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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거칠고 천박한데 민심 홀린 트럼피즘의 실체 

주류는 몰랐다, 허풍·독설의 위력 

美 정계 뒤집어놓은 2016년 이단아의 반란 복기
이번 대선서 졌지만 7235만 표 얻어 영향력 여전


2020 미국 대선 투표가 종료된 지 꼬박 하루가 지난 11월 5일 오후(한국시간)까지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이후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 주 우편투표 개표 결과 바이든이 대역전극을 펼치면서 트럼프는 고배를 들었다.

불리한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개표 마지막까지 바이든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것만 해도 ‘놀랍다’는 반응이 많았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 총 7235만 표(11월 12일 현재)를 득표해 4년 전보다 무려 936만표 이상이나 얻었다. 공화당도 상원 의석 절반을 지키고(남은 2석은 결선투표) 하원 의석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주의(Trumpism)의 영향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왜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선택했는가(The Case for Trump)]는 2019년 3월 미국에서 처음 나왔다. 그런데 최근 발간된 이 책의 한국어판은 어찌 보면 적절치 못한 시점에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패배가 사실상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이 책의 의미는 나름대로 크다. 드라마틱한 올해 미 대선을 흥미롭게 지켜본 많은 한국 독자에게 이 책은 현재 미국 정치의 지형도를 그 어떤 텍스트보다 더 실감 나게 잘 보여 준다.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인 지은이 빅터 데이비드 핸슨은 열렬한 트럼피즘 지지자이긴 하지만 트럼프는 물론 그의 측근들조차 한 번도 직접 만나 본 적은 없다고 한다. 미국 발간 시점에서 본다면 트럼프의 재선을 위한 지지자 결집용 출판이었을 것이다. 반면 ‘타도 트럼프’를 외친 바이든에겐 4년 전 민주당과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를 곱씹어 보게 하는 반면교사 역할을 단단히 한 듯하다.

이 책은 ‘굴러들어온 돌’인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어떻게 해서 쟁쟁한 공화당 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대선 후보 지명을 받게 됐는지, 나아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백악관을 차지하게 됐는지를 낱낱이 파헤쳤다.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공화당 내부 일각에서조차 ‘트럼프 절대 불가(Never Trump)’를 외치는 열악한 상황을 뚫고 보란 듯이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마법 같은 주문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라는 이단아가 현대 미국 정계를 지각변동시켜 놓은 2016년 대선 과정을 복기해 봄으로써 향후 바이든 시대를 예측해 볼 수도 있다.

저자는 세간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트럼프가 ‘자기중심적이고 허풍이 심하며 때로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거칠면서도 천박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이런 겉모습 이면에는 자신이 내뱉는 독설의 정치적인 효과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 해석한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증오의 융단폭격을 퍼부은 힐러리와 미국 엘리트 사회가 오히려 트럼프에 보기 좋게 당했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트럼프는 쇠락하고 있는 미국, 특히 세계화에 따른 산업 공동화로 소외된 중부 내륙 백인 산업근로자 계층의 절박한 처지와 고충을 보듬고 그들을 위한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언사와 공약으로 이들의 지지를 투표로 연결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수많은 사례를 들며 트럼프의 정치문법과 ‘거래의 기술’, 한편으로는 어설퍼 보이면서도 핀포인트로 지지층의 감성을 자극하는 정책들의 면면을 잘 보여 준다.

-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월간중앙과 중앙SUNDAY에 모두 공급합니다.

202012호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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