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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28)] 장애를 예술로 극복한 의수(義手)화가 석창우 

“팔 없어 온몸으로 그리니 더 힘찬 선 나와” 

사진 박종근 비주얼에디터 jokepark@joongang.co.kr
37년 전 감전사고로 양팔 잃고 ‘수묵 크로키’ 영역 개척
“6년째 하루 5시간 성경 필사 ‘석창우체’ 특허 선물 얻어”


▎의수에 붓을 끼운 석창우 화백. 겹쳐진 그림은 2009년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가 우승할 당시 연기한 트리플 러츠 점프를 연속장면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석창우(66) 화백은 전기기사로 일하던 29세 때 고압 전류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수묵크로키’라는 영역을 개척한 미술계의 레전드다.

손끝과 팔을 이용해 섬세한 터치를 할 수 없기에 그는 어떤 장면이든 온몸을 써서 표현해 내야 한다. 그의 그림에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강렬한 힘과 기운이 넘친다. 그는 2014년 소치 동계 패럴림픽 폐막식과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힘찬 크로키 퍼포먼스를 선보여 세계인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지금까지 44회 개인전을 연 석 화백은 5월 14일부터 한 달간 경기도 안산시 꿈의교회(담임목사 김학중) ‘더 갤러리’에서 ‘석창우 화백-채움과 비움’전을 열고 있다. 지난 4월 장애인의 날에는 MBC에서 다큐멘터리 ‘석창우의 순례-비아프란치제나를 가다’가 방영되기도 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 겸 작업실에서 석 화백을 만났다. 예전보다 혈색도 좋고 건강해 보였다. 그는 “통곡물과 야채 위주로 식단을 바꾼 뒤 임신 8개월이던 아랫배가 쏙 들어갔다”며 크게 웃었다.

요즘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오전에 성경 필사 두 시간 반 정도 하고, 사이사이 그림 작업을 합니다. 점심 먹고 낮잠 좀 자고 일어나 다시 성경 필사와 작업을 병행하지요. 성경 쓰는 데 하루 다섯 시간 정도 할애하고요. 짬짬이 이메일·카카오톡·페이스북 확인하고 답장도 보내지요. 무협 소설을 좋아해 인터넷으로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죠.”

무협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무협지에는 포즈가 많이 나오잖아요. 무협 만화는 물론이고, 소설에서도 등장인물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니까 그걸 보는 자체가 제게는 공부가 됩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 갔을 때 ‘여기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넘어진 곳’ ‘여기는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한 곳’ 같은 설명을 들은 뒤 상상력을 동원해 그 장면을 그린 적이 있거든요. 주로 사람만 그리다 보니까 얘기만 듣고도 그릴 수 있습니다.”

양손 있던 30년보다 그 이후가 훨씬 행복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폐막식 때 석창우 화백의 작품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지금까지 개인전을 44번 했고 이번이 45번째입니다. 작년부터 퍼포먼스 때 했던 큰 작품들 위주로 전시를 구상했습니다. 퍼포먼스에 오지 않은 사람은 작품을 볼 수 없었을 테니까요. 작품세계에서 달라진 점이라면 과감하게 컬러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죠. 40일 동안 성지순례 하면서 느낀 것, 세계 최고의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서 본 것 등을 컬러로 표현했습니다.”

수묵화에서 색채로 넘어간 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나요?

“초기에는 색채를 썼는데 혼자서 물감을 일일이 준비해야 하니까 힘들더라고요. 차라리 수묵화로 하자고 마음을 먹었고, 빨간 먹물을 섞어 썼지요. 유럽 40일 여행 중 꽃과 자연 속에서 다양한 색깔을 만나면서 다시금 색을 써봐야겠다는 소망이 되살아났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색을 많이 쓰게 됐죠.”

성경 필사는 언제 시작했나요?

“2015년 1월 30일이 공식 시작일입니다. 성경 필사를 하면 보이지 않는 세력의 방해를 많이 받습니다. 성경만 쓰면 자꾸 글자를 틀리고 해서 두루마리 몇 개를 버렸는지 모릅니다. ‘이거 안 되겠다. 틀리는 건 사탄이다’ 생각하고 틀린 글자에 십자가로 엑스(X)를 그린 뒤 계속 진도를 나갔어요. 3년 6개월 만에 기독교 신구약을 다 썼는데 세로 46㎝×가로 25m 두루마리 115개가 나왔습니다. 지금은 가톨릭 성경을 쓰고 있는데 올해 9월쯤 끝날 것 같습니다.”

