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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영] ‘암흑기’ 걷는 삼성 스포츠단의 행로 

이재용 부회장, ‘용진이 형’에게 자극받을까?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4대 프로 종목 나란히 성적 부진으로 감독 교체, 육상 뺀 아마추어 종목 후원에서도 손 떼
김재열 사장, IOC 위원 도전에 관심… 대통령 사면 받은 이재용 부회장이 스포츠단 챙길 듯


▎지난 7월, 13연패에 허덕이던 삼성 라이온즈 더그아웃의 침울한 분위기. 비단 야구뿐 아니라 축구, 농구, 배구까지 삼성 스포츠단의 총체적 재건이 필요한 시점이다. / 사진:연합뉴스
스포츠계에서 경기도 용인 삼성트레이닝센터(STC)는 “앉은뱅이조차 일어나게 만든다”는 과장 섞인 찬사가 나올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재활 공간이다. 이곳에는 프로농구 삼성 썬더스와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 블루밍스 그리고 프로배구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클럽하우스도 집결해 있다.

STC 배구 훈련장을 방문하면 한쪽 벽면 전체가 플래카드로 뒤덮여 있다. 1995년 창단 이래 이 팀이 이룩한 성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삼성화재는 실업배구 77연승, V리그 11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진출, V리그 8회 우승이라는 전인미답의 성과를 거뒀다. 이 시절 삼성화재 직원들 사이에서는 “우리 회사는 본업보다 배구단과 시각장애인 안내견(犬)으로 더 유명하다”는 말을 듣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2016년 이후 영광은 거의 과거형이 됐다. 전설을 썼던 신치용 감독이 2014~2015시즌을 끝으로 물러난 후 2018년 KOVO컵 우승을 제외하면 명맥이 끊어졌다. 특히 2020년 이후 이 팀의 최근 3시즌 동안 V리그 순위는 7팀 중 5위→7위→6위였다. ‘왕조 시대’를 계승한 임도헌·신진식·고희진 감독은 전부 재계약에 실패했고, 2022시즌 김상우 감독이 부임했다. 하지만 8월 22~28일 전남 순천에서 열린 KOVO컵에서 삼성화재는 4강에서 탈락했다.

2022년은 삼성 스포츠단에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다.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은 9월 13일까지 KBO리그 10개 팀 중 8위다. 특히 6월 30일 KT전부터 7월 23일 키움전까지 13연패를 당했다. 1982년 창단 이래 처음 겪는 수모였다. 허삼영 감독은 8월 1일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감독의 임기는 지켜준다’는 암묵적 계율을 깰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끝 모를 연패에 성난 팬들은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와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트럭 시위까지 벌였다. 7월 10일 일부 팬들은 야구장에서 선수와 프런트를 공개 비판하는 ‘스케치북 시위’를 결의했다. 이에 대응해 구단은 입장 관중의 스케치북을 검열하는 무리수를 두다가 큰 반발을 샀고, 7월 28일 심야에 긴급 사과문까지 올려야 했다.

왕조에서 ‘감독의 무덤’으로 전락


▎2012년 런던올림픽을 참관한 故 이건희(오른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회장, 홍라희 여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삼성의 스포츠 정책은 방향성을 상실했다. / 사진:연합뉴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르기의 달인’이었다. 경쟁자들이 질려버릴 스케일의 투자를 감행해 초격차를 달성하는 전략으로 삼성전자를 글로벌 그룹 반열에 올려놨다. ‘일등주의’를 추구하는 이 회장의 이런 스타일은 스포츠단 운영에서도 고스란히 투영됐다. S급 인재라고 판단하면 돈에 구애하지 않고 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입혔다.

