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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제13회 ‘홍진기 창조인상’ 영광의 얼굴(2) | 사회부문 통영국제음악제 

영호남·남북 화합 꿈꾸며 시민이 일군 글로벌 축제 

2015년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에 한국 최초 선정
평균 객석 점유율 90%, 올해 20주년 국제 콩쿠르


▎통영국제음악제가 올해 20주년을 맞은 가운데 4월 3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소프라노 박혜상이 통영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펼쳤다. / 사진:통영국제음악재단
서울에서 379㎞ 떨어진 최남단의 땅. 인구 12만 명의 이 작은 어업 도시에서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가 시작됐다. 높은 수준의 음악·공연·문화를 품겠다는 취지였다. 이용민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는 “전문가 집단, 인프라 그 무엇도 없었다. 분위기는 냉소적이고 비관적이었다”고 회고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냉소와 비관은 없다. 통영은 2015년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에 한국 최초로 선정됐다. 또한 통영에서 열리는 음악대회는 국제 콩쿠르로 전 세계에서 참가자가 모인다. 아시아·태평양의 공연예술센터 연합회(2014년), 세계 현대음악제(2014~2016년) 같은 대표적 국제단체의 총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는 올해 20주년을 맞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있다. 음악제의 평균 객석 점유율은 90% 수준이고, 관객의 70%는 통영 바깥에서 찾아오고 있다.

음악제의 성공에는 두 인물이 있다. 2002년 설립된 통영국제음악재단의 초대 이사장인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고(故) 윤이상 작곡가다. 박성용 회장은 부산과 목포의 중간인 통영에서 영호남의 통합을 꿈꾸며 음악제를 출범시키고, 지휘자 주빈 메타와 빈소년합창단 같은 음악가들을 섭외했다. 비용을 모으고 지방정부를 설득한 일도 그의 몫이었다.

윤이상 작곡가는 통영 태생으로 한국 음악과 세계 음악계의 중심을 연결한 최초의 인물이다. 1967년 동백림 간첩사건으로 한국 사회의 민감한 존재가 된 그를 1회 음악제부터 앞세운 결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지 않고 20년을 왔다. 윤이상의 음악적 성과, 남북 화합 세계관에 초점을 맞춰 긍정적 측면을 살린 덕이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2016년 통영을 ‘아시아의 잘츠부르크’라고 했다. 하지만 통영은 이제 유럽의 어떤 도시에 비유할 필요가 없는 독특한 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통영 내부의 열기도 뜨겁다. 이들은 시민 서포터스 ‘황금파도’를 만들고 돈을 거둬 1회부터 음악제를 도왔고, 지금은 모여서 음악을 공부하고 공연장을 채운다.

※ 통영국제음악제= ▶통영국제음악재단 창립 및 제1회 통영국제음악제(2002) ▶제1회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2003) ▶통영국제음악당 개관(2014)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네트워크(UCCN)선정(2015) ▶윤이상 묘소 베를린에서 통영으로 이장(2018) ▶진은숙 예술감독 취임(2022)

202208호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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