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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13) 인천 무의도 호룡곡산 하나개해수욕장에서 

 

자연은, 사람 마음을 치유하는 명의(名醫)…

인천 계양산 산자락 끝에 있는 우리 마을은 참 매력적이다. 경인 운하가 인근에서 도도히 흐르고 인천공항을 잇는 전철과 고속도로가 뒷마당에 개통돼, 서울 강남이 1시간 남짓, 수도권 최고 휴양지인 영종도와 강화도가 40여 분 이내 들어오는 생활권이다. 그래서 편리한 도시 문명과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바로 누릴 수 있다. 특히 사람에 지치고 마음이 답답할 때, 탁 트인 영종대교를 내달리면 서해 바다 작은 섬 여러 친구들이 언제나 나를 웃으며 반갑게 반긴다. “이놈아! 이놈아! 나는 온갖 비바람과 폭풍우를 다 맞고 산다. 그 까짓게 뭐라고, 그 까짓게 뭐라고…” 그렇게 나를 위로하고 나무란다. 그날도 단숨에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내달려, 마치 섬의 형태가 장군복을 입고 춤을 추는 것 같다 해서 이름 붙은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 백사장에 멈춰 섰다.


하얀 모래밭에 앉았다. 실타래처럼 엉킨 고뇌와 널브러진 여러 파편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예쁘게 웃는 서해 바다 그 순결한 파도에 의탁해 말끔히 실어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도통 머리가 맑아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해수욕장에서 운영하는 산악 오토바이가 붕붕 굉음을 질러대며 질주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갑자기 타보고 싶은 용기가 솟구쳤다. 한번 폼 나게 내달리고 싶었다. 그런데 아뿔싸! 막상 오토바이에 올라타니 앞으로 한 바퀴도 안 굴러가고 시동만 자꾸 꺼졌다. 그때 내 마음 한구석에서 평생 나를 짓눌러 온 트라우마 악령이 “너는 안 돼, 너는 할 수 없어”라며 또 내 온몸을 강하게 억눌렀다. 정확히 45년 전, 조그만 산골 국민학교 6학년 미술 시간이었다. 크레파스와 도화지를 준비하지 못해 미술 시간이 꽤나 싫었는데, 어김없이 또 그 시간이 돌아오고 말았다. 그날은 6·25 동란 포스터를 그리는 날이었고, 실기 시험에 반영하는 중요한 날이었다. 그날도 어찌어찌 포스터를 완성해 작품을 선생님에게 제출했다. 그런데 평소 나를 참 예뻐하고 믿어주던 담임 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고는 “김희범, 이런 바보 같은 놈”이라고 큰소리로 꾸중을 하시더니 최하 점수 60점을 줬다. 어린 내가 봐도 내 그림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형편 없었다. 결정적으로 그림 속 포스터 제목이 ‘6·25 동란’이 아닌 ‘6.25 동낭’이었다. 아마 그때 나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교과서 외엔 책 한권 읽지 못해서 그 뜻을 정확히 몰랐거나, 국어 받아쓰기 실력이 부족해 소리나는 대로 그냥 ‘동낭’으로 썼던 것 같다. 그날 충격은 깊고도 아주 오래가서 그 뒤로 미술 등 손이나 몸으로 하는 것에 트라우마가 생겨 버렸다. 중·고등학교 내내 미술 시간이 제일 싫었다. 물품 준비도 거의 하지 않아 실기는 항상 최하위 점수였다.

내 친할아버지는 인근 마을까지 소문난 쟁기쟁이 장인으로 훌륭한 목수이자 맥가이버였는데, 나는 그 이후 스스로를 손으로 하는 것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어 버리고 작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 가운데 내가 춤도 제일 못 췄고 엉성한 몸치여서 군에서도 3년 동안 태권도 지도를 받았지만 끝내 단증 하나를 못 따고 제대했다. 그렇게 자신감을 잃고 나이 들어서도 전구 하나, 못 하나를 제대로 못 박는 사람이 됐다. 어쩌다 할 수 없이 몸으로 뭔가 하려고 하면 먼저 머리가 깜깜해지면서 멀쩡한 부품, 공구만 망가지고 박살나기 일쑤였다.


최근, 그런 내게 이를 극복하고 3수만에 기계설비 온돌마루 기능사 국가 자격시험에 합격하는 일대 '사건'이 있었다. 명색이 건설회사 대표이고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원들 중 일정 인원 이상 면허소지자가 반드시 필요한데, 제때 직원 채용이 여의치 않아 꼭 내가 따고 말겠다는 생각을 그동안 수차례 했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손놀림이 필요한 것이어서 도저히 용기와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어릴 적 악몽의 트라우마 때문에 도전을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 나이 내일모레면 환갑, 이번에 도전 못 하면 평생 못한다는 생각으로 눈 딱 감고 비싼 수업료를 내고는 학원에 원서를 접수해 버렸다.

