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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칼럼] 누구도 소홀히 하지 않는 ‘인권문화’ 건설을 

‘살기 힘들다’는 감정을 타인 얕보는 혐오감으로 해소하지 말아야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감염증은 병원체 공포가 다른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바뀌기 쉬워
만인존엄의 정신 바탕으로 어떠한 차별도 허용 않는 사회 만들어야


▎2018년 9월에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개최한 ‘인권교육 웹사이트’ 개설 발표회.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협찬을 받아 SGI가 여러 단체와 함께 제작한 웹사이트는 현재 영어를 비롯해 프랑스어·아랍어·스페인어로도 볼 수 있다. / 사진:SGI
코로나19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유행)에 따른 사회적 불안이 각국에서 높아지는 가운데 과거 역사의 교훈을 살펴보고자 다시 읽은 문학작품 중 대니얼 디포의 [전염병 연대기]가 있습니다.

17세기 런던을 무대로 한 이 작품에서는 페스트의 공포에 사로잡힌 시민들이 유언비어에 현혹되고, 불안을 부추기는 말에 영향을 받아 자아를 잃어가는 모습을 그렸는데, 과거 페스트부터 최근 에이즈에 이르기까지 감염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을 차별하거나 극심한 공포로 인한 분열과 혼란으로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역사가 반복됐습니다.

감염증은 ‘누군가로부터 옮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심해지기 때문에 병원체에 대한 공포가 그대로 ‘다른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바뀌기 쉽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경계심이 점점 심해져, 감염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나 그 가족을 더욱 궁지로 내모는 사태가 일어나거나, 이전부터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을 당한 사람에게 감염 확산의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현대에서는 감염증에 관한 잘못된 정보나 유언비어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통해 순식간에 퍼지는 경향이 있어 염려됩니다. 그 배경에는 많은 사람이 정보를 찾아 신문 등 기존 매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진위나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를 접해 ‘정보의 공백’을 채우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합니다.

‘혐오감’ 경계선 만들어 ‘안도감’ 얻으려 말라


▎SGI 등이 제작하고 2017년 3월 이후 각지에서 ‘변혁의 첫걸음-인권교육의 힘’ 전시회를 개최했다. 2020년 1월에는 제네바 유엔 난민기구(UNHCR) 본부에서도 개최해 반향을 일으켰다. / 사진:SGI
그러한 가운데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해 사회를 선동하려고 하거나 특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증오심을 일으키게 하는 악의에 찬 말도 많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정보나 유언비어가 한없이 퍼져 차별과 편견이 증폭됨으로써 인간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을 해치는 ‘또 다른 팬데믹’이라고도 할 만한 사태를 신조어로 ‘인포데믹’이라고 합니다.

허위 정보나 유언비어의 확산을 방치한 채, 그 잘못을 주위에 철저히 알리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중대한 문제는 올바른 정보의 정착을 방해하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염려되는 점은 유언비어의 뿌리에 있는 깊은 차별과 편견이 감염증에 대한 공포에 편승해 의심이 의심을 낳는 상태에 빠뜨려 사회의 균열이 깊어지고 누구나 지켜져야 할 존엄과 인권에 ‘단층’을 생기게 합니다.

지난해 3월 WHO가 팬데믹을 선언하기 5일 전,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인간의 존엄과 인권은 나중이 아니라 그 활동의 전면과 중심으로 내걸 필요가 있다”고 신속한 유의를 촉구했습니다. 바첼레트 대표는 지난해 9월에도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뿌리 깊은 불평등과 인권 격차가 바이러스 감염 확산과 그 위협을 가속도로 팽창시키는 모습을 우리는 직접 봤습니다. 사회와 그 틈새에 존재하는 이러한 격차를 없애고, 깊이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려는 행동이 지금이야말로 필요합니다.”

여기서 바첼레트 대표가 언급한 ‘뿌리 깊은 불평등과 인권 격차’의 구조적 속성은 이러한 ‘깊이 새겨진 상처’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차별의식이 더욱 선명한 형태로 나타난 측면이 있지 않을까요. 코로나19 위기가 심각해져서 많은 사람이 ‘살기 힘들다’고 느끼는 가운데, 차별과 증오를 부추기는 말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고통과 좌절감을 토해낼 배출구로서 특정한 사람들을 겨냥할 위험성이 매우 높습니다.

누구나 감염될 우려가 있는 병이고,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인데, 오히려 사회가 분열되고 위협이 가속되는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 문제를 두고 미국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박사가 사회와 혐오감의 관계를 논한 저서 [혐오와 수치심]에서 말한 내용을 들어 차별이 시사하는 바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박사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경계선을 만들려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 대한 ‘혐오감’에서 비롯된 경계선을 만들어 ‘안도감’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이렇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우리는 도움을 얻기 위해 혐오를 불러낸다.”

