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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목민관 열전] ‘동네방네 행복도시’ 만들어가는 유성훈 서울 금천구청장 

공단 배후도시 아닌 ‘서울의 관문’ 혁신산단 G밸리로 미래산업 선도 

마을민주주의 플랫폼 ‘금천1번가’로 시민참여형 행정 업그레이드
공약 이행률 80%, 행정안전부 지자체 평가에서 최고 등급 받아


▎유성훈 서울 금천구청장은 ‘동네방네 행복한 도시’ 만들기를 꿈꾼다. 그는 8월 9일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행정의 패러다임 혁신을 통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유성훈 서울 금천구청장은 금천의 터줏대감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골목구청장’이다. 수십 년 살아온 동네다 보니 작은 골목길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다. 인구 23만여 명인 작은 도시여서 ‘골목 여론’이 곧 금천구의 민심이나 다름없다. 2018년 취임 이후부터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되기 전까지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8월 9일 오후 구청장실에서 만난 그는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 다시 사람 냄새가 나는 골목을 누비고 싶다”고 말했다.

금천구는 서울의 다른 자치구에 비해 비교적 개발이 더딘 곳이다. 구로공단의 배후도시로 조성된 1970년대 모습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유 구청장이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터뷰 내내 유 구청장의 고민은 금천구의 미래 모습을 어떻게 그릴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골목구청장’이란 별명이 재미있다.

“금천구는 자연발생형 도시여서 계획도로보다 골목이 많다. 동네 입구의 가게에서 이웃끼리 친목을 다지는 옛 풍경이 아직도 남아 있다. 주민들을 만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골목길이다. 주민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게 지방자치단체의 기본 임무이니, 더 많은 주민을 만나고 생활 현장을 직접 보는 게 당연하다.”

금천구 하면 떠오르는 도시 정체성이랄까 이미지가 조금 모호한 것 같다.

“올해는 금천구가 분구된 지 26년 되는 해다. 영등포구를 거쳐 구로구,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행정구역 변화를 겪으면서 금천구만의 정체성을 만들지 못했다. 구로공단의 배후도시로 성장하다 보니 도시 인프라가 열악하고, 내세울 만한 게 부족한 게 사실이다. 새로운 금천의 모습을 그리는 데 중요한 시기다.”

새로운 금천구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나?

“미국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 캠퍼스’를 금천의 미래상으로 보고 있다. 아마존 기업이 들어오면서 시애틀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는 국가산업단지인 G밸리(옛 구로공단)를 끼고 있어서 산업도시로 육성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G밸리를 혁신성장밸리로 키우려고 메이커스페이스, 디자인혁신센터, AI휴먼로봇센터를 만들었다. 조만간 창업지원센터도 만든다. 주거와 직장이 결합된 도시로 이만한 곳이 없다.”

산업 기지로서 금천의 강점은 뭔가?

“과거 인쇄·금형·제지 등 제조업 중심이었던 공단이 지식산업센터로 변하면서 4차 산업혁명 관련 IT기업이 많다. G밸리에만 8800여 개 기업체에서 10만 명이 종사한다. 다른 곳보다 관리비가 저렴해 창업하기 좋고, 소규모 벤처기업이 활동하기 좋다. 대기업 중심인 성남 판교밸리보다 더 역동적이다. 지금은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돼 있지만, 이걸 지방산단으로 바꾸면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을 육성하는 데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거다.”

G밸리를 꼭 지방산업단지로 바꿔야 할 이유가 있나?

“국가산단은 규제가 너무 많다. 울산, 광양, 포항과 같은 규제를 똑같이 받는다. 산단 내에 공원이나 녹지, 영화관 등 문화시설이 없으니 공동화되고 척박해진다. G밸리가 국가산단으로서 기능은 이제 다했다고 본다. 금천구의 미래를 우리가 직접 그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금천구가 ‘꼴찌’ 하는 것? 코로나19 발생자 수


▎서울시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역 중심으로 조성된 G밸리(옛 구로공단)는 패션, IT, 지식서비스 기반의 기업 1만여 개가 집약된 서울의 핵심 산업기지다. 금천구는 G밸리를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도시를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의 몇 안 되는 산업기지로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한 복안이 있나?

