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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현의 우리가 몰랐던 일본, 일본인(26)] ‘눈(雪)’에 40년을 바친 스즈키 보쿠시의 집념 

열도 전역에 순백의 순결을 알리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도 인용한 [호쿠에쓰셋푸]의 저자
일본인들에게 때묻지 않은 대자연 순수함과 이국적 풍경 선사


▎일본 니가타 현 미나미 우오누마 마을 주민이 자신의 키보다 높이 쌓인 눈 한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
일본 대중가요에는 북국(北國)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 이미지는 고독과 쓸쓸함이다. 북국은 주로 괴로운 사랑을 끝내려는 여성이 홀로 여행을 떠나는 곳이다. 힘든 도회 생활에 지친 일반인도 망설임 없이 향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갈 때는 언제나 겨울이다. 북국은 거친 겨울 추위에 몸을 두면서 가책이나 일상의 고민을 덜어내고 새로운 힘을 얻는 곳이다. 또 눈물을 버리는 곳이다. 눈 속에 피어 있는 온천의 빨간 눈동백꽃(雪椿)이라도 보고 나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

일본의 미의식을 말하는 데 사계(四季)는 중요하다. 일본인들은 계절에 따라 뚜렷하게 변화하는 자연 속에 불교적 무상을 투영시키며 인생의 덧없음을 알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다 사라지는 것들뿐이다. 매력적이지만 곧 사라져버리고 말 것 같은 약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일본의 미의식이 아닌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시작이 강렬하면 인상적이다. 소설 역사상 가장 강렬한 첫 문장의 하나로 평가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에서는 1931년 완공된 9.7㎞의 시미즈(淸水) 터널을 통과하는 순간이 ‘보이는 것은 오로지 백색’뿐인 세계를 국경·생사·시공을 초월한 느낌으로 묘사됐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그렇게 경계를 넘은 북국은 별세계다. 이 문장에서 지칭하는 국경 너머의 무대는 현재의 니가타 현 에치고유자와(越後湯澤)로 알려져 있다, 암흑의 긴 터널을 통과해 백색의 전혀 다른 나라로 가는 느낌은 생과 사를 넘나든 경험자들이 말하는 피안으로 가는 느낌과 유사하다. 고장과 고장, 국가와 국가의 국경을 넘어 생과 사를 초월해 외연을 확장하게 한다. 긴 기적 소리와 함께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는 증기기관차는 터널을 막 빠져나가 은세계에 도달한다.

실제로 임사(臨死) 체험을 다년간 연구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연구에 따르면 죽음 후에 처음 마주한 경이로움은 강렬한 흰색이라고 한다. 그는 “흰색보다 더 하얀 장엄한 빛이 감싸준다”고 했다. 또 로스는 이 빛을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임사 체험을 한 사람들은 짧은 순간, 이 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문인으로서 기초 소양 닦아


▎일본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예전에 북국으로 불리던 에치고라는 지명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럼에도 정설은 없다. 일본문학지 명대사전에 의하면 [고지키](古事記)에는 고시(高志)라고 했다. 비와호(琵琶湖) 호수 북쪽의 산을 넘어가는 나라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교토로 가는 도중 넘어가는’이라는 표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이 지역에 월(越)이라는 고대 국가가 존재했으며, 그 나라는 다이와(大和)에 가까운 순으로 전(前)·중(中)·후(後)를 붙여 에치젠(越前)·엣추(越中)·에치고(越後)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여하간 이 지역은 수도권에서 보면 험준한 산을 넘어 가야 하는 오지이자 먼 곳이었다.

10세기쯤 ‘律·令·格·式(율·영·격·식)’이라는 법체계가 생겼다. 그중에 엔기시키(延喜式, 율령 세칙)라는 법률에 따라 수도로부터 거리 순으로 기나이(畿内, 수도권)·긴고쿠(近国)·주고쿠(中国)·온고쿠(遠国) 등으로 나눴다. 에치고는 수도에서 가장 먼 온고쿠 지역에 해당한다. 역사가 시작됐을 때 니가타를 포함한 호쿠리쿠(北陸)는 고시(越)라고 불렀다.

