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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대세 ‘BTS-아미 현상’을 이해하는 5가지 키워드(2) 

아미는 어떻게 세계 최강 팬덤이 되었나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아미, 스타 팬덤보다 글로벌 문화 활동에 가까워… 자발적 연대로 차별에 저항
집단지성 구현되는 아주 드문 사례… 기획사 하이브와 노선 갈등은 새 불씨로


▎2021년 9월 20일(미국 현지시각) 방탄소년단은 뉴욕 유엔 총회에 청년세대 대표로 참석했다. / 사진: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2. 집단지성 | 아미는 어떻게 컨센서스를 형성하는가

아미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의 점조직이다. ‘공식 팬카페나 하이브의 플랫폼 위버스=아미의 본진’이라는 등식이 반드시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아미는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중심으로 교류한다. 이런 플랫폼은 수평적 문화에서 자발적 여론을 형성한다. 일례로 아미가 ‘히잡 착용은(강요가 아니라) 아랍 여성들의 선택’이라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이때 전 세계 아미의 소통을 돕기 위해 번역 계정 트위터가 따로 운영된다. 특정 커뮤니티나 팬카페 집행부끼리 방향성을 결정하는 체계와 결이 다르다.

이지행 박사는 “모든 사소한 사안에 의견이 엇갈리고 싸운다. 안 그러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2018년 빚어진 BTS와 일본 작곡가 아키모토 야스시의 협업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다. 당시 한국 아미들은 BTS가 친일 프레임에 얽힐 것을 우려해 결사반대했다. 해외 아미들은 ‘회사와 아티스트의 예술적 판단에 팬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라며 ‘토론 없이 보이콧하는 행태는 파시즘과 다를 바 없다’며 한국 아미를 비판했다. 최종적으로 BTS의 소속사는 우익 성향과 여혐 논란에 휩싸인 일본 작곡과와의 협업을 백지화했다. 이후 BTS 멤버 지민의 ‘광복’ 티셔츠를 빌미로 일본 음악방송 출연이 취소되자 아미들은 재결집했다. 일본 극우세력의 본질에 대해 한국 바깥의 전 세계 아미가 성찰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윤진혁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박사와 이상훈 경남과학기술대 교수, 정하웅 카이스트 교수 팀은 전 세계 273개 언어로 이뤄진 863개 위키백과의 성장을 측정했다. 2019년 2월[네이처 인간행동] 표지논문으로 선정된 연구 결과는 이랬다. “위키백과가 성장할수록 소수가 영향력을 더 갖는 구조가 존재한다. 특정 세력이 의도하지 않아도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과두정 체제가 만들어진다. 위키백과에 새로 진입하려는 사람이 있더라도, 기존의 시스템에 구축된 영향력(social force)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교수는 “누가 봐도 민주적 시스템이지만, 효율성을 위해 점점 과두정 형태로 변해간다”며 “그 결과 슈퍼에디터(소수의 적극적 참여자) 이외의 참여자들은 슈퍼에디터들에 점점 기대게 된다”고 말했다.

이 ‘우울한’ 법칙에서 적어도 현시점까지 아미는 예외다. 이지영 교수는 “아미는 집단지성의 개념이 구현되고 있는 아주 드문 케이스 중의 하나”라고 진단했다. 그는 “(어떤 이슈가 발생하면) 아미 안에서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지 전략을 짜고, 다른 아미들을 교육하는 과정이 상시로 일어난다”며 “재미있게도 사안마다 전문가가 다르다. 가령 한국에서 문제가 터졌다면 전 세계 아미가 한국 아미의 말을 따른다. 누구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2021년 2월 독일 라디오방송 진행자가 BTS를 코로나19에 비유하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가했다. 그러자 독일 아미들이 전 세계 아미들을 위해 번역과 가장 효율적인 항의 방법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 아미의 집요한 화력에 굴복한 해당 방송국과 진행자는 사과했고, BTS의 ‘Dynamite’를 틀어야만 했다. 그 프로그램은 3개월 후 폐지됐다.

3. 세대공감 | 중·노년층도 참여하는 특별한 팬덤인 까닭


▎종군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기부 활동을 비롯해 아미는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사진:정의 기억연대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아미는 보통 팬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일부 스타 팬덤은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맹목적 추종을 한다. 그러나 아미는 (하이브에) 잘못된 점을 지적해 좋은 방향으로 나가자고 한다. 이런 아미의 활동 자체가 팬덤보다는 글로벌 문화 활동에 가깝다.” 이지행 박사도 “BTS에 공감하는 SNS로 연결된 글로벌 시민이 모여 최선을 다한 결과가 지금 아미의 모습”이라고 정의했다.

이지영 교수는 “광화문에 10명이 시위하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지만, 100만 명이 나가면 세상이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전 세계의 그 많은 아미가 동일한 목적과 동일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의 포텐셜을 가지고 있는 일”이라고 해석했다. 가령 쌀 기부, 헌혈, 개발도상국에 우물 만들어주기, 나무 심기 등 아미의 선행은 기존 K팝 팬덤의 그것에 비해 딱히 새삼스럽지 않다. 다만 아미는 글로벌로 연대해 실천한다는 스케일 면에서 특별하다. 점조직인 아미에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금이 기꺼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내부의 신뢰감이 돈독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연대하면서 승리해갔던 경험은 엄청난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럴 수 있는 근원적 배경에는 전 세계 아미들이 같은 불안을 공유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코로나19 이후 더 큰 부의 양극화를 불러왔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 유력하다. 이 암울한 시대에 BTS는 구원과 위안의 메시지를 건넸다. “삶은 아이러니로 가득하고 모든 좋은 투쟁과 눈물의 결과다…팬들의 에너지와 우리의 에너지가 만나서 아이러니를 극복해야 한다.”,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팬들을 이용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듯이, 여러분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방탄소년단을 이용하라.”

미국 [포브스], 영국 [BBC], 프랑스 [르 피가로] 등 주류 언론은 BTS를 ‘21세기 비틀스’로 수식한다.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영향력 면에서 2020년대 BTS와 1960년대 비틀스가 닮았다는 함의다. 이지영 교수는 “새로움의 측면이 아니라 공감의 측면이 포인트”라고 단언했다. “BTS는 세대의 구분을 넘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굉장히 보편적인 메시지를 말한다”며 “누구나 할 수 있고, 그리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꾸준히 메시지를 전달한 진정성이 전달되며 메시지의 파급력이 더 커지는 것 같다.”

BTS의 건전한 메시지는 기성세대의 (K팝에 관한) 거부감을 중화시킨다. ‘우리 아이에게 소개해줘도 해롭지 않다’는 믿음을 지닌 중년층, 노년층 아미가 BTS 콘서트에 적잖이 출몰한다. 이 교수는 #GotArmyRightBehindArmy를 사례로 전했다. 기성세대 아미가 청년세대 아미에게 인생 카운슬링을 해주는 온라인 공간이다. 공동체를 통한 위로와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아미는 일정 부분 종교의 순기능을 떠올리게 한다. 이지행 박사는 “(아미 활동은) 나를 성찰하고 나의 변화로 주변이 1인치라도 나아지는 열렬한 애정과 신념으로 나타난다”고 규정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202호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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