여기서 누스바움 박사가 말하고자 한 바는 ‘사악한 행위를 하는 것은 특정 단체일 뿐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다’고 보는 사고인데, 감염증이 야기하는 혼란과 차별을 둘러싼 문제에도 그 구도가 들어맞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박사가 지적하듯이 ‘병원균’이라는 의학적 단어가 혐오감을 나타내는 악의적인 표현으로 사용돼 특정 사람들을 얕보거나 억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차별의 근원에 있는 ‘우리야말로 가장 올바르고 존귀하다’는 의식은 어떤 사회적 위기가 일어났을 때 ‘우리만은 어려움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과 더불어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감이 강해져 관계를 끊음으로써 안도감을 얻으려는 구도가 보입니다.

누스바움 박사는 혐오감은 그런 감정을 드러낼 상대나 집단에 대해 ‘공동체 또는 세계의 구성원이라고 보기 어려운 낙인을 찍는 것’으로 특히 그것이 ‘힘없는 집단이나 사람들에게 그러한 혐오감이 생기면 위험한 사회적 감정이 된다’고 경종을 울립니다.

또 박사가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감정으로 ‘분노’를 중요하게 여겨, 그 기능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노에는 건설적인 기능이 있다. 즉 ‘이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 왔다면 더 이상 그러한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분노는 그 자체로 부당함을 바로잡고자 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SGI 인권교육의 주안점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

그런 의미에서 말하면 사람들이 느끼는 ‘살기 힘들다’는 감정에는 차별 의식이 심해지는 원인이 돼 사회를 분열시킬 위험이 있는 반면, 공생의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건설적인 행동을 하게 할 가능성도 숨어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따른 타격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 미치는 가운데, 사람들의 생명과 존엄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이전보다 더욱 절실히 느낀 사람은 절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 자기가 느끼는 ‘살기 힘들다’는 감정을 다른 사람을 얕보는 ‘혐오감’으로 해소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느끼는 ‘살기 힘들다’는 감정을 헤아리면서 사회의 냉엄한 상황을 바꾸고자 ‘건설적인 행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연대를 넓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신을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우리가 신봉하는 불법의 인권사상도 그 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더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느낀다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점을 깊이 음미해야 하고, 그 실감을 자기 삶의 기축으로 삼아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석존은 가르쳤습니다. 불법의 인권사상은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감을 ‘다른 사람에게도 열린 마음’으로 승화시켜 자신과 다른 사람, 자신과 사회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SGI는 [법화경]에서 설한 ‘만인존엄’ 정신을 바탕으로 어떠한 차별도 허용하지 않고 누구도 소홀히 하지 않는 사회 건설을 목표로 유엔이 호소하는 인권교육을 일관되게 추진했습니다. 특히 ‘유엔 인권교육훈련선언’을 채택한지 올해 12월로 10주년의 가절을 맞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인권교육의 힘으로 구축해야 할 지침으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를 내걸었습니다.

원을 그릴 때 ‘원둘레’ 중 어딘가 조금이라도 빠지면 원이 완성되지 않듯이, 보편적인 인권 존중도 차이와 사회적인 구별로 무시당하거나 배제되는 사람이 있는 한 슬로건인 채로 끝나 완결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사회적 구조화로 ‘소홀히 여겨 잃어버린 인권과 존엄이라는 원둘레’를 누구나 볼 수 있는 형태로 부각해 함께 존엄의 소중함을 공유하면서 삶을 직시하고 사회 본연의 모습을 바꾸는 연대를 후원하는 힘이 바로 인권교육입니다.

SGI가 펼친 인권교육도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라는 원을, 같은 세계에 사는 인간으로서 함께 그려가는 일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감염증과 관련된 차별과 유언비어의 만연을 방지하고자 거듭 노력하면서 코로나19의 위기에 따른 불안과 공포의 암운을 날려버리고 ‘누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마음을 인권문화로서 결실을 보게 하는 도전을 지금이야말로 힘껏 일으켜야 하지 않을까요.

※ 이케다 다이사쿠 - 1928년 1월 2일 도쿄 출생. 창가학회인터내셔널 회장. 소카대학교·소카학원·민주음악협회·도쿄후지미술관·동양철학연구소 등 설립. 유엔평화상·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 등 24개국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 수상 다수.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397개의 명예박사·명예교수 칭호 수여. 토인비 박사와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비롯한 저서 다수.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112호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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