특히 배구단과 야구단은 이 회장의 이상을 완벽에 가깝게 현실로 구현했다. 삼성화재 배구단을 ‘해가 지지 않는 왕국’으로 조련한 신치용 감독은 삼성 역사상 최초로 체육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받았다. 삼성 라이온즈도 2002~2014년 기간에 7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류중일 감독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일궜다. “이 회장이 있는 한, 삼성이 만약 스포츠단을 접는 상황이 벌어져도 두 팀은 끝까지 남겨둘 것”이라고 할 정도로 두 팀에 대한 이 회장의 애정은 각별했다. 2014년 5월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해 5월 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의식을 되찾지 못했던 이 회장의 병실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보고 있었는데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친 순간 (야구 캐스터의 목소리에 반응해) 이 회장이 눈을 크게 떴다. 선수들이 잘해줘서 정말 감사하고 고맙다”는 이례적인 발표를 한 적도 있었다.

삼성에서 이토록 인정받았던 두 팀이었지만, 2016년을 기점으로 데칼코마니처럼 연착륙에 실패했다. 순위가 높을수록 신인이나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순서가 밀리는 현실에서 지속적인 강팀 지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문제는 급작스럽게 암흑기에 접어들었고,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현실이다. 2016~2020년 삼성 라이온즈 성적은 9위→9위→6위→8위→8위였다. 2021년 잠시 반짝(정규리그 2위)했지만, 이듬해 다시 수직 하락했다.

그렇다고 축구단, 남자농구단, 여자농구단에서 만회를 해주지도 못했다. K리그 수원삼성블루윙즈는 2008년 우승이 마지막이다. 2009년 이후 컵대회(FA컵) 우승은 4회 달성했지만, 장기 레이스인 K리그1에서 2018년 이후 순위는 6위→8위→8위→6위다. 2022시즌도 9월 12일까지 1부리그 잔류를 장담할 수 없는 9위다. 2018년 서정원 감독 이후 대행 체제를 포함해 감독 교체만 무려 5차례 발생했다.

남자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는 2021~2022시즌 승률 0.167(9승 45패)이라는 참담한 꼴찌로 몰락했다. 2016~2017시즌 준우승을 끝으로 최근 5년간 7위→10위→7위→7위→10위가 이 팀의 실적이었다. 2022년에는 상징적 존재였던 이상민 감독이 중도 사퇴하는 아픔까지 감수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2022년 삼성의 4대 프로 구단은 전부 감독이 교체됐다. 그나마 여자농구 삼성생명 블루밍스는 감독 교체를 피했지만, 2021~2022시즌 6팀 중 5위에 그치는 등 최근 3시즌 동안 꼴찌 1회를 포함해 5할 승률을 넘기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삼성과 대한민국 프로스포츠계를 양분하는 현대자동차그룹 소속 스포츠단들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배구의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농구의 현대모비스 피버스는 최태웅과 유재학이라는 지도자를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하며 성적과 이슈를 주도했다. 축구의 전북현대모터스는 2014년 이후 딱 1년(2016년)만 제외하고 K리그1에서 우승 7회를 이룩했다. K리그 우승을 못 한 2016년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더 큰 위업을 달성했다. 특히 2017년 이후 5시즌 연속 우승을 해냈고, 2022시즌은 2위를 달리고 있다. 프로야구 KIA타이거즈도 김기태 감독 시절인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었다.

‘무차별 인재 영입’ 대체할 패러다임 부재

다수의 체육계 인사들은 삼성 스포츠단의 퇴조를 “제일기획으로 관리 주체가 이관된 시점과 맞물린다”고 입을 모은다. 2014년 4월 1일 가장 먼저 축구단이 제일기획에 편입됐고, 9월 1일 남녀 농구단이 뒤를 따랐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다음인 2015년 8월 18일에는 배구단이 넘어갔다. 그리고 2016년 1월 1일 야구단 지분 67.5%까지 제일기획 소유가 됐다.