호쿠리쿠 지방은 혼슈 중앙부에 위치하는 중부 지방 가운데 동해(東海)에 접한 지역이다. 호쿠리쿠 지방은 니가타 현(新潟県), 도야마 현(富山県), 이시카와 현(石川県), 후쿠이 현(福井 県) 등 4개 현을 가리키는데 도야마 현, 이시카와 현, 후쿠이 현 등 3개 현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전자를 ‘호쿠리쿠 4현’ 또는 니가타 현을 포함한 호쿠리쿠 지방이라고 하며, 후자를 ‘호쿠리쿠 3현’이라 불렀다.

호쿠리쿠 지역이라 불리는 이곳은 동해의 습기를 머금은 시베리아 기압골이 산맥에 부딪혀 겨울 폭설과 봄 해빙수가 흘러나오는 니혼가이 기후(日本海氣候)를 보인다. 특히 니가타 현 미나미우오누마 시(南魚沼市), 조에쓰 시(上越市) 주변은 일본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폭설 지대다. 주변에 스키장이 많이 위치하고 있다. 에치고 유자와와묘코코겐(妙高高原) 등 대규모 스키장이 몰려 있다.

소설 [설국]의 무대였던 에치고 유자와 지역의 ‘설국’ 이미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뿐 아니라 에도시대 한 작가의 반평생에 걸친 집념을 통해 일본 전역으로 널리 알려졌다.

스즈키 보쿠시(鈴木牧之, 1770~1842)는 에도시대 후기의 상인이자 수필가로 메이와(明和) 7년(1770)에 에치고의 우오누마 군(魚沼郡) 시오자와(塩沢)에서 태어났다. 보쿠시의 집안은 대대로 지역 특산품인 지지미(縮, 잔주름이 있는 옷감) 중개업과 함께 전당포(質屋)를 경영한 덕분에 부유했다. 그의 집이 하이카이(俳諧, 재담·익살)나 경서·서화에 능한 예술가들과 왕래가 잦은 미쿠니가이도(三國街道)에 위치한 까닭에 보쿠시는 어려서부터 문인으로서 기초 소양을 닦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19세 때 에도에 처음 여행하고 ‘눈’이 드문 세계와 조우했다. 보쿠시가 눈이 많이 내리는 우오누마의 상황을 널리 전할 것을 결심하고 집필한 것이 [호쿠에쓰셋푸(北越雪譜)]다. 한마디로 북국 에치고의 눈 이야기다.

이 지방은 1년 가운데 8개월은 눈에 파묻혀 있는 대표적인 호설(豪雪) 지대로 따뜻한 지방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진귀한 풍속이 존재한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지지(地誌)·민족지(民族誌)의 발원지인 셈이다.

눈이 하룻밤에 6, 7척(약 2m)가량 내린 적도 있고 보쿠시가 생존했던 덴포기(天保期) 어느 해에는 강설량이 54m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보쿠시는 따듯한 나라(暖国)에서는 눈이 내려 은세계가 되면 눈을 꽃에 비유하고 그림으로 그리고 시를 짓는다며 부러워했다.

에도에서는 첫눈이 내리면 설견선(雪見船)을 띄우거나 손님을 초대해 차를 대접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설국은 사정이 전혀 달라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쳤다. 사람들은 “눈은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 하는 원수”라고 한탄했다.

보쿠시는 [호쿠에쓰셋푸]에서 지붕·대들보·기둥 등 건물의 보강이나 수리, 통로의 간기(雁木, 처마에 지붕을 연장해 통로에 눈이 쌓이지 않게 한 장치)를 만들고 우물이나 화장실의 눈 덮개, 눈보라나 눈사태로 인한 조난, 강이 눈으로 막혀 범람하는 ‘설중홍수’ 등을 소개하는 등 눈의 부정적인 면을 열거했다.