성경 필사를 한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양팔이 없어서 오래 못 살 줄 알았는데 2015년에 회갑을 맞았습니다. 손 있는 30년, 손 없는 30년을 살았는데, 손이 있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행복하다고 느끼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왜 그런지 따져봤더니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내가 들어가 있더라고요. 없는 손으로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고…. 하나님이 사모님이라는 천사를 보내주셔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잖아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까 생각해 보니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성경 필사밖에 없더라고요.”

부인을 사모님이라고 부른 것도 그때부터라면서요?

“맞습니다. 결혼하면서부터 계속 ‘아줌마’라고 불렀거든요. 호칭 하나라도 제대로 써야겠다 싶어서 바꿨지요. 사모님한테도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되도록 심부름 덜 시키는 것? 안 시킬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줄이자고 마음먹었어요. 방 닦는 거, 신발 정리는 제가 하고 큰 이불빨래도 제가 발로 합니다. 실제로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요. 하하.”

석 화백은 양팔뿐만 아니라 왼쪽 넷째와 새끼발가락이 없다. 감전 사고가 났을 때 전기가 그쪽으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석 화백은 큰 퍼포먼스를 하고 난 뒤에 왼발에 먹물을 잔뜩 묻혀 화선지에 꾹 누른다. 그만의 낙관이다. “안중근 의사는 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는 손바닥 낙관으로 유명하지만 나는 발가락 두 개가 없어요”라며 그는 웃었다.

그의 사라진 두 팔과 손이 돼준 이가 ‘사모님’ 곽혜숙 씨다. 밥과 반찬을 떠먹여 주는 건 기본이고, 콧물이 나오면 휴지를 대 코를 풀게 해 준다. 화장실 용무를 챙겨주는 것도 사모님 역할이다. 거의 24시간을 두 사람은 붙어 있다. “만약 사모님이 없다면?” 하고 묻자 “고행의 시작이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모님은 “요즘은 내가 일방적으로 당기니까 따라오더라고요. 누군가 ‘숨을 너무 오래 참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지금은 분명하게 제 표현을 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성경 필사한 걸 전시할 계획이 있으신지요?

“제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는 경기도 양평의 청란교회(담임목사 송길원)의 수목장 축대가 기역자로 돼 있는데 굉장히 넓고 좋아요. 거기를 생각하고 얘기를 나누고 있죠. 종이를 그냥 붙이지는 못하니까 도판을 만들거나 다른 작가들과 콜라보를 통해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면 좋겠다 싶습니다. 지금까지 쓴 성구를 족자로 만들고 그걸 보관할 오동나무 상자를 구하는 등 초기비용이 1억4000만원 정도 든다고 하네요.”

독특한 필체인 석창우체를 특허청에 등록했다고 하던데요.

“맞습니다. 성경 필사를 하다 보니 초기에는 글자도 크고 모양이 별로였는데 점점 모양이 변하더라고요. 주위에서 폰트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어요. 책의 활자로 쓸 수도 있고 책 표지에 사용할 수도 있겠죠. 서체에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기운과 철학이 녹아있다고 하잖아요. 석창우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분들이 계신데, 이건 성경 필사를 하니 하나님이 이쁘게 보셔서 준 선물입니다. 선물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하는 건 주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죠. 하하.”

몽블랑 정상 혹한에 “난 손 없어 시린 줄도 몰라”


▎월드컵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는 축구 선수의 다이내믹한 장면을 포착한 석 화백.
유럽 성지순례 중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다고 하던데요.

“이탈리아 여행 중 바티칸 광장에서 퍼포먼스를 했어요. 테러 위험 때문에 사람들을 못 모이게 하는 곳인데 인솔하신 신부님이 주도면밀하게 일행 각자에게 역할을 맡겨 순식간에 종이 펼치고 물감을 배치했어요.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고, 금방 경찰이 달려왔죠. 팔 없는 제가 작업하는 걸 보더니 바로 제지를 안 하고 지켜보면서 ‘빨리 마무리하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유서 깊은 각 나라 광장에서 음악가들과 콜라보 퍼포먼스를 하는 게 꿈이었는데 이번에 그걸 이뤘어요. 베를린장벽 앞 벤츠광장에서도 퍼포먼스를 했지요.”

