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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슈] ‘인플레 시대’ 한국 경제의 활로 찾기 

제때 돈 못 거둬들이면 자산 거품(부동산·주식) 터진다 

통화확대 정책으로 인플레 확률 올라가, 미국 국채금리 상승은 그 반영
방치하면 양극화 커져 포퓰리즘 함정… 정부 개입 강화되는 악순환 우려


▎인플레이션 시대가 다가올수록 생필품을 살 때의 체감물가는 올라갈 것이다. / 사진:뉴시스
한국은행 로비 중앙에는 ‘물가안정’이라는 큰 현판이 걸려 있다. 그만큼 한국은행은 발행 화폐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물가안정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실제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채택해 실시하고 있다. 평균 2%의 목표 인플레이션을 설정해 이보다 높으면 기준금리를 높이고 통화량을 환수해 물가상승률을 낮추고, 낮으면 금리인하와 통화량을 풀어 물가를 높이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조절하거나 채권을 매입하는 공개시장조작 정책과 지급준비율 조절, 그리고 최종 대부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재할인율을 조절하는 등 다양한 통화정책 수단을 이용한다.

우리나라 물가상승률, 즉 인플레이션은 기획재정부 산하 통계청에서 집계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로 집계된다. 1990년대 전반까지 6%를 상회했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인플레이션도 낮아져 2000년대에는 2~3% 물가상승률을 보여왔다. 2015년 이후에는 더욱 낮아져 1%대에 있다가 2020년 코로나19 이후에는 0%대에서 변동하고 있다.

일본은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마이너스 물가상승률, 즉 디플레이션까지 나타나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기침체를 더욱 심화할 수 있다. 금리가 제로 수준에 있으면 통화량을 늘리는 양적완화 정책에 의해 물가를 높이려는 시도를 해왔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중앙은행 또한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해왔다. 이러한 확대통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인플레이션은 0%대에 있었다. 그러다 최근 인플레이션 시대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인플레이션 시대가 온다면 저성장, 양극화 함정에 빠져 있는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아직 인플레이션을 체감 못하는 이유


▎한국은행은 1층 로비에 ‘물가안정’을 새길 만큼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인플레이션 시대가 다시 올 것인가 여부는 코로나19 안정과 연관이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물가는 1%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총수요가 감소한 데에 그 원인이 있었다. 그 외에도 원유 가격이나 원자재 가격의 안정과 환율하락 등도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기술혁신에 의해 생산비가 낮아지고 특히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제조업 제품의 가격이 안정된 원인도 있다. 인터넷상거래가 늘어나면서 유통비용이나 중간마진이 감소한 이유도 있다.

그런데 왜 코로나 사태가 안정되면 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일까. 인플레이션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확대재정으로 총수요가 늘어나면서 물가가 높아지는 수요견인형이 있고, 임금이나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서 물가가 높아지는 비용상승형도 있다. 그리고 통화량이 늘어나 돈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실물의 가치, 즉 물가가 높아진다. 향후 인플레이션 전망 배경을 보면, 가장 큰 원인은 과잉유동성이다. 미국의 경우, 2020년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량을 나타내는 본원통화(M0)는 전년도에 비해 52% 증가했다. 이는 2019년 2.9%에 비해 대폭 증가한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 역시 전년도에 비해 통화량이 급증했다. 시중은행을 통해 신용창조 과정을 거친 총통화(M2)의 경우도 미국의 경우, 2019년 6% 정도 증가한 데 비해 2020년에는 24% 증가했다. 이러한 시중 유동성의 증가는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부동산과 주식 가격을 높이며 물가를 높이는 배경이 된다. 지금은 경기침체로 수요가 늘어나지 않아 부동산과 주식과 같은 자산가격 상승으로만 나타나고 있으나 늘어난 통화량은 결국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2020년 통화량이 이렇게 많이 증가했음에도 물가상승률이 아직 높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경기침체로 수요가 줄어든 원인이 있지만, 인플레이션을 측정하는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방법에 기인한다. 현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지수는 소비 비중이 큰 500개 정도 물품을 선정하고 가계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중치로 설정해 산정한다. 지수산정에 포함된 물품에는 수입할 수 있는 제조업 제품과 같은 교역재와 수입할 수 없는 서비스나 주택과 같은 비교역재가 포함되어 있다. 교역재 가격은 수입에 의해 안정될 수 있지만, 수입할 수 없는 비교역재 가격은 통화량이 늘어나면 상승한다. 그러나 소비자물가지수는 교역재와 비교역재를 가중평균해서 산정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주로 소비하는 비교역재, 즉 농산물이나 교육, 주택비용 등 서비스물가, 즉 체감물가를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로 인플레이션을 측정하면 돈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부동산이나 주택 가격으로 측정한다면 돈의 가치는 이미 크게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경기회복도 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보탠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이 이뤄지면 그동안 억눌렸던 구매 의욕이 되살아나게 되고 총수요가 증가하면서 물가가 오를 것이다.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면 원유와 원자재 수요 또한 늘어나면서 비용 상승에 의한 물가상승이 예상된다.