보쿠시의 [호쿠에쓰셋푸] 권두에는 마을 사람들이 총출동해 눈을 파내는 삽화가 올려져 있다. 연중 반년 이상 눈에 파묻히는 마을의 모습을 널리 알리려고 하는 보쿠시의 마음이 전해진다.

설국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것은 정치인의 책무라고 말한 니가타 출신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전 수상은 눈을 치워 신칸센과 고속도로를 개통하고 생활 도로나 농지 등 인프라를 정비했다. 이에 스키장이나 온천이 개발돼 관광객이 증가하고 지역 산업도 발전했다.

“눈은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 하는 원수”


▎한 남자가 눈 덮인 일본 호쿠리쿠 지방의 중부산악국립공원을 홀로 걸어가고 있다.
[호쿠에쓰셋푸]에서 작가는 자신의 생활 터전인 우오누마 지방을 중심으로 설국 에치고의 자연·지세(地勢)·생활상·기상(氣象)·특산물·역사·민속·인물·전설·축제 등을 수필 형태로 서술하고 있다. 특히 책에는 에치고의 지지미, 연어잡이, 설구(雪具), 눈이 오는 기간 행사 등이 자세히 기술돼 있다. 이 책은 호설 지방 주민의 애환을 그린 최초의 출판물로 크게 유명해졌다.

책에는 125개의 이야기와 삽화 55개가 수록됐다. [호쿠에쓰셋푸]가 설국의 백과사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다. 전편을 통해서는 눈에 허덕이면서도 굴복하지 않는 에치고의 사람들의 강인함을 그리고 있다. 당시 1000부 정도면 초(超)베스트셀러였는데, [호쿠에쓰셋푸]는 약 800여 부가 팔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근세 후기의 에치고 시오자와의 한 상인에 불과했던 스즈키 보쿠시가 [호쿠에쓰셋푸]를 저술함으로써 눈에 묻혀 사는 자신들의 지역을 천하에 알리려 한 것은 특이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저술을 위해 후반생 40여 년을 바쳤다.

[호쿠에쓰셋푸]의 초판이 에도에서 출판된 것은 덴포(天保) 8년(1837)이지만, 구상부터 출판에 이르기까지 40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출판을 도와준 문화인들도 산토 교덴(山東京伝), 오카다 교쿠잔(罔田玉山), 스즈키 후요(鈴木芙蓉), 교쿠테이바킨(曲亭馬琴) 등 당시 일급의 문인들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산토 교덴의 동생인 산토교잔(山東京山)에 의해 출판이 실현된다.

보쿠시는 태어나서 에치고를 거의 떠나지 않았지만, 당대 최고의 에도 문인들과 교제하는 행운을 누렸다. 평생 다른 곳에서 산 적이 없던 보쿠시가 어떻게 [호쿠에쓰셋푸]와 같은 작품을 집필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에도 문인들과 함께 여행을 자주 다니며 다른 지방의 풍속을 경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쿠시는 19세 때 미쿠니 고개(三國峠)를 넘어 관동 평야와 번화한 에도 거리를 직접 체험했으며, 20대 중반에는 에도의 문인 산토 교덴과 서신을 주고받았다. 이처럼 문인과의 교류를 계기로 차츰 ‘눈’에 관련된 서적 집필을 구상하게 됐다. 보쿠시는 산토 교덴에게 [호쿠에쓰셋푸]의 교정을 부탁했고, 교덴은 보쿠시의 원고에 감동하고 출판을 약속한다.

하지만 이 계획은 난관에 부딪힌다. 교덴은 일류 작가였기에 자신의 작품 활동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 와중에 교덴이 갑자기 병사한다. 준비해 뒀던 원고를 비롯한 여러 재료마저 분실하는 지경에 이른다. 무명의 지방 작가 보쿠시의 출판의 길은 요원해진다.

