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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인권전쟁으로 전선 확대된 G2 갈등 

트럼프, 시진핑 향해 ‘위구르·홍콩 인권법’ 빼들다 

‘21세기판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논란에 中 “직업훈련소” 강변
美 자유민주주의 VS 中 사회주의… 체제 대결 양상으로 번져


▎2019년 6월,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그들은 내가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매달고 때리곤 했다. 두꺼운 나무와 고무 방망이, 뒤틀린 철사로 만든 채찍, 피부를 관통하는 바늘, 손톱을 당기는 펜치 등이 있었다. 이런 도구는 언제나 사용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탁자 위에 놓여있었다. 다른 수감자들의 비명도 들렸다. 저녁 식사 때였다. 최소 1200명의 수감자가 빈 플라스틱 그릇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음식을 먹으려면 중국 노래를 불러야 했다. 수감자들은 모두 로봇 같았고 영혼을 잃은 듯했다.”

영국 방송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설치된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풀려난 위구르족 주민을 인터뷰한 내용 중 일부이다. 중국 정부는 보도처럼 2017년부터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는 전체 주민 중 80만~200만여 명을 재판 절차 없이 강제수용소에 비밀리에 구금해왔다. 강제수용소에 감금된 위구르족을 대상으로 이슬람 신앙을 부인하고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도록 강요해 온 것이다. 이를 거부하면 심한 경우 물고문까지 가했다.

위구르족 인권탄압 실태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2019년 11월 25일 폭로한 중국 공산당 강제수용소 운영 지침을 담은 비밀문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ICIJ는 ‘차이나 케이블스(China Cables)’라는 이름으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 공안 정책을 총괄하는 당위원회가 공안당국 등에 배포한 전보(Cables)와 공고문(bulletins), 신장 위구르 자치구 법원의 사상범죄 판결문 등 6개 문서를 공개했다. 2017년 작성돼 공산당의 2급 기밀로 분류된 이들 문서에는 위구르족 주민들의 통제와 사상교육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담겨있다.

55개 소수 민족 중 가장 이질적인 위구르족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중국 공산당 강제수용소 운영 지침을 담은 비밀문서 중 일부. / 사진:ICIJ 홈페이지 캡처
이들 문서에 따르면 강제 수용소는 ‘교화(세뇌 교육)’와 ‘직업훈련(강제 노역)’으로 분류돼 운영된다. 1단계 수용소에서 중국 표준어와 유교 문화를 배우는 세뇌 교육이 이뤄지고, 이를 잘 수행한 수감자는 3~6개월간 직업훈련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노역을 하는 2단계 수용소로 이감된다. 수감자들은 최소 1년간 수용시설에 갇혀 있어야 한다. 수감자는 늘 같은 자리에서 먹고 자고 배우고 일하는 로봇 같은 일상을 반복해야만 한다. 수감자들은 아침 기상부터, 점호·세면·정리정돈·식사·교화수업·취침·문 닫는 것까지 모든 행동을 규정에 따라 해야 한다. 수감자들의 침상, 줄 서는 위치, 강의실 좌석, 작업 위치 등은 각자 지정돼 있으며 바꿀 수 없다. 심지어 화장실 사용 시간도 규정해두고 있다.

특히 이들 문서에 따르면 중국 공안 당국은 수감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철저한 감시체제를 구축했다. 강제수용소 내에 어떤 사각지대도 없도록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24시 간 수감자들의 동태를 감시했다. 수용소 안팎에는 보안요원과 공안들을 배치했다. 수감자들은 수용소에 입소한 이후 최소 1년이 지나 교화(세뇌)를 통해 높은 점수를 받으면 퇴소할 수 있도록 했다. 생활 점수에 따라 퇴소 시점은 물론, 면회 기회마저 차등으로 주어진다. 규율을 어길 경우 구타와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ICIJ의 중국 공산당 비밀문서 공개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14개국 17개 언론사 언론인 75명이 참여했다. ICIJ의 문서 공개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강제수용소를 놓고 ‘21세기판 아우슈비츠’라는 말이 나왔다. 아우슈비츠는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학살을 위해 폴란드에 설치했던 강제수용소를 말한다. 그동안 국제인권단체들이 위구르족 주민들을 감금해온 강제수용소 철폐 등을 주장할 때마다 중국 정부는 직업훈련소가 있을 뿐이라고 부정해왔다. 하지만 ICIJ가 중국 공산당의 비밀문서를 공개하자, 중국 정부는 “가짜 뉴스”라면서 반발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중국의 북서부 국경에 있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과거부터 ‘동투르키스탄’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동투르키스탄은 위구르족이 1910년, 중국 청나라가 멸망한 후 한때 세웠던 나라의 이름이다. 동서의 길이 2000㎞, 남북의 폭 1600㎞, 면적 160만㎢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중국 전체 영토의 1/6, 한반도의 7.3배나 된다. 중국 31개 성·시·자치구 가운데 가장 큰 이 지역에 사는 민족은 투르크계인 위구르족이다. 유럽인들과 같은 코카서스 인종인 위구르족은 알타이어 계통의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이슬람 수니파 무슬림이다. 생김새와 풍습 및 종교가 한(漢)족과 완전히 달라 중국의 55개 소수 민족 중 가장 이질적이다. 현재 인구 2095만 명 중 965만 명(46%)이 위구르족이고, 한족은 823만 명(41%)이다. 이 지역은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고대 실크로드의 길목에 있는 교통 요충지이다. 위구르족은 독립 국가를 유지해왔지만 1884년 청나라의 침공으로 합병됐다. 이후 무력 투쟁을 벌여 2차례 독립을 쟁취했지만 1949년 중국이 다시 합병하고 1955년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만들었다.