인플레이션이 사회주의 부른다


▎자산 양극화의 심화는 지니계수로도 확인된다.
재정지출 증가도 물가를 자극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확대재정 정책에 의해 실업을 줄이고 경기를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1조9000억 달러 재정지출을 결정했다. 확대재정 정책으로 늘어난 재정적자를 국채발행으로 조달하면 국채가격이 하락하고 국채금리가 상승하게 된다. 실제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이미 1.5%를 상회하고 있다. 시중금리가 높아질 경우 중앙은행은 목표 기준금리를 유지하기 위해 채권을 매입하는 시장개입을 하게 되고 이는 결국 통화량을 더욱 증가시킨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또 다른 배경은 포퓰리즘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정치적 요인과 깊은 관계가 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정치인들은 선거가 있기 전에 통화량을 늘리고 선거가 끝난 후 통화량을 흡수해 ‘경기가 선거에 의해 변동된다’고 해서 이를 정치적 경기변동론(political business cycle, PBC)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치적 요인이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재정정책을 통해서도 영향을 미친다.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선심성 재정정책을 선호하고 국민이 여기에 동조하면 재정지출이 급격히 증가한다. 과도한 재정지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채발행이 증가하고, 결국 이를 중앙은행이 인수하면서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 물가상승률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도 과거와 다른 경제정책 환경에 직면해 있다. 특히 재정정책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재정지출이 급격히 늘어나며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예산이나 경제정책의 상당 부분이 국회에서 결정되므로 경제정책이 정치적 영향력을 받지 않을 순 없지만, 그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면 한국 경제에는 어떠한 영향이 올 수 있는가. 먼저 부의 불평등이 심화돼 양극화가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 인플레이션은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가격을 높여 이를 보유하고 있는 계층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계층 사이에 불평등이 커지게 한다.

한국은 1949년 이전까지 지주 계급과 소작인 그룹으로 양분되면서 부의 불평등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였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1949년 농지개혁을 시행해 소작인들에게 농지를 분배하면서 부의 불평등을 완화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는 부의 불평등보다는 소득의 불평등이 주된 과제였다. 최근까지 정부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고소득자에 대한 최고소득세율을 높이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등의 대책을 수립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부의 불평등이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소득 불평등은 경기가 좋아지면 쉽게 그 간격을 줄일 수 있지만,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한 부의 불평등은 그 격차가 너무 커서 줄이기가 어렵다. 따라잡을 수 없는 불평등은 근로의욕을 낮춰 성장을 둔화시키고 사회주의 경향을 높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조사에서 ‘미국 20대 밀레니얼 세대의 51%가 양극화 해소와 기후 및 환경보호를 주장하면서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45%만 자본주의를 선호한다’는 결과로도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밀레니얼 사회주의’(Millennial socialism)라고 명칭했다. 주택가격 상승 배경에는 그동안 수요억제책을 강조한 정부의 주택정책 실패에도 원인이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고 실업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통화량을 과도하게 늘린 탓도 있다. 주택가격 상승은 향후 한국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임금인상과 물가상승의 악순환도 초래된다. 비록 지표물가는 높아지지 않았다고 해도 생활물가가 높아지면서 이는 임금인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임금인상은 다시 생활물가를 높이는 악순환 속으로 빠진다. 남미 경제도 임금인상과 물가상승의 악순환으로 성장이 정체되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사회가 혼란에 허덕였다. 인플레이션은 임금을 높여 고용을 줄이고 생산을 줄여 경기침체와 실업이 증가하는 문제점을 노출한다. 즉 스태그플레이션 함정에 경제를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수출경쟁력 또한 약화한다. 임금인상은 생산비용을 높여 수출 감소로 무역수지를 악화시켜 환율상승을 유도한다. 이는 자본 유출을 불러와 그 나라를 외환위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 스태그플레이션