보쿠시는 당시의 유명 통속소설 게사쿠샤(戯作者)인 바킨과 출판을 추진한다. 바킨은 [도유기(東遊記)] [호쿠에쓰기담(北越奇談)] 등의 기행문을 통해 이미 에치고와 에치고 ‘눈’의 이미지가 완성된 만큼 보쿠시의 작품 구상이 참신하지 않다고 여겼다. 또 보쿠시가 보내온 자료의 출처가 불분명한 데다 남에게 들은 이야기가 주를 이룬 만큼 자칫하면 바킨 자신이 거짓말을 하게 될 거라며 출판을 주저했다.

보쿠시의 세 번째 출판 도전 기회는 화가 오카다 교쿠잔을 통해 얻었다. 교쿠잔은 그림과 문장에 능했다. 에혼다이고키(繪本太閤記)라는 작품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던 교쿠잔은 출판사도 오사카의 아키타야(秋田屋)로 정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보쿠시는 156매의 그림과 초고를 보냈지만, 교쿠잔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이번에도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때 나타난 구원의 손길이 교덴의 동생 교잔이었다. 보쿠시의 나이도 어느덧 60세가 넘었다. 그럼에도 보쿠시는 초고를 다시 쓰는 수고 끝에 교잔에게 보냈다. 설국을 본 적이 없는 교잔은 7년여에 걸쳐 편지로 보쿠시에게 묻거나 에치고 출신을 자신의 하녀로 고용하는 등 심혈을 기울인 끝에 최종본을 완성했다. 출간을 위해 교잔과 보쿠시가 나눈 서한만 300통에 이른다.

교잔은 이전에 출판에 협조했던 문인들과는 달리 신속하게 일을 추진했다. 양자 사이의 왕래 서신에는 출판 구상을 비롯해 비용·판매 등 구체적 내용이 담겨 있다. 교잔은 직접 원고를 교정하는 한편 판매에 유리한 판형을 검토하기도 하고 구체적인 편집 방향을 조언했다. 또 ‘눈’ 일변도의 그림과 글만으로는 독자들을 식상하게 할 수 있으니 눈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첨가하자고 조언했다.

‘눈’에 집착하는 보쿠시에게 ‘눈’이란 그저 풍물시의 소재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생활의 중요한 요소였고, 이러한 ‘설국’에서 인간의 삶 그 자체를 그리고 싶었다. 눈 속에 사는 사람들의 고독과 슬픔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

문인들과의 교류 통해 집필 구상


▎일본 유자와에 있는 다카한료칸. 193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곳에서 한 달 동안 머문 뒤 소설 [설국]을 집필했다.
20대에 초고를 쓰고, 교덴에게 출판을 의뢰해 우여곡절을 겪은 지 40여 년이 흐른 1837년, 보쿠시 나이 68세에 초판 3책(상·중·하)을 출판함으로써 마침내 숙원을 이룬다. 호평이 이어진 가운데 1841년 보쿠시 나이 72세에는 2편 4책(1, 2, 3, 4권)을 출판한다. [호쿠에쓰셋푸]는 에도의 책 대여점에서 인기가 높았다. 책이 구비돼 있지 않으면 책 대여점 영업이 안 됐을 정도였다고 한다.

소설 [설국]은 옛 책에 전하는 이야기라며 [호쿠에쓰셋푸]의 내용을 일부 기재하고 있다. 눈이 내리기 전 주변의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 눈이 내릴 조짐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이 지방은 나뭇잎이 떨어지고 바람이 차가워질 무렵, 쌀쌀하고 찌푸린 날이 계속된다. 멀고 가까운 높은 산들이 하얗게 변한다. 이를 ‘산 돌림’이라고 한다. 또 바다가 있는 곳은 바다가 울고, 산이 깊은 곳에서는 산이 운다. 먼 우레 같다. 이를 ‘몸 울림’이라고 한다. 산 돌림이 보이고 몸 울림이 들리면 눈이 가까웠음을 안다. 옛 책에 그렇게 적혀 있었던 것을 시마무라는 떠올렸다.”

또한 ‘지지미의 마을’에 방문하는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의 눈 이야기 등 [호쿠에쓰셋푸]의 내용을 인용한다.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 방문을 전후해 [호쿠에쓰셋푸]라는 설국 백과사전을 통해 에치고 유자와의 풍물을 충분히 익혔음을 알 수 있다.

