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토포엠] 산목련이 백목련에게 

 

최두석

▎서울 서초구의 빌딩숲 한편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목련. / 사진:박종근 비주얼에디터
너는 잎도 없이 꽃망울을 터트리지
수백 수천의 꽃눈을 붓끝처럼 세우고
추운 겨울을 견디면서
벼르고 벼르다가
온몸으로 봄볕을 느끼며 한꺼번에
수백 수천의 꽃망울을 터뜨리지
사람들은 너의 환한 꽃그늘 아래 서서
마음껏 봄날을 즐기곤 하지

하지만 나는 떨군 꽃잎이
쓰레기가 되어 발길에 밟히는 게 싫어
산 속에 산다네
햇볕을 가릴 만큼 가득 잎을 펼친 다음에
꽃은 한 송이씩 차례로 피운다네
사람들의 번거로운 눈길에서 벗어나
아는 이만 맡게 되는 향내는
한층 그윽하고 깊다네.

※ 최두석 - 1980년 문예 월간지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대꽃] [임진강] [성에꽃]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꽃에게 길을 묻는다] [투구꽃] [숨살이꽃] 등을 냈다.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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