위구르족 독립운동세력들은 중국 정부에 맞서기 위해 1990년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ast Turkistan Islamic Movement, ETIM)이라는 무장단체를 만들었다. ETIM의 목표는 위구르족의 독립 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들은 중국 관공서나 경찰서를 공격하는 등 저항운동을 활발하게 벌여왔다. 2000년대를 거치면서 알카에다와 탈레반, 우즈베키스탄 이슬람운동(IMU) 등과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국제적으로 연대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로 변신했다. 중국 정부는 ETIM을 없애기 위해 무자비한 소탕 작전을 벌여왔다. 이 때문에 ETIM 조직원들은 물론 위구르 독립운동세력들이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태국·터키 등으로 피신하거나 망명했다. ETIM은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와 IMU 다음으로 세 번째로 가장 강력한 외국계 테러세력이 되기도 했다.

22개국 유엔 대사 “강제수용소 조사 허용하라”


▎카슈가르는 위구르족 무장단체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의 본거지다.
중국 정부는 신장 위구르 지역의 독립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치가 큰 까닭이다. 이 지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의 핵심 육상 거점이다. 최근 매장량 1900만 톤에 달하는 아연광이 발견되는 등 천연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게다가 위구르족이 독립하게 되면 다른 소수민족들에게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 경우 중국이 여러 민족으로 분리되면서 국가가 와해될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선 ‘화약고’인 신장 위구르에서 벌어지는 독립운동과 테러활동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막아야 한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강제수용소를 만들어 위구르족 주민들을 세뇌시키기 위한 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여왔다.

미국 등 서방 각국은 물론 국제 인권단체들 및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은 그동안 중국 정부에 강제수용소 해체를 요구해왔다. 미국·영국·독일·캐나다·네덜란드 등 30여 개국과 20여 개 비정부기구(NGO) 대표들은 2019년 9월 24일 뉴욕에서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 국제회의를 열고 “중국 정부는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탄압을 중단하고 유엔 인권 최고대표의 강제수용소 조사 활동을 즉각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사무국에 주재하는 22개 국 대사들도 2019년 7월 유엔인권이사회 의장 앞으로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중국 정부에 대해 위구르족 강제수용소 해체를 촉구한 바 있다. 이들은 “우리는 중국 정부에 대해 국내법과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중국 전역에서의 종교와 신념의 자유를 포함한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유엔 주재 대사들이 이처럼 집단적인 행동에 나선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인권 문제를 외면해온 트럼프 미국 정부도 위구르족 탄압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019년 9월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 외무 장관들과 회담을 갖고 중국 정부의 강제수용소 해체 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하원은 2019년 12월 3일 ‘위구르 개입과 글로벌 인도주의의 통합 대응을 위한 법안’, 이른바 ‘위구르 인권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407표 대 반대 1표,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는 대통령이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면서 구금 시설 폐쇄를 촉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이 법안은 또 국무장관에게 구금시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탄압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 법안은 인권 탄압에 관여한 것으로 판단되는 중국 관리들에게는 비자 제한과 자산 동결 등의 제재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안에는 제재 대상자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 최고 책임자인 천취안궈(陈全国) 당서기의 이름도 명기됐다. 또 미국 정부 기관은 위구르 탄압과 관련이 있는 업체나 개인과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상원은 하원에서 넘어온 이 법안을 조만간 표결할 예정이다. 상원에선 이미 2019년 9월 11일 비슷한 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기 때문에 통과될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 법으로 발효된다.