[호쿠에쓰셋푸] 서두의 제1화는 “무릇 하늘에서 형태를 이뤄 내리는 것은 비·눈·서리·진눈깨비·우박…”이라고 시작한다. 눈의 생성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제2화에는 같은 때 간행된 고가(古河) 번주 ‘눈의 전하’라 불리던 도이토시쓰라(土井利位)의 1832년 작 [설화도설](雪華図説)에서 등사(謄寫)한 눈송이 결정도 35장을 싣고 있다. 당시에 현미경을 사용해 눈의 결정을 세세하게 연구한 노력이 놀랍다. 제3화 이후로는 눈보라와 눈사태 현상과 피해, 설국의 주거 보행용 도구 등 눈 속의 생활, 묘한 이야기, 에치고 경치, 연어잡이 등의 극명한 기록이 실렸다.

“기상학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고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삿포로의 눈 축제.
기상 학자 오카다 타케마쓰(岡田武松)는 [호쿠에쓰셋푸]와 [설화도설]의 두 책을 메이지 시대 이전에 눈과 눈의 결정을 다룬 유일한 연구서로 인정하며 “우리 기상학자들이 꼭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고전”이라고 평가하고 [호쿠에쓰셋푸]의 서문을 빌려 주해(註解)를 쓰기도 했다.

“눈은 하늘이 보내준 편지”라는 말로 유명한 눈 학자 나카타니 우키치로 박사는 명저로 불리는 [눈]의 첫머리에 [호쿠에쓰셋푸]의 제3화 전문(前文)을 인용한다. “이 책은 눈에 대한 고찰, 설국의 생활을 쓴 책으로 유명하다. (…) 또한 일본에서는 이런 종류의 문헌이 거의 없는 점에서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지만, 따뜻한 사람에게는 상상도 안 되는 일이 그려지고 있다.”

눈 속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생활이나 애환을 그린 [호쿠에쓰셋푸]는 에치고의 박물관·지지(地誌)·생활사·전승(傳承) 등 설국의 백과사전으로 지금도 읽히고 있다.

현재와는 다르게 건물이 단층집이고 창문도 없던 시절의 눈 속 고립은 상상조차 어려울 정도로 음울했다. 눈이 지붕 높이까지 다다르면 빛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낮에도 등불이 필요했다. 잠시 눈이 멈추면 제설 작업을 했고, 작은 창을 열어 밝아지면 광명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호쿠에쓰셋푸]에는 곰을 잡는 방법도 소개돼 있다. 새나 짐승도 겨울철에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따뜻한 지방으로 옮기지만 인간과 곰만은 눈 속에 틀어박혀 있다. 곰의 웅담은 에치고의 최고 상품인데 눈 속의 웅담은 더욱 귀하다.

따라서 다른 지역의 사냥꾼까지 가세한다. 우선 곰이 호흡하는 구멍을 찾는다. 그 구멍으로 나뭇가지나 잡목을 집어넣으면 곰이 잡아당긴다. 몇 번을 되풀이하면 곰의 거처가 좁아지고 곰이 견디다 못해 구멍 입구로 나오게 되는데 그때 창으로 찔러 죽인다.

또 다른 하나는 오시(圧)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구멍 앞에 선반을 만들어 그 위에 큰 바위를 올려놓고 곰에게 연기를 피워 그을리면 화가 난 곰이 뛰쳐나온다. 그 순간 바위를 떨어뜨려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다른 지방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이 지역 농민들은 곰을 죽이면 산이 거칠어진다고 믿고 곰을 잡지 않았다. 눈 속에서 조난당한 사람이 곰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보쿠시가 82세의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로, 이 노인이 젊었을 때 눈 속에서 길을 잃어 곰의 구멍에 잘못 들어가서 동사를 면했다는 내용이다.

