한 국세(國勢)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3342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1억2711만명)의 26.7%를 차지했다. 1920년 이래 5년마다 실시해온 총무성 국세조사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일본의 고령화율은 세계 최고다. 그 다음이 이탈리아(22.4%)·독일(21.2%)순이다.

총무성은 “지난 5년간 전후 베이비붐 세대(단카이 세대)가 65세를 넘으면서 고령자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투표율은 고령자가 높고, 젊은층은 낮다. 2년 전 중의원 선거 투표율은 20대가 32.6%, 60대가 68.3%였다. 표로 환산하면 20대는 420만 표, 60대는 1240만 표로 세 배차이다. 60세 이상은 실제 투표자의 절반에 가깝다. 나라가 고령자 우선주의 정책으로 기울기 십상이다. 정치의 세계에서 표 앞에 여야가 따로 없는 법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6월 1일 소비세 인상 재연기를 둘러싼 흐름에는 실버 민주주의가 짙게 투영돼 있다. 소비세율 인상(8→10%)을 2년 반 늦추는 아베의 결정은 선거 전만해도 핫이슈였다. 아베는 이 결정에 대한 신임을 묻기 위해 참의원 선거에 맞춰 중의원 선거도 실시하는 방안을 저울질했을 정도다.

하지만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쟁점이 되지 않았다.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 많게는 세 명중 두 명이 인상 재연기를 찬성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야당은 그런 여론 속에서 소비세 인상 재연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일본의 국가부채가 1000조 엔(1경1522조원)을 넘는 상황에서 증세가 늦춰질수록 다음세대 부담은 늘 수밖에 없다. 재정 재건을 위해선 소비세율을 올리든지 전체 예산(96조7000억엔)의 3분의 1인 고령자 중심의 사회보장비를 억제해야 한다. 그래야 세대간 대립의 불씨도 없애고, 형평의 원칙에도 맞다. 하지만 여론은 둘 다 피하고 있고, 정치권은 영합하고 있다. 일본의 고령자 지출 비율이 세계 최고인데 반해 교육비 비율이 선진국 중 낮은 것은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과정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투표 결과와 동전의 양면 성격이 짙다. 영국민 18~24세의 73%, 25~34세의 62%가 잔류를 선택했지만 55세 이상은 60% 가까이가 탈퇴 표를 던졌다. 젊은층이 수적으로 많은 중·장년층에 밀렸다. 일본에서는 이번에 선거권이 20세에서 18세로 낮춰졌지만 장로 지배정치(gerontocracy)의 흐름은 도도하다. 새 유권자는 전체의 2%(24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의미는 컸지만 영향력은 미미했다. 언론사 출구조사 결과 이들의 40%가량이 자민당에 표를 던진 것은 흥미롭다.

실버 민주주의는 이념적으로 보수 색채가 강하다. 변화를 구하기보다 과거의 영화(榮華)나 성장 시대의 향수에 젖기 마련이다. 일본의 우파 정권은 사회의 보수화와 떼놓을 수 없고, 보수화는 고령화 인구 동태와 맞물려 있다. 참의원 선거의 진정한 승자는 실버 민주주의일지 모른다.

- 오영환 도쿄 특파원 oh.younghwan@joongang.co.kr

201608호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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