프랑스 몽블랑 꼭대기에서 신부님과 재밌는 얘기를 나누셨던데요.

“날씨가 엄청 추워서 신부님이 두 손을 호호 불면서 ‘손이 너무 시리네요. 빨리 들어갑시다’ 하기에 ‘나는 손이 없어서 손 시린 게 어떤 건지 몰라요’ 했지요. 손이 없어서 불편한 게 정말 많은데 그거 생각하면 못 살아요. 저는 좋은 배우자 덕분에 손 없이도 잘 살고 있어요. 그림 그릴 때 손이 없다는 건 치명적인 약점인데, 오묘한 게 팔이 없으면 선을 표현할 때 온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선이 안 나옵니다. 사람들은 손가락·손목·팔꿈치 관절이 있으니까 그걸 이용해서 기교를 부립니다. 저는 그걸 할 수 없으니까 온몸을 써야 하고 그 결과로 일반인이 흉내 내기 힘든 선이 나오죠. 치명적인 단점이 장점으로 승화되는 순간이죠.”

그런 힘 있는 선과 역동성이 있어서 스포츠 경기를 많이 그리시는 것 같네요.

“예전에는 누드 크로키를 주로 그렸는데 포즈에 한계가 있었어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피겨 여왕 미셸 콴의 연기를 봤는데 아름다움과 힘의 조화가 인상적이었어요. 그 선수의 연기 장면을 그리면서 스포츠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죠. 한국에도 이런 선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기다렸는데 일본의 아사다 마오가 먼저 나왔고, 드디어 김연아가 나왔죠.”

김연아가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트리플 러츠 점프를 하는 걸 연속 장면으로 그린 게 있던데요.

“그때가 김연아의 전성기였죠. 점프하는 장면을 수백 번 돌려보고 캡쳐 해서 그린 겁니다. 공중에 붕 떠서 돌 때 보면 얼굴을 찡그립니다. 그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화가는 좋은 모델이나 소재를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는데 김연아 연기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고 저절로 붓이 가더라고요. 김연아 선수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선수들이 절정일 때 그림을 그리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면서요?

“맞습니다. 그래서 올림픽·월드컵·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빅 이벤트가 있을 때 그림을 많이 그립니다. 호날두(축구), 우사인 볼트(단거리) 등을 그린 적도 있고요. 야구선수 중에서는 선동열(투수), 이승엽(타자)을 그린 게 기억에 남습니다. 손흥민이 푸스카스상을 받았던 번리전 70m 드리블 골 장면도 꼭 한번 그려보고 싶네요.”

스포츠도 온몸 효율적으로 쓰는 선수가 오래 가


▎작품을 보관·전시하며 작업도 할 수 있는 공간을 얻기 위해 올린 석창우체 기도문. / 사진:석창우
최고 선수들은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허리를 중심으로 온몸을 쓰는 게 보입니다. 이승엽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홈런을 뽑아냅니다. 온몸을 효율적으로 잘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두산에서 활약한 타이론 우즈는 힘으로 홈런을 뽑아내는 스타일이지만 이승엽은 툭 건드리는 것 같은데도 넘어갑니다. 선동열도 어깨 힘만이 아니라 온몸을 골고루 써서 던지니까 고장 나지 않고 오래 던질 수 있었잖아요. 제가 이 나이에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것도 온몸을 쓰기 때문이지요.”

2014년 소치 패럴림픽 퍼포먼스 얘기 좀 들려주시죠.

“가로 8.56m, 세로 2.10m 화선지에 소치 패럴림픽 5개 종목을 그리는 거였는데 저한테 주어진 시간이 7~8분이었어요. 합숙하며 리허설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간이 2분 40초로 줄었다고 통보가 왔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시간에 맞출 수 없어 고민하던 차에 목사님 설교를 들었어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동행하지 않는다. 뭐든지 혼자 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죠. 깨달은 바가 있어서 ‘하나님, 50%만 힘을 보태주세요’라고 기도했죠. 그랬더니 시간이 확 줄어들어서 사람들이 다 놀래요. 실제 행사에서는 왼발 낙관 찍는 것까지 합쳐서 2분 37초 만에 끝냈습니다.”

