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특별기고] 명품 반값 아파트 공급 위한 재원 마련 어떻게? 

“서울 마지막 금싸라기 땅 용산 정비창, 뉴욕 배터리파크시티처럼 개발해야” 

지속가능한 공급 이뤄지려면 재원 조달 창구 마련이 필수
뉴욕 BPCA, 민간에 개발권 넘긴 수익으로 서민 주거 안정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서 바라본 배터리파크시티. 배터리파크의 성공은 공기업인 배터리파크시티공사 (BCPA)가 배터리파크의 개발권을 민간개발 회사에 넘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양질의 주택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싶다는 정부의 선한 의지, 그리고 ‘싼 게 비지떡’이 아닌, ‘기왕이면 다홍치마’식으로 품질 좋은 아파트를 원하는 국민의 욕구가 2022년 대한민국에 토지임대부 주택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

그러나 고품질이라면 고가일 수밖에 없고, 가격이 저렴하면 저품질(high quality high price, low quality low price)이 당연하다. 하늘에서 ‘만나(여호와가 하늘에서 날마다 내려주었다고 하는 기적의 음식)’가 내리지 않으니, 한정된 재원으로 고품질을 달성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나온 것이 바로 토지임대부 주택이다. 토지는 국가가 소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이 이미 10억원을 넘어섰다. 그런데 서울 어딘가에 비록 건물뿐이긴 하지만, 5억원 미만에 구매 가능한 집이 있다는 것은 ‘벼락거지’를 경험한 국민에게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저렴한 양질의 주택을 원하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을 정도의 물량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파랑새를 찾듯이 서울 전 지역을 뒤져서라도 서민주택을 지을 땅을 찾겠다는 공공의 의지는 높게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반값 아파트를 지을 국가 소유 토지는 그리 많지 않으며, 입지가 반드시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종국에는 민간 토지를 매입해야 할 것이다. 고가에 민간 토지를 매입하더라도 서민에게는 반값으로 주고 싶은 정부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많은 사람이 ‘세금을 걷어서’라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는 고가주택 소유자에게 징벌적 세금을 거둬 그 재원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절대선(善)인 것처럼 말한 적도 있었다.

“국공유지만으로는 유의미한 서민주택 공급 못 이뤄”


▎서울 용산 철도 정비창 부지는 서울에 남은 마지막 대규모 개발 부지로 꼽힌다.
문제는 사람들은 대개 양질의 주택은 누리고 싶지만, 세금은 적게 내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공적재원으로 그 ‘덜 내고 더 받는’ 간극을 메우려다가는 ‘파산’에 이르기 마련이다. 국가재정 파탄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반값 아파트에 들어갈 공적재원에 대해 주판알을 튕겨보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서울에 남은 마지막 대규모 개발 부지인 용산의 철도 정비창 부지에 공공이 직접 1만 호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계획한 대로 진행되면 10만 호도 아닌 1만 호 공급을 위해 서울 요지의 땅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용산 정비창에 고가의 분양주택과 상업용 시설들을 넣어 토지임대료를 높게 받으면, 그것을 기금화해 반값 아파트 공급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재원이 마르지 않는 샘물을 하나 만드는 셈이다. 그러면 영원히 서민 주거 안정에 사용할 맑은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다. 매년 끊임없이 들어오는 그 재원으로 중산층 이하 서민을 위한 집을 지을 짓는다면 서민 주거 안정은 결코 꿈이 아니다. 국민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하지 않고 증세 없이 공적재원을 투입하려면, 국가도 돈을 버는 수밖에 없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미국 맨해튼의 배터리파크시티를 벤치마킹하겠다는 것은 훌륭한 선택이다. 단, 우리나라에서 토지임대부 주택의 성공 사례로 소개되는 배터리파크시티는 사실 ‘중산층 이하 서민’을 위한 주택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미국 부동산 매물 사이트에 등록된 배터리파크시티의 임대료는 현재 방 2개짜리 아파트가 월 9150달러, 5600달러. 한화로 각각 월 1166만원, 713만원이다. “배터리파크시티의 주택들이 중산층 이하 서민을 위한 주택인가?”라고 뉴욕시 과세국장 티모시 시어스(Timothy Sheares)에게 질문하니 다음과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우리가 말해줄 수 있는 선에서 답한다면, 이 경우의 콘도미니엄은 소유를 위한 아파트이지, 임대는 아닙니다. 배터리파크시티 쪽에 임대 아파트가 있기는 하나 저소득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맨해튼의 콘도미니엄은 우리나라의 고급 아파트를 뜻한다. 그리고 그는 배터리파크시티가 미국 전역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지역이라는 것을 미국 렌털서비스 업체인 ‘렌트카페(RentCafe)’의 보고서에 관한 기사를 인용해 알려줬다.