“G밸리에는 10명 미만의 경쟁력 있는 신생기업이 전체의 60%나 된다. 서울에서 가장 큰 창업의 요람이다. 혁신성장의 필수인 실무에 강한 인재 양성을 위해 ‘서남권 기술특화 캠퍼스’를 유치해 11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메이커스페이스, 디자인센터와 함께 스타트업의 아이디어 발굴과 시제품 생산, 디자인, 마케팅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려고 한다. 이미 지난해부터 AI휴머노이드·뷰티·영상미디어 분야를 중심으로 스타트업이 안정적으로 사업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지원하고 있다.”

유 구청장의 행정 철학 저변에는 ‘시민 참여’가 있다. 구청장 공약 관리규정을 만들고, ‘주민배심원’ 제도를 신설해 100대 공약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데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길을 열었다. 또 주요 이슈마다 주민 참여를 끌어냄으로써 형식에 그치지 않는 실질 자치를 구현했다. 대표적인 게 코로나19 방역 사업이다.

코로나19 방역 모범 지자체로 꼽힌다. 비결이 뭔가.

“우리 금천구가 ‘꼴찌’ 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코로나19 발생자 수다. 비결이라면 주민참여형 방역을 하고 있다는 거다. 매월 19일을 ‘코로나19클린데이’로 지정해 동시 방역을 한다. 이날엔 주민들도 직접 소독통을 들고 나와 동참한다. 방역 효과는 물론이고 스스로 방역에 참여함으로써 경각심을 갖는 효과도 있다. 이렇게 주민 스스로 참여하는 게 금천구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주민들께 늘 감사하다.”

공약 이행률이 꽤 높은 편이다.

“100대 과제 이행률이 1분기 기준으로 80%를 넘었다. 지금까지 60개 과제가 완료됐고, 올해 안에 15개가 추가로 마무리된다. 주민들이 기대했던 신안산선은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대형종합병원 건립도 올해 착공을 앞두고 있다. 9월에는 금천소방서도 문을 연다. 주민들이 합심해 노력해준 덕분에 2019년과 올해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주관하는 공약 실천계획서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행정안전부의 지자체 합동평가 최고 등급을 받았다. ‘문화도시 금천’의 토대를 쌓은 장기적인 도시발전 비전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지역발전 가로막는 군부대 이전 가장 염원


▎‘코로나19클린데이’인 6월 19일 유성훈 서울 금천구청장이 금천구 현대지식산업센터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방역활동을 하고 있다. / 사진:금천구
금천구는 오래된 저층 주택지역이 많다. 노후지역을 정비하는 개발사업에 주민의 관심이 클 것 같은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도시가 형성된 지 30~40년에 이르면서 저층 주거지역의 노후화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특히 시흥대로 동쪽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우선 가산디지털단지 역세권이 도심형 주거공간과 상업·문화 기능 복합단지로 개발된다. 또 시흥동 일대가 소규모주택정비사업 관리지역 선도사업 후보지로 선정돼 주택 약 1만7000호의 공급이 이뤄질 전망이다. 사업이 이뤄지면 동·서측 균형발전과 낙후지역의 주거환경이 크게 개선되리라 기대한다.”

진행 중인 사업 중에 꼭 실현됐으면 하는 걸 꼽으라면 어떤 게 있나?

“공군부대 이전 문제다. 금천구 한복판 독산동 일대 12만5000㎡ 땅이 해방 전부터 묶여 있어 지역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G밸리와 연계해 일자리를 만드는 경제 거점 기능을 할 수 있는 노른자위 땅이다. 부대를 완전히 옮기거나, 일부는 남겨두고 개발하는 두 가지 방안을 놓고 대체 부지를 찾고 있다. 부대 특성상 수도권 안에서 대체 부지를 찾아야 하는데 호응하는 곳이 없어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국방부가 나서줘야 하는데 소극적이어서 답답함이 크다.”

군부대를 반기는 곳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한 최종 의사결정기구인 ‘구민위원회’에서 ‘일부 존치 후 개발’ 의견이 많았다. 지하 공간을 활용하고 고밀 개발해 사용 면적을 최소화하고 나머지를 우리가 목표로 하는 도시 거점으로 개발하는 방식이다. 비슷한 예로 국군재정관리단이 있는 용산 경리단길은 군부대를 옮기지 않고도 부대 주변을 명소화해 지역 상권이 살아났다.”