평창 때는 어땠나요?

“평창 날씨가 너무 추워서 먹물이 얼 수가 있고, 맨발로 퍼포먼스 하다 보면 몸을 상할 수도 있어서 영상을 따로 찍었습니다. 당시 작품은 제가 간직하고 있죠.”

요즘은 사이클 그림에 꽂히셨던데요.

“경륜 경기가 열리는 광명돔 안에 갤러리가 하나 있어요. 거기 관장이 ‘경륜 한번 그려보시면 안 되겠냐’고 제안을 했는데 처음에는 ‘경륜=도박’ 인식이 있어서 썩 내키지 않았어요. 그런데 들어가서 경기를 보니 생각했던 거랑 다르더라고요. 자전거와 사람이 일체가 돼 전속력으로 달려나가는 게 참 매력이 있어요. 전시된 자전거를 스케치한 뒤에 광명돔 곳곳을 돌아다니며 6개월 동안 구경만 했어요. 최선을 다해 페달을 밟지 않으면 바로 넘어지는 게 인생과 같더라고요. 내가 그 말을 해 놓고도 뿌듯했는데 알고 보니 아인슈타인이 아들한테 그 말을 했다고 하대요. 하하하.”

작업실과 전시 공간을 겸할 곳을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그린 작품들을 이 아파트에 보관하고 있는데 더 이상 보관할 데도 없고, 편안하게 일할 공간도 필요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작품 보관할 창고라도 얻자 하다가 조금 더 넓은 곳에서 보관도 하고 전시도 하고 작업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사모님이 운전을 해야 하니까 집에서 자동차로 30분을 넘지 않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직접 하시는 운동이 있나요?

“직업으로 하는 육체노동은 운동이 아니라고들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서서 작업하다 먹물 찍으려면 앉았다 일어났다 해야 하고 붓 다듬으면서 작업하는 그 자체가 운동이 됩니다. 성경 필사도 1m 정도 쓰면 가슴과 등이 땀에 흠뻑 젖지요. 엄청난 운동량입니다. 사모님이 하도 걷는 게 좋다고 해서 여의도에서 집까지 걸어온 적이 있어요. 다음날 경북 상주에서 퍼포먼스하고 몸살에 된통 걸렸어요. 오죽하면 좋아하는 술도 못 먹었다니까요. 그다음부터 사모님이 걸으라는 말을 안 해요(웃음).”

42.195m 화선지에 마라톤 풀코스 담고 싶어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없는 안중근 의사의 낙관과 왼발가락 두 개가 없는 석 화백의 낙관. / 사진:석창우
아들이 태어나고 한 달 반 만에 사고를 당한 석 화백은 12번에 걸친 수술과 입원 치료로 어린 아들에게 아무것도 못 해준 게 마음 아팠다고 했다. 아들이 네 살 때 “아빠, 그림 좀 그려 줘”라고 했고, 마당의 참새를 그려준 게 ‘화가 석창우’의 출발점이 됐다. 그 아들은 미국에서 유학한 뒤 자동차 디자이너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다. 큰딸도 미국에서 간호학을 전공했고, 결혼해서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세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곽혜숙 여사. 스스로를 ‘위기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무슨 일이 딱 닥쳐왔을 때 그걸 통해 점프하려고 하지 한 번도 안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석 화백도 맞장구를 쳤다.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아내가 그 정도면 울고불고 할 텐데 별거 아니라고 하고 내가 다른 거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빨리 낫기나 하라고 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이 다친 게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게 빨리 사회에 복귀하게 된 큰 힘이 됐어요.”

