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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전통 제철기술 복원한 이은철 장인의 구슬땀 

匠人의 망치질에 불꽃이 활짝 피어나네 

전민규 기자
일제 강점기에 맥 끊긴 전통 제철 기술 복원에 36년 인생 바쳐
4개월에 걸쳐 한 자루 칼 완성… 전통 잇기 위해 나라 지원 시급


▎이은철 장인이 여주 작업실에서 철을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인 ‘접쇠’를 하고 있다. 벌겋게 달아오른 쇠가 이 장인의 망치질에 화려한 불꽃을 뿜어내고 있다.
"전통 방식으로 현재까지 쇳물을 만드는 곳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할 겁니다.”

지난 12월 5일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에 위치한 ‘한국전통철문화연구소’에서 도검의 형태를 다듬던 이은철 장인이 말했다. 올해 만 64세인 그는 36년 동안 우리 민족의 ‘고대 제철기술 복원’에 매달렸다. 최근 울산시 지원을 받아 ‘제철복원연구단’을 구성해 조선 말기 제철기술 복원에 성공하는 성과도 이뤘다. 고증을 통해 당시 가마를 재현하고 쇳물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총·포·도검 등의 취급이 금지되면서 맥이 끊겼던 우리 민족 고유의 제철기술을 체계화했다. 이 장인은 “거대한 제철소가 밤낮없이 가동되는 시대지만 삼한시대부터 시작된 제철 기술을 복원한 것은 우리 철기 문화의 정신을 되살린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자평했다.

27년 전 도시를 떠나 여주로 터전을 옮긴 이 장인은 “실험 가능한 건물 옥상, 지하실 등을 전전했지만 여의치 않아 마음 편히 작업할 수 있는 이곳에 정착했다”고 했다. 야트막한 산 아래 조금 낡았지만,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작업실은 이 장인이 직접 자료를 고증해가며 지었다. 네 개의 크고 작은 용광로와 화로가 작업실 마당 등에 자리 잡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철광석과 숯을 이용해 쇳물을 만들고 거기서 나온 철을 이용해 도검 등의 작품을 만드는 모든 작업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제철부터 접쇠, 연마까지 전통방식 고집


▎이은철 장인이 공들여 만든 수많은 작품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작품 하나하나에서 36년 넘게 고대 철기 복원을 위한 몸부림이 느껴진다.
“불꽃이 튈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섭씨 1300도까지 올라간 화로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쇠가 이 장인의 망치질에 불꽃을 사방으로 날려 보낸다. 쉼 없는 망치질에 쇳덩이가 평평하게 펴지면 집게로 쇠를 단단히 잡고 망치로 때려 접는다. 불순물을 배출시키고 밀도를 높여주는 이 ‘접쇠’ 작업을 거치면 쇠가 더 단단해진다. 도검의 뼈대가 되는 ‘백련강’은 이 접쇠 작업을 100번 반복한 쇠를 의미한다. 백제가 일본에 전한 ‘칠지도’가 백련강으로 만든 대표적인 도검이다. 형태가 잡힌 칼은 날을 세우는 연마 작업을 거쳐 비로소 도검으로 완성된다. 연마 작업은 2개월 가까이 12개의 서로 다른 숫돌로 갈고 다듬는 인고의 과정이다. 칼 한 자루에 들이는 노력과 인내가 지독하다. 연마 작업을 마친 칼을 들어 빛에 비춰보면 불규칙한 선과 굴곡이 물결처럼 보이는데, 약 4개월에 걸친 힘든 작업의 흔적이자 각각의 도검이 가진 고유의 지문이다.

제철부터 접쇠, 연마까지 모든 과정이 전통 방식을 따르다 보니 이 장인이 1년에 만들 수 있는 도검은 3~4자루에 불과하다. 어렵게 완성했더라도 마음에 차지 않는 도검은 냉정하게 잘라 버리기도 한다.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해 만들지만, 이 장인은 지금까지 도검을 상업 목적으로 내놓은 적이 없다. 하루 24시간 기술 복원에만 매달려도 시간이 부족해 사람을 만나고 영업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이 일에 뛰어든 뒤 금전적으로 여유로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이 장인은 후계자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젊은 시절에는 작업에만 몰두하느라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배우고 싶다며 찾아온 사람도 있었지만, 고된 작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보상 때문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모두 떠났다. 반평생을 바쳐 어렵게 축적해온 기술의 대가 끊길까 걱정이라는 이 장인은 “내년부터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전시도 하고 작품 판매에도 나서 볼 생각”이라며 “우리 문화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인 만큼 젊은 사람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국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장인이 철을 반으로 접어 붙이는 ‘접쇠’ 작업을 하고 있다.



▎용광로에서 철광석과 숯을 이용해 얻어낸 잡쇠는 제련 과정을 거쳐 강철로 거듭 태어난다.



▎이 장인이 용광로에서 꺼낸 괴련철을 망치로 쪼개는 작업을 하고 있다.



▎36년의 시간 동안 우리 고대 제철 기술을 고증해 만든 이 장인의 도검.



▎연마작업을 하던 이 장인이 도검을 빛에 비쳐 보고 있다.



▎이 도검장이 마당에 마련된 작업장에서 도검의 형태를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사진·글 전민규 기자 jeonm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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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호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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