인기스포츠인 4대 종목에 비해 덜 알려졌을 뿐, 이 기간에 삼성은 레슬링 후원을 끊었고, 테니스단과 럭비단을 해체했다. 비인기 아마 종목에서 삼성이 현재까지 후원을 이어가는 분야는 육상만 남았다. 반면 삼성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톱 스폰서(최상위 등급 공식 후원사)’ 지위는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부터 계약한 톱 스폰서 비용은 4년 단위로 1억 달러(약 1400억원)로 알려져 있다. 삼성 스포츠 홍보의 무게중심이 내수보다 글로벌로 옮겨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삼성 스포츠단 운영 주체가 제일기획으로 전환된 후 긴축 기조는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선)’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농구단 삼성 썬더스의 최근 3년 샐러리캡 소진율은 72.76%→82.62%→81.54%였다. 쉽게 말해 ‘제도 안에서 허용된 예산조차도 다 소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그만큼 팀 내부에 고액 연봉 스타가 희소하다는 의미다. 여자농구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최근 3년 샐러리캡 소진율도 80%대였다.

농구나 배구에 비해 훨씬 많은 자본이 투하되는 축구에서 수원삼성블루윙즈의 연간 운영비용은 200억원대라는 것이 정설이다. 제일기획 이관 전에는 300억원대를 썼고, 이관 후에도 몇 년간은 삼성에서 지원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원이 끊긴 시점과 수원삼성이 우승과 연을 맺지 못한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권창훈, 정상빈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이 팀은 자체적으로 선수를 육성하는 방식에서 활로를 모색했다. 현금 이적도 줄였고 인지도 높은 외국인 선수 영입을 시도했지만 가시적 성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돈이 많이 들고 주목도도 높은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 야구에서 삼성 라이온즈는 2015년까지 팀 연봉 1위였다. 2015년은 삼성이 마지막으로 정규리그 1위를 달성한 시즌이었다. 이후 팀 페이롤은 계속 떨어져 2018년 7위 수준까지 내려갔다. 문제는 2022년 팀 평균 연봉을 3위까지 올렸지만 순위는 바닥권이라는 현실이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심화한 셈이다. 과거에는 박석민(NC행), 차우찬(LG행), 최형우(KIA행) 등 내부 FA 선수들을 계속 놓쳐서 성적이 나지 않았다면, 지금은 합리적이지 못한 투자로 팀 플랜이 망가진 것이라서 더 심각하다. 9월 12일까지 강민호(4년 최대 36억원, 타율 0.235), 백정현(4년 총액 38억원, 2승12패 평균자책점 5.26), 구자욱(6년 120억원, 타율 0.277 3홈런) 등의 대형계약은 재앙 수준이다.

이재용과 김재열, 역할분담 가능성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참석하는 등 국제 스포츠계에서 위상을 키우고 있는 김재열 ISU 회장. / 사진:연합뉴스
삼성 스포츠단의 퇴조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실리주의’가 작용한 영향이라는 시선도 있다. 돈이 안 되는 스포츠단은 선택과 집중의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논리다. 하지만 8월 15일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 부회장에게 여론친화적인 스포츠단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이 부회장은 어머니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여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과 종종 야구장 직관을 하며 대중의 호감을 끌어낸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전격적 감독 교체와 팬 사과문의 배경에는 ‘야구단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이 부회장의 의중을 고려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가뜩이나 그의 동갑내기 사촌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구단주를 맡고 있는 SSG 랜더스가 KBO리그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인지라 더 음미할 만하다.

2022년 6월 10일 삼성가(家) 로열패밀리에 속하는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이 국제빙상연맹(ISU) 회장에 선출된 것도 중대한 모멘텀이다. ISU 130년 역사상 최초로 비유럽인 회장이 되며 2026년까지 국제 스포츠계에 존재감을 드러낼 발판을 마련했다. 체육계에서는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부회장의 여동생)의 남편인 김 사장이 장인(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IOC 위원으로 가는 관문을 거치고 있다고 바라본다. 이렇게 진행된다면 이건희 회장의 일등주의 철학(국내)과 스포츠 외교(글로벌)를 이재용 부회장과 김재열 사장이 나눠 계승하는 역할분담이 성립한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210호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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