아니나다를까, 실습을 하면 나만 유독 신기하게 온몸에 기름 범벅이 되고 머리가 하얘지면서 도저히 어려워 못하겠다는 생각이 머리통을 점령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갔다. 남들은 1번 할 때 나는 그 5배 정도 더 시간을 투자하면서 연습을 계속했다. 그 뒤로 신통방통하게도 공구가 손에 익어 가고 시간이 단축되고 재미도 붙고 자신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나 같은 문외한, 어리석은 사람, 트라우마로 시달리는 중증 환자에게도 그 유효함을 입증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격시험을 보게 됐다. 첫 번째 시험 때는 여러 치수를 충분히 외웠지만, 혹시 몰라 작은 종이쪽지에 적어놓은 것을 시험 시작 직전 최종 점검 차 꺼냈다가 감독관에게 들켜 곧바로 압수를 당했다. 그렇게 실기시험이 시작됐고, 30여 분간 나의 손발과 머리가 온갖 부산을 떨며 무엇을 해보려고 했지만, 우왕좌왕만 할 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겨우겨우 머릿속이 진정되자 캄캄했던 치수가 모두 생각났다. 하지만 시간 압박에 서두르다 동 배관 접기를 거꾸로 하면서 동관이 부러져 완성도 못 해보고 허무하게 바로 탈락했다. 2차 시험은 실제 연습과 동영상을 여러 번 보면서 충분히 준비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보다 꼼꼼히 해서 자격증을 꼭 따겠다는 욕심이 강했던지, 점수와 전혀 관계없는 작은 동 밸브를 신중하게 조이다 부지불식간 힘이 가해져 밸브가 깨져버렸다. 그래서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탈락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이제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라 어느 정도 자유자재로 손놀림이 가능해진 상태에서 3번째 도전에 나섰다. 역시나 위기가 찾아왔다. 마지막 관문에서 강관과 동관 치수가 맞지 않는지, 아무리 애써도 조립이 안돼 볼트를 채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 10분이나 여유가 있었다. 긴 호흡을 내 쉬고 다른 각도, 내가 생각하는 반대 방향으로 한번 조립해 보았다. 세상에나…. 딱 맞았다. 물도 안 새고 모든 간격 치수도 기준점 안에 들어와 꿈같은 최종합격이었다. 내 평생의 트라우마를 그 ‘1만 시간의 법칙’과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하고 날려버린 것이다. 그렇게 평생을 괴롭힌 ‘나는 못 한다’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국가기술자격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 반대의 사례도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TV에서 [전원일기]를 보고 느낀 감상문을 공책에 끼적거려 놨는데, 공부를 잘하던 한 친구가 그 글을 우연히 보고 네가 썼냐고 물어보더니 ‘정말 잘 썼다’고 칭찬해 줬다. 그 칭찬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게 됐고 그게 취미가 돼 평생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정말 어렸을 때 들은 말 한마디가 평생의 운명을 좌우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날, 그때를 생각하며 자랑스럽게 나를 격려하기 시작했다.
“너는 할 수 있어. 더 시도하면 돼…”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자신감을 갖고, 천천히 한 손으론 산악 오토바이 브레이크를 놓으면서 다른 한 손으론 재빨리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밀었다. 신기하게도 이젠 시동이 안 꺼지고 잘 간다. 역시, 세상 일이란 처음에는 서툴고 힘들지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요령이 생기고 잘하게 돼 있는 것이다. 모든 성공한 것은 위대한 시간과 도전의 힘이다.


그렇게 굉음을 내뿜으며 하나개해수욕장을 미친듯이 달리고 달렸다. 스트레스가 언제 날아갔는지, 마음이 아주 상쾌해지면서 하나개해수욕장의 명소라는 붉은색 기암괴석이 아름답게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참으로 이국적인 붉은 바위였다. 마치 어떤 이가 하얀 도화지에 애인이 사무치게 그리워 붉은 피를 토하며 정성 들여 한 땀 한 땀 그림을 그린 듯, 어딘가 애잔하면서도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또 신기했다. 어쩌면 저 아름다운 붉은 바위들도 처음에는 시꺼먼 용암 돌덩어리에 불과했지만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나약한 바람과 파도가 오랜 세월 정성을 쏟아 어루만지고 달래고 핥으면서, 몇 억 년의 고뇌에 찬 시간 법칙이 빚어낸 고귀하고 경이로운 멋진 선물이 아닐까? 세상이, 그리고 사람이 원숙하게 익어 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긴 시간의 숙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상쾌한 마음으로 호랑이와 용이 싸웠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호룡곡산(245.6m)에 올라, 편안하게 내 마음의 광명을 되찾았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명의(名醫)는 자연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0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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