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토포엠] 想 

나무를 보는 마음 

이창기

▎움트는 봄. / 사진:박종근 비주얼실장
열매 하나가 항문에 힘을 주어 땅 위로 몸을 내민다. 뿌리는 땅속에 두되 줄기는 하늘을 향해 곧추선다. 이 둥근 기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가지를 뻗는데 그 길이는 일정하고 끝으로 갈수록 가늘다. 봄이 되면 가지마다 앞 다퉈 어린잎들이 움튼다. 찬바람에 쉼 없이 흔들려도 누구 하나 전후좌우를 동서남북과 혼동하진 않는다. 허우대는 비슷하지만 피워낸 빛깔과 모양은 제각각이다. 저마다 깔고 앉은 터전에서 갈수록 움츠리게 만드는 시간을 붙들고 늘어진 결과다. 무리 지어 살다 보니 서로에게 그늘을 지우거나 어깨를 부대껴 부러지는 일쯤은 다반사고, 안으로 파고든 가지, 굽고 나약한 가지를 품은 채 구부정하니 추운 겨울을 난다. 고사목이나 칡덩굴과 뒤엉켜 평생을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현자들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말한다. 나무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가 숲을 위한 거라는 주장에 반대하며 애써 똑바로 선다.

※ 이창기 -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돼 등단. 시집으로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문학과지성사, 1989), ‘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문학과지성사, 1997),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문학과지성사, 2005), ‘착한 애인은 없다네’(창비, 2014) 등이 있음.

202204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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