“렌트카페는 우편번호로 2019년에 어떤 동네가 가장 비싼지 탐구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배터리파크시티를 아우르는 맨해튼 10282는 월평균 임대료가 6211달러로 전국에서 가장 비싼 동네로 조사됐다.”

이렇듯 2019년 기준 배터리파크시티의 월평균 임대료는 6211달러(한화 791만원)였고 미국에서 가장 비싸다. 그렇다면 매매가는 얼마일까? 미국 뉴욕시 과세국에 연락해 직접 자료를 받아본 결과 ‘2021년 8월 3일 배터리파크시티의 아파트 하나는 64만5000달러(한화 약 8억2000만원)에, 2021년 10월 22일에는 110만5000달러(한화 약 14억1000만원)에 매매됐다.

BPCA, 초과 수익을 저소득층 채권 상환에 사용


▎1. 미국 부동산 매물 사이트에 등록된 배터리파크시티의 임대료는 월 9150달러 (한화 1166만원)에 이른다. / 2. 뉴욕시 과세국장 티모시 시어스 (Timothy Sheares)는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배터리파크시티 쪽 임대 아파트는 저소득층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사진:정수연
배터리파크시티는 1966년 선거를 앞둔 뉴욕주지사와 시장이 진보 성향 정책으로 중산층 이하 서민을 위한 1만4000가구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토지임대부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SH공사와 같은 ‘배터리파크시티공사(BPCA: Battery Park City Authority)’를 설립했다. 뉴욕시는 시장 토지가격의 6% 수준에서 토지임대료를 받기로 했고 그 밖의 필요재원 조달을 위해 채권을 발행했다.

BPCA는 공급 가구 중 1/3은 시장가격 수준으로 비싸게 공급하고 2/3는 뉴욕주 보조금으로 중산층 이하 서민에게 싸게 공급하려 했는데, 이는 현재 용산 정비창을 둘러싼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1973년 미국에 불어닥친 불황이었다. 뉴욕시 재정이 어려워졌고, 뉴욕주 개발공사는 부도에 이르렀다. 결국 1989년에 이르러서는 저소득층과 중산층 관계없이 모든 주택을 시장가격에 분양했다. 부채를 감당해야 했던 BPCA는 상업용 부동산 개발 파트너로 캐나다의 부동산 개발회사인 O&Y(Olympia&York)에게 배터리파크시티의 토지사용권을 내줬다.

O&Y는 배터리파크시티에 건물을 지어 임대사업을 할 수 있었으며, BPCA의 기존 부채 탕감을 위해 매년 200만 달러를 지대(ground rent)로 즉시 지급하기로 했다. 또 10년 후부터는 BPCA가 오피스 수익의 일부를 받기로 했다. 그 대가로 O&Y는 WFC(World Finance Center)를 짓기 위한 부지를 확보해 건설했다. WFC 분양은 성공적이었다.