▎초인플레이션에 빠진 베네수엘라에서 생닭 한 마리를 사기 위해 운반해야 하는 돈의 양.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러한 부작용을 몰고 오는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어떠한 대책이 필요할까. 먼저 과도한 시중 유동성을 점진적으로 흡수해야 한다. 한 번 풀린 통화량을 흡수하기란 쉽지 않다. 대출을 줄이거나 금리를 높이거나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도해 흡수해야 한다. 대출을 줄이면 기업이나 가계가 자금 부족을 겪을 수 있다. 금리를 높이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경기가 침체할 수 있다. 또한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도하면 채권가격이 하락하면서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유동성으로 인해 발생한 부동산과 주식 가격 버블을 연착륙시키고 떨어진 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과도하게 늘어난 유동성을 점진적으로 흡수해 통화량 증가율을 낮추도록 해야 한다. 일본이 20년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제로금리로 금리를 낮췄음에도 부동산 버블이 발생하지 않은 배경에는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이 발행한 본원통화를 크게 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퓰리즘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심성 재정 정책으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증가시키면 재정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인수하면 통화량이 늘어나면서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수 있다. 포퓰리즘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카스 무데 조지아대학 교수와 세바스티안 에드워즈 UCLA 교수는 “포퓰리즘은 국민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공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국민의 투표로 결정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포퓰리즘을 무조건 반대해서는 실패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그렇다면 포퓰리즘 수요를 만들어내는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소득과 부의 불평등 심화다. 불평등이 심화할수록 국민은 강한 정부 개입과 포퓰리즘을 선호하게 된다. 실업이나 경기침체 그리고 잘못된 제도, 관료나 엘리트 등의 부패도 원인이다. 따라서 이러한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단순히 포퓰리즘에 반대해서는 포퓰리즘 대응에 실패할 수 있다.

민간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해 경기침체를 막아 과도한 재정지출과 통화증발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경기를 살리고 실업을 줄이기 위해서는 재정지출에 의한 공공부문의 투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민간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해 과도한 재정지출을 줄이면서 경기를 살리고 실업률도 낮출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민간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기업투자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과도한 정부 규제는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또한 단기적 이익보다 기업윤리를 중시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기업은 단기적 이윤만 추구하면 기업가치가 높아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는 기업의 도덕성과 연관이 있다. 기업윤리가 없는 기업은 국민의 외면을 받는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경영이 강조되면서 기업들의 전략이 변화하고 있다. 기업윤리나 환경보호 그리고 사회적 기여에 역할을 하는 정직한 기업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기업가치 또한 이들 요인에 의해 영향받고 있다. 사회적 네트워크 서비스(SNS) 시대에 단기적 이윤만 추구하고, 사회적으로 명망을 얻지 못할 경우 국민의 반(反)기업 정서가 높아지면서 기업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결국에는 정부가 규제를 통해 개입하는 사회주의 경향이 높아질 수 있다.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윤리가 강조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친기업 정서가 높아지면 기업투자 환경 또한 개선돼 민간기업 투자가 증가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의 근본적 해결책

