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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탄실'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탕녀’로 지워져버린 여성 근대소설가의 은적

‘동경에 유학하는 여학생의 은적(隱迹).’ 1915년 7월 30일 <매일신보>에는 평양 출신의 여학생이 학교 기숙사에서 사라졌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이 여학생의 행적은 연달아 기사화됐고, 조선 전체가 수군거렸다. 그가 기생의 딸이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기사는 그에게 낙인이 되었다.

<탄실>은 바로 이 여학생, 최초의 여성 근대소설가인 김명순(1896~미상)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미실>의 김별아 작가가 김명순 탄생 120주년을 맞아 그의 행적을 좇았다. 김 작가는 8월 30일 기자간담회에서 “근대 여성 트로이카(김명순·김원주·나혜석) 가운데 아버지나 남편, 아들과 같은 방패가 없는 김명순의 삶이 가장 처절했다”며 “그의 삶을 최대한 복원해내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탄실은 김명순의 아명(兒名). 일제감정기에 살았던 그의 삶은 시대만큼이나 비극적이다. 기생 출신 어머니의 ‘나쁜 피’를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조롱당하고, 성폭행까지 당한 피해자임에도 타락한 신여성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김명순은 1917년 단편 ‘의심의 소녀’를 <청춘>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여성 작가로서는 첫 소설집인 <생명의 과실>(1925)을 출간했고, <매일신보> 기자로도 일했다. 그러나 당대 작가들의 질시를 받으며 문단에서는 철저히 따돌림을 당했다. 김명순은 일본으로 도망치듯 떠났고 그곳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문학사에서는 잊혀진 존재로 남아 2009년에야 그의 전집이 출간됐다.

저자는 현존하는 자전소설과 시, 수필, 희곡의 일부들을 모아 재조명했다. 역사적인 공백은 주변 여성작가들의 경험으로 채웠다. 저자는 김명순의 삶을 “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식민지”로 표현했다. 그의 삶도 문학도 꽃을 피우기도 전에 져버린 비극의 흔적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 박지현 기자

201610호 (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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