‘사모님’의 지혜와 강단이 드러난 에피소드 한 도막. 아들이 유치원, 딸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석 화백은 전북 전주로 서예를 배우러 다녔다. 서울역에서 떠나는 열차에 남편을 태운 뒤 전주에 사는 친언니에게 뒷일을 맡긴 뒤 집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왜 우리는 만날 아빠 심부름해야 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엄마는 두 아이를 부른 뒤 열중쉬어 자세에서 노끈으로 두 손을 묶어버렸다. 그리고는 “지금부터 너희 둘 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걸 해 봐”라고 했다. 이 방 저 방빙빙 돌던 아이들이 엄마한테 다시 왔다. “왜 왔어? 너희 하고 싶은 거 하라니까” 했더니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엄마가 말했다. “아빠가 남이야 가족이야? 누가 해 줘야 해?” 아이들은 “우리가 해야죠”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 후로 아들은 “왜 내가 이걸 해야 하나”라는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딸은 불만도 얘기하고 사춘기도 겪었지만 아빠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늘 품고 살았다고 한다.

그림에 입문하는 과정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 그림 배우려고 화실 찾아갔더니 다들 ‘그림 어려운데 손도 없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난감해하더라고요. 사군자는 먹만 있으면 되니까 가능하지 않겠냐 했더니 사군자하려면 서예를 먼저 하래요. 처음엔 의수에 붓을 고정시키지 못해 고생했어요. 넓은 밴드로 묶기도 하고 붓에 칼로 흠집을 내기도 했지만 조금씩 흔들리더라고요. 붓 고정시켜 잡는 데만 1년 이상 걸렸죠. 하루 10시간 이상 서서 작업했더니 코피가 나고 허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더니 코피는 두 번 나고 멈추고 허리도 안 아프더라고요.”

최고의 스승은 누구였나요?

“서예 대가인 원광대 미대 여태명 선생님입니다. 2시간 반 동안 써온 서예 습작을 일일이 체크하고 조언해 주셨죠. 이분은 자신의 것만 고집하지 않았어요.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당신이 못 가르치는 건 나가서 배우라고 하셨어요. 덕분에 누드 크로키를 거쳐 지금의 작품세계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었죠.”

장애인-비장애인 어울려야 서로 도움받아


▎석 화백이 29세 때 양팔을 잃은 이후 든든하고 섬세한 팔이 되어준 부인 곽혜숙 여사.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게 뭡니까?

“지난번 유럽 성지순례 때 조금 맛보기는 했지만 코로나19가 끝나면 전 세계를 다니며 각국의 유명한 광장에서 퍼포먼스를 해 보고 싶어요. 마라톤도 괜찮은 소재인 것 같아요. 마라톤이 42.195㎞를 달리는 거니까 42.195m짜리 종이를 스타디움에 깔고 마라토너의 출발부터 골인까지를 담고 싶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의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담아 보고 싶기도 합니다. 2019년에 시도했다가 뜻대로 되지 않았거든요.”

석 화백 부부를 안 게 10년이 넘었다. 이들을 만나면 모든 게 너무나 자연스러워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걸 깜빡 잊게 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엄연한 중증장애인 가족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꼭 하고 싶은 말을 해 달라고 했다. 그들은 예술가 석창우 이전에 장애인으로서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애환을 말했다.

“아직도 여자 화장실 안에 장애인 화장실, 남자 화장실 안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곳이 많아요. 장애인은 혼자 다니는 법이 거의 없어요. 누군가 동행을 하는데 성별이 다르면 어느 화장실로 가야 하죠? 우리 같은 부부 말고도 딸이 아빠, 아들이 엄마를 모시고 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남녀 구분이 없는 가족 화장실이 필요해요. 우리나라는 장애인 시설은 잘돼 있는데 의식은 시설을 못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 가면 시설은 불편하고 장애인 화장실이 따로 없는 경우도 많지만 일반 화장실에 가도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면서 충분히 이용하라고 배려해 주거든요.”

석 화백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지는 세상’을 꿈꾼다.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3년간 서예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장애인끼리만 모여 있으면 서로 힘들어요. 저는 누드 크로키 배울 때 비장애인 20여명 속에서 좀 불편했지만 20명이 조금씩 도와줘 부담 없이 어울릴 수 있었거든요. 정부 주관 예술제에도, 대통령 해외 순방 공연단에도, 방송사 신년음악회에도 자연스럽게 장애인이 들어가면 좋겠어요. 일상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려야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좋아지고, 비장애인들도 장애인을 보면서 힘을 얻지 않을까요.”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와 한양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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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호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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