일본이나 미국은 국가부채가 늘어나도 문제가 없다고 해서 우리도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여건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어서 자본 유출로 인한 외화 부족의 위험이 낮다. 반면 한국의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어서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GDP에서 국가부채 비중이 높아질 경우, 국가의 대외 신뢰도가 낮아지면서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외화가 부족하게 돼 외환위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이 경우 환율이 높아지면서 수입물가가 높아져 비용 상승에 의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서 국가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외환위기와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임금과 물가상승의 악순환 또한 멈추도록 해야 한다.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인상은 결국 물가를 높이게 된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빈곤층의 후생을 줄이게 된다. 과도한 임금인상을 억제할 필요가 있지만, 문제는 임금은 내생적이어서 물가나 주택가격이 높아질수록 임금인상 요구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자에게 필수적인 생활물가와 주택가격이 안정돼야 임금이 안정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장바구니 물가 등 생활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주택가격이 크게 높아지고 농산물 가격이 높아지는 등 생활물가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는 결국 임금을 인상하고 물가를 다시 올리는 임금인상과 물가상승의 악순환에 경제를 빠지게 할 우려가 있다.

과도한 임금인상을 억제하려면 연금제도를 충분히 구축해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고성장시기에 연금시스템을 구축해 노후소득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연금 체제가 충분하지 않아 고령화는 진전되는데 비해 노후소득이 준비돼 있지 않다. 노동자들은 직장에 다니는 동안 노후소득을 마련하기 위해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구조적으로 필요로 하게 된다. 과도한 임금상승률을 억제해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연금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려면 주택공급과 더불어 교통인프라 구축을 중요시할 필요가 있다. 도심재건축을 통한 주택공급은 필요하다. 그러나 한정된 도심 공간에서 주택공급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신도시에 공급을 늘리게 되는데 이 경우 직장이 있는 서울까지 교통인프라가 미흡해서 도심 주택 수요가 다시 늘어나게 된다. 서울 주택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격이 상승할 경우 대체관계에 있는 수도권 주택가격이 따라 오른다. 따라서 수도권에서 서울 도심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교통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주택가격 안정에 매우 중요하다.

과세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1주택의 경우, 아무리 큰 양도차익이 생겨도 공제 혜택으로 과세하지 않게 돼 있다. 이러한 제도하에서는 가격상승 가능성이 높고 교통이 편리한 도심지역의 주택 수요가 늘어나 가격이 더욱 상승하고, 다른 지역의 가격도 연이어 자극하게 된다. 1주택자라도 지나치게 과도한 양도차익에 대해선 공제 폭을 줄여서 주택가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산업경쟁력을 높여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면서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조지프 슘페터도 그의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혁신이 일자리를 줄이면서 일자리를 잃은 지식층이 정부 개입을 원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중국의 추격으로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고 비대면 거래로 일자리가 줄어들수록 포퓰리즘이 성행할 가능성이 높고, 인플레이션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장기 산업전략의 수립이 절실하다.

제도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 양극화의 함정에 빠져 있다. 중국의 추격으로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복지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생산가능 인구는 감소 추세다. 일본의 20년 경기침체를 답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여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될 경우에도 고령화와 실업 증가로 재정지출이 늘어나면 통화량 증발로 구조적으로 인플레이션은 높아질 것이 우려된다.

한국 경제가 이러한 함정에 빠진 원인은 대부분 경제정책 실패에 있지만 좀 더 근본적 원인은 잘못된 제도 선택에 있다. 대런 에쓰모글루 MIT대학 교수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로머 뉴욕대학 교수는 “저성장으로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는 것은 잘못된 제도의 선택과 연관이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 전체보다 특정 이익집단에 유리한 제도 선택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저성장, 고물가 그리고 양극화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미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과 양극화 그리고 포퓰리즘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과도한 임금상승의 원인이 되는 생활물가와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포퓰리즘 수요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한 처방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대책으로 문제의 원인을 제거할 때 한국 경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한국사회과학협의회 회장 kimjs@yonsei.ac.kr

202104호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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