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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뜨거운 열 식혀주는 샘물 수호신, 왕버들 

 

가지 달인 물 예로부터 해열·이뇨제로 쓰여
잘 휘어져 지조 없는 아첨꾼에 비유하기도


▎경북 청송 주왕산 국립공원 내 주산지 물속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는 왕버들. /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3월 15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LH와 왕버드나무’라는 제목을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왕버들은 신목(神木)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부동산 가격을 올려주니까 말이다. 그동안에 왕버들이 신령한 나무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보니까 부동산 투기의 기능도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 왕버들은 보통 버드나무보다 크기도 훨씬 크고 줄기도 크고 둘레도 굵다. 그래서 ‘왕(王)’자가 붙었다. 중국 남부의 소수 민족이 사는 운남성을 돌아다녀 보면 여기에서도 버드나무가 신목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유명한 샘물 옆에는 오래된 버드나무가 서 있곤 하였는데, 이 버드나무는 샘물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여겨졌다. (…) 버드나무가 왜 약이 될까? 양류관음(楊柳觀音)의 등장은 고대부터 버드나무에 어떤 약 성분이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버드나무는 가지를 꺾어서 아무 데나 대강 심어 놓으면 자란다. 이러한 성향을 지닌 버드나무를 지조가 없는 나무라고 보았다. 버드나무는 항상 물을 가까이하는 속성을 지닌다. 여기에서 물은 돈과 벼슬을 상징한다. 더군다나 버드나무는 낭창낭창 잘 휘어진다. 선비는 듣기에 껄끄러운 직언을 하는 기질이라면, 버드나무는 면전에서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아첨꾼에 비유하였다.’

그럼 희귀식물인 왕버들(Salix chaenomeloides)은 어떤 식물인지 알아보자. 왕버들은 버드나뭇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원줄기지름이 1m 이상이고, 높이가 20m에 달하는 큰 나무다. 키가 크고 잎도 버드나무에 비하여 넓기 때문에 왕버들이란 이름이 붙었다. 줄기가 굵고 몸집이 커서 마을의 정자나무로 많이 심었으며, 호숫가나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원산지는 한국·일본·중국(native to Korea, Japan and China)일 것으로 추정된다. 버들 번식은 줄기를 잘라 꽂아두는 꺾꽂이(삽목, 揷木, stem cutting)다.

왕버들(pussy willow)의 줄기 수피(樹皮)는 회갈색이며, 깊게 갈라지고, 새 가지는 처음에 털이 있으나 나중에는 없어진다. 가지는 황록색이며, 원줄기에서 잘 떨어져 나가므로 버드나무에 올라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 잎은 타원형으로 어긋나기하고, 길이 5~12㎝, 너비 7~20㎜로 끝이 뾰족하다. 가장자리에 안으로 굽은 자잘한 톱니(거치, 鋸齒)가 있다. 잎자루는 길이 2~10㎜이다. 잎 뒷면은 흰색이며, 잎자루 아래에는 커다란 귀 모양의 턱잎(탁엽, 托葉)이 있다.

캄캄한 밤 썩은 버드나무서 ‘도깨비불’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핀다. ‘자웅이주(雌雄異珠)’로 암·수꽃이 딴 그루에 달리지만 때로는 같은 나무에 달리는 수도 있다. 버드나무 꽃은 물이 잔뜩 오른 가지에서 피어나는데, 모양은 강아지풀과 비슷하다. 그다지 볼품이 없지만, 엄연히 꿀이 있어 벌레가 꼬이는 충매화다.

길쭉한 수꽃이삭(화수, 花穗)이 열리고, 6개의 수술과 3~6개의 꿀샘(밀선, 蜜腺)이 달린다. 암·수꽃이삭은 모두 길이가 비슷한데, 이삭 길이는 2~4㎝로서 밑에 잎이 달리는 것도 있다. 열매는 달걀 모양으로 5월에 익으며, 가벼운 종자는 솜털에 쌓여 날아다닌다. 사람들은 열매가 익어서 날리는 솜털 같은 버드나무 씨앗을 꽃이나 꽃가루로 잘못 아는 수가 있으나, 잘 들여다보면 솜털 안에 까만 열매(씨)가 들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왕버들은 경북 성주 성주읍 ‘성밖 숲’에 제403호, 전남 광주 충효동에 539호, 전북 김제시 봉남면에 296호가 있다. 또 경북 청송 주왕산 주산지와 전라남도 함평 자연생태공원호수에 서식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물속에서도 썩지 않고 살 수 있다.

버드나무속(屬, genus)에 드는 활엽교목은 전 세계에 분포한다. 한국에서 그냥 ‘버드나무’라고 하면 ‘Salix koreensis’를 가리킨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버드나뭇과에는 버드나무·능수버들·왕버들·갯버들·호랑버들·버들개지(버들강아지)·미루나무·포플러·은사시나무 등 총 30여종이 있다.

썩은 버드나무의 원줄기는 캄캄할 밤에 빛이 난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은 이것을 도깨비불이라고 하며 무서워했다. 그리고 예로부터 버드나무의 축 늘어진 모습이 여성의 머리칼과 비슷하다고 해 약한 여인의 모습에 비유하기도 했다. 또한 귀신이 버드나무를 싫어한다는 속설에 기인해 무당들이 귀신을 내쫓을 때 버드나무 가지로 사람을 때리기도 했다.

버드나무껍질에는 아스피린(aspirin) 계통인 살리실산(salicylic acid)이 들어 있어 오래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해열제·이뇨제 등의 약으로 이용했다. 몸살기가 있기나 하면 나뭇가지를 잘라 달여서 국물을 마셨던 것이다. 껍질에 든 살리실산을 아세트산과 에스테르(ester, 산과 알코올이 작용해 생긴 화합물)화시키면 그 유명한 아스피린이 생겨난다.

버드나무의 용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가 어릴 때 물이 갓 올라 파랗고 말캉말캉한 버드나무가지로 버들피리를 만들기도 했다. 버들가지를 잘라서 적당한 길이로 토막 내 낫등(낫의 날에 반대되는 부분)으로 톡톡 두드려서 목심부(木心部, 물관부)를 쏙 빼낸다. 그다음에 입을 댈 껍질 부분을 얇게 삐져서 봄버들피리를 불었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 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2106호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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