시장가로 분양한 임대 주택과 고급 아파트는 젊은 직장인들(Yuppies) 위주로 빠르게 분양됐다. 임대료는 곧 시장 최고 수준에 이르렀고, 고급 아파트 또한 높은 가격대를 형성했다. 이러한 상업용 및 주거용 분양의 성공으로 BPCA는 상당한 초과 수익을 올렸다. 그 수익은 4억 달러에 달하는 저소득 및 중산층 주택개발을 위한 채권을 상환하는 데 쓰였다. 이때 저소득 및 중산층을 위한 주택은 뉴욕주의 다른 곳에 별도로 개발됐다.

이것이 배터리파크시티 모델의 진실이다. 최초의 의도가 어떠했건 간에 BPCA는 그곳에 직접 건물을 지어 분양하지 않았다. 배터리파크시티는 민간의 이윤추구라는 동력에 힘입어, 맨해튼 비싼 토지의 최유효이용(부동산의 유용성이 최고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걸맞은 용도로 쓰였고, BPCA는 고수익을 올리는 마르지 않는 샘물을 장만했다. 그리고 매년 솟아나는 그 샘물로 주거안정에 목말라 있는 뉴욕시의 중산층 이하 서민의 갈증을 식혀줄 수 있었다.

여기에서 과연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토지임대부 주택이 물리적으로 지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원하는 것은 ‘서민 주거 안정’이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토지임대부 주택, 반값 아파트를 논하고 있을 뿐이다.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반값 아파트 수혜 우선순위는 ‘청년’ 바람직

그러니 새로운 해법, 용산 정비창을 고급 용도로 전환하고 그로부터 벌어들인 수익을 기금화해 오로지 서민 주거 안정에만 사용하게 하는 것을 고민해볼 시점이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수단’일 뿐 우리가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서민 주거 안정’ 그리고 지속가능한 주거모델이다. 지금은 더 새로운, 더 혁신적인 주거모델을 찾을 일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재원 조달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분양’ 역시 반드시 공공이 주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 배터리파크시티의 성공은 결국 공기업인 BCPA가 배터리파크시티의 개발권을 민간개발 회사인 O&Y에 넘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값 아파트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재원 조달이 관건이다. 토지가 관건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다. 몇천 세대 공급하고 끝날 반값 아파트라면 그것은 주거모델이 아니라 그저 모델하우스일 뿐이다. 국유지는 얼마 안 되니 민간 토지를 매입하는 것이 반값 아파트를 계속 지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결국 토지임대료와 건물분양가를 저가로 유지하려면 배터리파크시티 같은 재원 창출 개발사업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민간건설사와 부동산개발을 죄악시하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국가가 토지를 민간에 위탁 경영해, 그로부터 발생한 수익을 중산층 이하 서민에게 사용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다.

그렇다면 이 국가가 벌어들인 수익을 서민 가운데 누구에게 가장 먼저 사용해야 할까? 주택 공급에 있어서 공공의 목적은 서민 주거 안정이다. 특히 ‘공공의 도움 없이는 혼자 설 수 없는 저소득층’을 돌보는 것은 오롯이 공공의 역할이다. 또 청년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게 되는 2057년을 염두에 둔다면 공공은 그 우선순위에 ‘청년’을 놓고 사고해야 한다. 표를 의식해 불특정 다수를 반값 아파트의 수혜대상으로 놓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공적재원의 배분은 사회 구성원의 동의가 필요하며, 우리 사회는 분명 공동체의 가장 약한 고리들을 튼튼히 이어놓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약한 고리들을 튼튼히 이어주는 역할이 바로 공공 본연의 역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당부하자면, ‘반값’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기존보다 20~30% 정도만 저렴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이다. ‘반값’을 고집하지 않아 ‘파산’을 피할 수 있고, ‘반값’이 아니라서 더 많이 지을 수 있다면, 과감히 ‘반값’이라는 이름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감정평가학회장 jsyecono2@jejunu.ac.kr

202206호 (2022.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