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신간] 실리콘밸리에선 죽음도 컴퓨팅 에러일 뿐 

 


국내 의학 드라마 중 최고를 꼽으라면 1999년 [허준]이 반드시 거론된다. 당시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한의대 수능 점수가 의대를 따라잡았을 정도였다. 드라마 속 허준(전광렬扮)은 작품 내내 ‘심의(心醫)’를 강조했다. ‘병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의원의 핵심 덕목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생각하는 의학 연구자의 덕목은 사뭇 다르다. 이들은 인체를 ‘복잡한 컴퓨터’라고 전제한다. 질병과 죽음은 오류일 뿐이며, 연구자의 역할은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다. 증상들을 빅데이터로 수집하고, 증상의 원인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며, 알고리즘에 따라 상황에 맞게 예방 조치를 내린다.

저자에 따르면, 새로운 접근법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의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기업들은 암과 알츠하이머를 정복하고 ‘200세 시대’를 열 수 있는 각종 신약과 기술을 임상 실험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인공장기나 뇌 모뎀(뇌와 외부 장치 간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통신장치) 등 인체 기능을 인공적으로 끌어올리는 기술도 막대한 투자액을 유치하고 있다. 뇌파로 사이보그를 조종하는([써로게이트]) SF영화 같은 미래가 머지않은 셈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미국 수석 특파원인 저자는 지난 10년간 실리콘밸리의 거물들과 진행한 150건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책을 엮었다. 베일에 가려진 실리콘밸리 연구소의 풍경도 생생하게 묘사했다.

- 문상덕 기자

202012호 (2020.1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