트럼프, 경제제재로 홍콩 숨통 조이나


▎2019년 11월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홍콩인권법안’에 서명했다. 아울러 마이크 펜스 부통령(오른쪽)은 중국이 홍콩 시위를 무력으로 대처할 경우 미·중 무역합의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미국 하원의 위구르 인권법안 통과에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전인대 외사위원회, 정협 외사위원회, 국가반테러판공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정부 등 8개 정부 기관이 일제히 성명을 통해 미국 하원의 위구르 인권법안 통과를 격하게 비난했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이 법안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상황을 의도적으로 비난하고 이 지역의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에 맞서 싸우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훼손한 것”이라며 “신장 위구르 자치구 문제의 핵심은 인권이나 소수민족, 종교가 아니라 반테러와 반분열의 문제”라고 강변했다. 화 대변인은 “신장 위구르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며 외국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미국을 향해 경고한다”며 “중국은 강렬한 분개와 반대를 표시하고 상황 전개에 따라 한발 더 나아간 반격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인권 문제를 놓고 중국과 정면충돌하고 있는 것은 ‘홍콩 인권법’에 이어 두 번째다. 이에 따라 위구르 인권법안이 앞으로 의회를 통과해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할 경우 중국 정부는 홍콩 인권법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해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 분명하다. 이에 앞서 중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11월 27일 상·하원이 통과시킨 홍콩 인권법안에 서명해 발효시키자 미국에 즉각적인 보복 조치를 내렸다. 중국과의 무역협상 타결에 악재가 될 것으로 우려해 유보적 태도를 보여 왔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의회에서 다시 가결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탄핵 문제를 고려할 때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과 대립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홍콩 인권법안에 서명했다.

홍콩 인권법을 보면 국무부가 홍콩의 자치 수준을 매년 검증해 홍콩의 특별대우를 유지할지를 결정하고, 홍콩의 인권 탄압과 연루된 중국 정부 관리 등에 대한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미국 내 재산 등을 동결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가 홍콩의 자치권을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미 정부가 홍콩에 사실상 ‘경제제재 조치’를 내릴 수 있다. 미국은 1992년 제정한 ‘미국·홍콩 정책법’을 통해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1997년)된 이후에도 투자·무역·비자발급 등에서 홍콩을 중국과 달리 특별대우를 해왔다. 홍콩이 1997년 이후에도 아시아의 ‘금융 허브’ 지위를 유지하고 경제발전을 해온 것도 이 법 덕분이었다.

홍콩은 그동안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많이 줄었지만, 중국 기업들의 자금을 조달하는 관문 역할은 줄지 않았다. 중국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1997년부터 2019년 9월까지 역내가 4450억 달러(약 539조원), 역외가 4190억 달러(약 498조원)인데 이 중에서 홍콩 증시가 3350억 달러(약 398조원)를 끌어들였다. 홍콩 달러화의 환율이 미국 달러화와 연동되는 페그제로 운영되고 있는 데다 중국 정부의 자본통제도 받지 않기 때문에 홍콩은 상하이 등 중국의 다른 도시들보다 경쟁력에서 우위를 지켜왔다. 게다가 홍콩은 중국 기업들이 역외에서 가장 많이 채권을 발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홍콩은 아직도 중국에겐 ‘황금알을 낳은 거위’인 셈이다.

中, 미 군함 홍콩 기항 거부 등으로 보복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 의회가 ‘홍콩인권법안’을 통과시키자 “중국에 대한 내정 간섭”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사진:중국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은 미국이 홍콩의 민주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이 법을 제정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홍콩에선 2019년 6월 9일 ‘송환법(범죄인 인도법)’ 반대로 촉발된 시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중국이 1997년 이후 추진해온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일국양제는 하나의 국가에 2개 체제, 다시 말해 국가는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이지만 홍콩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자유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따른 각종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2013년 덩샤오핑의 일국양제 약속을 깨뜨리고 새로운 일국양제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체제를 홍콩에 도입해 ‘홍콩의 중국화’에 박차를 가한다는 것이다. 반면 홍콩 시민들 대다수와 민주세력은 기존에 누려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중국 정부로선 홍콩 민주세력의 입장을 들어줄 경우 위구르·티베트 등 소수 민족 자치구에서도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반체제 인사들이 홍콩 시위 사태와 마찬가지로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 중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전개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에 보복의 칼을 꺼내 들었다. 중국 정부는 2019년 12월 2일 자로 미국 군함과 함재기가 수리나 휴식을 목적으로 홍콩에 기항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미군 함정이 홍콩에 기항하는 것을 금지해왔다. 실제로 무역 전쟁으로 미·중 관계가 악화한 2018년 9월 중국은 미 해군 강습상륙함 와스프 함의 홍콩 입항을 거부했었다. 2016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됐을 때도 미 해군 항공모함 스테니스호의 홍콩 기항을 거부한 적이 있다.