가정적으로는 불행했던 사나이


▎일본 영화 [기묘한 이야기]의 첫 번째 스토리 ‘눈 속의 하룻밤’의 한 장면.
그때 곰은 침입한 남자에게 따뜻한 거처를 내주더니 자신의 손바닥을 들이대고 핥는 동작을 취했다. 남자는 곰이 개미를 먹는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핥아보니 약간 달콤하고 씁쓸한 맛이 났는데 목을 축일 수 있었다. 결국 남자는 곰과 49일 동안 동거했는데 어느 날 곰의 재촉을 받고 구멍에서 나오게 됐다. 바깥 세상으로 나온 남자는 간신히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게 됐고, 그날은 부모 제삿날이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도 전한다. 한 젊은 부부가 갓난아이를 데리고 떠난 여행 중 날씨의 급변으로 폭설을 만난다. 부부는 죽었지만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서 보호받은 덕분에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이를 구한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의 모습에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호쿠에쓰셋푸] 외에 보쿠시의 주요 저작으로는 기행문·구집(句集) 등이 있다. 보쿠시의 성격은 꼼꼼했고, 재주는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보쿠시는 23세에 처음 결혼했지만, 아내가 사망하거나 이혼하는 등 불운이 잇달았다. 평생 6명의 아내를 만났고, 44세 때는 결핵으로 장남을 잃기도 했다. 가정적으로는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었다.

니가타 현은 예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통하는 곳이다. 백설(白雪)·백미(白米), 그리고 그 쌀로 빚은 맑은 사케의 고장이다. 물이 좋으니 명품이 많다. 최고의 명품 쌀 ‘고시 히카리’(越光)가 바로 니가타 현의 특산품이다. 니가타의 옛 명칭인 ‘에치고’의 ‘히카리(빛, 光)’를 상징한다. 강수량이 풍부한 데다 너르고 비옥한 평야를 끼고 있어 좋은 쌀을 거둔다. 니가타에만 100개 가까운 양조장이 있다.

보쿠시의 차남은 아오키주조(青木酒造)를 이어받았고,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 가쿠레이(鶴齢)라는 상표는 보쿠시가 직접 명명했다고 한다. 이 술에 이어 제조하기 시작한 유키오토코(雪男)라는 사케도 [호쿠에쓰셋푸]에 등장하는 털투성이 괴물(異獣)이 모델이다.

보쿠시가 태어난 이오누마는 동남으로 고산이 파도처럼 이어져 있고, 크고 작은 하천이 종횡으로 달리고 있다. 이오누마는 풍수적으로 음기(陰気)가 가득한 산간 촌락이다.

시오자와에는 보쿠시 거리(塩沢 牧之通り)로 명명된 길이 있다. 에도풍으로 새롭게 단장한 상가의 벽에는 보쿠시가 저술한 [호쿠에쓰셋푸]의 그림과 함께 문장이 씌어져 있다. 평생에 걸친 그의 작업을 기념하기 위한 보쿠시 기념관이 있다.

눈은 순백의 색깔이 나타내듯이 순수이다. 보쿠시가 호설 지역 에치고의 눈을 통해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자기 고장의 순수함이었는지 모른다. 에도의 독자들은 때묻지 않은 대자연의 순수함에서 눈과 어울리듯 분투하는 이국적 풍경에 환호했다.

소설 [설국]의 여주인공 고마코의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에 대한 사랑도 아무런 보상을 원치 않는 조건 없는 사랑이어서 순수하다. 자기가 하고자 했던 설국에 관한 이야기를 기나긴 세월을 거쳐 완성해 가는 장인 정신을 다시금 새겨본다.

※ 최치현 -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같은 대학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에서 중국지역학 석사를 받았다. 보양해운㈜ 대표 역임. 숭실대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로 ‘국제운송론’을 강의한다. 저서는 공저 [여행의 이유]가 있다. ‘여행자학교’ 교장으로 ‘일본학교’ ‘쿠바학교’ 인문기행 과정을 운영한다. 독서회 ‘고전만독(古典慢讀)’을 이끌고 있으며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토론한다.

202002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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