살고 싶은 도시의 조건으로 교육 여건을 빼놓을 수 없다. ‘금천 교육’이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우리는 강남처럼 명문 학교나 명문 학원가가 있지도 않고, 부모 찬스가 일반적인 곳도 아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 교육 열정과 수요는 많은데 인프라가 충분치 않다. 우리 구는 진로, 진학에 정책 비중을 두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필요로 하는 과학창의 인재를 양성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9월에 개관하는 금천형 과학관을 과학교육의 중심지로 활용하고, 누구나 과학기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평생교육 문화를 정착하려 한다. 또 진로진학지원센터를 만들어 언제나 진로·진학 상담이 가능하도록 할 생각이다. 여기에 기존 혁신교육지구사업을 업그레이드해 ‘과학학교’, ‘환경학교’, ‘건강학교’, ‘뮤지컬스쿨’로 교육을 다양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금천미래문화도시’ 비전을 선포했는데 배경을 설명해달라.

“금천은 문화 환경이 척박한 편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시흥현의 중심지였는데 행정구역이 조정되면서 본래 지명을 잃었다. 정체성을 다시 찾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우선 역사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시흥행궁, 호암산성 등 문화유산을 활용할 계획이다. 또 생활 문화를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금천뮤지컬센터, 서남권 시민청, 서서울미술관, 금천문화예술인 커뮤니티 공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금천미래문화도시 비전은 이 모든 걸 포괄해 주민들이 공유하는 공동체의 가치이자 정체성을 녹였다.”

지역상품권 발행액 대폭 늘려 골목상권 활성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의견을 반영하려면 시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시민 참여 행정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나?

“과거처럼 구청장과 공직자들이 독불장군처럼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젠 주민 참여 없이는 한 걸음도 못 나간다. 우리는 도시계획을 할 때도 구민참여단을 만들어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도시개발 용역이나 군부대 이전 과정에서도 그렇게 토의과정을 거치고 있다. 특히 우리 구만의 마을민주주의 플랫폼인 ‘금천1번가’는 주민들이 온·오프라인으로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소통할 수 있는 대표적 공간이다. 이 플랫폼을 통해 생활 속 문제를 발굴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리빙랩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금은 국가적 차원의 ‘코로나19와의 전쟁’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골목상권의 타격이 심각하다.

“우리 구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심으로 금융지원, 피해지원, 소비촉진 지원의 3가지 방향으로 민생경제지원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에 코로나19 장기화를 대비해 골목경제 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우리 구와 서울시, 정부의 다양한 소상공인 지원대책을 종합적으로 안내하고 지원해왔다.”

구체적인 지원사업은 어떤 게 있나?

“우선 구 자체 예산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소기업·상공인에게 무이자·무담보 대출을 해주고 있다. 신용평점 350점 이상으로 문턱을 낮추고 4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도록 했다. 집합금지 및 영업제한 조치 대상 중에도 추가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파악해 자금을 지원해준다. 상가 임대료를 인하하는 착한 임대인에게 최대 100만원까지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위기 극복 동참을 독려하고 있다. 또 지역 내 소비 진작을 위해 ‘금천G밸리사랑 상품권’을 지난해부터 발행했는데 호응이 뜨겁다. 지난해 100억원을 발행했는데 올해에는 25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분위기가 침체돼 있고, 주민을 자주 만날 수도 없으니 구청장께서도 지쳤을 것 같다. 각오가 흔들릴 때 어떻게 마음을 다잡나?

“단체장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코로나19 이후로 1년 6개월째 하고 싶은 걸 제대로 못하니 답답하긴 하다. 그래도 의무감을 저버릴 수는 없다. 저는 특히 금천구가 고향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주민들의 어려움과 서러움을 잘 안다. 쉽게 긴장을 풀 수 없다. 먼 훗날 ‘유성훈 구청장이 있었을 때’를 주민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각오를 새롭게 다지곤 한다. 취임하면서 슬로건으로 내건 ‘동네방네 행복도시’가 구현되면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재선에 도전할 생각인가?

“3년간 해보니 비전의 토대를 닦기에도 4년은 짧은 것 같다. 더구나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기도 했고. 펼친 사업들을 잘 마무리하고 지역 발전의 본궤도에 올려놓고 싶다. 살고 싶은 도시로 거듭났으니 이제 살기 편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서울의 변방이었지만, 앞으로는 서울의 관문으로 거듭나야 할 중요한 시기다. 좀 더 노력하고 싶다. 주민들과 함께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 유성훈 서울 금천구청장
■ 문일고등학교, 중앙대 경영학과, 한양대 행정자치대학원 졸업
■ 김대중·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 국회환경포럼 정책자문위원
■ 민주당 부대변인, 사무부총장
■ 제2대 전국책읽는도시협의회장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김경빈 선임기자 kgboy@joongang.co.kr

202109호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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