반면 미국과의 무역 협상이 진전을 보이자 2018년 11월 미 해군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의 홍콩 입항을 허용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는 미국에 홍콩 인권법을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분명하게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의 또 다른 속셈은 앞으로 남·동중국해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남·동중국해를 자국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 해군력을 강화해왔다. 특히 자국의 이런 전략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해군 함정들을 동원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벌여 온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다. 미국은 지금까지 서태평양과 인도양을 오가는 해군 함정들을 홍콩에 정박시키며 중국 정부에 미 해군의 군사력을 과시해왔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이번 보복 조치를 계기로 앞으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대한 주도권을 강화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미국의 비정부기구(NGO)에 대해서도 제재 조치를 취했다. 제재 대상은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인권단체로 유명한 휴먼 라이츠 워치를 비롯해 프리덤 하우스, 미국국가민주기금회(NED), 미국국제사무민주협회(NDI), 미국 국제공화주의연구소(IRI) 등이다. 중국은 제재 대상이 된 NGO들을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회원들에 대한 비자 발급 거부 등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제재 조치는 이들 단체가 홍콩 시위 사태를 배후 조종해왔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각종 성명을 발표하면서 외부 세력의 개입에 반대한다고 강력하게 경고한 것도 홍콩 시위 사태가 미국의 작품이라고 인식해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위구르 인권법이 발효되면 더욱 강경한 대미 보복 조치를 내릴 방침이다. 가령 미국 기업이 포함된 블랙리스트를 발표하고, 관련된 개인과 기업의 중국 진입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법안을 주도한 미국 정치인들의 비자 발급 금지와 미국 외교관들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출입 제한 조치 등이 거론되고 있다. 중국이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에서 무력시위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중국 정부가 위구르 인권법에 대해 홍콩 인권법보다 훨씬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일국양제 체제가 유지 중인 홍콩과 달리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완전한 중국의 영토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키신저 “미·중, 냉전의 언덕에 올라서고 있다”


▎미국 하원이 2019년 12월 3일 ‘위구르 인권 정책법안’을 통과시킨 데 반발해 중국 외교부가 즉각 성명을 내고 심각한 내정간섭이라며 보복을 경고했다. / 사진:중국 외교부 캡처
미국과 중국이 인권 문제로 정면충돌하는 것은 인권에 대한 개념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인권은 인간의 천부적 권리로서 개인 또는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양도되거나, 박탈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리를 말한다. 때문에 국가는 개인의 인권을 헌법과 법률로 규정한 특정한 상황에 한해 제한할 수 있을 뿐 이를 뺏을 수는 없다.

반면 중국은 헌법에 인권을 보장한다고 규정돼있지만 인권에는 개인뿐만 아니라 집체(집단)인권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중국 공산당은 인권의 개념이 각 나라마다 다를 수 있으며, 주권이 인권보다 우선한다고 보고 있다. 아무튼 인권 문제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미국은 이를 지렛대로 중국을 압박할 것이 분명하다. 반면 중국은 미국에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홍콩과 위구르 인권법이 양국 충돌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미국 외교계의 거두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미·중이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미국과 중국이 냉전의 언덕에 올라서고 있다(foothills of a Cold War)”며 “미·중 갈등이 계속 악화할 경우 1차 대전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중 수교를 이끌었던 키신저 장관이 이런 경고의 발언을 한 이유는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패권 도전, 이에 맞선 미국의 전 방위적인 대응으로 양국 간의 갈등과 대립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반면 미국으로선 중국의 도전을 더 이상 묵과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40년간 아태 지역에서 협력 체제를 유지해왔다. 이를 두고 ‘키신저 질서(Kissinger Order)’라고 부른다. 국제사회에선 최근 들어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본격적으로 벌임으로써 키신저 질서가 붕괴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양국의 갈등과 대립은 ‘무역전쟁→ 기술전쟁→인권 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특히 인권 전쟁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중국의 사회주의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볼 때 양국이 타협하기 어렵다. 때문에 미국과 중국은 앞으로 본격적인 체제 대결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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